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화. 왕좌의 게임 (1)
“안젤라가 몽슈 백작님께 부탁하면 어렵지 않을 거야, 그렇지?”
장현이 안젤라에게 물었다.
“그래, 그게 할아버지께도 도움 되는 일이니 들어줄 거야.”
둘의 대화를 들은 김덕배가 고개를 끄덕이다가 무언가 이상한 것을 알아차렸다.
“잠깐, 그런데 너 소성주님께 안젤라라고?”
김덕배가 의아해하며 안젤라의 눈치를 살폈다.
의외로 안젤라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있더니, 김덕배의 말에 웃으며 장현의 팔짱을 꼈다.
“헉! 뭐야 대체. 저, 저 모습은 두 사람 혹시?”
김덕배가 놀란 목소리로 장현을 가리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어, 우리 사귀기로 했어.”
장현의 대답에 김덕배는 입을 떠억 벌렸다.
이성훈과 이나연, 최형석 모두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에? 장현이 소성주님과 사귄다고?”
“헐. 대박. 그래서 안젤라님이 경기에 참여한 거야?”
“형님. 진짜 대단하십니다. 어떻게 플레이어가 소성주님과……. 역시 형님, 존경합니다.”
일행들의 발언에 장현은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
“하하, 어떻게 하다 보니 그렇게 됐네.”
장현은 웃으며 자세한 얘기는 생략하고 넘어갔다.
일행들은 예전에 장현이 안젤라의 사랑을 얻으라는 퀘스트를 받았다는 것을 떠올렸다.
아무리 퀘스트여도 이번에는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는 이번에도 성공했다.
모두의 뇌리에 ‘장현에게는 불가능이란 없다.’라는 인식이 새겨졌다.
장현은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
혹시라도 누군가 실수로 퀘스트 얘기를 꺼낼까 조마했기에 다른 주제로 대화를 돌리는 게 좋았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킹덤에 자리를 잡고 영지로부터 오는 물품들을 조달받아서 입지를 다지는 거야. 물론 그 전에 아르헨 쪽 일을 해결해야겠지.”
“우린 어디 쪽에 자리잡을 거야?”
이나연이 물었다.
“헬릭스 성에서 생산한 물품이나 킹덤에 필요한 설비들을 받으려면, 아무래도 선박이 드나들 수 있는 쪽에 자리 잡아야겠지. 적당한 위치는 킹덤의 동쪽이 되겠어. 거기에 항구가 있을 거야.”
장현은 1회차 때를 떠올리며 말했다.
“덕배야, 전장의 맵으로 킹덤의 지도를 확인할 수 있어?”
이나연이 김덕배에게 물었다.
“잠깐만, 누나. 한번 확인해볼게.”
김덕배는 전장의 맵을 활성화 시켰다.
전장의 맵이 동료들도 볼 수 있게 허공에 떠올랐다.
김덕배는 천천히 자신이 있는 지역을 중심으로 전장의 맵 화면을 축소시켜 나갔다.
그에 따라 킹덤의 전체 모습과 현재 위치, 동쪽의 항구가 지도상에서 나타났다.
김덕배는 지도상의 목적지를 설정하고 ‘길 찾기’ 버튼을 눌렀다.
전장의 맵이 현재 위치에서 목적지까지의 경로를 보여줬다.
김덕배가 우려어린 표정으로 말했다.
“지도를 보면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은 킹덤의 남쪽이야. 동쪽 항구로 이동하려면 이 길을 따라가면 돼. 문제는 우리가 가는 경로에 아르헨 구역이 있어. 결국 그들과 부딪히게 될 거야.”
“내가 그를 설득해볼게.”
장현이 덕배를 안심시켰다.
“그렇지만 그가 설득이 될지 모르겠어. 우리더러 무조건 본인한테 숙이고 들어오라는 식으로 경고를 했는데.”
“세상에 타협이 되지 않는 건 흔치 않아. 대부분 타협이 돼. 타협이 안 되는 건 상대방에게 그만한 대가를 제시하지 못할 경우지. 이익이든 손해든 말이야.”
장현은 녹색 알갱이가 든 보관함을 손에 들고 말했다.
“확실히 그거라면 설득이 될지도 모르겠어.”
김덕배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코로나 바이러스 결정체와 백신을 양손에 들고 타협하자고 하는데, 거부할 수 있는 자가 과연 몇이나 될까.
“그래. 바이러스로 만든 이 결정체는 백신의 원재료이기도 하지만 우리의 무기이기도 하지. 이제 우리 영지민들이 맞을 백신이 아니라 교섭을 위한 백신을 준비해야하니 확진된 몬스터들의 사체를 모아줘.”
장현의 지시에 따라 일행들은 백신을 맞은 영지민들을 동원해 확진된 몬스터들을 사냥하러 흩어졌다.
화로 옆에는 몬스터 사체들이 산처럼 쌓여있었다.
모두 확진된 몬스터들의 사체였다.
장현은 사체를 소각하며 녹색 알갱이들을 채취하고 있었다.
며칠에 걸쳐 몬스터를 소각해 녹색 알갱이를 채취하고, 그것으로 백신을 만들어 영지민들에게 접종하는 일을 반복하고서야 그의 일행들은 모두 백신 접종을 마칠 수 있었다.
여분의 녹색 알갱이를 보관함에 충분히 모은 후, 장현은 동료들과 영지민들을 모두 데리고 항구를 향해 이동했다.
장현과 영지민들이 이동하는 동안 다른 성에서 온 플레이어들과 싸우는 추적자들을 여러 차례 만났다.
그들은 킹덤 밖에서 추적자들을 뿌리치지 못하고 달고 오다보니, 자연히 킹덤 안에서도 추적자들과 싸울 수밖에 없었다.
장현 일행과 달리 그들은 바이러스로부터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 보호막 형성 마스크와 백신이 없었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장현은 굳이 먼저 나서서 그들을 도와주지는 않았다.
아쉬운 쪽에서 손을 벌릴 때 도움을 줘야 고마움이 그만큼 큰 법이다.
어차피 킹덤의 왕좌를 놓고 다투어야 하느니 일부의 희생은 감수할 생각이었다.
그가 우려하는 건 플레이어들의 내전이지, 마족과의 전투에서 죽어갈 소수의 플레이어가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매정하다고 할 수 있겠지만 모든 사람을 구원할 수는 없었다.
장현은 철저히 자신의 목적 하에서 움직일 생각이었다.
다만, 이나연은 그의 생각과 달랐다.
“장현, 저 사람들 이대로 있으면 위험해.”
“이나연, 저들이 먼저 도움을 요청하기 전에는 나서지 마.”
“우리한테는 추적자들을 물리칠 능력이 있어. 다들 백신도 맞은 데다가 마스크도 썼잖아. 우리가 먼저 도와주면 저들은 우리의 힘을 인식할 거야. 그러면 굳이 나서서 포섭하지 않아도 자발적으로 우리에게 의지하게 될 거야.”
이나연은 강한 어조로 확신을 가지고 말았다.
장현은 내키지 않았지만 이나연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모든 일을 그가 나서서 해결할 수는 없는 법이다.
동료들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의견이 자신의 생각과 달라도 때로는 수용해줘야만 했다.
그는 추적자들을 비롯해 그들과 싸우는 다른 영지의 플레이어들에 대한 처리를 이나연에게 맡겼다.
이나연과 경비대원들은 이성훈의 궁수대원들과 함께 추격자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부대. 들어, 활!”
“들어, 활!”
이성훈의 선창에 따라 부대장들은 후창하며 대원들을 지휘했다.
“발사!”
“발사!”
슈슈슈슈슈!
화살이 날아가 확진자 몬스터들을 쓰러트렸다.
화살은 평범한 화살이 아닌 리자드맨의 주술이 담긴 화살이었기에, 명중하는 순간 주술의 효과가 발동되었다.
주술의 효과는 다양했다. 목표물이 불타오르는 것도 있었고, 뇌전의 충격을 주는 것도 있었다.
또 어떤 화살은 폭탄처럼 터지는 화살도 있었다.
화살이 쏟아지고 나자 이나연은 경비대원들에게 명령했다.
“대원들 모두 돌격! 추적자 놈들을 쓸어버려라.”
“으아아! 돌격하라!”
이나연이 훈련시킨 경비대원들은 맹렬하게 달려가 추적자들과 전투를 벌였다.
그들은 최형석의 언데드 부대와 실전이나 다름없는 훈련을 계속해서 해왔었다.
백신을 맞은 데다 보호막 형성 마스크까지 쓰고 있는 그들에게, 확진된 몬스터들이라고 해봤자 평범한 사냥감에 지나지 않았다.
이나연과 이성훈이 이끄는 영지민들이 추적자팀의 확진자 몬스터들을 쓰러트리자 그들을 이끄는 마족이 나타났다.
마족은 거대 거미의 몸통에 사마귀의 머리와 손을 가지고 있었다.
“건방진 놈들. 감히 나의 부하들을 죽이다니.”
마족은 입으로 거미줄을 뿜었다.
수십 가닥의 거미줄이 동시에 허공을 날아 이나연이 이끄는 부대원들에게 명중했다.
쉬쉬쉭.
마족이 뿜어낸 거미줄은 이나연의 경비대원들의 몸을 꽁꽁 묶었다.
마족은 영지민들로는 상대하기가 어려운 강자였기에 이나연의 표정이 굳었다.
그녀는 달려 나가며 검을 뽑아 들어, 부하들의 몸을 묶은 거미줄을 잘랐다.
“이놈! 나와 싸우자.”
이나연이 여신의 신성력으로 무장한 빛의 검을 휘두르며 마족을 공격했다.
차차창!
쉬쉬쉭!
마족의 사마귀 손과 이나연의 검이 여러 번 부딪쳤다.
사마귀 손은 신성력이 깃든 검과 충돌하고서도 큰 피해가 없었다.
무척이나 강력했다.
마족이 휘두르는 사마귀 손은 무척이나 강하고 날카로웠기에, 이나연으로서도 상대하기가 어려웠다.
이윽고 마족이 입으로 거미줄을 뿌리며 공격하자 이나연이 수세에 몰리기 시작했다.
자칫하다 거미줄이 명중하기라도 하면.
순식간에 사마귀 손이 그녀의 머리를 쪼갤 것이었다.
그때 김덕배가 뛰어들었다.
“무극진천!”
김덕배가 마현에게 전해 받은 무극신공의 검술을 시전하자, 그의 검에서 회오리치는 검기가 수십 가닥 날아가 마족을 공격했다.
“흥! 그 정도 공격이 내게 먹힐 것 같으냐!”
마족은 이나연을 공격하던 팔을 거세게 휘둘러 그녀를 멀리 쳐내고는 김덕배를 향해 맞섰다.
김덕배의 검기는 마족의 사마귀 팔을 뚫지 못했다.
김덕배는 검기를 날린 후 빠르게 마족에게 접근하고 있었다.
그는 장현이 강화해준 마법의 부츠를 신고 있었다. 신법을 사용해 몸놀림이 빠른 상태에서 마법의 부츠 보조까지 받게 되자 순간적으로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속도로 마족에게 다가갈 수 있었다.
그때 김덕배가 힘을 쓰자 검에서 한 줄기 검강이 치솟았다.
검기와는 확연히 다른 강한 기운의 검날이 치솟아 마족의 사마귀 손을 그대로 잘랐다.
서걱!
“크아악!”
한 쪽 팔이 잘린 마족이 뒤로 후퇴하며 입으로 거미줄을 뿜었다.
김덕배는 재빨리 피하며 다시 한번 검에서 검강을 뽑아내 마족의 나머지 팔을 자를 생각으로 덤벼들었다.
채챙!
“인간, 이번엔 나도 전력을 다해 상대해주마. 어디 이번에도 피할 수 있다면 피해보거라.”
마족이 그대로 마력을 쏟아내며 중얼거리자, 허공에 수십 개의 사마귀 팔이 생겨나더니 이내 김덕배를 향해 소나기처럼 퍼부어졌다.
사마귀 팔 하나하나는 검기를 실은 공격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한 번의 공격에 치명상까지는 입지 않더라도 연이어 공격을 허용한다면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었다.
그때 김덕배가 눈을 빛내며 움직였다.
“무극둔영.”
그러자 허공에 수없이 많은 김덕배 형상을 한 환영들이 생겨나며 공격을 모조리 피하거나 막아냈다.
환영은 각가지 동작을 취하며 마족의 공격에 적절한 대응을 했다.
곧이어 김덕배는 검을 든 채 허공을 박차고 날아 올랐다.
내공과 마법의 부츠의 힘으로 사마귀 마족의 앞까지 접근한 그는 크게 검을 휘둘렀다.
“아, 안 돼!”
마법 공격을 하느라 허공에 뜬 채여서 피하기도 어려웠다.
김덕배의 검이 검강을 뿜어내며 마족을 향해 돌진했다.
썩둑.
사마귀 마족이 양분되어 쪼개졌다.
마침내 마족이 죽었다.
여태까지 상대해왔던 마족들보다 강한 개체였다.
그런 마족을 김덕배가 홀로 쓰러트린 것이다.
일행들은 그런 김덕배의 활약을 눈에 담았다.
한편, 최형석은 언데드를 소환해 몬스터들을 상대로 싸우고 있었다.
“김덕배도 끝냈으니, 이제 나도 그만 끝내도록 해야겠지. 움바리 사바라 움메오.”
그가 사령술 주문을 외우자 언데드 크레온과 언데드 그렉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최형석의 뜻에 따라 전장의 몬스터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크롸롸롸롸.
언데드 크로커다일의 공격이 몬스터들을 향해 쏟아졌다.
몬스터들은 마족과 비슷한 흑거미와 사마귀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추적자팀에 속한 만큼 그들은 약한 몬스터가 아니었다.
하지만 언데드를 상대로는 압도적인 전력 차가 아니고서는 이기기가 어려웠다.
쓰러트리고, 뼈를 부수고, 목을 베어도. 언데드는 다시 몸을 일으켰던 것이다.
크르르륵.
그때 김덕배가 마족을 추가로 베어버리자, 몬스터들은 두려움에 떨면서 몸을 돌려 도망치기 시작했다.
“어딜!”
그걸 최형석이 지켜만 보고 있을 리 없었다.
그는 대량의 언데드 병사들을 소환했다.
거인족뿐 아니라 삼두견과 스켈레톤 병사들까지 모두 모습을 드러냈다.
수많은 언데드 병사들이 몬스터들의 뒤를 쫓았다.
최형석 또한 쌍칼을 들고 직접 추적자팀의 몬스터들을 뒤쫓았다.
최형석과 언데드 부하들의 합공에, 몬스터들은 결국 모조리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