172화. 무림 왕국의 던전 레이드 (2)
혈염수는 테오를 힐긋 보더니 이어 고개를 돌려 주위를 한차례 둘러본 후 마현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배신자 마현. 드디어 복수를 할 수 있게 되었구나. 손님으로 대접해줬더니 주인의 자리를 강탈한 배은망덕한 놈. 드디어 네놈을 죽일 수 있겠구나.”
혈염수가 마현을 노려보며 분노를 내지르자 마현이 앞으로 나섰다.
“이놈은 내게 맡겨라.”
다들 마현의 의지를 읽었기에 뒤로 물러섰다.
아르헨, 장현 등은 마현을 믿었기에 혈염수는 그에게 맡겨두고, 다른 적들을 상대하기 위해 움직였다.
최형석은 마족화된 인간들을 보며 자신의 언데드 부하들과 아홉 꼬리 여우 전투로봇을 소환하기 시작했다.
그는 그동안 언데드 병사들과 전투로봇을 강화하는 데 모든 노력을 쏟아 부었다.
새로 얻은 스크롤의 방법으로 강화한 언데드 병사들을 시험해 볼 좋은 기회였다.
더군다나 언데드 병사와 전투로봇을 강화하는 방법을 알았기에, 재료만 있다면 앞으로 부하들을 더욱 강력하게 만들 수 있었다.
최형석이 손을 움직이며 주문을 읊자 그의 앞에 육망성 별모양의 마법진이 생겨나더니 하나둘 언데드 병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크레온과 그렉에 이어 가장 최근에 언데드화된 여섯 꼬리 여우들까지 나타났다.
“나의 병사들이여, 적들을 쓸어버려라.”
최형석이 손짓과 함께 명령하자 전투로봇과 언데드 병사들이 일제히 마족화된 무림인들을 향해 공격해나갔다.
이로써 본격적으로 최형석의 활약이 시작되었다.
“으음. 저건 언데드. 놈들 중에 사령술사가 있었나 보군.”
혈염수가 침음성을 흘리며 노려보았다.
그때 마현이 검을 휘두르며 혈염수를 공격했다.
“다른 자들을 신경 쓸 때가 아닐 텐데.”
“흥, 이제 네놈 정도는 가볍게 쓰러트릴 수 있다.”
혈염수 역시 어두운 기운을 줄줄 흘리는 검을 빼들더니 마현을 향해 맞서 싸웠다.
장현은 그 모습을 지켜보더니 이윽고 자신의 할 일을 찾아 움직였다.
그의 시선이 혈염수의 측근에 있는 수하들에게로 향했다.
장현은 그들을 공격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안젤라, 나와 함께 저놈들을 공격하자.”
“알겠어.”
장현과 안젤라는 음양합일신공을 운용해 마족화가 된 무림인들을 상대하기 시작했다.
창조신의 패드에서 얻은 시간 스킬과 공간 스킬을 처음으로 실전에서 사용했다.
적의 공격이 다가올 때 공간을 슬쩍 비틀어 타점을 흐리게 한 후 역습을 가하는 식이었다.
‘좋아, 점점 시간 스킬과 공간 스킬에 익숙해지는군.’
장현은 자신의 옆에서 함께 싸우는 안젤라를 보며 미소 지었다.
1회차에는 그녀가 자신의 연인이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심지어 테오에게서 전언을 받아 퀘스트를 받을 때까지도 이런 상황은 생각하지 않았다.
‘이 또한 과거와 달라진 모습이지.’
불가능하리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이렇게 하나씩 바꾸어간다면 마왕을 쓰러트리는 목표 또한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장현은 자신의 무기인 망치를 한손에 들고 다른 손에는 미리 준비한 암기들을 꺼내 쥐었다.
눈앞의 상대는 전대천마 혈염수를 따르던 마교의 장로다.
이름은 모르지만 그가 손을 움직일 때마다 어둠의 기운이 뿜어져 나와 그를 덮으려 했다.
저 어둠의 기운과 부딪힐 때마다 마나 포인트가 줄어들고 내공이 줄어들었다.
후우우.
장현과 안젤라에게 강력한 장풍이 휘몰아쳐 왔다. 음양합일신공으로 망치에 기운을 집중해 장풍을 빗겨냈다.
“커억!”
장현은 가슴이 진탕되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비릿한 피 맛이 입 안 가득 느껴졌다.
내상을 입은 듯했다.
그럼에도 신경 쓰지 않고 전진해나갔다.
어둠의 기운이 깃든 장풍과 장현의 내공이 부딪치며 내공이 점점 줄어들었지만, 그래도 계속해서 장풍을 뚫고 나갔다.
장현이 가까이 다가갈수록 더 이상 망치로 장풍을 빗겨내는 게 어려워졌다. 이제는 그냥 후려치며 버텨내는 수준이었다.
그는 이를 악물고 손에 든 암기에 기운을 둘러 쏘아 보냈다.
암기를 본 적은 뒤로 몸을 훌쩍 물리며 암기를 향해 장풍을 연달아 쏘았다.
날아가는 암기들 뒤로 장현이 기척을 숨기고 다가갔다.
놈이 암기를 쳐내는 틈을 타서 그는 망치에 기를 가득 모으고 사각지대에서 솟아나듯 회심의 일격을 가했다.
혈염수의 부하는 장현의 공격을 보고 당황하긴커녕 입가에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네가 암기를 날린 후 공격해올 거라 예상했다.”
천마신교의 장로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막강한 장풍 공격을 장현에게로 돌려 집중해 뿜어냈다.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승리를 확신하던 그때.
장로의 배에 퍼억 하고 구멍이 뚫리더니 손이 나타났다.
“어, 어, 이게 뭐야?”
장로는 자신의 배를 뚫고 나온 손을 보며 경악에 찬 얼굴로 뒤를 돌아봤다.
피를 울컥 토해내며 고개를 돌린 그의 눈에는 무표정한 얼굴의 안젤라가 보였다.
안젤라는 장로의 배를 뚫은 후, 몸속으로 다시 손을 넣어 심장을 찾아서 쥐고는 뽑아냈다.
휘익! 퍽!
그녀는 손에 쥔 심장을 흘깃 보더니 옆으로 던졌다.
마치 쓰레기를 버리듯 던진 심장은 던전의 벽에 맞고 그대로 터졌다.
털썩!
장로는 몸을 부르르 떨더니 그대로 쓰러졌다.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이 부릅떠진 채였다.
그는 안젤라가 고위 마족이며 던전 레이드 팀원들 중 가장 강하다는 사실을 죽는 순간까지 몰랐다.
마교 장로가 죽은 걸 확인한 장현.
그가 다가와 인벤토리에서 호리병을 꺼냈다.
“자, 마족이 되어 인간을 배신한 놈들아. 이제 속죄할 시간이다.”
호리병을 장로의 시신으로 향하자, 장로의 시신은 검은 재가 되어 흩어지더니. 이어 장현의 호리병으로 빨려 들어왔다.
호리병은 마나 포인트를 모으기 위한 아이템이었다.
그는 최상급 대장장이가 된 후 테세리움으로 직접 이번 던전에 필요한 아이템을 만들었다.
바로 적의 마나 포인트를 흡수하고 정제해 마나 포인트 보충제로 만드는 아이템이다.
호리병에 모은 마나 포인트가 한차례 빛을 발하더니, 이내 눈금이 생성되었다.
“좋군. 확실히 강한 놈을 쓰러트렸더니 마나 포인트가 빨리 차올라.”
장현은 기쁜 표정으로 호리병을 쳐다보았다.
이후로 장현과 안젤라는 부지런히 혈염수의 부하들을 한 명씩 처리해나갔다.
그럴수록 호리병의 눈금 또한 하나씩 늘어갔다.
한편, 마현은 혈염수와의 전투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어느새 마현의 몸에도 상처가 하나씩 늘어나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혈염수, 마족이 되면서까지 목숨을 붙들고 있다니. 한 때 천마신교의 교주였던 자로서 부끄럽지 않은가.”
“닥쳐라! 천마신교는 나의 모든 것이었다. 네놈에게 복수할 수만 있다면, 나는 설령 내 영혼이라도 악마에게 바칠 수 있었다.”
혈염수의 대답에 마현은 고개를 저었다.
“안타깝군. 넌 지금 기억이 왜곡되어 있다. 네가 복수할 대상은 내가 아닌 마왕이다. 넌 지금 너를 죽이고 천마신교를 무너뜨린 자들의 앞잡이 노릇을 하고 있어.”
“흥! 말도 안 되는 소리!”
꾸르르르륵.
혈염수는 괴상한 소리를 낸 뒤 마현을 향해 빠르게 달려들며 검 대신 손을 내질렀다.
“혈옥수! 금지된 마공을 익히다니, 마족이 된 원인이 있었군.”
마현은 혈염수의 손을 보며 놀라 외치더니 재빨리 검을 휘둘러 손을 쳐냈다.
깡!
검과 손이 부딪쳤는데 마치 검과 검이 맞부딪친 것 같은 소리가 났다.
충돌과 함께 사라지는 마현의 모습에 혈염수는 화들짝 놀라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이어 그는 재빨리 허공을 향해 손을 펼쳐 연달아 내질렀다.
콰콰쾅!
마현은 검을 움직여 혈염수의 손을 흘려버리고는 그의 품속으로 달려 들어갔다.
마현의 검이 노리는 곳은 혈염수의 목.
마현의 검이 혈염수의 목을 관통하려 할 때, 혈염수가 괴상한 소리를 내질렀다.
꾸어어엉.
괴성과 함께 목을 중심으로 피부가 변하기 시작했다.
우둘투둘한 껍질이 혈염수의 전신을 덮어갔다.
카캉!
“아니!”
검이 혈염수의 목을 찔렀음에도 뚫지 못하고 튕겨져 나오자 마현이 놀라며 주춤했다.
혈염수는 히죽 웃으며 순식간에 공간을 접듯이 마현에게 다가오더니 그의 복부를 향해 손을 내질렀다.
콰쾅!
마현은 복부에 거대한 충격을 느끼며 뒤로 튕겨 날아갔다.
주위에서 전투를 지켜보던 아르헨이 재빨리 달려갔다.
“마현, 괜찮나?”
아르헨이 마현에게 달려들며 재차 공격을 쏟아 부으려는 혈염수를 향해 나초를 휘둘렀다.
나초에서 강렬한 기운이 초승달 같은 모양으로 뻗어 날아갔다.
콰쾅! 차차창!
아르헨의 나초와 혈염수의 손이 맞부딪치며 순식간에 수십 합을 겨루었다.
부스스슥.
마현이 입에서 피를 흘리며 몸을 억지로 일으켰다.
“아르헨! 이건 내 싸움이다.”
피를 토하며 소리치는 마현의 목소리에, 아르헨은 힐끗 그를 보더니 잠시 망설였다.
이후 결심을 한 듯 크게 검을 휘둘러 혈염수를 뒤로 물린 후 옆으로 빠졌다.
“알겠다, 마현. 난 더 이상 관여하지 않겠다. 부디 몸조심해라.”
끄덕.
마현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검을 들어 혈염수를 향해 달려들었다.
혈염수는 이제 전신의 피부가 비늘로 덮여있었다.
“흐흐흐. 이제 충분히 논 거 같으니, 이만 끝내주마.”
혈염수는 괴이하게 웃더니 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꺽. 꺼억.
괴상한 신음소리를 내뱉는 혈염수의 엉덩이 쪽에서 꼬리가 생겨났다.
툭. 투두둑.
파드득.
동시에 등 뒤의 어깨 죽지에서는 날개가 돋아났다.
마치 익룡의 날개와도 비슷했다.
그 모습을 본 마현이 중얼거렸다.
“완전히 괴물이 되었군.”
“대신 얻은 게 있지. 바로 이 넘칠 것만 같은 힘이다.”
부웅.
혈염수는 마현의 혐오가 가득 담긴 말에 분노를 뱉으며 꼬리를 휘둘렀다.
쉬이익.
꼬리가 달려오는 마현을 향해 휘둘러졌다.
마치 눈이 달린 듯 꼬리는 채찍처럼 휘어 날아갔다.
퍽!
콰드득!
꼬리는 마현의 어깨를 때렸지만, 마현은 오히려 그 힘을 이용해 혈염수에게로 다가갔다.
적의 공격을 역이용하는 무공의 고급 기술이다.
혈염수에게 빠르게 다가가며 그의 검이 움직였다.
마현의 손에서 뻗어나간 검이 마치 환영처럼 수십 개, 수백 개로 불어나더니. 이윽고 혈염수를 향해 꽂혔다.
콰콰콰콰콰.
“으하하하. 그 따위 공격은 얼마든지 받아주마”
혈염수는 마현의 공격을 막을 생각도 하지 않고 몸으로 버텨냈다.
자신의 비늘에 어지간히도 자신 있어 보였다.
혈염수는 마현의 공격을 몸으로 받아내며 다시금 손을 들어 올려 마현을 향해 내질렀다.
“죽어라!”
혈염수가 붉고 어두운 기운을 줄줄 흘리며 마현의 심장을 향해 손을 내질렀다.
혈염수의 손에서 흘러나온 붉고 어두운 기운이 전면으로 쏘아져 날아가더니, 거대한 화염을 일으키며 마현을 덮쳤다.
“크하하하, 어떠냐.”
혈염수는 폭발하는 화염을 바라보며 크게 웃었다.
화염에 덮인 마현이 분명 죽거나 큰 부상을 당했을 것이라 여긴 것이다.
그 순간, 화염을 뚫고 마현의 검이 날아들었다.
싹둑.
무형의 검날이 혈염수의 몸을 수직으로 양단했다.
“무극일섬. 너를 죽인 무공 이름이다.”
화염을 뚫고 나타난 마현이 중얼거렸다.
쩌어억.
몸이 양분되어 쪼개지면서 혈염수는 마지막 말을 남겼다.
“이, 내가, 마족이 되면서까지, 힘을 얻었건만.”
혈염수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목숨을 잃었다.
쪼개져 바닥에 떨어진 그의 육신은 이내 검은 재가 되었다.
“후우.”
마현은 혈염수가 남긴 재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그때 장현이 슬며시 나타나 혈염수가 남긴 재를 향해 호리병을 내밀었다.
혈염수의 재는 호리병을 향해 떠올라 빨려 들어갔다.
“마현, 고마워.”
장현이 싱긋 웃으며 말하자 마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르헨 또한 다가오며 마현의 어깨를 두드렸다.
“마현, 수고했어. 어서 부상부터 회복해라.”
끄덕.
제이미가 마현에게 다가오더니 신성력으로 순식간에 그를 회복시켰다.
“수고했어.”
“고맙다, 성녀.”
마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