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화. 무림 왕국의 던전 레이드 (1)
장현은 계속해서 말했다.
“그때부터 경기는 주로 확진자들을 처리하는 것으로 변해갔어. 몬스터, 마족, 플레이어를 가리지 않고 확진자들은 모두 죽여야 했어. 그렇게 해야 살아남은 자들이 안전할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마계에서 묘한 움직임이 있었어.”
“확진된 마족을 처리하는 것에 거부감이 생긴 거겠지.”
아르헨이 짐작된다는 듯 말하자 장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마계 주민들은 확진된 마족을 킹덤에 몰아넣고 플레이어들로 죽이게끔 하는 경기에 불만과 위기감을 느끼기 시작했어. 백신과 치료제도 없는 상황에서 자신들이 저렇게 될까봐 걱정한 것이었지.”
“그렇군. 그들은 대다수 마족들의 불안한 심리를 고려하지 못했군.”
“그래. 처음에는 조금씩 티가 나지 않게 투입했는데, 감당하기 어려운 수가 되자 결국 드러나게 되었어.”
“…….”
“그 결과는 놀라웠지. 마치 준비되었다는 듯 전 마계에서 마족들의 시위가 벌어졌어. 마왕의 정부군을 상대로 폭동을 일으켰지. 드디어 마왕군이 우리 플레이어에게 신경을 못 쓰는 순간이 온 거야.”
“그때를 기회로 삼고 들고일어난 거군.”
“맞아. 우린 확진자들이 득실거리는 킹덤 밖 대륙으로 건너갔다. 마왕군은 우릴 저지하지 못 했어.”
“도박이 성공했구나.”
“글쎄. 성공했다고 해야 하나. 결과적으로는 우리 다섯 명을 제외하고 모두 죽었으니, 실패했다고 볼 수 있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우리 인간들은 결국 경기와 바이러스 속에서 죽어갔을 거야.”
“그때와 변한 게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건 우리는 백신을 접종했다는 거야. 모든 플레이어가 접종을 받는 순간, 더 이상 확진자든 마족이든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
“그래. 우린 백신을 접종했지만 마왕군은 여전히 백신이 없어. 장현이 그들에게 백신을 제공하지만 않는다면 말이야.”
테오가 장현을 지그시 바라보며 말했다.
“물론 과거 1회차에서 벌어진 주요 흐름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마족에게는 백신을 제공하면 안 되겠지. 헬릭스 성과 드림히트 성 그리고 우리에게 합류할 마족들을 제외하면 백신은 풀지 않을 거야.”
마족들에게 백신이 없어야 1회차와 마찬가지로 확진된 마족들을 경기에 투입하게 될 것이다. 분노한 군중을 반란군이 선동해서 폭동을 일으켜야 인간 플레이어들에게 기회가 온다.
“마족 중에 우리에게 합류할 자들이 있을까?”
제이미가 장현의 말에 반신반의하며 물었다.
“안젤라만 해도 나와 함께 있잖아. 그녀의 영향력이 미치는 범위의 마족들은 가능성이 있어.”
“뭐, 백신은 장현이 만든 것이니 알아서 할 일이지만.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다는 거야.”
제이미의 말에 장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린 그때 독립전쟁을 벌이는 거야.”
“독립전쟁?”
“마족들이 만든 경기에 강제로 참전하지 않고, 우리의 자유의사대로 살아갈 수 있기 위한 독립전쟁.”
“독립전쟁이라, 멋진데.”
제이미가 씨익 웃었다.
장현은 마왕을 물리치고 나면 킹덤을 하나의 독립된 세상으로 만들 생각이었다.
인간과 리자드맨, 크로커다일 등 플레이어들과 마계의 생산직 종족이었던 드워프들이 자유롭게 살아가는 세상으로.
물론 원래 세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가장 좋다.
패드에서 얻게 된 정보로는 모든 인류를 원래의 세상으로 돌려보낼 수 있다고 했다.
다만, 그건 확실하지 않았기에 실패할 때를 대비할 필요가 있다.
또한 남고자 하는 자들도 있을 수도 있다. 그들을 위해 킹덤을 플레이어들의 독립된 왕국으로 만들 생각이었다.
짝짝짝.
아르헨이 박수치며 주의를 돌렸다.
“이제 장현의 얘기를 다 들어봤으니, 내 생각을 얘기하겠다. 우리가 앞전에 모여서 얘기한 것과 같이 킹덤의 전력을 크게 두 방향으로 나누도록 할 거야. 하나는 레이드 및 마왕군과의 전투를 대비하는 쪽이고, 다른 하나는 킹덤 내 산업을 육성해 포인트를 버는 쪽이야.”
“좋아. 그런데 킹덤에는 우리말고도 난립하는 왕국들이 많아. 그들은 어떻게 할 거야?”
“그들은 백신을 얻기 위해서라도 어쩔 수 없이 우리가 하자는 대로 따를 수밖에 없을 거야. 마왕군과의 전투를 대비하는 본부는 이곳 클라우드 왕국에 임시로 세우겠어. 그리고 산업은 장현이 있는 네오디움 왕국을 본부로 삼을 생각이야.”
“굳이 본부를 분리시킬 필요는 없어. 어차피 핵심인물은 다들 이곳에 있을 테니, 산업 본부도 클라우드 왕국으로 해.”
장현이 그렇게 말하니 아르헨으로서도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그럼 그러도록 하지.”
아르헨이 동의함으로써 사실상 결론이 났다.
“다들 찬성하는 것으로 보이니 이렇게 하는 것으로 하고. 이제 무림 왕국의 던전 레이드를 성공적으로 클리어하도록 하자.”
아르헨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
아르헨은 5인 회담이 끝나자 아홉 꼬리 여우 던전 레이드 팀을 다시 한번 소집했다.
레이드 팀이 다시 모이자, 팀을 이끄는 수장인 아르헨은 곧장 무림 왕국을 향해 출발했다.
그들은 컨테이너 수송용 지네차와 지네차를 호위하는 전투 병력과 함께 이동했다.
지네차에 실린 컨테이너에는 무림 왕국 국민 모두에게 접종할 수 있는 분량의 백신이 실려 있었다.
장현과 아르헨 등이 무림 왕국에 도착했을 때, 보호막 형성 마스크를 쓴 무림인들이 질서정연하게 도열한 채 일행들을 맞았다.
도열한 무림인 중 제일 앞에 있던 한 남자가 포권을 하며 인사했다.
“마현 전하, 돌아오셨군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운학. 그동안 잘 지켜줘서 고맙네. 여기 뒤에 지네차에 실린 컨테이너에는 코로나 바이러스 백신이 실려 있다네. 이것으로 백신 접종을 시작하도록 하게.”
“네! 이미 접종 준비는 다 되었습니다.”
포권하며 대답하는 운학에게 마현이 말했다.
“그럼 우린 바로 던전으로 향하도록 하겠네.”
“아니, 오시자마자 바로 던전으로 가신단 말씀입니까?”
“한시라도 지체할 수 없다는 걸 잘 알잖나. 던전 입구에서 잠시 회복한 후 들어가겠다.”
“알겠습니다. 조심하십시오. 전하.”
마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운학이라고 불린 자는 마현 뒤에 있던 장현을 보고는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는 몸을 돌렸다.
“현학이 당운학이라는 본명을 회복했군요.”
장현이 멀어져가는 운학을 보며 말하자 마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자네한테 고마워하고 있네. 독존의 내공심법과 만천화우를 전수해준 은혜를 가슴깊이 담고 있다네. 그는 말로 떠드는 성격이 아니지만 당가의 가훈인 은혜는 배로 갚고 원한은 열 배로 갚는다는 것을 가슴에 담고 있지. 암기를 제작하기 위해 대장간 또한 직접 운영하고 있다네.”
“당운학이라면 20인에 들 것도 같은데, 도전하지 않은 이유가 있습니까?”
“그는 무에서도 뛰어난 인재지만 왕국을 이끌어가는 행정일에도 적임자네. 그야말로 만능이라 할 수 있지.”
마현의 말에 장현은 이성훈이 떠올랐다.
아마도 당운학의 무림 왕국에서의 입지가 네오디움 왕국 내 이성훈의 입지와 비슷한 듯 했다.
“레이드 팀에는 그가 없더라도 언무룡이 함께 있으니 충분해. 또한 만약 일이 잘못되더라도 무림 왕국을 이끌어줄 실력자가 있어야 하네.”
마현의 말에 장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마현은 레이드 팀원들을 곧장 던전으로 안내했다.
던전의 입구에는 어두운 기운이 넘실대고 있었다.
팀원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했다.
“이곳이 목적지로군.”
“저 어두운 기운을 좀 봐.”
“아홉 꼬리 여우보다 강한 놈들이 있을 테니 긴장 풀지 마.”
아르헨이 주의를 주고는 입구로 들어갔다.
그의 뒤를 따라 장현 등 팀원들도 긴장한 표정으로 들어섰다.
던전으로 들어서자 훅 하고 음습한 공기가 밀려들었다.
최형석이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장현에게 나직이 말했다.
“이곳은 저를 위한 곳인 거 같습니다. 형님.”
“그렇다면 최형석 네가 이번 던전 레이드의 주인공이 되어라.”
“알겠습니다.”
최형석은 곧장 인벤토리에서 아홉 꼬리 여우 전투로봇을 꺼냈다.
예전에 최형석은 마현, 아르헨 등 장현 외의 강자들을 만나면 위축되는 마음이 있었다.
이제는 최형석 또한 그들 못지않게 강해졌다.
거기에는 아홉 꼬리 여우 전투로봇이 크게 기여했다.
전투로봇의 성장은 놀라울 정도였다.
여우 던전의 보스였던 진짜 아홉 꼬리 여우보다 강해졌을 정도였다.
강화 재료로 성장을 촉진한 덕이었다.
‘이번 던전의 보스도 곧 나의 언데드 병사가 될 것이야. 그럼 난 누구보다 강해질 수 있어.’
최형석은 의욕을 불태웠다.
그때 일행들 앞에 8마리의 익룡이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왔다.
체고는 5미터에 달하는 익룡들이 그들의 머리 위 허공에서 날개를 펄럭이며 큰 원을 그리며 돌고 있었다.
팀원들은 익룡들을 보며 경계했다.
“저 놈들 뭐지? 익룡이잖아.”
“아니, 이번 던전은 무림인이 마족이 된 던전이라고 하지 않았어? 갑자기 익룡이 왜 나타난 거지?”
“저길 봐. 누군가 익룡의 등에 올라타 있어.”
아르헨이 외쳤다.
과연 그의 말대로 8마리 익룡의 등에는 사람이 타고 있었다.
“저들이 익룡을 조종하는 놈들일지도 몰라. 이번 던전은 예상대로 쉽지 않겠어. 조심해.”
그때 수군거리던 일행들에게 마현이 말했다.
“저 익룡은 전대천마였던 혈염수가 부리던 마수일 것이다. 혈염수는 무공에 의지하기보다 사이한 주술을 사용하는 배교의 술법에 심취해있었던 놈이지. 그는 강시를 비롯한 마물을 만들어 부리길 좋아하던 자였는데, 이곳에서 익룡을 길들인 것도 아마 그일 거다.”
마현의 설명에 테오가 나섰다.
“내가 저 놈들을 상대하도록 하지.”
테오가 마법 주문을 읊으며 광역 마법을 시전했다.
“중력 역전.”
테오의 지팡이가 탕하고 바닥을 내리치자, 그를 중심으로 한 마법 주문이 허공으로 뻗어나갔다.
마법 주문은 그의 일행에게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고 오직 익룡과 조종하는 자들에게만 영향을 주었다.
마법 주문이 익룡의 몸에 닿는 순간.
차례대로 익룡들의 몸이 뒤집히더니 그대로 바닥을 향해 추락했다.
쿠쿠쿠쿵.
8마리의 익룡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요란히 울렸다.
그러나 익룡들은 곧 몸을 뒤집고 일으켰다.
땅에 떨어진 것만으로는 죽지 않은 것이다.
익룡의 등에 올라탄 자들 중 상당수가 등에서 떨어졌다.
그 때문인지 익룡은 바로 하늘로 다시 날아오르지는 못하고, 짧은 다리를 움직이며 레이드 팀을 향해 다가왔다.
캬아아아앙.
익룡들은 꼬리를 흔들고 입을 벌려 레이드 팀을 물어뜯으려 했다.
여기 있는 팀원들은 하나하나가 일국을 대표하는 전사들.
킹덤 전체에서도 20위권 안에 들어가는 자들이다.
레이드 팀은 즉시 두세 명씩 조를 짜 익룡을 상대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익룡들을 공격하는 한편, 익룡을 조종하는 자들 또한 공격했다.
레이드 팀과 익룡을 조종하는 자들 모두 무기를 뽑아들고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채채채챙.
한 차례 접전이 벌어진 후, 레이드 팀원들의 안색이 무섭게 굳었다.
“이놈들, 실력이 보통이 아니야.”
“무림에서 최상위로 꼽히던 자들이 마족이 되었으니, 강한 게 당연한 일이지.”
누군가의 중얼거림에 언무룡이 대답했다.
대부분은 익룡을 조종하던 무림인들을 상대로 우세를 점했지만, 몇 명은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위태로웠다.
그 모습을 본 아르헨의 표정이 굳었다.
그때 던전 안쪽에서 거대한 존재감이 느껴졌다.
“으하하하하. 죽고 싶은 놈들이 여길 찾아왔구나.”
큰 소리로 웃으며 나타난 자는 다른 익룡보다 훨씬 거대한 익룡의 등에 올라탄 채였다.
나타난 자는 바로 던전의 보스이자 전대천마인 혈염수.
그는 더 이상 인간의 외모가 아니었다.
한 눈에 봐도 마족이 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혈염수의 뒤로 수십 명의 무림인들이 나타났다. 그들 역시 마족화가 이루어진 상태였다.
혈염수는 주위를 살피더니 마법의 흔적을 발견하고는 테오를 향해 말했다.
“흥! 중력을 역전하는 마법을 부렸군. 아마도 마법사 네놈의 짓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