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화. 데니우스의 제안 (1)
플레이어들은 이미 자신들의 일거수일투족이 마튜브 영상거리로 만들어진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특별한 반응은 없었다.
다만 유일하게 최형석이 양손을 들어 보이며 마족들의 반응을 즐겼다.
“내가 사령술사 최형석이다!”
그의 외침에 마족들은 “좋아!” “멋지다!”를 외치며 패드를 치켜들었고, 카메라 플래시가 번쩍번쩍하고 켜졌다.
장현은 그런 최형석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르헨을 비롯한 다른 일행들은 피식 웃었다.
그가 어떤 유형의 캐릭터인지 알아차린 것이다.
잠시 후 그들은 데니우스를 따라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12층으로 올라갔다.
에스컬레이터에서는 건물의 내부 경관을 자연스럽게 볼 수 있었는데, 하나같이 마계에서 유행하는 상품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다들 킹덤에 이런 건물이 있었다는 것에 신기해했다.
장현과 아르헨조차 이런 건물의 존재는 모르고 있었다.
그때 무언가가 장현의 눈에 띄었다.
‘저것은 만티코어!’
그가 직접 만들어 지로발에게 유통권을 넘겨준 만티코어 조형상이었다.
장현이 직접 제작한 것은 아니지만 동일한 디자인이었다.
판권이 장현에게 있기에 매출이 발생할 때부터 수수료 형식으로 장현에게 포인트가 들어오는 효자 같은 조형상이었다.
장현은 흐뭇한 표정으로 만티코어 조형상을 쳐다봤다.
그뿐만 아니라 드림히트 브랜드 단독 매장도 있었다.
“안젤라! 저기 드림히트 브랜드가 있어.”
“드림히트라면 충분히 더 현재에 들어올 만하지. 나도 이곳은 이름만 들어보고 직접 와보긴 처음인데. 과연, 입점했구나.”
안젤라는 뿌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어 한 층을 더 올라가자 장현의 눈에 마신사 오프라인 매장도 보였다
“저건 마신사와 MPL!”
장현의 외침에 데니우스가 힐끗 그를 보았다.
“장현 씨는 마신사와 MPL도 아시는군요.”
“마신사, MPL? 그게 뭡니까?”
아르헨이 둘의 대화를 듣고 데니우스에게 물었다.
“마신사와 MPL은 마계의 젊은 층들에게 인기 있는 브랜드지요. 마신사에서 흥행하는 제품을 보면 젋은 층의 트렌드를 알 수 있다고 할까요. 그것보다 장현 씨가 마신사를 아는 게 의외입니다.”
데니우스가 신기하다는 듯 장현을 보며 말했다. 그는 장현이 의류 사업에도 관여하고 있다는 것을 몰랐기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저기에 납품시킨 아우터가 있거든. 후리스라고. 지금 상품 순위가 어느 정도일지 궁금한데. MPL과는 내가 만든 후리스에 붙일 브랜드 계약을 맺었다는 얘기를 들었어.”
그 말에 데니우스뿐만 아니라 다른 플레이어들도 놀란 눈으로 그를 쳐다봤다.
아르헨도 재미있다는 듯 장현을 쳐다봤다.
보면 볼수록 신기한 인물이었다.
신의 무기를 만들지를 않나, 반도체가 들어간 보호막 형성 마스크에 코로나 바이러스 백신까지 제조하지를 않나.
이번에는 마족들의 쇼핑몰에 입점한 브랜드에 아우터 의상까지 납품했다고 한다.
‘하여튼 신기한 녀석이군. 정말로 저 녀석이야말로 회귀자로 최적이었을지도 모르겠어.’
장현이 회귀했다는 사실을 점점 믿게 되고 있었지만 한 가지 의문은 있었다. 왜 아르헨 자신이 아니었느냐 하는 점이었다.
단 한 명만 회귀해야 한다면 아르헨 자신이어야 한다는 것이 지금도 그의 생각이었다.
다만 조금씩 그런 생각이 흔들리고 있었다.
백신에, 신의 검 나초까지.
장현이 있었기에 얻게 된 것들이다.
그는 장현을 처음 만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그의 행적을 돌이켜보았다.
회귀했다는 사실을 몰랐다면 존재 자체가 너무나도 신기했을 것이다.
오히려 회귀했다는 게 당연하다고 느껴질 정도다.
그때 데니우스가 그의 상념을 깨트렸다.
“장현 씨, 회의가 끝나고 상점을 이용하실 때 한번 확인해보시죠.”
“여기까지 왔으니, 확인해봐야겠지.”
장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며 각층을 구경한 일행은 이윽고 꼭대기 층에 도달했고.
곧이어 회의실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 전면에는 커다란 스크린이 설치되어 있었고, 테이블과 의자는 스크린을 향해 匚자 모양으로 놓여있었다.
데니우스가 스크린 쪽으로 향해 이동하더니 모두에게 말했다.
“모두 자리에 앉아 주십시오.”
그들은 각자 가까운 자리에 앉기 시작했다.
“여기까지 와주신데 대해 먼저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이 자리에 여러분을 모신 것은 여러분께서 킹덤 내 왕국들의 국왕이거나 그에 준하는 고위직 신분을 지니셨기 때문입니다. 사실상 여러분들이 킹덤의 주인이나 마찬가지지요.”
데니우스의 말에 아르헨과 장현은 미간을 찌푸렸다.
이자가 무슨 얘길 하려고 이런 얘기를 꺼내는지 의아했기 때문이다.
아르헨이 데니우스에게 물었다.
“잠깐, 쓸데없는 소리는 집어치우고. 먼저 다음 레이드할 던전에 대해서 듣고 싶은데.”
아르헨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여기까지 따라온 이유는 다음 레이드해야 할 던전 때문이었다.
“좋습니다. 그럼 먼저 다음 던전에 대해 말씀드리도록 하지요. 이번 던전과 마찬가지로 킹덤의 모든 플레이어들 중 최상위 20위권에 드는 플레이어들만이 클리어할 수 있는 정도의 난이도로 구성되었습니다. 던전의 위치는 무림 왕국입니다.”
데니우스의 말에 레이드 팀원들의 시선이 마현에게로 향했다.
마현과 언무룡은 데니우스의 말에 지금 그가 언급하는 던전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아르헨이 마현에게 물었다.
“마현 국왕, 혹시 데니우스가 말한 던전이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기존 세상에서 저와 겨루었던 천마라는 자가 있는 던전입니다. 저는 그자와 칠일 밤낮동안 싸워 겨우 이길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자리 잡은 왕국에 생긴 던전에 그 자가 마족이 되어 던전의 보스로 돌아왔더군요.”
“음, 마족이 되기 전에 마현 맹주와 비슷한 실력이었다고요?”
“그렇습니다.”
아르헨은 침을 꿀꺽 삼켰다. 다른 플레이어들 모두 침음성을 흘렸다.
마현은 아르헨, 장현과 함께 인간 플레이어 삼대장이라고 불리고 있다.
이번 여우 던전 레이드에서도 그의 능력을 모두가 확인할 수 있었다.
만약 마현이 마족이 되어 던전의 보스로 나타난다면 어떨까.
그런 생각을 한 이들은 눈을 질끈 감았다.
아르헨 역시 표정이 굳었다.
자신이 마현보다 강하다고는 생각하지만, 그것은 나초를 들었기 때문이다.
단둘이 일대일로 붙어본 적은 없었다.
누구와도 싸워 져본 적이 없었지만, 마현 또한 자신과 같은 동류였다.
그런 마현과 비슷한 실력을 지닌 자가 마족이 되어 던전의 보스가 되어있다니.
그때 데니우스가 말을 이었다.
“이제 여러분들도 다음 레이드해야 할 던전에 대해서 알게 되셨군요. 알다시피 던전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 보스와 던전 속 존재들이 바깥으로 풀려나게 됩니다. 그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강해지죠. 이제 던전에 대한 정보를 알려 드렸으니, 여러분께 제안할 내용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제안을 드리기에 앞서 전면의 스크린을 보시죠. 이것은 제안을 받아들일시 제공되는 스킬들에 대한 소개 영상으로, 다음 던전을 레이드할 때 유용하게 쓰일 스킬입니다.”
데니우스가 스크린을 향해 손짓을 하자 화면이 켜지더니 영상이 재생되기 시작했다.
“이것은 우리 마족과 천족의 전투 장면입니다.”
영상 속에는 흰색 날개를 달고 있는 인간형 이종족들이 마족과 싸우고 있었다.
천족은 인간의 외모에 날개를 달았다고 생각될 정도로 인간과 흡사하게 생겼다.
장현은 슬쩍 안젤라를 쳐다보았다.
천족과 서큐버스가 너무나도 닮았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때 한 천족이 마족을 향해 스킬 공격을 사용했다.
천족의 손에서 물이 생성되어 마족을 덮쳤다.
천족이 쏘아 보낸 물은 마족을 덮치더니, 이어 직사각형 모양으로 고정되었다.
마족은 물속에서 움직이려고 애썼으나, 물 위로 떠오르기는커녕 압박을 심하게 받는지 몸이 뒤틀리더니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그 장면을 보던 데니우스가 설명을 했다.
“천족 상장군 데랑스가 쓰던 스킬 천중수입니다. 천중수는 아주 무거운 물로, 압력이 어마어마해 상대하던 마족은 결국 저 수중감옥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천중수의 스킬은 수중감옥이 다인가요?”
좌중에 앉은 인물들 중 누군가가 물었다.
“그렇지 않습니다. 수중감옥은 한 가지 예시일 뿐 다양한 응용 방법이 있습니다. 말씀드렸다시피 무척이나 무거운 물이기에 압축해서 투포환처럼 사용하기도 하며 수류탄처럼 사용하기도 합니다. 다만 이런 활용은 사용자 개개인이 천중수를 자신의 스킬에 적용한 것이지요. 천중수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용자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 압축시킨다면 그 어떤 금속보다도 단단할뿐더러 형태의 변화도 자유롭습니다.”
그의 설명대로 천중수를 다양하게 활용하는 천족의 영상이 나왔다.
플레이어들은 다음 던전 레이드에 도움이 될 스킬이라고 했기에 천중수의 활용을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
“다음은 천족 전투로봇 아이템입니다. 천족 상장군 데랑스를 사로잡아 전투로봇으로 만든 아이템입니다. 사용자가 로봇에 동기화를 하고 나면 주인으로 인식해서 명령을 내릴 수 있습니다. 다만 아직 인공지능으로 스스로 판단하는 기능은 없습니다. 그렇더라도 특정인을 공격하라 같은 단순한 명령은 수행할 수 있습니다. 생전에 보유했던 천중수 같은 전투스킬도 그대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천중수 스킬을 익히면 훈련 상대로도 제격이지요.”
“저 로봇의 전투력은 어느 정도요?”
전투로봇에 흥미를 느낀 최형석이 물었다.
최형석의 질문에 데니우스가 답했다.
“전투로봇의 능력은 현재 여섯 꼬리 여우보다는 조금 약한 정도입니다. 그러나 전투로봇은 성장형 아이템으로 천족 상장군 데랑스 만큼 강해질 수 있습니다.”
“흥, 어쨌든 지금은 내가 가진 언데드 병사보다 못하군.”
최형석이 거만하게 말했다. 사령술로 여섯 꼬리 여우를 부릴 수 있는 그가 전투로봇에 흥미를 느낄 리 없었다.
그러나 데니우스의 다음 말에는 그도 흠칫 할 수밖에 없었다.
“이 로봇을 마나 포인트 제한 없이 부릴 수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더군다나 말씀드렸다시피 성장형 아이템이라 전투를 경험할수록 성능이 업그레이드됩니다. 또한 주인이 사령술사가 아니라도 부릴 수 있고요.”
“그렇다면 얘기가 다르겠지.”
최형석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머리를 벅벅 긁으며 대답했다.
“물론 최형석 님의 사령술이라면 저 로봇은 큰 쓸모가 없을 것입니다. 다만 다른 분들에게는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럴 수도 있겠지.”
최형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장현이 데니우스의 설명을 듣기만하고 있다가 드디어 입을 열고 물었다.
“전투에 도움 될 스킬이라면 저것들이 다인가요?”
“일단 그렇습니다.”
“그럼 제안을 들어보도록 하죠. 사실 최형석의 사령술이 있기에 전투로봇은 던전 레이드 때 딱히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장현의 말에 데니우스는 다른 플레이어들을 보며 물었다.
“다른 분들의 생각도 마찬가지인가요?”
그때 테오가 말했다.
“전투로봇은 스킬이라고 하기보다는 아이템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성장형 아이템이라 관심이 가는데요.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받을 수 있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데니우스의 대답에 아르헨이 말했다.
“그럼 이제 제안을 말씀해보시죠.”
데니우스가 차분히 그들의 얼굴을 보더니 입을 열었다.
“지금 드리는 제안은 이 경기의 운영자분들을 대신해 제안하는 겁니다.”
스크린 속에서 다른 내용이 나왔다.
그것은 패드였다.
‘창조신의 패드.’
장현이 조용히 뇌까리며 화면을 보았다.
“이것은 마계의 주인이신 마왕께서 천족을 멸하고 얻은 전리품입니다. 요즘 유행하는 폴더블 패드 플립과 유사한 모양이죠. 다만 이것은 다른 중요한 가치가 있답니다. 마왕께서는 다시 복구하기를 명령하셨는데 그러기 위해선 패드의 생체인식을 되살려야 합니다. 문제는 패드의 생체인식은 천족의 스킬이기에 마족은 결코 익힐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다만 천족의 하위 버전이라고 할 수 있는 인간족은 스킬을 익힐 수 있다고 합니다. 그렇기에 마왕님의 명을 받은 고위 마족분들께서 여러분에게 제안을 하고자 하십니다. 인간 플레이어들 중 누구라도 좋으니 천족들의 스킬을 익혀 패드의 생체인식 기능을 복구시켜주십시오. 그러면 다음 던전 레이드에 필요한 천족의 전투 스킬과 전투로봇을 보상으로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