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화. 플레이어 런 킹덤 (8)
장현의 말에 안젤라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계획과 의도를 알게 되었다. 솔직하게 자신에게 털어놓은 게 고마웠다.
“알겠어. 인간 플레이어가 자유를 찾으려면 결국은 마왕의 정부군과 싸워야 할 텐데. 백신이라면 훌륭한 무기라고 할 수 있겠지.”
안젤라는 엄밀히 말하면 마계 최상류층의 기득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그녀가 이렇게 장현을 지지할 수 있는 이유.
이미 장현을 사랑해버렸기 때문이다.
그 과정이 얼마나 힘들고 고될지는 이제 중요하지 않다.
안젤라는 장현과 함께 끝까지 그 길을 갈 것이었다.
“이해해줘서 고마워. 그리고 내가 약속을 하나 할게.”
“무슨 약속?”
“난 안젤라를 마왕으로 만들 거야.”
장현의 뜬금없는 말에 안젤라는 고개를 휙 들었다.
“뭐, 그게 대체 무슨 소리야? 마왕이 우스운 줄 아나본데. 마왕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 난 대공 전하를 봤어. 엄청나게 강해. 마왕이 없었다면 마계의 왕좌를 차지했을 분이지. 그 대공 전하조차도 마왕을 이기지는 못해. 단순히 세력만이 아니라 순수한 무력에서도 말이야.”
“그러니까 약속하는 거야. 쉬운 일이라면 굳이 이렇게 약속한다느니 말할 필요가 없지. 가능한 일이라면 누구든 할 수 있는 일이니까. 그런데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하는 일을 나는 할 수가 있을 거 같단 말이야. 물론 안젤라가 동의를 해줘야겠지만.”
“…….”
안젤라는 장현의 말이 터무니없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런 말을 당당하게 하는 그가 멋있었다.
“나는 플레이어들을 이끌고 마계에서 독립을 이룰 거야. 킹덤을 플레이어들이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왕국으로 만드는 게 목표야. 그러기 위해서는 안젤라가 마왕이 되어야 해.”
안젤라는 실현 불가능할 것 같은 말을 당당하게 외치는 장현을 보더니 미소를 지었다.
“그래. 가능할지 모르지만 널 믿어볼게. 넌 그동안 내게 말도 안 되는 여러 가지 기적들을 보여줬어. 이번에도 그럴 거라고 믿어. 네가 하는 말은 모두 이루어질 거야.”
장현은 안젤라를 끌어안고 다짐하듯 속삭였다.
“물론 나도 믿어. 반드시 그렇게 만들 거야.”
둘은 킹덤을 향해 전진했다.
곳곳에서 확진자 몬스터들이 튀어나와 덤벼들었다.
백신을 맞은 둘은 더 이상 코로나 바이러스를 염려하지 않아도 되었기에 손쉬운 상대였다.
다만, 뿌리치고 갈 수 있음에도 굳이 기다려 정성껏 확진자 몬스터들을 상대했다.
“놈들은 백신 결정체를 만들 재료들이야. 가능한 놓치지 말고 다 잡아야 해.”
“알겠어.”
장현의 말에 안젤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가 커버하지 못하는 범위의 확진자 몬스터들을 공격했다.
장현과 안젤라는 둘 다 음양합일신공을 대성했다.
더군다나 장현의 머릿속에는 마현에게 전해 받은 수많은 무공들이 있었다.
각각의 무공은 대부분 초식과 내공심법이 따로 떼어질 수 없었다.
마교의 내공심법으로 소림의 초식을 운용한다고 해서 소림무공이 되는 것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다만 기본기는 어느 무공의 초식이나 비슷하다.
안젤라는 타고난 신체와 마력이 인간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뛰어났다.
대부분 마족들의 싸움은 타고난 신체와 마력에서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보니 전투술 따위가 가문으로 따로 이어지는 경우가 흔치 않았다.
헬릭스가 전투력이 뛰어나다곤 하지만, 그것은 그가 타고난 신체와 마력을 바탕으로 천계를 비롯한 다른 세계의 강자들과 전쟁을 치르며 자연스레 효율적으로 힘을 다루는 방법을 익힌 결과다.
반면, 안젤라는 전투를 치른 경험이 부족했다.
그러다가 장현을 만나 음양합일신공을 함께 익히면서 그에게 조금씩 내공을 다루고 전투에 활용하는 방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기본 권각술과 18가지의 무기를 다루는 정도였으나, 차츰 고급 초식을 배우기 시작했다.
이 모든 것은 장현이 음양합일신공을 익히면서 시행착오를 거쳐 효율성이 증명된 초식들이었다.
지금 안젤라는 장현에게 배운 전투술을 몬스터들을 상대로 실전 훈련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때 몬스터들이 다시금 쏟아져 나와 달려들었다.
크르르.
이 몬스터들은 바이러스에 확진된 몬스터가 아니었다.
놈들을 상대하던 안젤라가 의아한 듯 장현에게 말했다.
“뭐지, 이놈들. 이전과는 다르게 바이러스에 확진되지 않았어. 그래서인지 일정한 목표를 가지고 움직이는 것 같아. 마치 누군가의 조종을 받고 있는 것처럼 말이야.”
“혹시. 추적자팀의 마족이 놈들을 우리에게 몰고 있는 게 아닐까? 저기 저 놈이 말이야.”
장현이 가리키는 방향에 무언가 있었다.
멀리 어둑한 숲속에서 2미터가 넘는 마족이 천천히 몬스터들과 함께 다가오고 있었다.
장현이 긴장한 채 응시했다.
그때 안젤라가 놈을 알아보았다.
“아자르.”
“헤당 아자르?”
“아니, 그냥 아자르야. 헤당 아자르는 누구지?”
“아니, 예전에 지구에 있던 스포츠 선수야. 밤마다 경기를 챙겨보다 보니 나도 모르게 그 이름이 튀어나왔어.”
장현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안젤라가 장현의 말에 대답했다.
“저 놈은 미친놈이야. 싸움에 굶주려있는데, 약한 놈들을 학살하는 것을 즐겨. 그리고 적의 마나 포인트를 흡수하는 스킬을 가지고 있어.”
그 말에 장현의 눈빛이 빛났다.
“으음, 안젤라. 뒤로 물러나. 저 놈은 내가 상대할게.”
장현의 말에 안젤라는 고개를 저었다.
“네가 상대하는 것보다 내가 하는 게 나아.”
“적어도 난 여자 뒤에 숨어있는 놈이 되고 싶진 않아.”
“나도 내 남자는 내가 지켜. 그러니 이번에는 내게 맡겨줘.”
안젤라의 말에 장현의 눈이 커졌다.
뭔가 쑥스러우면서도 신선한 느낌이었다.
안젤라는 장현의 뺨을 손으로 가볍게 톡톡 건드리더니 웃으며 지나쳤다.
“내 실력을 한 번 보라고.”
아자르는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안젤라를 향해 실실 웃으며 말했다.
“흐으, 헬릭스 성의 안젤라. 이름은 많이 들어보았소. 소문대로 예쁘군. 경기에 참가한 건 그만큼 각오가 되었다는 거겠지? 이런 대어를 건질 줄은 몰랐는데. 그대를 전리품으로 취해야겠어.”
크아아아아.
아자르는 포효를 지르며 기운을 뿜어냈다.
전신에서 강한 기운이 압박하듯 뻗어왔다.
그러고는 안젤라를 향해 움직였다.
부웅.
아자르는 허리를 돌려 한껏 회전을 넣은 후 풀면서 주먹을 내뻗었다.
그러자 그의 손에서 핏빛의 실들이 수십 가닥 뻗어져 나왔다.
실선 하나하나에 강력한 기운이 깃들어 있어, 정면으로 공격을 허용한다면 신체가 꿰뚫릴 수 있었다.
그때 안젤라가 허공으로 날아오르더니 양손을 흔들었다.
손짓과 함께 허공에 수십 개의 단검들이 생겨났다.
그것은 음양합일신공으로 만들어낸 기의 단검들이었다.
차차차창.
아자르의 실선에 대항해 안젤라의 단검들이 맞부딪쳤다.
단검들은 실선과 충돌하면서도 일정한 흐름을 가지고 움직였다.
안젤라가 장현에게 배운 당문 암기술의 한 형태였다.
단검들의 일부는 안젤라의 몸을 감싸는 방패가 되었고, 일부는 실선의 공격 방향을 비틀면서 아자르를 향해 날아갔다.
마치 물고기가 파도를 거슬러 올라가는 듯 유려한 움직임이었다.
콰콰콰쾅.
단검 하나하나는 막강한 내공을 담고 있었다. 아자르는 크게 뒤로 물러났다.
낭패한 표정으로 얼굴을 찌푸렸다.
“재밌군. 이제 나도 본격적으로 힘을 쓸 테니, 다시 한번 붙어보자고.”
아자르의 붉은 실선이 더 두꺼워지면서 수도 훨씬 늘었다.
수백 가닥의 강선과도 같은 공격이 안젤라를 향해 날아오자 안젤라도 다급해졌다.
지금의 단검으로는 공격과 방어 중 하나에만 집중해야 한다.
아자르는 피해를 감수하고서 모든 힘을 공격에 집중하고 있었다.
안젤라는 입술을 깨물고 단검들을 모아 방패를 형성하는 검진을 펼쳤다.
치잇!
푸푸푸푸푹.
강선들이 일제히 쏟아지면서 안젤라가 펼친 단검들의 방패를 두들겼다.
‘위험해.’
장현은 전투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더 이상 두고 볼 필요가 없었다.
이미 그는 몬스터들은 다 쓰러트렸기에 마족 아자르에 집중할 수 있었다.
“에레뜨 망치.”
그는 인벤토리에서 에레뜨 망치를 꺼내들었다.
에레뜨 망치에는 리자드맨 종족의 주술진이 새겨져 있다.
장현이 리자드맨의 주술을 승계한 후 가장 먼저 새긴 주술진이다.
장현이 주문을 외우자 망치에 새겨진 주술진이 번쩍이더니 발동되었다.
주술이 발동하자 아자르의 움직임이 느려졌다.
아자르는 거대한 압력을 받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뭐, 뭐야. 이거.”
장현은 서둘렀다.
주술진의 숙련도가 낮기에 효과가 오래가지 않을 것이다.
아자르가 안젤라에게 집중하고 있을 때 빠르게 움직였다.
아자르도 비로소 자신의 움직임을 속박한 게 장현이었다는 걸 알아챘다.
“이놈. 천천히 죽여주려 했더니. 당장 죽여주마!”
아자르는 분노를 터트리며 공격하던 강선의 일부를 장현에게로 옮겼다.
“흥, 이런 느려터진 공격에 얻어맞을 멍청이가 어디 있냐.”
장현은 수월하게 공격을 피해서 접근하더니 ‘스킬 한 방’을 시전했다.
“스킬 한 방.”
[근력 스탯이 60분간 세 배로 강화됩니다.]
장현이 강해진 만큼 스킬 한 방의 유지 시간 또한 증가했다.
그가 스킬 한 방을 시전하자 이전과 다른 천지 대기의 기운이 망치로 몰려들었다.
“혹시 이것도 주술진의 효과인가.”
자세히 알아보는 건 나중 일이다.
지금은 아자르를 쓰러트리는 게 우선이다.
‘남은 시간은 60분. 아직 시간은 충분히 남아있어.’
그는 조금 전 추출한 코로나 바이러스 알갱이들을 망치에 뿌렸다.
내공을 실어 알갱이가 망치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붙들었다.
장현과 안젤라는 백신을 맞아 면역이 되었기에 확진될 염려가 없다.
그는 바이러스 알갱이가 붙은 망치를 들고 아자르를 향해 뛰어가 휘둘렀다.
날아오는 붉은 실선들을 아슬아슬하게 빗겨내면서 달려들었다.
쿵. 쿵.
붉은 실선들과 망치가 충돌할 때마다 요란한 소리가 울렸다.
빗겨 쳤음에도 저런 충격음이 나는 것으로 보아, 정면으로 맞는다면 꽤나 피해가 클 것이었다.
마침내 아자르의 바로 앞까지 접근했다.
“이놈, 겨우 이따위 공격으로 나를 어찌해보려 했더냐!”
아자르는 분노와 경멸에 가득 차 안젤라를 공격하던 강선들을 모두 회수해 장현에게로 돌렸다.
그러나 주술진의 효과로 인해 그 공격은 무척이나 느렸다.
그 사이, 스킬 한 방이 깃든 망치가 아자르의 몸통을 후려쳤다.
후우웅.
쩌정.
그때 유리가 깨지는 듯한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아자르의 주위로 실금이 퍼지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그는 자신의 주위에 보호막을 펼쳐놓았던 것이다.
아마도 바이러스로부터 몸을 지키면서, 그와 동시에 적의 공격까지도 방어할 수 있는 보호막이었을 것이다.
“아니, 어떻게 이게 고작 한 번의 공격에 깨지다니.”
아자르는 놀란 목소리로 외쳤다.
“그게 끝이 아니다. 이번에야말로 완전히 박살내주마.”
장현은 다시 한번 망치를 휘둘렀다.
아자르의 붉은 실선이 장현의 몸으로 집중되었지만 그는 피하지 않았다.
안젤라의 단검들이 순식간에 날아와 장현의 몸 앞에 방패를 형성했다.
콰콰콰쾅!
붉은 실선과 방패 모양의 검진이 부딪히는 사이.
장현은 공격할 시간을 벌 수 있었다.
“으아아아아앗!”
후우우웅.
콰콰쾅!
장현의 연이은 망치 공격이 아자르의 보호막 위로 떨어졌다.
실금이 가있던 보호막은 마침내 폭발하며 사라졌다.
“이제 아무것도 널 보호할 수 없겠지.”
장현이 아자르를 보며 씨익 웃었다.
그는 망치를 양손으로 잡고 크게 들어 올리더니, 이어 그대로 아자르의 머리를 향해 휘둘렀다.
콰쾅!
장현이 휘두른 망치가 아자르의 머리를 후려쳤다.
아자르는 기운을 머리에 집중해 피해를 최소화했지만, 말 그대로 최소화일 뿐.
피해가 없을 순 없었다.
그때 망치에 붙어있던 녹색 알갱이가 아자르의 얼굴로 날아올랐다.
그중에 일부는 아자르의 입 속으로 들어갔다.
“읍. 이, 이게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