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화. 다시 헬릭스 성으로 (10)
“음, 나쁘지 않은 생각이야. 아니, 무척 좋은 생각이야.”
김덕배가 고개를 끄덕이며 장현의 말에 동의했다.
“나도 좋은 거 같아. 그렇잖아도 요즘 다들 일만 하느라고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가 많이 쌓였을 거야. 축제를 통해서 스트레스도 풀고 단합도 하면 좋을 거 같다.”
그때 최형석이 슬며시 끼어들었다.
“형님, 혹시 그 축제에 제 언데드 병사들과 이나연이 훈련시킨 병사들 간에 모의 집단전을 벌이면 어떨까요?”
장현이 최형석의 말에 이나연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건 이나연한테 물어봐야 할 거 같은데.”
이나연은 잠시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모의 집단전은 좋은데, 병사들도 즐겨야하니 참가는 의무사항은 아니고. 원하는 희망자에 한해서만 하는 걸로 하도록 하면 괜찮을 거 같아?”
“좋아. 그 희망자 수만큼 언데드를 소환하면 되니까. 부디 강한 녀석들이 있었으면 좋겠어. 그래야 제대로 된 훈련이 될 테니.”
“걱정 마, 나도 참가할 테니. 설마 나로서도 부족하다는 건 아니겠지.”
“뭐, 이나연 정도면 충분하지.”
최형석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장현은 그들을 보며 흠칫했다.
‘이나연과 최형석 사이에 순간 불꽃이 튀긴 것 같은데.’
의욕을 불태우는 그들을 보며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김덕배가 말했다.
“나도 모의 집단전에 참가할 거예요. 그동안 나연 누나와 같이 훈련을 해온 만큼 빠질 수는 없죠.”
“좋아, 좋아. 나도 기대 되는걸.”
최형석은 김덕배의 말에 웃으면서 그의 어깨를 탕탕 쳤다.
축제 행사와 모의전투는 그렇게 결정이 되었다.
장현은 김태석을 돌아보며 말했다.
“아슬란과 얘기했는데 김태석이 가공육 레시피를 알려줬다더군. 수고했어, 큰 역할을 했어. 태석이 덕분에 축산 클러스터가 제대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동안 태석이가 땅을 개간해서 농사도 지을 수 있었기에, 사료에 쓸 곡물들도 자체 생산할 수 있게 되었어. 그에 대한 보상은 마나 포인트로 지급해주마. 앞으로 축산 클러스터에서 나오는 모든 순이익에서 태석이 몫은 따로 떼어 지급할 수 있도록 하겠다. 세부적인 비율은 자세히 살펴보고 얘기해주도록 하마.”
“감사합니다. 형님. 저는 땅을 개간하면서 곡괭이로 일격필살기를 만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마음 수양도 되었고요. 다 형님께서 저를 이끌어 주신 덕입니다. 도움이 되었다니 기쁩니다. 가공육은 예전에 조폭 생활하기 전에 마장동에서 잠시 일하며 배웠었습니다.”
“그랬군. 앞으로 아슬란과 함께 축산 클러스터를 태석이가 맡아봐. 밑에 영지민들도 부려가면서 관리만 해도 될 거야.”
“감사합니다. 형님.”
김태석이 고개 숙여 인사했다.
장현은 다음 안건을 꺼냈다.
가장 반발이 클 부분이다.
“이제 다음 안으로 넘어가지. 조만간 외부에서 마족과 플레이어들이 우리 영지로 이주해 올 것 같다. 그들은 마계안전센터에서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재난민으로 지정된 자들이라고 하더군. 고위 귀족들인 성주들이 그들을 의무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나 봐. 그래서 소성주님이 내게 그들을 받아달라고 요청하셨어.”
장현의 말이 끝나자 일행들은 대번에 반발했다.
가장 먼저 이나연이 걱정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외부인이 바이러스를 가지고 들어왔다가 우리까지 확진되면 어떻게 하려고!”
이나연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항의했다.
“소성주의 말로는 진단키트를 사용해서 이상이 없는 자들만 받아들인다고 하더군. 물론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받아들이지 않을 거지만, 음성으로 나온 자들은 우리 영지에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거 같다. 대신 소성주에게 보상을 요구했다.”
보상이라는 말에 이나연의 화가 조금 사그라졌다.
모두들 어떤 보상일지 기대되는 듯 눈을 초롱초롱 뜬 채 장현을 쳐다보았다.
“일단 내가 요구한 것은, 그들을 우리 영지 안이 아닌 외부에 거주할 수 있게 해달라고 했어. 그래서 독 안개가 있던 영지 외부지역을 재개발하겠다고 하더군. 그리고 이건 내가 최근에 드림히트 성에서 의뢰받아 만든 아이템들이야.”
장현은 그들 앞에 블랙펑키에게 만들어 줄 아이템들을 내놓았다.
두 종류의 침대, 만티코어 인형, 스무 가지 종류의 네일 스티커, 후리스, 클럭 마사지기까지.
그것을 본 일행들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성훈을 제외하고는 다들 처음 본 것이었다.
이성훈 또한 후리스 외에는 본 적이 없었다.
“이게 의뢰받아 만든 아이템들이라고, 그래서 보상과는 무슨 상관이 있지?”
이나연이 만티코어 인형을 끌어안으며 물었다.
“영지 밖 재개발하는 토지에 이것들을 대량생산할 수 있도록 토지와 공장을 제공해달라고 했어. 재난민들이 그곳에서 일할 수 있도록 말이지.”
“그럼 독 안개가 있던 지역이 재개발되고 나면, 그들이 지낼 주거지도 생기고 일할 수 있는 공장도 생기는 거네.”
이나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확인하듯 말했다.
“맞아. 이건 우리 영지가 더욱 커지는 거야. 생산성도 커지고 말이지.”
“그래도 내가 알기로, 재개발이 빨리 진행되는 건 아니라고 알고 있는데. 그동안 그들이 지내야 될 장소는 필요하잖아. 그건 어떻게 할 거야?”
“그래서 그들이 임시로 우리 영지에 거주할 수 있게 하는 대신에 마나 포인트를 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어. 그리고 우리의 영지에 대한 소유권을 인정하고 이주해올 자들에게 매매와 임대 등의 거래를 할 수 있도록 허락해달라고도 요청했어.”
“그 정도면 나쁘지 않은 것 같아. 그런데 요청했다면 아직 대답은 못 들은 거네?”
“그래. 헬릭스 성주와 의논해보고 결과를 알려준다고 하더군.”
장현과 이나연의 대화를 듣고 있던 김덕배가 웃으면서 말했다.
“이거, 성주가 받아들이게 되면 우리 부동산 부자가 되는 거네? 정작 대한민국에서는 못 가져본 부동산을 마계에서 가지게 되다니.”
김덕배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쓴웃음을 지었다.
이어 서로의 얼굴을 보고는 피식 웃었다.
대한민국 사람치고 부동산에 애환이 없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튜토리얼에서 만났던 국회의원 아들이라든지 그런 소수 특권층과 부유층을 제외하고는, 집을 가진 자든 없는 자든 모두들 애환을 가지고 있었다.
집이 없는 자들은 내 집 한 채를 갖길 소망했었으며, 집이 있는 자들은 세금과 대출이자 때문에 전전 긍긍했던 기억이 있었다.
다주택자나 부동산 부자 같은 키워드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먼 얘기일 뿐이었다.
그런 아픔을 겪었던 기억들이 있었기에, 그 쓴웃음에 담긴 의미를 서로가 이해할 수 있었다.
물론 드워프 족장 포프, 크로커다일 족장 크록하, 리자드맨 족장 린에이지는 멀뚱멀뚱 보고만 있었다.
김덕배가 묘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럼 이제 우리가 진짜 이 땅의 주인이 되는 거구나.”
그의 얼굴에는 약간 흥분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장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셈이지. 이제 그들이 올 때를 대비해서 영지를 좀 더 계획적으로 개발할 필요가 있어. 재난민들이 지낼 임시 주거지도 새로 지어야 할 거야. 생활형 숙박시설이나 민간임대 형태로 진행해봐. 자세한 내용은 김덕배 네가 이성훈 주무관과 함께 의논해보고.”
“알겠어. 이성훈 주무관. 장현 말 들었지?”
“예. 알겠습니다.”
이성훈은 장현과 김덕배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일은 알아서 해. 사람이든 물자든 필요한 건 얘기하고.”
피난민들의 유입에 대비해 부동산 정책을 세울 것을 지시한 장현.
그는 다음으로 블랙펑키 아이템 생산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자, 여기 후리스, 네일 스티커, 이동식 침대 매트리스, 클럭 마사지기, 만티코어 인형. 앞으로 이 다섯 가지 아이템들을 우리가 대량생산할 거야. 여기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얘기 좀 해보자.”
“이건 독 안개 지역 재난민들한테 시킨다고 했지 않아?”
김덕배가 반문했다.
“그전에 먼저 소량 생산하면서 시장 반응을 좀 살펴봐야지. 그리고 가능하면 우리 영지민들에게도 배포하며 개선점도 살펴보도록 하고. 나중에 마왕군과 전투를 치르게 되면 다 필요할거야.”
“뭐? 마왕군과 전투하는데 네일 스티커와 만티코어 인형이 왜 필요하냐? 크큭.”
“이 자식아, 그거 말고 후리스랑 이동식 침대매트리스 같은 건 전투복이랑 야영할 때 도움될 거 아니야. 클럭 마사지기도 훈련하고 나서 회복할 때 꽤 도움될 거야.”
김덕배의 놀리는 듯한 말에 장현은 울컥해서 소리쳤다.
“알았어. 장난이었어. 그런데 진짜 네일 스티커나 만티코어 인형, 이런 건 누가 사는 거야?”
“누구긴 누구야. 마족 소비자들이지.”
“저거 만들어서 팔면 다 우리 수익이 되는 거야? 아니면 뭐 드림히트 성의 몽슈 백작과 수익을 나누는 거야?”
김덕배가 다시 한번 물었다.
“몽슈 백작이 그냥 우리 좋으라고 아이템 제작 의뢰하고 대량생산하게 했겠어?”
장현의 대답에는 가시가 돋쳐 있었다.
조금 전 김덕배가 장난친 것에 대한 소심한 복수였다.
“또 모르지. 안젤라 소성주가 몽슈 백작의 외손녀인 만큼, 성에 도움 되라고 그냥 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 거지.”
확실히 대량생산은 안젤라가 장현에게 제안한 것이지, 몽슈 백작이 허락해준 것은 아니었다.
분명 둘 사이에 뭔가 얘기가 오갔을 것이다.
그러니 안젤라가 드림 브랜드 수수료 30프로를 제외한 나머지는 자신들에게 준다는 말을 했을 것이다.
장현은 김덕배의 말에 진지하게 대답했다.
“그러고 보니 안젤라 소성주가 그러더군. 드림 브랜드 수수료 30프로를 제외한 나머지는 우리 영지 발전을 위해서 다 가지라고 했어.”
“브랜드 붙이는 거로 30프로나 가져간다고? 양아치네.”
김덕배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말했다.
“30프로는 블랙펑키라는 아이돌, 그리고 MPL과 드림이라는 브랜드 파워를 가진 것에 대한 지분가치야. 더군다나 홍보 마케팅까지 그들이 해줄 테니 그 정도는 인정해줘야지. 원래라면 드림히트 성의 계열사인 OEM 업체에 가게 됐을 아이템 기획과 제작 일감도 맡았잖아. 공장까지 지어서 생산할 수 있다면 사실상 우린 드림히트 성의 ODM 업체가 되는 거지. 소성주 입장에서도 헬릭스 성 내 영지의 입지가 커지니 이익일 테고 말이야.”
그때 최형석이 이해가 안 간다는 듯 손을 들었다.
“형님, 죄송합니다만 무슨 말씀인지 이해가 안 갑니다. OEM은 뭐고 ODM은 또 뭔가요?”
최형석의 질문을 받은 장현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들 표정이 굳어져 있었다. 다들 자신의 말을 못 알아들은 것이 분명했다.
그제야 아차 싶었다.
저들에게는 일상적인 용어가 아니었다.
모두를 상대로 제대로 된 설명을 해줘야 했다.
“제품이 소비자에게 전달되기까지 제품을 기획하고 설계한 뒤 생산을 해. 여기에다 브랜드를 붙이는 거지. 이때 브랜드를 제외한 나머지 제품 기획, 설계, 생산까지 다 외주를 주는 것을 ODM이라 하고, 제품 생산만 맡기고 제품 기획은 직접 하는 것을 OEM이라고 해. 예를 들어 최근 짓고 있는 반도체 파운드리 같은 경우가 OEM이지. 기획부분인 설계도는 내가 만들어서 그들에게 맡겼잖아.”
“그렇다면 우리가 아이템 제작 생산하는 것은 형님이 기획하고 생산까지 우리 영지에서 다 하니까, 우리는 ODM이 되는 건가요?”
아직도 아리송한지 최형석은 머리를 긁적였다.
“맞아. 사실 몽슈 백작이 내게 개인적으로 의뢰한 보호막 형성 마스크는 나를 드림히트 소속으로 해서 보호막 형성 마스크를 제작하려 한 거야. 그러면 마스크를 우리 영지에서 제작해도 우리는 OEM 업체가 되는 거지. 마스크에 드림 브랜드가 붙게 될 거거든. 블랙펑키 아이템들은 내가 안젤라 소성주에게 의뢰를 받은 것이니 아마도 ODM이 될 거 같은데. 그 부분은 몽슈 백작과 안젤라 소성주 둘 사이에 어떤 얘기가 오갔느냐에 따라 달라질 거야.”
“음. 그렇군요. 어쨌든 우리한테 이익이 된다는 거군요.”
장현은 최형석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자신의 설명을 이해 못한 것이 분명했다.
‘내 말이 어려웠나.’
그는 고개를 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