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화. 네오디움 왕국 (3)
장현은 드디어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다.
네시스. 안젤라를 쫓아다니는 현재차의 후계자.
지금 상황에서는 자신에게 있어 갑의 위치다.
그렇다고 해서 연인인 안젤라에 대해 거짓말로 둘러대고 싶지는 않았다.
“이곳에 있습니다. 저희 쪽에 합류하셨죠.”
“흠, 그렇군. 헬릭스 성의 사업체를 킹덤에서 확장시킬 생각인가.”
네시스는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다른 하실 말씀 없으시면 마도로 연결시켜주시겠습니까?”
“그래, 알았어. 다른 도움 필요하면 연락하라고. 내 안젤라 양을 봐서라도 신경써주지.”
“감사합니다.”
장현은 그가 말할 때마다 안젤라를 걸고넘어지는 게 싫었지만 내색하지는 않았다.
나중에 그가 안젤라와 자신의 관계를 알게 될 때 어떤 표정일지 궁금했다.
‘흥, 나와 거리를 둔다면 내 쪽에서 환영이지.’
뚜루루.
다시금 회선이 돌려지고 장현은 마도의 담당자와 연결이 되었다.
“안녕하세요. 마도 전장부품 담당자 엠피입니다.”
“전 헬릭스 성의 플레이어이자 킹덤 네오디움 왕국의 장현입니다. 제가 차폐자석을 개발해서 공급처를 찾고 있는데, 현재차의 네시스님께서 마도와 얘기를 해보라고 하시면서 연결해주시더군요.”
마도의 담당자 엠피는 처음 들어보는 이름에 가볍게 대하려다, 현재차의 네시스 이름이 들리자 바로 태도를 고쳤다.
상대가 누구인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그가 현재차의 네시스가 소개해서 연락했다는 게 중요했다.
“차폐자석이라면 저희 쪽에서 생산하는 조향장치에 차폐자석이 들어갑니다. 네시스 님의 소개시니 한번 검토해보도록 하지요. 저희가 필요로 하는 제품의 규격에 대해서 말씀드릴 테니 맞출 수 있는지 말씀해주세요.”
“네, 필요하신 규격을 말씀해주세요.”
“부피는 6041, 타원형이어야 하며 띠의 폭은 내부의 지름은 82.88, 외부의 지름은 95.66, 폭은 3.37로 해주셔야합니다.”
“가능합니다. 그럼 가격은 어떻게 쳐주실 건가요?”
“개당 31,385포인트로 쳐주겠습니다. 지금 납품받고 있는 곳 가격과 동일합니다. 대신 그만큼 퀄도 보장해주셔야 합니다. 퀄이 떨어진다면 아무리 네시스님의 소개라 해도 저희가 받을 수 없을 겁니다.”
“하하, 퀄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전보다 훨씬 좋다고 자부합니다. 그럼 샘플을 어디로 보내면 될까요?”
“샘플은 주소를 보내드릴 테니 이곳으로 보내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럼 수고하세요.”
장현은 마도의 담당자 엠피와 협상을 끝내자 절로 한숨이 나왔다.
잠시 후 그의 상태창으로 주소가 적힌 알림이 왔다.
이제 샘플을 보내고 납품이 성사되면 퀘스트는 끝난다.
퀘스트가 끝나면 얻게 될 파라셀수스의 능력.
그것만 얻는다면 창조신의 패드를 복구할 수 있을 것이다.
장현은 한숨을 내쉬고 안젤라를 바라봤다.
“고마워, 안젤라. 덕분에 무사히 퀘스트를 완료할 수 있을 거 같아.”
“아직 끝난 게 아니잖아. 고마워하긴 이른데.”
“아니야. 안젤라가 아니었다면 제품 개발까지는 했어도 납품까지는 어려웠을 거야.”
장현은 그녀를 꼬옥 안아주었다.
“나도 도움이 되어서 기뻐.”
안젤라도 장현을 마주 안으며 속삭였다.
장현은 마도에서 요구한 규격대로 차폐자석을 절단했다.
굳이 연성술을 쓸 필요도 없었다.
여전히 그는 고급 대장장이의 능력을 갖고 있었기에 이 정도쯤은 간단했다.
샘플을 마도에 보내면서 헬릭스 성에도 함께 보냈다.
패드용 차폐자석의 규격은 기존에 들어있던 자석과 같은 규격으로 맞췄다.
이제는 결과만 기다리면 된다.
***
대략 두 달의 시간이 지난 후, 장현은 퀘스트 완료 알림을 확인할 수 있었다.
[파라셀수스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연금술사 조각의 최종 퀘스트를 마쳤습니다.]
[보상으로 연금술과 신약개발의 아버지라고 불린 파라셀수스의 모든 능력을 계승합니다.]
[추가보상 : 창조신의 금속을 제작한 이력이 확인됩니다. 창조신의 금속을 연성 및 변환할 수 있습니다.]
[추가보상 : 심각한 바이러스 백신을 제작한 이력이 확인됩니다. 모든 바이러스에 대한 백신 및 치료약을 제작할 수 있습니다.]
장현은 퀘스트 완료 알림과 보상을 확인하자 차폐자석 납품이 성공적으로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번에 얻은 연금술사 조각의 최종 보상은 실로 컸다.
1회차에 얻었던 대장장이 조각의 최종 보상인 헤파이토스의 능력보다 지금 상황에서는 더 도움이 되었다.
‘이제 정말로 창조신의 패드를 복구할 수 있다.’
장현에게 남은 숙제인 창조신의 패드.
파라셀수스의 능력을 계승하면서 그 또한 복구할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된 것이다.
이제 창조신의 패드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얻어야 한다.
접근하지 못하면 복구할 능력이 있어도 시도조차 할 수 없다.
장현이 그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을 때 김덕배에게서 연락이 왔다.
차폐자석이 납품 성공한 것에 대한 회의 때문이었다.
회의에 들어가자 이미 모든 관리자들이 있었다.
장현이 자리에 앉자 곧 김덕배가 입을 열었다.
“패드용 차폐 자석은 커버케이스용으로 규격은 폭 12.8, 두께 0.4, 부피 51.47이었다. 가격은 개당 267포인트로 책정됐어.”
“개당 267포인트면 마진이 얼마가 되지?”
장현이 물었다.
“마진은 최소 40프로 이상은 남을 거 같아.”
“40프로 이상 마진이 남는다고?”
마진이 40프로 이상이라면 상당히 괜찮다고 할 수 있었다.
사실 20프로 이상만 되어도 괜찮다고 생각했었다.
김덕배가 대답했다.
“희토류 채굴량이 많은 덕에 원료 가격이 별로 들지 않아서 그래. 대량양산하게 되면 아마도 어느 정도 오차는 생기게 될 거야. 그래도 국책사업이 성공적으로 자리 잡으면서 새로운 영지민들 일자리도 확보할 수 있게 됐어.”
장현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물었다.
“수주 받은 건 얼마나 돼?”
“대략 16만개의 차폐자석을 요구하더라고.”
“16만개라, 다 패드 케이스용이야?”
“아니. 패드 케이스에 들어가는 자석이랑 패드 내부 심재에 들어가는 차폐 자석. 이렇게 두 가지로 주문이 들어왔어.”
그때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이성훈이 물었다.
“그 두 종류의 차폐자석은 각각 어떤 역할을 하는 거죠?”
질문에 대한 대답은 장현이 했다.
“기본적으로 차폐자석은 다른 전자부품들에서 나오는 자기장을 막는 역할을 해. 케이스와 본체 중심부에 들어가는 자석에도 마찬가지야. 다만 케이스는 케이스를 덮는 뚜껑에도 자석이 들어가기 때문에 닫으면 전원이 꺼지는 효과를 내기도 해. 그게 차이야.”
“그렇군요.”
이성훈을 비롯해 다른 관리자들도 그제야 이해가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막상 에버 성 출신의 항다와 영지민들을 부려 희토류를 채굴했지만, 장현이 연성하고 납품까지 진행해버린 탓에.
다른 관리자들은 차폐자석이 뭐고 어떤 성능이 있는지 이해를 못 하고 있었다.
지금에서야 그들은 대략적으로나마 이해했다.
네오디움 왕국의 국책사업이었기에 관리자급들은 사업과 제품에 대해 이해하고 있어야 했다.
그때 장현이 입을 열었다.
“차폐자석 건은 이미 알고 있던 일이고. 혹시 새로 들어온 소식은 없어?”
김덕배가 표정을 굳히더니 말했다.
“마침 의논해야 될 일이 있어.”
“뭔데?”
“아르헨의 클라우드 왕국에서 던전 레이드를 진행할 건데, 우리에게 협조를 요청했어. 연합왕국으로서 우의를 다지고 조직력을 강화시키자는데 어떻게 생각해?”
“흠, 아르헨이 던전 레이드를 요청했다는 말이지.”
장현은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했다.
아르헨의 의도를 파악해야 했다.
그들이 레이드할 인원이 부족한 건 아닐 것이다.
만나서 할 얘기가 있거나 함께 군사작전을 펼칠만한 이유가 있을 확률이 높았다.
그런 장현에게 김덕배가 말했다.
“그래. 이건 나 혼자 결정할 일이 아니라서 회의를 열자고 한 거야.”
“일단 레이드를 함께 하자고 요청했으니 연합국으로서 받아들여야겠지. 다만 우리 왕국은 이제 막 국책사업을 시작했어. 수주물량을 모두 생산하고 납품까지 하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움직여선 안 돼. 그리고 그들을 관리할 사람들도 있어야 하니 내가 몇 명만 데리고 가도록 할게.”
“장현 네가 가는 건 안 될 말이야. 넌 지금 국책사업인 차폐자석을 생산하는 일을 총괄하고 있잖아. 그런 네가 여길 떠나면 어떡해!”
“걱정 마. 가기 전에 수주 들어온 물량은 다 쳐내고 갈 테니까. 내가 없어도 이곳에 있는 사람들끼리 나머지 작업은 할 수 있을 거야. 더군다나 선박운송으로 보낼 테니 어차피 아르헨의 항구를 들르게 될 거잖아. 내가 운송할 물량과 같이 움직이도록 할게.”
장현이 그렇게 말하자 김덕배도 말릴 수 없었다.
“알겠어. 무리하지 말고.”
그때 최형석이 나섰다.
“형님. 저도 함께 가겠습니다. 던전 레이드에 참여할 수 있기만을 그동안 기다렸습니다.”
“최형석, 넌 지금 맡고 있는 일은 없나?”
“치안은 이나연이 맡고 있고, 저야 사령술로 병사들 훈련 상대만 해주는 게 다였습니다. 그렇잖아도 이렇게 처박혀 있으니 너무 답답합니다. 제가 큰형님과 함께 한다면, 제가 부릴 언데드 병사들이 있으니 수적으로도 결코 부족하지 않을 겁니다.”
“알겠다. 그럼 너와 함께 가도록 하지.”
장현은 최형석의 말이 맞다고 느꼈다.
더군다나 전투를 원하는 그의 성정을 고려하면 누구보다 레이드에 적합했다.
“감사합니다. 형님.”
최형석은 무척이나 기뻐했다.
“그럼 나머지 한 사람은 김태석을 데려갈까.”
“잠깐. 나도 함께 갈 거야. 설마 날 빼놓을 생각은 아니었겠지?”
안젤라가 단호하게 말하며 거절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김덕배를 비롯한 누구도 그녀를 감당할 수 없었고, 그건 장현도 마찬가지였다.
안젤라가 가겠다고 하면 누구도 말리지 못했다.
“알겠어. 여기까지.”
그렇게 장현, 안젤라 그리고 최형석이 네오디움 왕국의 대표로 아르헨의 레이드에 가기로 결정되었다.
네오디움 왕국의 최강자들인 만큼 인원수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장현, 최형석, 안젤라는 지네차를 타고 아르헨의 클라우드 왕국에 도착했다.
킹덤에 정착한 후 가장 먼저 들여온 것이 지네차였다.
킹덤이 워낙 넓었기에 지네차가 없다면 플레이어들간 이동이 사실상 어려웠을 것이다.
그간 변한 것은 지네차뿐이 아니었다.
킹덤에 자리 잡은 영주가 포함된 플레이어들의 세력들은 각기 왕국을 세웠고, 영주였던 자는 국왕을 자처했다.
그렇기에 킹덤에서는 군소 왕국들이 난립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1회차처럼 킹덤 내 왕국간의 전쟁이 벌어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킹덤에서 가장 강대한 국가 중 하나인 클라우드 왕국의 아르헨이 네오디움 왕국과 무림 왕국의 연맹의 이름으로 각 왕국에 경고장을 보낸 것이다.
전쟁을 일으키는 왕국은 세 왕국의 공격을 받을 것이라는 경고였다.
그러자 어느 왕국도 함부로 전쟁을 일으키지 못하고 그저 내실을 다지는 데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장현 일행이 탄 지네차는 네오디움 왕국의 깃발을 달고 있었다.
클라우드 왕국의 왕성 입구에 이르렀음에도, 왕성 수비병들은 따로 신분 확인절차 없이 그들이 탄 지네차를 통과시켰다.
장현들이 탄 지네차는 왕성의 최심부까지 가고서야 멈췄다.
지네차가 멈춘 곳 바로 앞에는 국왕의 집무실이 있었던 것이다.
클라우드 왕실을 둘러본 장현이 중얼거렸다.
“여기도 빠르게 왕국이 자리 잡았구나.”
“어서 오십시오. 아르헨 국왕전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음. 안내하도록.”
“네!”
장현 일행을 맞이한 자는 킹덤의 동쪽 항구에서 본 적 있는 자였다.
“자네, 낯이 익군. 이곳에서 무슨 직위를 맡고 있지?”
“기억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저는 기사단장을 맡고 있는 아모레라고 합니다.”
“기사단장이면 클라우드 왕국의 최고 기사가 아닌가. 그런 기사가 고작 우릴 안내하기 위해 나와주다니. 내가 더 미안할 정도야.”
“최고 기사라는 칭호를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저는 2기사단장입니다.”
“1기사단장은 아르헨 국왕이고?”
“그렇습니다.”
“아르헨을 제외하면 최강 아닌가. 그렇다면 최고의 기사라는 칭호도 틀린 말이 아니지.”
“…칭찬 감사합니다.”
아모레는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