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7화. 창조신의 패드 (3)
“음차원의 마나 보충제를 사러 갔다면 굳이 기다릴게 아니라 우리가 그쪽으로 가도록 하지요. 아니, 그와 연락해보겠습니다.”
장현은 데니우스에게 대답하고 최형석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최형석, 어디냐?”
“형님 여기에 온갖 아이템들이 다 있습니다. 음차원의 마나 보충제를 사고 지금은 아이템들 구경중입니다.”
“여기 볼일은 이제 끝났다. 돌아가야 하니 건물 입구로 오도록 해.”
“알겠습니다. 그런데 쇼핑 좀 더 한다고 하시지 않았나요?”
“아니, 지금 바로 돌아간다.”
“알겠습니다.”
최형석은 장현의 말에서 무언가 이유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데니우스 님, 저희 이제 돌아가도록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지네차로 가시는 목적지까지 모셔드리도록 하지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생체인식 센서 모듈 독점생산권을 받았는데 이걸 다른 데 파는 것은 우리가 알아서 해도 되겠죠?”
장현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며 문득 생각이 난 듯 데니우스에게 물었다.
“물론입니다. 생산시설 건설에 필요한 자금까지 지원해드릴 수 있습니다. 물론 거저로 드리는 건 아니고, 대신 지분을 갖는 투자의 일종이지요.”
“알겠습니다. 그럼 허락한 것으로 알겠습니다.”
“혹시 패드 외에 어디에 납품하실 생각이시죠?”
“현재차에서 만드는 지네차를 타봤습니다. 거기에 생체인식 지문 인증으로 시동 걸 수 있는 버튼을 봤거든요. 헬릭스 성주님과 현재차의 네시스 님은 친분이 있으시니 납품을 뚫어주지 않을까 싶습니다.”
“현재차의 지네차. 그렇다면 지문 인식 시동시스템인 AES에 생체인식 센서를 납품할 생각이겠군요.”
“그렇습니다. 다만 아직 확실히 될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건 기존에 하지 않았던 신사업에 대한 부분입니다.”
“신사업이라니, 흥미롭군요.”
“무선바이오센서와 전자 코 솔루션 사업을 하려고 합니다.”
“호오, 그러고 보니 장현 님은 직업이 사업가였죠. 혹시 자세한 얘기를 들어볼 수 있을까요.”
데니우스는 흥미로운 표정으로 물었다.
“웨어러블 패치라고 해서, 신체에 부착하는 아이템입니다. 이걸로 여러 가지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측정할 수 있는 거죠. 가진 레벨과 스킬 포인트 등 자신이 노출하고 싶은 데이터만 선별해서 웨어러블 패치를 통해 전송되는 것이죠. 던전 레이드할 때 동료들의 상태를 한 눈에 알 수 있을 뿐 아니라 왕국에서도 파악할 수 있게 하려고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생체인식 센서 모듈이 필수적으로 필요하지요.”
“알겠습니다. 흥미롭군요. 처음에는 상태창이 있는데 굳이 그런 게 필요하나 싶었는데 용도가 확장되는군요. 그럼 전자 코 솔루션 사업은 어떤 거죠?”
“전자 코 솔루션은 한 번의 날숨만으로 코로나 바이러스에 확진되었는지 여부를 즉시 알려주는 센서입니다. 당연히 여기에도 생체인식 센서 모듈이 들어가게 됩니다.”
“그걸 만들 수 있다는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최근, 가진 능력을 개화시켰거든요.”
장현이 무선바이오센서와 전자 코 솔루션 신사업을 떠올린 것은 오래전이었다.
그동안은 능력이 안 되었으나 파라셀수스의 능력을 모두 전승받은 데 이어 조금 전 창조신의 패드를 복제하면서 최상급 대장장이에 올랐다는 알림을 확인했다.
장현은 힐끔 상태창의 알림을 쳐다봤다.
[최상급 대장장이가 되었습니다. 다만 직업이 대장장이가 아니기에 히든 퀘스트는 주어지지 않습니다.]
이미 사업가로 직업을 바꾼 데다, 파라셀수스의 권능을 얻었기에 최상급 대장장이가 된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이제 그가 못 다룰 금속과 못 만들 아이템은 없다고 봐도 된다.
그랬기에 데니우스의 물음에 순간적으로 떠오른 것이다.
장현은 기존에 보호막 형성 마스크를 만들고 백신을 제작한 경험을 바탕으로 이번에는 생체인식 센서 모듈까지 만들었다.
파라셀수스의 권능을 이어받았기에 바이러스와 방역 그리고 DNA에 대해서도 깊이 이해했다.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을 해본 결과,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되었기에 데니우스에게 말한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데니우스와 몇 마디 대화를 주고받는 사이 진행되었다.
“말씀하신 신사업은 무척 흥미롭습니다. 결과가 궁금해지는군요.”
“당장은 벌여놓은 게 많아서 언제 될지는 모르겠군요.”
장현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김덕배가 더 이상 일을 벌이지 말아 달라고 한 게 떠올라서다.
나중에 여유가 된다면 그때 파일럿 라인을 들여서 시험가동해보고, 효과와 사업성이 있다고 판단될 때 양산형 라인을 확장해도 될 것이다.
그때 데니우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제가 듣기로 장현 님이 코로나 바이러스 백신을 제작했다고 들었습니다. 그것이 사실입니까?”
데니우스의 말에 장현은 왜 이제야 질문을 하는가 했다.
사실 마계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 아니겠는가.
비록 인간들의 증상과 마족의 증상이 다르다 하더라도 백신의 제조 성공은 마족들에게도 큰일인 게 분명한데도 데니우스는 그간 아무 말이 없었다.
아마도 창조신의 패드를 복구하는 게 워낙 중요한 일이었기에 백신에 대한 건 미뤄졌을 것이다.
장현이 그에게 대답했다.
“사실입니다. 킹덤의 플레이어들을 위한 코로나 바이러스 백신을 만들었습니다.”
“그럼 그것을 우리 마족이 맞아도 효과가 있을까요?”
데니우스의 질문에 장현은 그를 쳐다보았다. 잠시 뜸을 들인 뒤 장현은 입을 열었다.
“백신을 제조하기 위해서는 당사자의 DNA를 확보해야 합니다. 인간들의 경우는 비슷한 종족이라 DNA에 큰 차이가 없어서 효과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종족 또는 마족들은 개인마다 큰 차이가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만약에 백신을 제조한다면 그 종족과 같은 종족에 한해서만 효용이 있을 것이고, 마력이나 능력치가 같은 종족 내 다른 이들과 차이가 크게 난다면 효용이 없을 것 같습니다. 참고로 서큐버스와 인큐버스 종족을 비롯해 드워프, 리자드맨, 크로커다일 종족을 위한 백신은 제작했습니다.”
장현의 대답을 들은 데니우스의 눈이 커졌다.
일단 가능하다는 것에 의의를 둔 것이다. 다만 거슬리는 부분이 있었기에 그는 짚고 넘어갔다.
“같은 종족이라고 하더라도 마력의 차이에 따라 백신이 안 맞을 수도 있다는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평범한 마족을 위한 백신을 제작했다면 같은 종족이라도 강자에게는 효과가 없을 수 있습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구요.”
“생각보다 어렵군요.”
데니우스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무슨 일이 있나요?”
장현이 슬쩍 물었다.
데니우스가 이런 얘길 꺼낸 이유는 분명 백신을 제조해달라는 부탁을 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사실 마왕과 대공 전하께서 직접 지시한 일입니다. 플레이어들이 백신을 맞았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일입니다. 다만 부작용이 염려돼서 지켜만 보고 있었죠. 접종 후 플레이어들의 동향 보고를 올리라고 지시가 내려왔습니다. 고민이군요. 마족들에게 백신을 접종한 후 데이터가 유의성이 있을 때 보고하려했는데 뭐라고 보고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데니우스는 머리를 부여잡고 말을 쏟아냈다.
“마계 고위 귀족 분들은 개인별로 마력차가 크니 한 분, 한 분 따로 백신을 제조해야할 것입니다. 아마도 시간과 비용이 엄청나게 소모될 것입니다.”
장현은 입가에 엷은 미소를 띠고 말했다.
데니우스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건 저 혼자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상부에 보고해서 결정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야겠지요. 그럼 이 일은 다음에 결정되면 다시 얘기하기로 하지요.”
그때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던 장현은 MPL 브랜드 매장을 보았다.
그는 순간 갈등했다.
지금 인벤토리에는 창조신의 패드 복제품이 있었다.
한시라도 빨리 이곳을 떠나야 할 것 같았다.
다만 이렇게 큰 백화점에서 마계의 소비 트렌드를 눈으로 확인해볼 기회 또한 흔치 않은 것이 사실이었다.
그때 장현의 고민을 끝낸 것은 야누스 침대 매장이었다.
드림히트의 침대 계열사가 야누스였다.
“잠깐 저기 좀 들렀다 가야겠어.”
장현의 말에 데니우스랑 안젤라가 돌아보았다.
그가 가리킨 방향에는 의류 매장과 침대 매장이 있었다.
안젤라는 이유를 알았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데니우스, 우린 여기 좀 둘러보고 알아서 가도록 하겠습니다. 기다리지 마세요.”
“그게 편하시다면 그러도록 하겠습니다. 즐거운 쇼핑되시길 바랍니다.”
데니우스는 예의를 갖춰 인사하고는 돌아갔다.
장현과 안젤라는 먼저 MPL 매장으로 들어갔다.
매장으로 들어가자 홀로그램 영상이 나타났다.
“안녕하세요. 고객님. 저희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고객 분들이 불편해하지 않고 안심하며 쇼핑할 수 있도록 홀로그램 AI 로봇이 쇼핑을 도와드리고 있습니다. 궁금한 게 있으시면 무엇이든 말씀해주세요.”
“여기에서 제일 잘나가는 상품이 어떤 건지 볼 수 있을까.”
장현의 질문에 AI 홀로그램은 주저 없이 마네킹이 걸치고 있는 아우터를 가리켰다.
“이번 시즌 판매량 1위를 한 후리스입니다.”
홀로그램이 가리킨 후리스는 바로 장현이 디자인하고 제작했던 그 모델이었다.
그는 모른 척 질문했다.
“특별할 것 없어 보이던데, 이게 판매량 1위를 했다면 그 이유가 있을 텐데?”
“소비자 만족도 조사를 해본 결과, 판매량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요소가 두 가지 있습니다. 첫째는 아이돌 블랙 펑키가 입은 아우터라는 점 때문에 많은 팬들에게 어필이 되었다고 판단됩니다. 두 번째는 후기에서 소비자들의 만족도가 무척이나 높았습니다. 옷이 움직이기 편안하고 무엇보다 무척이나 따뜻했다고 합니다. 실제 구매자의 높은 별점에, 판매량이 급증했습니다.”
“판매량 1위는 어디에서 조사한 내역인지 알 수 있나?”
AI는 장현의 질문이 소비자답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이곳의 손님들은 보통 사업가나 투자자 귀족들이 많은 만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대답했다.
“마신사와 마계 상점입니다. 마계 상점의 애널리틱스 통계로 월간 판매량 1위를 정할 수 있었습니다.”
AI의 대답에 장현은 두 손을 불끈 쥐었다.
그때 AI가 부연설명을 했다.
“마케팅이 판매량 1위를 찍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안젤라, 드림마케팅에서 후리스도 같이 담당했던가?”
“맞아. 그뿐 아니라 침대 매트리스를 포함한 모든 아이템 마케팅은 드림마케팅이 담당해.”
안젤라의 대답에 장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MPL 매장 입구에는 후리스를 입은 블랙펑키 멤버들의 홀로그램 광고판이 돌아가고 있었다.
“과연, 마케팅 실력이 대단한가보군.”
장현의 중얼거림에 AI가 설명을 이어갔다.
“그럼요. 여기 후리스는 드림히트 성과 드림마케팅의 합작으로 제작한 의상에 MPL 브랜드를 달고 나왔습니다. 현재 판매량 나이대를 보면 10대, 20대, 30대는 물론 40대 이상에게도 골고루 인기가 있습니다. 특정 연령대에 집중되지 않았다는 점이 주목할 만합니다.”
장현은 AI 점원의 설명을 듣고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좋군. 설명 고마웠어.”
장현은 MPL 매장을 나와서 야누스 침대 매트리스 매장으로 향했다.
자신이 구상하고 헬릭스 성에서 대량생산할 수 있도록 제작한 이동식 침대 매트리스는 과연 흥행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이동식 침대 매트리스는 블랙펑키 데니가 요청해서 제작한 아이템.
거기다가 헬릭스 성을 떠나 킹덤으로 향할 때 남은 드워프들에게 특별히 부탁까지 했다.
후리스와 함께 군수용으로 플레이어들에게 보급할 생각을 하고 있는 아이템이었기에 장현의 관심은 컸다.
장현과 안젤라가 야누스 매장에 들어가자 이번에도 AI 로봇이 나타났다.
“안녕하세요. 손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여기 이동식 침대 매트리스 있나?”
“물론입니다. 최근 저희 매장 베스트셀러 아이템이 이동식 침대 매트리스입니다.”
“베스트셀러 아이템이라고? 어디 한번 보여줘.”
“손님, 이동식 침대 매트리스에도 세 가지 타입이 있습니다. 항균 매트리스, 방수 매트리스, 압력완화 매트리스 이렇게 있습니다. 어떤 것부터 보여드릴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