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화. 다시 헬릭스 성으로 (14)
장현은 안젤라의 물음에 대답했다.
“인수 주체인 워즈웍 스튜디오를 살펴보니 경쟁회사들과 다른 방식을 선호하더군요. 경쟁사중 하나인 용용 스튜디오 같은 경우 스타 작가들을 포섭해서 인지도를 바탕으로 콘텐츠를 제작하는 방식이라면, 워즈웍 스튜디오 같은 경우는 다수의 지적 재산권을 사들여서 그 중에 히트 친 작품을 영상 콘텐츠로 제작하려고 하는 것 같았습니다. 실제로 지금 영상 콘텐츠 제작이 확정된 ‘마왕의 막내아들’만 해도 웹소설 플랫폼에서 연재 당시 1위를 했던 작품이죠. 스타 작가를 확보하기보다 스타 작품이 탄생할 수 있는 웹툰, 웹소설 회사를 인수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군. ‘마왕의 막내아들’이라면 나도 들어본 적 있어. 마왕의 호위기사가 충성을 맹세한 마왕의 아들에게 버림받고 죽은 뒤, 마왕의 막내아들로 환생해서 복수한다는 얘기였지.”
“안젤라님께서도 알고 계셨군요. 그런 이유로 난장이 스튜디오를 탑픽으로 뽑은 것입니다. 언제든 ‘마왕의 막내아들’ 같은 작품이 탄생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고 보니 최근에는 ‘1인칭 작가시점’이라는 작품과 ‘마계귀환’이 최고 화제더군요. 그런 작품이 끊임없이 나타날 수 있는 환경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단 말이지. 난쟁이 스튜디오를 인수하면 또 웹소설이나 웹툰에서 1위를 하는 작품들을 계속해서 영상 콘텐츠로 만들어 마튜브나 마플릭스에 공급할 수 있다는 거지?”
“네. 그렇습니다.”
“좋아. 그렇다면 인수 자금만 적당하다면 살만 하겠어. 혹시 이 부분에 대한 것도 알아봤어?”
“이익대비 가격 지표를 기준으로 책정했을 때 매물 가격이 최근 많이 올랐습니다. 저렴한 가격이라고는 보기 힘듭니다. 다만 앞으로의 성장성을 보면 인수할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장현의 말에 안젤라가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이익대비 가격 지표? 그건 어디서 나온 개념이지?”
“마계에 오기 전 지구에서 배웠던 개념입니다.”
“그 지표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궁금한데. 과정을 설명해봐.”
안젤라의 말에 장현은 침을 꿀꺽 삼켰다.
아는 것을 떠올려 적용하는 것도 쉽지는 않지만 할 수는 있었다. 그런데 설명하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저는 사업체들의 매물 가격과 이 사업체들의 1년간 영업이익을 기준으로 잡았습니다.”
“영업이익이라 하면 사업으로 벌어들인 이익만 말하는 거지?”
“네, 순이익으로 하면 사업 외적인 요소들이 반영될 수 있어서 제거했습니다.”
“흠, 그렇군. 계속 얘기해봐.”
안젤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장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콘텐츠 회사들의 동종 업종의 평균 가격대비 이익 수치는 28배였습니다. 연 이익의 28배에 해당하는 가격으로 거래되고 있었습니다. 물론 평균이니만큼 더 비싼 것도 있고 싼 것도 있죠. 난장이 스튜디오는 비싼 경우에 해당했습니다. 대략 100배 정도가 나오더군요.”
“얘는 왜 그렇게 비싼 거지? 혹시 문제 있는 거 아니야?”
“그건 아닙니다. 미래가치가 반영되어서 벌어진 현상입니다.”
“대충 무슨 말인지 알겠다. 이익대비가격이라는 개념. 상당히 쓸 만한 거 같군.”
안젤라의 중얼거림을 들으며 장현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다행히 설명은 그럭저럭 잘한 듯싶었다.
안젤라는 장현의 말을 듣고 난 이후로 무언가 골똘히 생각에 잠겨있었다.
장현은 그런 그녀를 방해하지 않았고, 잠시 후 안젤라가 입을 열었다.
“네 말을 듣고 나니 인수하려는 후보에 올리려다 만 게 하나 떠오르는데. 이건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해봐. 마계에 들어온 플레이어들에게 교육을 시키는 업체가 있어. 이번에 터진 코로나 바이러스만 아니면 벌써 각 영지마다 여기 직원들이 교육을 하러 들어갔을 거야. 물론 우리 헬릭스 성의 영지에도 교육시설이 설치될 예정이었지. 지금 내가 이 얘길 하는 이유는 이 회사 이름이 ‘드림러닝’인데 얘네들이 코로나가 퍼져서 지연되다가 교육 사업이 취소되니까 온라인교육으로 전환하기로 했거든. 현재는 플레이어들이 아닌 기존에 하던 마족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만 진행하고 있는데, 이들이 우리가 콘텐츠 회사를 인수하려한다는 소문을 들었는지 사업계획서를 제출했어.”
“교육회사인데 어떻게 콘텐츠 사업에 관한 사업계획서를 냈다는 거죠?”
“말로 하긴 번거로우니 직접 눈으로 볼 수 있게 해주지. 지금 내가 보내는 링크를 열어봐. 거기에 사업계획서와 영상 샘플이 있어.”
안젤라는 말과 함께 장현의 시스템에 접속 링크를 보냈다.
장현이 링크를 열자 눈앞에 한 남자 인큐버스가 나타났다.
“안녕하십니까. 귀족 여러분. 저는 드림러닝의 대표 씨엠이라고 합니다. 저희 드림러닝은 기존의 온, 오프라인에서 벗어난 스마트 에듀산업 개발에 주력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기존의 교육과 차별화 된 것으로서……(중략)……지금의 코로나 바이러스가 언제 종식될지 알 수 없는 상황에 훌륭한 대체수단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마계의 다양한 지식과 문화 예법을 플레이어들에게 조기부터 교육할 수 있는 시스템이며, 저희 드림러닝의 스마트 러닝 프로그램을 이용한다면 플레이어들이 진행하는 경기에 교육을 접목시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귀족 여러분들의 열정에 저희 드림러닝은 충족시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다음은 저희 드림러닝에서 개발한 콘텐츠들입니다. 현재 플레이어들은 기본적인 시스템 상태창조차 제대로 이용하고 있지 못하고 있습니다. 신규로 마계에 오는 플레이어들에게 기초부터 고급단계까지 지식을 전수하고 배운 지식을 활용 및 융합하여 창의력을 높일 수 있게 도와줍니다. 우리 드림러닝에서 제작한 영상 콘텐츠 ‘출동! 마계 영지 수호대!’가 곧 마튜브, 마플릭스, 파인애플 TV 등 다양한 OTT에 진출할 예정입니다.”
장현은 첨부된 영상 콘텐츠 ‘출동! 마계 영지 수호대!’를 재생시켰다.
재생버튼을 누름과 동시에 각 영지의 플레이어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튜토리얼에서부터 본경기까지, 또 다양한 미션에서 시스템과 상태창을 활용하는 모습이 나왔다.
어떤 자는 상태창과 스킬을 잘 활용하고, 어떤 자는 사용해보지도 못하고 죽었다.
이어 드림러닝의 직원으로 보이는 서큐버스 강사가 나와서 이 장면을 설명해준다.
“이때 이 플레이어가 상태창의 탐색 스킬과 메시지 그룹 발송 기능을 알았다면, 동료들에게 현재 상황의 위험을 알려 도움을 요청할 수 있었겠죠. 다음은 시스템 상태창을 잘 활용한 예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이어 강사가 보여준 자료에 뜬 영상은 장현의 동료 이나연이 나오는 영상이었다.
“이 플레이어가 구사하는 스킬은 저희 드림러닝에서 개발한 디텍터 직업 스킬 ‘호신술 익히기’입니다. 이 영상에서 볼 수 있듯 사용자는 가상의 지도강사의 도움으로 호신술 익히기라는 미션을 성공적으로 달성합니다. 마계 정부의 경기 제작에 참여하며 데모버전이었던 스마트 러닝 프로그램 개발을 완료했습니다. 이 교육 프로그램은 귀족 여러분의 영지민들의 능력치를 한껏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영상은 거기에서 종료되었다.
“어떤 거 같아?”
안젤라가 물었다.
장현은 잠시 아무 말을 하지 못했다.
한동안 생각에 잠겨있던 그가 고개를 들었다.
그는 조금 전 보았던 드림러닝의 성장성에 주목했다.
스마트 러닝 프로그램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아니어도 성공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다.
능력치가 떨어지는 영지민이라도 빠르게 능력을 습득할 수 있을 것이다.
장현은 이 스마트 러닝 프로그램이 자신의 영지에 도입되었을 경우를 상상했다.
곧 이주해올 재난민들에게도 영지의 규칙을 교육하고 작업 현장에 투입시켜야 했다.
그 뿐 아니다. 영지개발이 어느 정도 이루어지면 중지된 경기가 재개될 것에 대한 대비도 해야 했다.
이나연이 훈련시키던 경비병들에게도 다양한 상황에 대비한 훈련이 가능할 수 있다.
그는 곧 결론 내렸다.
이 사업은 무조건 잡아야하는 거라고.
“인수할 수 있다면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사업체는 포인트를 잘 벌 수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우리 영지의 경쟁력을 전체적으로 끌어올릴 것입니다. 마도공학 박람회에서 제가 우승을 하긴 했지만 제넥스 성의 아르헨과 큰 차이가 나지 않았습니다. 개인 능력으로는 아르헨이 저보다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제가 우승할 수 있었던 이유는 동료들의 지원입니다. 제 동료들인 관리자들의 역량은 제넥스 성보다 낫습니다. 다음 경기가 어떤 식으로 진행될지는 모르겠지만 그 경기는 저만이 아닌 관리자 또는 전체 영지민들이 참여하는 경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영지의 전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스마트 러닝 시스템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제가 이나연의 옆에서 그녀가 호신술 익히기의 도움을 받아 급격히 실력이 향상되는 것을 봤기 때문에 확신할 수 있습니다. 김덕배 영주는 이나연에게 배우고 있지만 그가 스마트러닝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면 굳이 이나연에게 개인교습 형태로 훈련받을 필요가 없겠죠.”
장현은 김덕배가 들었다면 크게 화낼 소리를 했다.
그의 확신에 가득 찬 말에 안젤라는 고민했다.
워즈웍 스튜디오 사업을 진행하는 것과 함께 드림러닝까지 인수하기는 자본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어렵군. 이 문제는 외할아버지와 의논을 해봐야겠구나. 두 개 회사가 다 필요하다면 조인트벤처를 만들어서라도 진행하겠지.”
“네? 조인트벤처라고 하셨습니까?”
장현은 안젤라의 대답에서 들어보지 못한 단어를 듣고 반문했다.
“단독으로 하기 곤란할 때, 함께 동업의 방식으로 진행할 때 사용하는 거야. 보통 외부 자금을 끌어올 때 쓰는 거거든. 그보다 한 가지 알려줄 게 있다. 재난민들의 이주가 끝나면 곧장 다음 경기가 열릴 것 같아. 자세한 얘기는 나도 알 수 없지만 준비는 해두는 게 좋겠지.”
“벌써 말입니까?”
장현은 굳은 표정으로 대답을 들었다.
예상보다 빠르다. 플레이어 런 킹덤 경기가 벌어지는 것은 1회차에서는 지금 시점보다 훨씬 미래였다.
영지 개발까지는 시간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렇게 되면 서둘러야 했다.
장현은 문득 마왕에게 다시 욕이 나왔다.
코로나가 퍼진 이 시국에도 경기를 진행시키다니. 플레이어들은 감염되어 죽어도 좋다는 말인가.
속에서 가득 찬 불만이 입 밖으로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이들이 1회차에서도 경기를 재개했던 것은 마족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서 즐길 거리를 제공하기 위함이었다.
마왕과 대공을 비롯한 고위 마족들에게 향할 불만을 플레이어들의 경기를 보며 해소하길 바라는 거겠지.
이런 짓은 지구에서도 흔하게 벌어졌던 일이다.
“아참, 그리고 재개발 정비구역에 주택 공급하는 일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어?”
“이제 기초공사 중입니다. 지금 영지 내 임시주거시설 짓는 것과 재개발지역에 주택 짓는 작업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래, 혹시 필요한 게 있음 뭐든지 얘기해.”
안젤라의 말에 장현은 크록하가 요구한 내용을 떠올렸다.
“콘크리트 파일을 최근 자체생산해서 공급하고 있긴 한데 더 많이 필요합니다. 대량생산체제를 갖추기 전까지는 외부에서 구할 수 있다면 가능한 많이 구하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경기를 재개하게 되어 제가 갑자기 빠지게 되면 생산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을 것 같아서 그렇습니다. 그리고 다른 건자재들 또한 필요합니다.”
“흠, 콘크리트 파일이라. 그건 기초공사에 들어가는 것이지?”
“그렇습니다. 건설에서 착공 시 가장 먼저 시행하는 부분입니다. 토공사와 기초공사에 있어서 가장 필요한 자재가 콘크리트 파일입니다.”
“그럼 다른 건자재는 그 다음 단계에서 필요한 것이겠군. 다음 단계가 뭐지?”
“골조공사 단계입니다. 그때는 시멘트가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크록하 족장이 건설을 총괄하고 있는데 콘크리트 파일 다음으로 시멘트를 구해달라고 요청을 했었습니다. 기초공사가 끝나는 대로 골조공사를 진행해야하니 지금부터라도 찾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