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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장이 회귀해서 만능캐되다-129화 (129/211)
  • 129화. 다시 헬릭스 성으로 (15)

    장현의 요청을 들은 안젤라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말했다.

    “시멘트는 레미콘 업체한테 같이 요청해야 하는데 재고가 있는지부터 확인해야겠군. 알겠어. 혹시 말이야, 레미콘을 직접 만들 수 있겠어? 레미콘은 시멘트에 자갈 등을 섞어서 만드는 것인데. 알고 있지?”

    “당연히 알고 있습니다. 코로나로 운송에 어려움이 있을 테니 최대한 직접 레미콘을 생산해보려 합니다. 그러니 일단 시멘트라도 구해주시면 만들어보겠습니다.”

    장현은 자신의 연금술이면 충분히 레미콘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영지에 흔하게 널려있는 자갈들과 하천에서 구할 수 있는 모래, 흙, 물 등을 섞어 연금술을 펼친다면 어렵지 않게 레미콘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특별히 속성을 바꿀 필요도 없는 것이라 난이도는 아주 쉬운 축에 속할 것이라 생각했다.

    “좋아. 그럼 시멘트는 내가 구해볼 테니까 넌 레미콘 회반죽 공장을 영지 한 쪽에 지어봐. 지네차 중에서 한두 대를 뽑아서 레미콘 타설용으로 개조도 하게 해주지. 너라면 할 수 있겠지?”

    “지네차가 여유분이 있습니까?”

    “현재차라고 지네차 생산하는 업체가 있어. 거기 대표가 아버지와 친분이 있으셔. 거기 후계자가 좀 꺼림칙한 놈이라 나는 별로 가까이 하지 않았는데, 영지의 발전을 위해서는 할 수 없지. 내가 연락 해놓을 테니 지금 당장 가봐.”

    “꺼림칙한 놈이요?”

    “그래. 어릴 때부터 나랑 결혼하겠다고 혼자 온 마계에 떠들어 댔거든. 창피해서 말이야. 문제는 아버지도 싫지 않은 눈치셔서 말이지. 자칫하다 강제로 결혼할까봐 피하고 있었어. 제시카가 내게 경쟁의식을 느끼는 것도 그놈 때문이야. 여튼, 뭐 그런 녀석이 있는데 네가 타고 온 자율주행 지네차도 그 녀석이 개발해서 만든 거야. 재주는 확실히 있는 녀석이니 널 보면 가만 안 둘지도 모르겠다.”

    “가만 안 둔다 하시면, 어떻게 한다는 말씀인가요?”

    “뭐 겪어보면 알겠지. 널 위해서 해주는 말인데 네 능력을 숨기는 게 좋을 거야.”

    “주의하도록 하지요.”

    “그럼 오늘 수련을 시작해볼까?”

    안젤라는 할 얘기가 끝나자 파자마 차림으로 바닥에 앉으며 말했다.

    “이 수련도 얼마 안 남았군요.”

    “응?”

    장현의 말에 안젤라가 의문이 담긴 눈빛으로 물었다.

    “곧 경기가 재개되면 전 영지를 떠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 그렇군.”

    장현의 말에 안젤라는 의미 모를 탄성을 지르더니 가만히 장현을 쳐다보았다.

    장현은 그녀의 얼굴을 마주보며 양손을 내밀었다.

    안젤라는 그의 손에 자신의 손을 맞대고 음양합일신공을 운기하기 시작했다.

    손을 맞대고 운기하는 두 남녀는 조금 전 나눈 대화로 각자 상념에 빠져들었다.

    장현은 안젤라와 운기행공을 마친 후 그 길로 바로 현재차로 향했다.

    현재차는 마계에서 지네차를 생산하는 회사 중 대공 라인의 마족이 운영하는 회사다.

    전통적인 지네차 제조라인에 자율주행 기능을 탑재하는 연구센터를 기획하고 추진하는데 몰두하고 있는 마족이 있었다.

    네시스.

    그는 황금색 원숭이의 외형을 가진 마족으로, 키는 2미터 정도에 온몸이 근육으로 가득했다.

    자연스럽게 꼬리가 살랑살랑거리는 가운데, 진지한 표정으로 자율주행차에 관한 연구개발 보고서를 읽고 있었다.

    그는 대표이자 자신의 아버지인 제넨의 뒤를 이어 대표에 오를 것으로 예상되는 후계자였다.

    오래전 대공 측 귀족들의 모임에서 안젤라를 보고 사랑에 빠져 열성을 다해 쫓아다녔지만, 안젤라에게 그는 그저 재미없고 매력 없는 남자에 불과했다.

    수많은 고위 귀족가문의 여식들이 그에게 매력을 느껴서 달라붙고 있지만 정작 안젤라는 그를 멀리해 속이 타는 네시스였다.

    그런 그에게 오늘 안젤라로부터 먼저 연락이 왔다.

    “안녕하세요, 네시스. 오랜만이군요.”

    “오, 안젤라. 어쩐 일입니까? 이거 믿을 수가 없군요. 당신이 내게 먼저 연락을 하는 날이 오다니. 드디어 내 진심을 알아주신 건가요? 하하하.”

    “네시스, 그런 얘길 할 거라면 지금 당장 끊어버릴 거예요.”

    “노노, 알겠습니다. 안젤라. 입을 다물고 있겠습니다.”

    “흥, 당신이 입을 다문다니 믿을 수가 없어요.”

    “이거, 이거. 역시 안젤라 그대는 나에 대해 너무 많은걸 알고 있군요. 그만큼 관심이 많다는 거겠죠. 나 네시스는 그대의 관심에 무척 기쁘답니다.”

    자꾸 재미없고 쓸데없는 소리를 늘어놓았다. 안젤라는 화를 꾹꾹 참으며 말했다.

    “됐어요. 내가 오늘 연락한 건 부탁이 있어서예요.”

    “부탁이라. 그대의 부탁이라면 내가 최선을 다해보도록 하지요. 대신 밥 정도는 사실 거라고 기대해도 되겠지요?”

    “알겠어요. 밥 정도야.”

    안젤라의 대답에 만족스런 미소를 지은 네시스의 꼬리가 저절로 파닥파닥거렸다.

    안젤라가 입을 열었다.

    “내 부탁은 우리 영지의 인간 플레이어를 당신에게 보낼 테니, 그에게 지네차를 하나 개조해줬으면 하는 거예요.”

    “지네차를 개조해달라니. 어떻게 말이오? 혹시 자율주행차에 뭔가 개선할 부분이라도 보였던 겁니까?”

    네시스는 헬릭스 성과 드림히트 성에 납품한 기억을 떠올리고는 눈을 살짝 치켜뜨며 물었다.

    “자율주행차 얘기가 아니에요. 레미콘 지네차를 만들어줬으면 해요.”

    “레미콘 지네차? 내가 알고 있는 그 레미콘이 맞는 건가요?”

    네시스는 이해가 안 가는지 고개를 갸웃했다.

    “네시스 당신이 알고 있는 레미콘이 시멘트와 자갈, 모래, 물 등을 섞어서 회반죽을 하는 것이라면 맞을 거예요.”

    “혹시 그게 왜 필요한지 물어봐도 되나요?”

    “뭐, 안 될 것도 없죠.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지금 많은 성들이 확진자들에게 공격받고 있는 것은 알죠?”

    “당연히 알죠. 지금 우리 회사에서도 그 때문에 외부 출입을 엄격히 제안하고 있어요. 만약 안젤라 당신의 부탁이 아니었다면 인간 플레이어가 우리 회사에 들어오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알겠어요. 고마워요. 당신에게 성대한 식사로 보답하도록 하죠.”

    “기억하겠습니다. 약속은 지키실 거라 믿어요. 그런데 코로나 바이러스로 많은 성이 확진자들에게 공격받는 것과 레미콘이 무슨 관계가 있는 거죠? 아하, 혹시 재난민들을 받아들이라는 마계재난안전센터의 요청 때문인가요?”

    “맞아요. 공문이 내려왔어요. 그대는 성을 다스리지는 않고 회사만 경영하고 있으니 그런 공문이 내려오진 않았겠죠. 확진자들에게 공격받은 성주들과 그에 딸린 영지민들을 재난민으로 규정하니 귀순을 받아들이라고 하더군요.”

    안젤라는 짜증이 난 듯 말했다.

    네시스는 미간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어쩔 수 없겠지만 위험해 보이는군요. 재난민들을 받아들였다가 그 중에 확진자가 있다면 어떻게 하시려고요. 한 번의 실수로 순식간에 영지가 확진자들로 가득 찰 수 있는데 말입니다. 확진자들이 이성을 잃고 몬스터로 변한다는 건 아실 테구요. 그렇게 되면 헬릭스 성도 재난민들과 똑같은 상황에 처할 수 있어요.”

    네시스의 우려는 안젤라 또한 인지하고 있는 부분이었다.

    “그에 대한 대비는 우리도 하고 있어요. 재난민을 받는 대신 진단키트와 보호막 형성 마스크를 내준다니 그것으로 방역에 힘 써보는 수밖에요. 어쨌든 마왕과 대공의 승인이 있었으니 일단 따를 수밖에 없어요.”

    “하긴 그렇군요. 부디 안젤라 그대는 건강하길 빌어요. 그대가 혹시 확진이라도 될까 걱정이 되는군요.”

    “재수 없는 소리하지 말아요, 네시스.”

    안젤라가 화난 어조로 말했다.

    “미안합니다. 안젤라.”

    “여튼 레미콘은 재난민들의 거주지를 짓기 위해서 필요해요. 지네차에 레미콘 회반죽기를 설치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안젤라의 말에 네시스는 빙그레 웃었다.

    “그 점은 걱정 안 해도 됩니다. 우리 현재차는 건설특수차량도 제작하기 때문에 레미콘 지네차도 있습니다. 거기에 최근 연구한 인공지능도 탑재해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고마워요. 네시스.”

    안젤라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로써 긴급한 문제는 해결되었다.

    이만 통화를 끊으려고 할 때 네시스가 물었다.

    “안젤라. 그 얘기 들었나요?”

    “무슨 얘기요?”

    “이제 곧 플레이어들 경기가 재개될 텐데, 우연찮게 경기 내용을 미리 들었어요. 플레이어들로 하여금 확진자들을 처리하게 할 거라고 하더군요.”

    안젤라도 경기 내용은 처음 들었다. 재개가 될 거라고는 알고 있었지만, 확진자들을 처리하는 경기라니.

    안젤라의 미간이 잔뜩 좁혀졌다.

    “그 얘기는 어디서 들었죠?”

    “이번에 자율주행 지네차를 발주한 마족이 경기운영팀에 근무하고 있는데 얘기를 해주더라고요.”

    “그런데 플레이어들의 능력으로 확진자들을 상대할 수 있을까요?”

    “확진자들이 정상이었다면 불가능했겠죠. 그런데 아시겠지만 확진이 되면 마나 포인트가 모두 사라져요. 거기다가 이성도 사라지고 몬스터나 다름없어지죠. 그렇다면 인간 플레이어들에게도 승산이 있어요. 그들은 여전히 마나 포인트와 스킬 그리고 아이템이 있으니까요.”

    안젤라는 네시스의 말을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장현이 확진자들과 경기한다고?’

    심장이 쿵쿵 뛰고 입술이 절로 질끈 깨물어졌다.

    통화는 그렇게 종료되었다.

    장현이 현재차에 도착한 것은 통화가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여긴가.’

    장현은 지네차에서 내렸다.

    눈앞에 지네차와 비슷한 모양의 대형건물이 있었다.

    문득 어디서 본 듯한 로고가 건물 입구 한가운데에 박혀있었다.

    그는 자신이 타고 온 지네차를 돌아보았다.

    지네차 전면의 머리에 번개 맞은 흔적이 본사 건물에 있는 로고와 비슷했다.

    ‘브랜드 로고를 보니 여기가 맞군.’

    그때 경비로 보이는 사자머리의 마족 경비병이 다가왔다.

    “연락을 받았습니다. 장현 플레이어님 맞으십니까?”

    “맞습니다.”

    “절 따라오시죠. 네시스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네시스님은 직책이 어떻게 되시죠? 회사의 대표님이신가요?”

    장현의 질문에 마족이 황당하다는 듯 그를 쳐다보다가 웃으면서 대답했다.

    “대표님은 제넨님이시고, 네시스님은 대표님의 후계자이십니다. 현재 직책은 전무이사십니다.”

    “그렇군. 현재차의 소성주라고 할 수 있겠군요.”

    “좀 다르지만 비슷하다고 할 수 있겠죠. 결국 그 직책을 이어받는다는 점은 같으니까요.”

    성주는 지역의 통치권을 가진 자이지만 귀족이며 자녀에게 가문을 물려줄 수 있었다.

    소성주가 마왕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마왕은 작위를 인정해준다.

    그 정도 절차를 끝내고나면 가문의 승계자이며 성주로 등극한다.

    회사 또한 비슷하다.

    특별한 하자가 없는 한 회사의 지분을 가진 주주들의 주주총회에서 과반수의 투표로 결정되지만, 가장 많은 지분을 가진 자가 대표 가문이다.

    자녀에게 승계하거나 증여할 때 세금을 내기도 하지만 지분을 뺏기지는 않는다.

    물론 증여받은 지분을 팔게 되서 수익이 생기면 그 일부는 세금으로 뺏기지만, 지분이 곧 가문의 힘의 근원이기에 지분만은 결코 뺏기지 않는다.

    그것이 현재차의 대표가 지금은 제넨이지만 나중에는 네시스가 승계할 거라고 예상할 수 있는 대목이다.

    잠시 후 장현은 원숭이의 머리와 꼬리를 가진 마족을 만났다.

    ‘원숭이가 사람으로 변한다면 이런 모습일까.’

    그는 본래는 원숭이였을 거 같은 인간형 마족을 보며 생각했다.

    “초면에 너무 빤히 쳐다보는군.”

    네시스의 말에 장현은 문득 정신을 차리고 사과했다.

    “아닙니다. 그저…….”

    막상 변명하려니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대답을 했다.

    “우리 인간의 모습과 비슷한 모습에 저도 모르게 쳐다봤습니다.”

    “흥, 외모를 바꾸는 건 고위 마족이라면 누구나 가능하다. 내가 이 모습을 한 건 너희 소성주 안젤라 때문이지. 그녀의 마음을 얻기 위해 그녀와 비슷한 모습으로 변신한 것이다.”

    “그렇군요.”

    장현은 그제야 경계심이 생겼다.

    네시스라는 마족을 보았을 때 느낀 낯선 이질감, 그리고 불쾌한 느낌.

    그것은 네시스의 외모 때문도 아니었고, 고위 마족이라는 위치 때문도 아니었다.

    그것은 그가 장현이 찜해놓은 안젤라에게 이성의 감정을 품은 것 때문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표정이 굳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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