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화. 다시 헬릭스 성으로 (18)
“그렇다네. 그럼 여기 이 마을의 주택은 한 채에 얼마 하겠는가?”
“흠, 신축 주택이 10억인데 세 배라고 했으니. 여긴 한 억 3억 정도 하려나요?”
“맞아. 그 정도 하지. 그것도 갑자기 외지인들이 대거 주택을 사들이면서 시세를 끌어올려서 그래. 조만간 여기 주택 한 채가 10억 근처까지 올라갈 거야.”
“10억이요?”
이번엔 앞전과 다른 의미로 놀랐다.
“그렇다네. 그러니 살만하지 않은가?”
장현은 촌장의 말에 속으로 코웃음 쳤다.
알고 보니 자신을 호구 잡으려 하지 않는가.
3억은커녕 5천만 포인트를 준다고 해도 살 생각은 없었다.
“지금 저를 호구 잡으려 하시는 건가요. 내가 우습게 보여요?”
장현이 싸늘하게 말했다.
“내가 그럴 리가 있겠는가. 어찌 영지의 실질적인 주인인 장현 그대를 우습게보고 호구 잡는 일을 하겠나.”
하긴 그것도 그렇다.
호구 잡혔다는 것을 알게 된 실세가 앙심을 품는다면, 앞으로 크로크마을의 재개발 추진에 상당히 어려움이 생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안젤라 소성주가 설령 지시를 했다고 하더라도 여러 가지 제재를 가할 수 있겠지.
예를 들어 저렇게 시세차익을 노렸다면 시세차익을 환수한다거나 세금을 부과하도록 건의하는 정도는 장현이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럼 말해봐요.”
“여긴 정말이지 입지가 좋아. 입지만 본다면 헬릭스 성 내에서 최고 중에 하나란 말이야. 성 입구에서도 가깝지, 성주성에서도 가깝지. 물론 최근 무섭게 개발되고 있는 플레이어들의 영지가 새로 떠오르는 입지지만 여기는 전통적인 부촌이란 말일세. 그건 인근 신축지역이 가격을 증명하고 있네.”
크로크무슈의 말에 장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 얘기해보라는 의미였다.
“그럼 이 허름한 주택을 허물고 여기에 신축 주택이 지어진다면 그 가격은 어떻게 되겠나?”
“허름한 주택을 허물고 신축 주택을 그냥 새로 준다고?”
“허허, 물론 그냥 주는 건 아니지.”
“그럼 그렇지. 소성주가 호구도 아니고 그냥 새 집을 내어줄까?”
장현이 역시나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네. 분담금을 내야 하겠지.”
“분담금?”
“재개발조합원이 가진 물건으로 조합원 분양권을 얻기 위해 추가로 지불해야하는 포인트가 분담금이라네. 그리고 자네가 재개발 물건을 가진 주민에게 구입하기 위해 지불해야하는 금액은 프리미엄이라 하고 말이지.”
“그럼 3억이라고 한 주택가격에는 프리미엄이 포함된 거란 말인가요?”
“음, 그렇지.”
“지금 시세는 감정평가액에 프리미엄이 붙은 것일세. 다만 아직 우리는 추진위 단계이고 조합인가가 아직 안 난 만큼 감정평가액도 나오지 않은 단계지.”
장현은 이제 크로크무슈의 말을 이해했다.
중요한건 분담금이다. 분담금이 얼마인지에 따라서 사볼 만한 것이다.
“그렇군요. 그래서 분담금을 얼마나 내야하는 건가요?”
“그 또한 아직은 모르네. 조합원 외에 몇 세대가 더 들어오느냐에 따라 분담금이 차이가 날 테니 말이야.”
“세대수에 따라 분담금이 차이가 난다는 말은, 그들이 조합원 분담금을 대신 내준다는 말이군요.”
“그렇지, 이제 이해하는구먼. 일반분양 세대수가 많은 만큼 우리 조합원이 내야할 분담금은 적어지는 거지. 그래서 자네한테 여기 주택을 사라고 권유한 거야.”
“흐음. 무슨 말인지 이제 알겠습니다. 어차피 재난민들이 많이 들어올 테니 일반분양 세대수도 늘어날 테고 거의 거저로 새집을 받을 수도 있겠군요.”
“완전 거저는 아니겠지만 거저나 다름없겠지.”
“그리고 제가 여기 주택을 가지게 되면 일반분양 세대수를 늘리도록 힘도 좀 써보란 말이고요.”
장현이 씨익 웃으며 말하자 크로크무슈 촌장은 흠칫했다.
그는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자네한테도 손해 보는 일은 아닐 것일세.”
“그렇겠죠. 좋습니다. 그럼 매물들이 뭐가 있나 확인 좀 해봐야겠군요.”
“자네에게 지금 매물들 정보를 보냈네.”
잠시 후 장현에게 시스템을 통해 파일이 전해졌다. 파일에는 각 매물들의 주소와 매물 호가와 실거래 시세가 함께 있었다.
“뭐가 많군요. 일단 이건 돌아가서 검토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든지. 늦으면 매물이 없어질지도 몰라. 자네에게 정보를 줬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자들이 사겠다는데 거래를 하지 말라고 막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이야.”
“그야 물론이죠.”
사실 장현은 지금 포인트를 벌고자 벌여놓은 일들이 너무 많았기에, 이 정도 재개발 투자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다만 그 역시 대한민국에 살 때 부동산 시장이 얼마나 뜨거웠고, 그에 따라 정부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기도 할 정도였다는 것은 알고 있다.
훗날 고향으로 돌아가게 될 때.
그때는 이런 걸 알아두면 내 집 마련을 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지도 몰랐다.
‘훗. 마계에 있으면서 대한민국에서의 내 집 마련을 고민하다니.’
스스로 생각해도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그만큼 내 집 마련에 대한 한국사람들의 열망은 컸다.
‘안젤라의 말에 따르면 머지않아 경기가 진행될 것이다. 그럼 사실 이런 투자는 의미가 없기도 하지만 경기에서 살아남고 마왕과의 최후의 전투에서 살아남는다면 의미가 있을 수도 있겠지.’
만약 마계에서 살아야 한다면 자신이 지낼 곳은 이곳 헬릭스 성일 테니까.
장현은 한 번 더 마을을 둘러보고 영지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대로 안젤라에게 결과를 보고하고 그는 관리자들을 불러 모았다.
장현은 크로크마을의 촌장에게 받은 데이터를 모두에게 나눠주었다.
“이 부분 검토해봐. 촌장이 주변 시세가 10억이라며 투자하길 권유하는데 난 잘 모르겠어. 여기를 재개발하면 분담금을 지불하는 조건으로 새 집을 살 수 있다네. 관심 있는 사람들은 한 번 봐봐.”
장현은 촌장에게 받은 매물 파일들을 일행들에게 전송하면서 들은 얘기를 전했다.
“지금 우리 중에는 이런 것에 관심가질 만한 사람이 없지. 다만, 영지민들 중에는 있을 수 있겠어. 그들에게 알려주는 건 의미가 있을 것 같아. 부동산 소유권을 인정한다고 했으니.”
김덕배가 매물 목록들을 보면서 말했다.
그 말에 일행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있는 이들은 영지의 주인이나 마찬가지인 관리자들이다.
김덕배가 말을 이었다.
“인류의 독립을 위해 마왕과의 전투에서 승리하는 게 우리 목적이지만. 그건 우리들의 목표지, 영지민들의 목표는 아니니까. 저들은 우리가 아는 정보가 없잖아. 경기나 마왕과의 최후의 전투가 끝난 후 이 곳으로 돌아왔을 때 저들에게 집 한 채씩 정도는 보상으로 해주고 싶어. 그러기 위해 다들 일하고 싸워왔으니 말이야.”
장현은 그런 김덕배를 보고 감탄했다.
김덕배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을 줄 몰랐던 것이다.
“알겠어. 영주님 뜻이 그러하다면 나 또한 찬성이야. 다른 사람들은?”
장현이 이나연, 이성훈, 최형석을 돌아보며 물었다.
“나도 찬성.”
“저 역시 찬성입니다.”
“저도 찬성입니다 형님.”
그들 모두 김덕배의 의견에 동의했다.
장현은 만족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나온 매물은 모두 사도록 하지. 부족한 자금은 소성주에게 얘기하도록 할게. 대신, 호구는 잡히면 안 되겠지?”
장현은 이 일을 맡아 줄 사람을 찾았다.
그때 이성훈이 무언가 떠오른 듯 한 마디 했다.
“그러고 보니 영지민 중에 대한민국에서 꽤나 재산을 많이 보유했던 사람이 있던 거 같았습니다. 그는 왕년에 건물이 수십 채였고 빌딩도 몇 채나 갖고 있었다 하더라고요.”
이성훈의 말에 장현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어서 그를 데려와.”
장현의 외침에 이성훈은 서둘러 밖을 나가더니 잠시 후 한 남자를 데려왔다.
그는 곡괭이를 들고 있는 50대 남자였다.
관리자들 앞에 선 그는 조금 당황한 표정이었다.
“저를 부르셨다고요. 무슨 일이신지요?”
장현은 남자의 물음에 답하지 않고, 그를 스윽 훑어보더니 이성훈을 쳐다보았다.
이 남자가 맞냐는 의문이 담긴 시선이었다.
이성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장현이 그 남자에게 물었다.
“별 건 아니고 궁금한 게 있어서 불렀습니다. 부동산 투자에 대해서 잘 아신다고 들었습니다. 맞습니까?”
남자는 장현의 질문에 긴장이 조금 줄어들었는지 표정이 다소 편안해졌다.
“네, 저는 대한민국에서 부동산전문 투자자였습니다. 부동산 투자하는 게 직업이라고 하면 이상하게 들릴 수 있으나, 법인까지 내고 부동산업을 했으니 어느 정도는 안다고 할 수 있겠죠.”
그 말에 주위의 시선이 달라졌다.
이나연과 이성훈은 부러움이 담긴 시선이었고, 최형석은 싸늘한 시선으로 그를 보았다.
최형석은 대한민국에서 힘들게 몸으로 싸우면서 돈을 벌었다. 그리고 조직에서 승진하면서 주점을 하나 맡게 되고 영업장을 관리하면서 오랜 시간 후에 조직의 보스가 되었다.
그 자신은 어렵게 돈을 벌었건만 저 남자는 편하게 부동산 투자로 돈을 벌었다고 하니 배알이 뒤틀린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부동산 부자에 대해 가진 시각은 그들은 투기꾼이고, 그들로 인해 부동산 가격이 크게 뛰었다고 여겼다.
최형석 역시 그랬다.
그럼에도 그는 이내 표정이 풀렸다.
그 자신은 이곳에서 관리자이고 부동산 부자였던 자는 한낱 영지민으로, 자신의 앞에서 곡괭이나 들고 있다는 사실에 뭔가 묘한 쾌감을 느낀 것이다.
‘여기 마계도 꽤 나쁘진 않네.’
지구로 돌아가 봐야 또다시 조폭질이나 해야 할 텐데.
여기서는 자신이 상위층이라는 것을 실감했던 것이었다.
장현이 알았다면 기함할 생각이었지만 그는 최형석의 속내를 알 수 없었다.
부동산 투자자였다는 영지민에게로 시선이 향했다.
“이번에 우리 영지에서 헬릭스 성의 재개발 예정지에 투자를 할까 고민 중이라서 말입니다. 거기에 대한 회의를 하던 중 이성훈 주무관이 당신을 추천하더군요.”
남자는 눈이 번쩍 뜨였다. 이것이 기회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부동산 투자자였던 그가 마계에서 재능을 발휘할 기회는 거의 없었다. 이 기회를 잘만 잡는다면 어쩌면 다시 관리자급으로 신분이 상승할 지도 몰랐다.
“제게 자세히 알려주시겠습니까?”
남자는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장현에게 말했다.
그 태도에 장현은 남자에게서 신뢰를 느꼈다.
그는 남자에게 촌장에게 받은 재개발 매물에 대한 데이터 파일을 넘기고는 현재 진행 상황을 설명했다.
남자는 차분히 데이터를 훑었다.
“아직 추진위 상태이지만 인가가 났다는 말씀이군요.”
“그렇습니다. 곧 인가가 날 거고, 진행될 거라는 건 확실합니다.”
“그럼 무조건 잡아야 하는 건 맞습니다. 다만 현장을 임장하면서 두 눈으로 확인해보고 싶습니다. 입지를 비롯해 주위 신축지라는 곳도 말입니다. 사실 그 뿐만 아니라 그 외 세금 같은 것도 고려해야겠지만 그 부분은 장현님께서 알아서 하시겠죠.”
“임장이 뭐지?”
장현이 생소한 단어에 의아한 듯 물었다.
남자는 자신에겐 익숙한 단어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그렇지 않다는 걸 깜빡 잊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임장이라 하면 현장을 돌아보면서 차근차근 입지확인이라든지 시세조사라든지 하는 것을 말합니다. 지도로만 보거나 남의 말만 듣고는 자세히 알 수 없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반드시 두 발로 직접 돌아다니면서 눈에 현장을 담는 게 제 투자 철학입니다.”
“그렇군. 확실히 얘기하는 걸 들어보니 부동산 전문가 같아. 그럼 우리 중에 임장을 같이 갈 사람이 있어야겠는데.”
장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최형석이 먼저 나섰다.
“형님, 제가 요즘 할 일이 없어 따분했는데 저 친구 데리고 크로크마을 재개발 좀 맡으면 안 되겠습니까?”
“넌 이나연과 훈련을 해야 하지 않나?”
최형석이 자발적으로 나서자 장현은 의아한 듯 물었다.
“이제 사령술 레벨이 올라서 언데드들에게 명령을 내려놓으면 굳이 제가 옆에 있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알아서들 움직입니다.”
“뭐, 그렇다면 좋다. 네가 맡도록 해. 투자 말고도 그 마을의 재개발에 관한 사항까지 최형석이 다 맡도록 해. 내가 거기에 계속 붙들려 있을 시간이 없어.”
그렇잖아도 장현은 이 일을 최형석에게 맡길 생각이었다.
그 외에는 다들 맡은 일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장현 역시 마찬가지다.
안젤라에게 곧 경기가 재개될 거라는 얘기를 들은 이상, 현재 진행되는 일들이 알아서도 잘 진행될 수 있도록 정리를 해놔야 했다.
그렇게 크로크마을의 재개발은 최형석이 담당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