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화. 다시 모인 최후의 동료들 (3)
장현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백신 물량을 받기 위해 대기하고 있던 각 왕국에서 온 사람들에게 말했다.
“백신은 무사히 준비가 되었습니다. 이제 컨테이너를 쌓아둘 테니 나라별로 정렬해서 각자 표시된 컨테이너를 가져가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장현 님.”
각 왕국의 인사들이 장현에게 감사를 표했다.
그들은 클라우드 왕국에 도착한 백신을 운송용 지네차에 실었다.
그때 던전에 참여했던 김동석과 차준우가 소속된 블록 왕국의 국왕이 장현에게 다가왔다.
그는 이전까지 장현과 접점이 없었던 자였다.
“안녕하십니까, 장현 님. 전 블록 왕국의 국왕입니다. 백신을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블록 왕국이면, 김동석 님과 차준우 님이 소속된 왕국이군요.”
“그렇습니다. 기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그 두 분은 저와 함께 목숨을 걸고 던전 레이드한 팀 동료들입니다. 그들의 헌신에 전 약속을 지켰을 뿐입니다.”
“그 약속 덕에 우린 백신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블록 왕국은 앞으로도 장현 님과 함께 할 것을 약속드리겠습니다.”
“말씀 감사합니다. 블록 국왕 전하.”
그때 블록 국왕이 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저기 장현 님, 여쭐 게 있습니다.”
조심스러운 블록 국왕의 태도에 장현은 의문을 내비쳤다.
경계심이 든 어조로 장현이 말했다.
“여쭐 것이라, 무엇을 말씀하시는 거지요?”
“던전 레이드에 참여한 왕국들을 대상으로 공동사업을 추진한다고 들었습니다. 저희 블록 왕국에서도 던전 레이드에 참여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레이드에 힘을 보탤 테니 저희도 사업에 참여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글쎄, 공동 사업이라니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모르겠군요.”
장현은 고개를 저었다. 또 어디서 이상한 소문이 났구나 생각했다.
데니우스에게서 생체인식 모듈 센서에 대한 독점생산권을 받았다.
그것으로 신사업도 병행할 생각이다.
아르헨 등 최후의 동료들은 자신들끼리 물류배송사업을 함께 하기로 했다.
아마도 그런 일들이 섞이면서 소문이 와전된 듯했다.
물론 그럴 수도 있다.
그때 블록 왕국이 말했다.
“다른 사람에게 들은 게 아닙니다. 저는 퀘스트를 받아서 이 사업의 존재를 알게 되었습니다.”
“퀘스트라, 그렇군요.”
장현은 겉으로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속으로는 비웃었다.
자신을 호구로 보지 않고서야 저런 거짓말을 한단 말인가.
히든 퀘스트로 동료들을 속였던 것은 장현이 회귀를 하고 나서부터 했던 노릇이다.
그것을 자신한테 써먹으려는 놈이 있다니, 신선하고 재밌었다.
‘그래도 날 기만한 걸 용서할 수는 없지. 버릇을 고쳐놔야겠어.’
그렇게 다짐한 장현이 슬쩍 물었다.
“혹시 퀘스트 내용을 알 수 있을까요?”
“죄송합니다. 히든 퀘스트라서 다른 플레이어에게 언급을 하면 안 되는 조항이 있어서 말입니다.”
결국 그냥 떠봤다는 것을 돌려서 말하고 있었다.
장현은 순식간에 호감이 사라지는 기묘한 경험을 했다.
“그렇군요. 저는 금시초문이라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들으면 어떤 얘기일지 알 수도 있었겠지만, 저도 모르겠습니다. 다른 분들께 여쭤보시죠.”
“그러시다면 알겠습니다.”
블록 국왕은 표정을 굳히고는 떠났다.
‘쓸데없는 잡소문이 퍼지기 전에 서둘러 던전 레이드를 진행시켜야겠어.’
어차피 던전 레이드를 함께 수행한 것에 대한 보상도 이제 지급했으니, 다음 레이드를 수행할 때가 되었다.
그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때 아르헨이 다가왔다.
“장현, 백신 배분은 이제 끝났다. 레이드에 참가한 왕국은 공평하게 현재 백신 물량을 분배해 가져갔다. 다음 백신 물량은 언제쯤 들어올지 다들 궁금해하더군.”
“그건 다음 던전 레이드가 끝나야 가능하겠지. 그렇잖아도 아르헨 너에게 이 얘길 상의하려 했다.”
“무림 왕국의 던전 레이드도 이제 시작할 때가 되긴 했지. 알겠다, 준비하고 있을 테니 너도 기존 레이드에 참여했던 자들에게 연락하도록 해.”
“그래.”
장현은 일단 안젤라와 최형석에게 이 일을 먼저 의논하려 했다.
그가 안젤라에게 찾아갔을 때였다. 그녀는 패드를 보고 있었다.
“안젤라, 바빠?”
“아니. 헬릭스 성의 사업 진척 상황을 좀 살펴보고 있었어.”
“호오, 뭘 보고 진척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거야?”
“뭐, 별 건 아니고. 그냥 헬릭스 영지에서 외부로 판매한 물품과 구입한 품목들 통계를 보고 있었어. 일종의 수출입 동향이라고 할까.”
안젤라의 말에 장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좀 어때?”
“전체적으로 무역수지는 흑자라고 할 수 있어. 수출품이 주로 반도체와 보호막 형성 마스크에 집중되어 있어 좀 염려가 돼. 힌지 모듈과 섀도우 마스크는 생산이 좀 올라오다가 줄었고.”
“앞전의 침대 매트리스와 후리스 패딩도 생산 잘되고 있지 않아? 만티코어 인형도 그렇고.”
“그것도 수출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반도체나 마스크에 비할 바는 아니야.”
안젤라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럼 수입은 어디에 집중되어 있어?”
“최근 갑자기 늘어난 마계 이주민들 때문에 식량이 급격히 부족해졌어. 주택 공급을 위한 건자재도 부족하고. 그쪽에서 수입이 많이 늘었어.”
“건자재는 그렇다 치더라도, 땅을 개간하고 농사도 많이 지었는데 식량이 부족하단 말이야?”
“그래. 재난 이주민이 너무 많이 몰려와서 그 정도로는 도저히 감당이 안 돼. 무엇보다 마나가 풍부한 곡물 최대 산지인 남부 대륙이 극심한 가뭄에다 코로나까지 겹쳐 생산량이 급격히 줄었어. 전 마계가 심각한 식량난을 겪게 될 거야. 당연히 비용도 계속 올라갈 테고 말이야.”
“이런. 문제가 생각보다 심각한데.”
안젤라의 말을 들은 장현도 문제를 인식했다.
“그뿐이 아니야. 곡물은 사료를 만들 때도 원료로 들어가. 더군다나 요리용 기름 역시 곡물로 만들고 있지. 이 모든 가격이 따라서 오를 거란 말이야. 최근 인간들이 퍼트린 음식 문화가 급격히 인기를 끌고 있는데, 이로 인해 기름도 수요가 늘었어. 이것 역시 비용이 오를 수밖에 없어.”
“그렇군.”
장현은 안젤라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에도 여전히 표정이 좋지 않자, 장현은 그녀 옆에 다가가 허리를 감싸 안으며 물었다.
“그래서 걱정이 많은 거였어?”
“앞으로가 더욱 문제야. 모든 비용이 다 상승하고 있어. 백신과 마스크도 화물선 운임료가 상승하고 있어서 가격을 높여야 해. 지금 연합국에 백신 제공해주고 받는 비용은 얼마로 받고 있어?”
“개당 2만 2천 포인트를 받고 있어.”
“이익은 남는 거야?”
“백신 제조 시설을 짓느라 클라우드 왕국에 투자 받은 금액이 있어서 투자자들에게도 이익을 배분해 줘야 해. 거기에다 앞으로 킹덤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려면 이런 부분에서 이익을 취할 순 없어.”
“결국 벌어들이는 게 없다는 말이구나. 지금까지는 그래도 됐을지 몰라, 하지만 이제는 그럼 안 돼. 가격이라도 올려야 해. 벌어들이는 포인트보다 지출이 더 늘고 있어. 계속 이렇게 되다가는 헬릭스 성은 도산하게 돼.”
안젤라는 얼굴을 감싸 쥐었다.
“알겠어. 안젤라.”
장현은 그녀를 안은 팔에 힘을 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이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안젤라, 그보다 이제 다음 던전 레이드를 해야 해. 경기에 참가해야 될 시간이 왔어.”
그 말에 안젤라가 고개를 들어 장현을 보았다.
“미안해, 장현. 너도 고민거리가 많았을 텐데 포인트 얘기까지 해서. 던전 레이드는 언제 갈 거야?”
“이제 곧.”
“알겠어. 준비할게.”
안젤라의 말에 장현은 그녀에게 입을 맞추었다.
“고마워. 안젤라. 네가 있어 힘이 돼.”
***
장현은 테오와 제이미, 마현을 불렀다.
던전 레이드를 진행하기 전 의논하기 위함이었다.
장현과 아르헨, 마현이 먼저 만난 가운데 테오와 제이미 또한 도착했다.
“국왕 전하, 신성 왕국의 성녀 제이미 님과 마법 왕국의 대마법사 테오 님께서 오셨습니다.”
“모셔라.”
“예.”
제이미와 테오가 회의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세 사람이 이미 자리에 있는 걸 보고서 눈을 가볍게 치떴다.
제이미가 머리카락을 손으로 쓸어 넘기며 말했다.
“이거, 우리가 늦었나?”
“아니. 때마침 잘 왔어.”
아르헨이 웃으며 대답한 후 모두에게 말했다.
“다음으로 레이드해야 할 던전인 무림 왕국 던전에 대해서 의논하고자 불렀어. 이제 때가 된 것 같다.”
클라우드 왕국의 아홉 꼬리 여우 던전을 클리어한 지 몇 달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다음 차례가 온 것이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 때 장현이 입을 열었다.
“그리고 이제 중요한 얘기를 하려고 해.”
“어떤 얘기지?”
테오의 물음에 장현이 입을 열었다.
“회귀 전에는 다음 던전이 마지막 경기였어. 그 뒤로 우리는 마족을 상대로 최후의 전투를 벌이게 돼.”
“뭐? 그걸 왜 이제 얘기하는 거야?”
장현의 말에 테오가 눈살을 찌푸렸다.
“다들 혼란에 빠져서 인류의 통합이 안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리려 했는데, 내 예상보다 시간이 많이 당겨졌어.”
“그럼 다음 던전 레이드 이후로 어떤 일이 벌어지는 거지?”
아르헨이 테오를 진정시키고 물었다.
“던전 레이드가 끝날 즈음, 마계에 반란군이 일어나.”
“반란군?”
“그래. 코로나 바이러스 백신은 지금 인간 플레이어들과 소수의 마계 주민들에게만 지급되고 있어. 바이러스는 갈수록 확산되고, 결국 참다못한 마계 주민들이 폭주하는 거지.”
“백신을 맞은 소수는 헬릭스 성과 드림히트 성의 거주자들이겠지?”
“맞아.”
안젤라가 장현의 연인이기에 당연한 일이었다.
제이미가 물었다.
“그들의 반란이 우리에게는 어떤 영향을 끼쳐?”
“우리 인간들은 그때를 노려 마왕에게 반기를 들게 돼. 그게 최후의 전투의 시작이야.”
“그때 마왕과 마왕군을 상대해야 한다는 말이지.”
제이미는 중얼거리더니 잠시 침묵했다.
이어 그녀는 아르헨을 향해 물었다.
“아르헨, 그 신의 무기를 사용해 보니 어때? 마왕과 싸워서 이길 수 있겠어?”
“아니, 마왕과는 직접 싸워본 적 없지만 아직은 부족하다고 느낀다. 물론 계속해서 강해지고 있다는 걸 느끼고 있어. 예전 내 고향을 침공했던 마계 고위 마족과의 전투를 떠올려보면, 충분히 해볼 만하다고 생각하지만. 상대가 마왕이라면 글쎄, 잘 모르겠군. 마왕을 상대해 본 적이 없으니 말이야.”
그는 제이미에게 대답하고는 장현에게 물었다.
“장현, 네가 보기에는 어때? 지금의 나와 회귀 직전 마왕과 싸울 때의 나를 비교한다면 말이야.”
아르헨의 물음에 장현이 대답했다.
“난 지금의 네가 싸우는 모습은 여우 던전 때 말고는 본 적이 없어. 그때와 회귀 직전의 너를 비교한다면 말할 가치도 없어. 회귀 전의 아르헨이 훨씬 강했으니까. 그때의 너는 마왕과 일전을 벌일 수 있었어. 그 전까지 던전 레이드를 숱하게 뛰면서 목숨을 걸고 계속 싸웠으니까. 살아남을 때마다 이전보다 더 강해졌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성장 속도였어. 그러니 지금의 너보다 회귀 전의 네가 더 강하다고 할 수 있겠지.”
“과연, 그렇군. 그렇다면 일단 난 계속해서 강자들과의 전투에 집중해야겠군.”
아르헨은 장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의 허리춤에 달린 나초를 툭툭 쳤다.
제이미가 다시 장현에게 물었다.
“장현, 1회차에서 던전 레이드가 끝난 후 벌어진 일들에 대해 자세히 얘기해 줘. 그걸 알아야 대처 방법을 떠올릴 수 있을 거야.”
“1회차에서 난 킹덤에서 아이템 제작에 모든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어. 레이드 팀이 던전을 클리어하는 데는 내가 제작한 아이템들이 큰 도움이 되었거든. 다음 던전 레이드가 끝났을 무렵 킹덤에는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가 전체 플레이어의 절반을 넘어섰어. 아직 확진이 되지 않은 자들도 공포에 떨고 있었지.”
장현의 얘기를 듣고 있던 제이미가 물었다.
“그때는 백신이 제작되지 않았던 거야?”
“그래. 그때까지도 킹덤은 물론, 마계에도 백신이 없었어. 우리도 코로나 때문에 죽을 맛이었지만 마족들은 더했지. 그들은 확진자들이 발생할 때마다 킹덤에 몰아넣었어. 우리는 확진된 몬스터를 상대하다 확진된 마족까지 상대하게 되었어. 그러면서 인간 플레이어들 역시 점점 확진되어 갔지. 우린 결국 확진자들과 싸우며 바이러스에서도 살아남아야 하는 경기를 계속 치러야 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