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화. 왕좌의 게임 (7)
쑤엉이 장현에게 투정부리듯 말했다.
“이 정도 포인트로는 지금 정도 수준의 화력밖에 안 돼. 온도를 더 높이려면 이보다 많은 포인트가 있어야 돼.”
장현은 그 말을 듣고 아르헨을 돌아보며 말했다.
“왜 포인트가 많이 필요한지 알겠지? 아르헨 너도 포인트로 좀 도와줘.”
“알겠어. 내 검을 만들어 준다는데, 뭐. 부족하면 얼마든지 말해.”
“호오, 마나 포인트가 여유 있는가보군.”
장현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흠칫한 아르헨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우린 버는 건 많은데 쓰는 건 사실 별로 없어. 기껏해야 식량을 사거나 치료용 마법 스크롤이나 무기를 강화하는 정도가 다니까. 거기다가 최근에는 다른 영지를 합병하면서 수입이 꽤 많아졌거든.”
“좋아. 그럼 남는 마나 포인트를 모조리 쏟아 부어. 신의 무기를 만드는 일이야. 마나 포인트를 투입한 만큼 좋은 검이 나올 거야.”
아르헨은 미심쩍었지만 틀린 말 같지는 않았기에 가진 여유 마나 포인트를 모조리 쏟아 부었다.
장현에 이어 아르헨도 포인트를 탈탈 털다시피 쑤엉에게 전해주자 쑤엉은 다시 힘을 냈다.
“좋아, 이 정도 마나 포인트면 정령왕급의 화염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아.”
쑤엉은 잔뜩 힘이 난 듯 더욱 화염 에너지를 강하게 생성했다.
그러자 하얗게 백열하던 불길이 점점 푸른빛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쑤엉이 생성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불길이었다.
“쑤엉, 이제 됐어. 여기서 온도를 더 높일 필요는 없고, 이제 이 온도를 유지한 채 불의 위력만 조절해줘.”
“알겠어. 사실 이게 내 최선이야. 온도를 더 올리고 싶어도 더 이상은 안 돼.”
쑤엉은 탈진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수고했어. 쑤엉.”
장현은 쑤엉에게 칭찬한 후 이정환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제 이정환 당신 차례요.”
“알겠습니다.”
완연한 청색의 불길이 활활 타오르는 화로 앞으로 이정환이 다가갔다.
그는 장현이 꺼내놓은 테세리움을 집게로 집어 들더니 화로에 집어넣었다.
치이익.
달구어지는 금속을 통해 전해오는 열기에 이정환도 굵은 땀방울을 흘렸다. 이제 시작이다.
푸콰아앙.
“쑤엉, 바람을 조절해서 이정환의 움직임에 따라 불길을 조절해.”
“내가 이 짓만 몇 번째인데.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돼.”
쑤엉은 잔소리하는 장현에게 소리치며 화로 속으로 바람을 불어넣었다.
화르르륵.
신의 금속을 달구기 위해 바람이 들어왔다 멈출 때마다 화염의 불길 또한 커졌다 줄어들었다.
때때로 화로 속에서 불꽃 폭발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땅땅땅!
치이이익!
이정환은 그 앞에서 참을성 있게 기다리며 금속이 달구어지면 빼서 망치로 두들기고 충분히 두들긴 후에는 찬물에 식혔다.
달구어진 신의 금속을 식히기 위해 콜드체인이에윰으로 된 물통까지 준비했다.
장현이 물통에 에레뜨 주술진을 새겨 넣었기에 달구어진 테세리움을 식히며 뜨거워진 물은 순식간에 다시 온도가 내려갔다.
땅땅땅!
치이이이익!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휴우.”
이정환은 땀을 닦으며 단조한 금속을 모루에 올려놓았다.
금속은 어느새 장검의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장현은 포프에게 이제 그의 차례임을 알려주었다.
“이정환 수고 했소. 다음은 포프 당신 차례요. 준비하시오.”
“흐흐, 드디어 내 차례군. 이 검이 마왕을 죽일 무기라니 가슴이 다 설레는군.”
“집중하시오. 자칫 실수라도 했다간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질 테니 말이오.”
포프에게 자리를 양보하며 이정환이 몸을 일으키다가 결국 한 소리를 했다.
“걱정 마. 이게 내가 작업하는 방식이란 말이지.”
포프는 손을 휘휘 저으며 대답하더니 아르헨을 돌아보며 말했다.
“아르헨, 그대가 쓸 검이니 내 그대의 몸을 직접 만져봐야겠소.”
“알겠소.”
아르헨은 기꺼이 그에게 자신의 몸을 허락했다.
직접 주문한 검을 제작할 때는 의뢰자의 신체를 확인하는 것이 대장장이들의 상식이었다.
양팔을 벌린 아르헨의 팔과 몸 근육을 주무르던 포프는 이어서 아르헨에게 말했다.
“그대가 주로 사용하게 될 검술을 천천히 보여주시오. 사용자의 신체에 맞춘 다음에는 검술에 맞춰야하오.”
“검술을 보여 달라고?”
포프의 그 말은 아르헨에게도 의외였다.
그는 잠시 멈칫했다.
검술은 원래 함부로 보여주는 게 아니었지만 상대방은 대장장이 드워프.
이내 아르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검술을 펼칠 공간을 확보하더니, 이윽고 자신의 검을 꺼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시작은 검을 뻗고 휘두르는 기본 검식이었으나 조금씩 검술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웅장한 격식이 느껴지는 검술.
그건 일종의 춤사위 같았다.
아마도 클라우드 제국 공작 가문의 검술인 것 같았다.
이어서 다시 검의 움직임이 변했다.
그것은 한없이 자유로우면서 날카로운 검이었다.
한 눈에 봐도 실전을 지향하는 검술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공작 가문의 검술에 헌터왕의 실전 검술이 더해진 아르헨만의 독자적인 검술이었다.
쉬익!
쿵!
크게 검을 휘두르는 것을 마지막으로 아르헨은 검술 시연을 마무리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포프는 눈을 반짝였다.
“좋아. 이제 충분해. 아르헨 영주를 위한 최적의 검을 만들어주겠어.”
포프는 자신감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고맙소. 부탁하오. 포프 족장.”
“내가 더 고맙지. 부디 우리가 만든 무기로 마왕을 쓰러트려 주시오. 그것이면 되오.”
“알겠소.”
포프의 말에 아르헨은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포프는 아르헨의 검술을 머릿속으로 복기하며 그에게 최적인 검의 형태를 만들어갔다.
이정환이 형태를 만들고 포프가 세부적인 디테일을 다듬었다.
땅땅땅!
점점 완전한 검이 되어갔다.
포프가 한숨을 쉬었다.
“이거 엄청 단단한데. 어지간해서는 세공이 안 되겠어.”
그런 포프에게 아르헨이 말했다.
“세공 같은 건 안 해도 괜찮소.”
“흥! 난 내가 만든 검에 내 이름을 새겨야 한단 말이야. 나중에 마왕을 쓰러트린 검에 내 이름이 안 들어가 있다면 누가 이 검을 내가 만든 줄 알겠어.”
“잠깐, 그 검은 포프 당신 혼자 만든 게 아니잖아. 대부분 내가 만든 거나 다름없잖소.”
이정환이 황당해하며 따졌다.
“어쨌든 내 이름은 들어가야 한다고.”
“테세리움 금속과 화염은 내가 준비했다는 걸 잊지 말라고. 그리고 미세 세공은 내가 연성술로 하는 게 나을 거 같아.”
장현은 혹시 자신의 이름이 빠질세라 슬그머니 말했다.
“흥, 걱정 말라고. 내게 아직 남은 방법이 있으니까.”
포프는 신경질적으로 품에서 작은 병을 꺼내더니 조심스레 검신에 부었다.
치지직.
“그건 뭐야?”
“요정의 샘으로 만든 시약이야. 이걸로는 어떤 금속도 부드럽게 만들 수 있지.”
과연 포프의 말대로 테세리움으로 만든 검신의 일부분이 무르게 변했다.
포프는 그곳에 기어이 자신의 이름을 새겼다.
“너희들의 이름도 같이 새겨주지”
그렇게 마왕을 무찌를 신의 무기에 포프, 장현, 이정환의 이름이 새겨졌다.
그 모습을 본 아르헨이 불평을 터트렸다.
“왜 내 이름은 없는 거야?”
“당신은 직접 검을 휘두를 건데 이름을 새길 필요가 뭐 있어? 어차피 더 이상 새길 공간도 없어. 자, 받아. 이제 다 됐으니까.”
포프는 완성된 검을 아르헨에게 넘겼다.
“허, 참.”
아르헨은 투덜거렸지만 금방 입이 헤벌쭉해졌다.
이게 자신의 검이라고 생각하니, 이름 새기는 거야 아무래도 좋아졌다.
아르헨은 가운데 손가락을 접어 검신을 향해 튕겼다.
팅!
손끝에서 느껴지는 감각과 검신의 맑은 울림소리가 그의 귀를 즐겁게 했다.
그는 미소 지으며 그저 한마디를 내뱉었다.
“좋은 검이군.”
포프는 그의 표정을 보고는 흐뭇해하더니 말했다.
“검에 이름을 지어주고 검신에 피를 떨어뜨려. 주인 의식이야. 신검인 만큼 피를 먹여야 검령이 깨어날 거야.”
아르헨은 고민하다 이름을 지었다.
“너의 이름은 나초다. 신검 나초”
“나초? 그게 무슨 뜻이야?”
“내 고향 클라우드 제국어다. 영원히 변하지 않는 다는 뜻을 갖고 있지.”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검이라. 좋군.”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아르헨은 검신에 자신의 손바닥을 슬쩍 갖다 대었다.
검신의 날카로운 예기에 핏방울이 맺히더니 검신을 타고 흘렀다.
우우웅.
신검 나초가 피를 흡수하더니 검신을 떨어댔다.
그렇게 신검 나초가 완성되었다.
한편 신검 나초가 완성되었을 때 장현에게 알림이 떠올랐다.
[신의 금속 테세리움으로 신검 나초를 제작하는데 기여했습니다. 특별한 조건을 충족하였기에 연금술사 조각의 보유자이자 최상급 연성술사로서 파라셀수스 퀘스트가 주어집니다. 다만 플레이어는 현재 다양한 능력을 가지고 있기에 퀘스트 부여에 있어 혼선이 발생했습니다. 가진 능력을 반영해 직업을 다시 선택해주십시오. 선택한 직업에 따라 파라셀수스의 퀘스트가 부여됩니다. 아래의 직업 중 한 가지를 선택하십시오.
[1. 대장장이 2. 연금술사 3. 전사 4. 신약개발자 5. 사업가 6. 국왕]
장현은 눈앞의 알림에 눈을 크게 떴다.
기다리던 파라셀수스 조각의 퀘스트다.
대장장이 조각을 보유한 이정환은 헤파이토스의 본신 능력을 얻을 수 있는 헤파이토스 퀘스트를 받았는데, 왜 자신은 파라셀수스 퀘스트를 받지 못했는지 의문을 가졌었다.
‘가진 능력이 너무 많아서 퀘스트 부여에 혼선이 생겼다고.’
피식 웃음이 나왔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이유였다.
그러고 보니 1회차에 비해 현재의 그는 너무 많은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한 가지도 가지기 어려운 능력을 몰빵으로 가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장현은 직업의 보기들을 훑었다.
지금까지 그가 가진 직업이었던 대장장이가 첫 번째로 나왔다.
1회차나 회귀 직후에 직업 선택의 기회가 있었다면 대장장이를 선택했을 것이다. 지금은 물론 아니다.
고작 고급밖에 이르지 못한 대장장이보다는 최고급에 이른 연금술사가 차라리 나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연금술사를 고를 것이냐고 하면 그 또한 고민이 되었다.
비록 연금술사 조각을 가졌지만 그는 이미 원래의 목표였던 테세리움을 연성해냈고 신의 무기 ‘나초’까지 만들었다.
그렇다면 굳이 연금술사를 계속해서 직업으로 선택할 필요는 없었다.
전사 직업은 조금 고민이 되었다.
그는 음양합일신공을 대성했고, 안젤라와 함께 수련함으로써 무력 또한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당문독공을 익혔을 때는 무력으로 마현과 아르헨을 이길 자신이 없었지만 지금은 달랐다. 더군다나 안젤라와 함께라면 확실하게 마현이나 아르헨을 이길 자신이 있었다.
그럼 전사를 선택해야 할까, 그것도 아니다.
어차피 신의 무기는 아르헨의 손에 건넸다.
장현이 전사를 선택한다고 해도 아르헨을 거들뿐 마왕을 쓰러트리는데 직접적인 영향은 줄 수 없었다.
이미 마왕을 상대해봤기에 그에게 진정한 피해를 주기 위해서는 창조신의 권능을 가진 무기로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전사 직업을 가질 필요는 없었다.
그럼 신약개발자를 직업으로 선택할 것이냐 하면, 물론 그것도 아니다.
신약을 제작한 건 코로나 바이러스 백신으로 충분했다.
물론 바이러스가 다시 또 변이를 일으켜 기존 백신이 효력이 없어진다면 새로운 백신을 만들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신약 개발을 계속해서 해나갈 생각은 없었다.
장현이 사업가 항목을 보았을 때, 그는 몽슈 백작과의 대화를 떠올렸다.
몽슈 백작은 그에게 물었다.
‘자네는 대장장이인가? 사업가인가?’
그때 장현은 사업가를 선택했었다.
이유는 마나 포인트를 벌기 위해서였다.
지금 그는 헬릭스 성에서부터 여러 가지 사업을 벌였으며 사실상 총괄하는 위치였다.
경영자라고 해도 좋았다.
영지민을 사실상 먹여 살리는 위치이며 지금은 킹덤에서 병합한 플레이어들과 동맹 관계를 맺은 아르헨 영지민들에게도 일거리를 만들어 주는 역할을 맡고 있다.
그가 책임져야 할 사람들은 현재 수만 명에 이르렀다.
나중에 무림인에 마법 세계 플레이어들까지 합치면 수십만 명에 이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