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화. 플레이어 런 킹덤 (7)
로슈의 말에 안젤라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다급하게 물었다.
“긴급회의라고? 대체 무슨 일이길래 할아버지까지 회의에 참석한 거야?”
마왕과 대공은 마계의 지배자와 실력자.
반면 드림히트 성의 성주인 몽슈 백작은 재계의 실력자다.
원래라면 마계의 긴급회의에는 정부인사라고 할 수 있는 관료직을 맡고 있는 귀족들만이 참석한다.
재계의 인물인 몽슈 백작이 정부의 긴급회의에 참석한 건, 안젤라에게도 의외의 사건이었다.
그렇기에 놀랐던 것이다.
“그게, 해운 선박과 물류 때문에 참석 요청을 받으신 것 같습니다.”
“해운 선박이라니. 자세히 얘기 좀 해줘.”
“대량 화물운송은 현재상선의 화물선으로 하고 있는 건 아실 겁니다.”
“그렇지. 나도 네시스를 통해 현재상선에 얘기하려다가 할아버지께 연락드린 거였어. 드림오션의 벌크선으로 보호막 형성 마스크 생산한 거 운송 부탁드리려고 했거든.”
안젤라는 로슈에게 백신에 관한 말은 하지 않았다. 아무리 그가 몽슈 백작의 최측근이라고 하지만 아직까지는 기밀사항이었다.
“그렇군요.”
“대체 화물선이 왜 이렇게 구하기 어려운지 모르겠어. 화물운송이 그렇게나 많이 늘어난 거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렇지 않았습니다만, 최근에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진단키트 주문이 폭주하고 있어서 그렇습니다. 더욱이 마해 밖 대륙으로 배송하기 위해서는 화물선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보니 화물선 수요가 급격히 늘었지요. 아마도 구하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진단키트, 그게 그렇게나 주문이 많이 들어온 거야?”
“그렇습니다. 그리고 진단키트뿐만 아니라 곡물 사료회사에도 지분투자를 하셨는데 그 또한 주문이 폭주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보니 마왕님과 대공 전하께서 주관하시는 마계정상회의에 백작님께서도 참석하시게 된 것입니다.”
“그래, 기억나. 이선전이라는 영주가 있는 영지에서 감자두더지 배합사료를 둘러봤었지. 할아버지께서 그곳에도 투자하셨구나. 그리고 진단키트라면 지젠, 세놀루션, 바이온 말이지?”
“맞습니다. 몽슈 백작님께서 적절한 시기에 그 회사들의 지분을 취득하셨습니다. 그 자금으로 생산 공장을 확대했다고 하더군요. 드림오션의 벌크선들은 지금 마스크와 사료 운송하는 주문 쳐내느라 대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로슈 집사의 말에 안젤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 그녀는 다급하게 말했다.
“로슈, 부탁이 있어. 드림오션 선박을 헬릭스 성으로 보내줘.”
“네? 안젤라님. 죄송하지만 그건 어렵습니다. 조금 전에 말씀드렸듯이 드림오션 선박은 진단키트와 사료 운송만으로도 부족한 상황입니다. 헬릭스 성으로 갈 선박이 있다면 모르겠지만 최근에는 진단키트 주문도 들어온 것이 없어서 배정된 게 없습니다.”
“하지만 로슈!”
“죄송합니다. 안젤라님. 제가 다른 부탁은 들어드릴 수 있겠지만 지금 상황에서 선박을 제 임의로 빼기는 어렵습니다. 몽슈 백작님께 직접 말씀드려보셔야 할 것입니다.”
로슈는 안젤라의 외침에도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때 장현이 나섰다.
“로슈 집사님, 저 장현입니다.”
“네, 장현님. 오랜만입니다.”
“제가 최근에 몽슈 백작님의 의뢰를 받아 제작한 보호막 형성 마스크가 있습니다. 몽슈 백작님께 샘플로 보내드렸었는데 혹시 이 얘기 들어보셨습니까?”
“네. 저도 들었습니다.”
로슈 정도의 위치라면 모를 수가 없다.
“그 보호막 형성 마스크의 기능을 아신다면 그게 코로나 바이러스를 예방하는데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지도 아실 것입니다.”
“흠, 충분히 그럴 것이라 생각합니다.”
“보호막 형성 마스크는 몽슈 백작님께 의뢰받아 드림이라는 브랜드를 붙여 생산된 것입니다. 지금 생산은 충분히 되었는데 운송할 선박이 없어서 드림히트 성으로 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드림오션의 선박을 보내주십사 연락드린 겁니다.”
“무슨 말씀인지 압니다. 그렇지만 제가 안젤라님께도 말씀드렸지만 지금은 선박 예약이 꽉 차있습니다. 여유 선박이 없는데다 기존 예약된 선박 또한 진단키트와 사료 운송이라는 중요한 임무를 가진 것이라 도저히 뺄 수 있는 여력이 없습니다.”
“그럼 할 수 없지요. 로슈 집사님께서 거절하신다면 어쩔 수 없이 저희는 네시스님께 연락해서 현재상선으로 보내야하는데, 그렇게 되면 배송지 또한 바뀌게 될 것입니다. 진단키트도 중요하지만 보호막 형성 마스크는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아실 텐데. 몽슈 백작님께서 나중에 질책하셔도 전 로슈 집사님의 거절로 어쩔 수 없었다고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몽슈 백작님께서 부재중이실 때는 로슈 집사님께서 업무대리를 하실 텐데 저희는 충분히 할 만큼 했습니다. 그럼 보호막 형성 마스크 주문 다시 주시면 그 때 새로 생산하도록 할 테니, 천.천.히 몽슈 백작님 돌아오시면 그때 상의해서 알려주시죠.”
장현은 강수를 두었다.
지금 받지 않는다면 언제 받을지 알 수 없을 거라고 경고한 것이다.
그리고 그 책임은 로슈 집사가 지게 된다.
“으음. 잠깐만 기다려주십시오. 장현님.”
“생각이 바뀌셨나요? 제가 오래 기다려줄 순 없는 상황이라서 말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마스크가 없는 마계주민과 플레이어들은 코로나 바이러스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는 긴급한 상황이라서요.”
장현은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지금 시국에 가장 중요한 건 바이러스로부터의 방역.
방역을 위해서는 진단키트, 마스크, 백신이 필요하다.
현재 장현 외에는 누구도 백신을 개발하지 못했으니, 진단키트와 마스크를 확보하는 것이 방역에 있어서 최선이다.
기존의 보호막 형성 마스크는 장현이 개발한 것에 비하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성능이 낮다.
5나노미터 이하의 미세공정이 필요한 반도체가 탑재 되어야하는데 생산 가능한 곳이 몇 되지 않는다.
장현은 로슈에게 이런 얘기까지 할까 생각했으나 그만두었다.
로슈의 마음이 이미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챈 것이다.
추가적인 설득은 흔들리고 있는 로슈에게 오히려 여유를 줄지도 모를 것이기에.
로슈는 몽슈 백작이라면 과연 어떻게 할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저 마스크를 들일 수 있다면 드림히트 성의 방역은 보다 강화될 것이야. 몽슈 백작님이라면 분명 손해를 감수하더라도 그것을 선택하셨겠지. 마스크 생산이 오래 걸리는데다, 다른 곳으로 공급하고 나면 당분간 물량을 받기 어렵다는 점만 아니면 이렇게 고민할 필요가 없는데.’
선택을 잘못할 경우, 그 책임은 로슈가 져야한다.
물론 몽슈 백작이 그 일로 로슈를 책망하거나 벌을 주거나 하진 않을 테지만, 분명 실망은 할 것이다.
‘몽슈 백작님이 실망하시게 만들 순 없어.’
로슈의 생각은 이내 장현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쪽으로 기울었다.
“알겠습니다. 몽슈 백작님께서도 당장의 이익보다는 드림히트 성의 방역을 더 챙기셨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벌크선을 헬릭스 성으로 보내겠습니다.”
로슈의 말에 장현은 크게 기뻐했다.
“감사합니다. 로슈 집사님.”
장현의 인사에 로슈는 고개를 저었다.
“이것은 합당한 거래입니다. 그리고 안젤라님, 처음에 요청을 거절해서 죄송합니다.”
“아니야, 로슈의 입장도 이해해. 그래도 결국 선박을 보내주기로 결정해줘서 고마워. 이번 결정을 정말 잘했다고 느끼도록 해주겠어.”
안젤라는 자신 있게 말했다.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안젤라님.”
로슈는 안젤라의 말에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선박을 확보한 장현은 즉시 백신을 제작하도록 지시했다.
몽마 종족과 인간 종족의 백신이 이렇게 마계에 풀리게 되었다.
다만, 이것은 극비리에 이루어졌다.
장현은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 고민했다.
‘플레이어 런 킹덤’의 경기는 자신들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다.
예전처럼 플레이어들끼리 다투어서는 안 된다.
힘을 합쳐 마왕군을 상대로 싸워야 한다.
조만간 마계는 코로나 바이러스에 불만을 가진 마족 반란군이 마왕군과 대항해 싸우게 된다.
그때까지 인간 플레이어들의 힘을 모아야 했다.
문제는 인간 플레이어들을 어떻게 규합하느냐였다.
킹덤에서는 영지전을 승리한 자들을 중심으로 세력 싸움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그걸 막을 수는 없다.
‘차라리 강력한 리더가 통합을 시키는 게 낫지.’
테오, 마현, 아르헨, 제이미.
장현이 아니라면 이들 중에서 한 명이 되는 게 낫다.
그중에서도 직접 신의 무기를 들고 싸워야 할 사람이어야 한다.
‘아르헨, 너밖에 없다.’
물론 마현도 있지만 마왕과의 일대일 전투에서는 아르헨이 한 수 위다.
그것은 무력의 차이가 아닌, 그동안 싸워온 전장의 경험 차이다.
‘마현은 무림에서 인간들을 상대로 싸웠지만, 아르헨은 몬스터들을 상대로 레이드를 해왔기 때문이야.’
무림과 헌터 세계의 환경에서 오는 차이였다.
헌터 세계는 곳곳에서 던전이 열리고 레이드가 이루어진다. 헌터들을 위한 튜토리얼 탑이 있을 정도다.
마계에 온 플레이어들의 양대 산맥이 무림과 헌터들인 이유가 여기 있다.
두 무리는 이전 세계에서부터 쭉 싸움만 해온 자들이다.
그 중 헌터들은 몬스터들 상대로 싸우는데 특화되어 있고, 무림인은 같은 인간들을 상대로 싸우는데 특화되어 있다.
킹덤에서 두 무리가 싸운다면 무림인들이 한 수 위일 수 있지만, 마왕과 마왕군을 상대로 싸울 때는 얘기가 달라진다.
그렇기에 아르헨이 주축이 되어야 한다.
장현이 아르헨을 중심으로 킹덤을 통합시키려 생각한 이유는 그 뿐이 아니었다.
‘마현은 대의를 위해 양보할 수 있는 성격이지만, 아르헨은 그렇지가 않다.’
회귀할 때도 아르헨은 반발하지 않았던가.
그는 자신이 중심이 되어야 하는 성격이다.
마현을 리더로 하자는 의견을 내세우면 결코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그럼 결국 싸워서 승부를 내자고 하겠지.’
그렇게 되면 무림과 헌터들로 다시 무리가 나눠지게 된다.
그래선 안 된다.
반면 마현은 원래부터 1인 전승 문파 출신.
본의 아니게 마교와 무림맹을 이끌게 되었지만 조직생활을 답답하게 여기는 성향이다.
자신보다 마왕을 상대하는데 더 적절한 자가 있다면 충분히 양보할 수 있는 성격이다.
‘일단은 빨리 아르헨을 비롯한 나머지 최후의 동료들에게 회귀한 사실을 전하고 그들을 설득시켜야 해.’
그럼에도 문제가 있다. 과연 자신의 말을 믿어줄지 의문이다.
회귀 전 동료들이 전한 지식과 전언들을 활용하면 설득시킬 수도 있지만 확신할 수는 없다.
1회차에서도 최후의 전투가 끝나고, 살아남은 인간 플레이어가 몇 되지 않았을 때야 겨우 힘을 합쳤기 때문이다.
‘설령 믿지 않더라도 나를 따르게 해야겠지.’
그때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아야 한다.
장현은 자신의 손에 든 백신을 바라봤다.
‘그때는 이걸 이용해야겠지.’
백신이라는 무기를 가지고 강제로 그들을 따르게 하는 수가 있다.
문득 장현은 과거 대한민국에서 읽었던 삼국지연의 초기 부분, 황건적의 난이 떠올랐다.
병의 치유와 함께 태평한 시대를 바라며 난을 일으켰던 황건적의 난.
장현은 설득이 안 되면 그 방법을 써 킹덤의 플레이어들을 끌어들일 생각이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기회를 줄 줄이야.’
바이러스를 치유할 수 있는 백신과 마스크.
이 두 개로 킹덤의 플레이어들을 강제 통합시킬 수 있을 것이다.
생각을 정리한 장현은 안젤라를 돌아보며 말했다.
“안젤라, 얘기할 게 있어.”
“말해봐.”
그는 앞으로의 계획을 설명했다.
“킹덤에 들어간 후에 난 인류 플레이어들을 통합시킬 생각이야.”
“좋아. 내가 널 지원할게.”
“그리고 난 헬릭스 성의 주민인 드워프, 리자드맨, 인간 그리고 드림히트 성의 몽마족까지만 백신을 제작해 공급할 생각이야. 그 외의 마족을 위한 백신은 제작하지 않을 거야.”
장현의 대답에 안젤라가 물었다.
“이유를 물어봐도 돼?”
“그건 나와 플레이어들이 ‘경기의 플레이어’라는 신분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를 되찾기 위함이야. 아이러니하게도 지금 코로나 바이러스로 마족들이 약해진 이 순간만이 우리 인간들이 자유를 되찾을 수 있는 유일한 기회야. 그렇기에 우리가 자유를 선언한 순간부터 적이 될 자를 위한 백신은 만들어줄 수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