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화. 다시 헬릭스 성으로 (4)
시간이 지나고 지네차가 헬릭스 성에 도착했다.
그동안 안젤라와 장현은 음양합일신공을 계속 수련했다.
이제는 혼자서도 음양합일신공을 수련할 수 있었지만, 함께 하는 것이 월등히 효과가 높았기에 계속해서 함께 수련한 것이었다.
그러는 동안 둘의 관계도 조금씩 달라졌다.
아니, 급격히 진전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장현은 스스럼없이 안젤라에게 농담을 하면서 말을 편하게 했고, 안젤라 또한 그런 그의 모습을 좋아했다.
소위 썸 타는 관계로 발전한 것이었다.
헬릭스 성에 도착한 뒤, 안젤라는 먼저 아버지이자 성주인 헬릭스를 찾아갔다.
그간의 일을 보고하고 코로나 바이러스의 위협에 어떻게 대비할지 의논하기 위해서였다.
장현과 이성훈은 지네차를 타고 영지로 향했다.
‘다들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그동안 시스템으로 연락은 주고받긴 했으나,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였다. 영지의 변화된 모습이 궁금해졌다.
성 입구 쪽에 대대적인 공사현장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무언가 변화가 있었다는 것은 분명했다.
장현이 이성훈에게 말했다.
“이성훈 주무관, 드림히트 성에 오기 전까지 영지에 계속 있었으니 자네는 잘 알겠지. 내가 대공의 박람회에 가기 전과 비교해서 변화가 좀 있었나?”
“하하, 보시면 깜짝 놀랄 거예요.”
“내가 놀랄 정도로 바뀌었단 말이지.”
“제가 오래 되어서 기억이 헷갈리는데 장현님이 떠날 때는 영지가 어땠었죠?”
“이제 막 집을 짓고 땅을 개간하고 있었지. 김태석이 한창 곡괭이질을 하며 땅을 개간하고 있었잖아.”
“아, 그때였군요. 흐흐. 다 왔으니 눈으로 직접 보시죠.”
이성훈의 말이 끝나고 곧 지네차가 영지 정문에 도착했다.
쿠어어엉.
지네차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자 영지 내 모든 플레이어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이윽고 장현과 이성훈의 모습이 보이자 모든 이가 한달음에 그들에게로 모여들었다.
“장현, 드디어 왔구나.”
“형님! 오셨군요.”
“장현 씨!”
장현은 달려오는 동료들을 보고서 미소를 지었다.
“모두들 잘 지냈어?”
김덕배부터 최형석, 이나연, 김태석까지.
영지의 주요 인물들과 리자드맨 족장인 린에이지, 장현과 함께 에레뜨 금속을 만들었던 아탑, 아투렉까지도 모두 장현을 환영하러 나왔다.
“우리 리자드맨의 친구가 돌아왔다!”
“우리의 친구! 장현이 왔다. 어머니 에레뜨가 보내주신 우리 리자드맨의 친구!”
“리자드맨의 친구여! 귀환을 축하한다.”
리자드맨들의 함성은 크고 강렬했다.
그 모습을 지켜본 이성훈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이 양반들. 그동안 내가 실컷 고생하면서 영지 일궈놨더니, 장현님만 찾네.”
이성훈이 섭섭한 표정으로 물끄러미 지켜볼 때.
김덕배가 다가와 그의 어깨를 두들겼다.
“이성훈 주무관, 고생 많았어. 드림히트 성까지 거리도 멀었는데 말이야.”
“크윽. 역시 절 챙겨주는 사람은 김덕배님밖에 없군요. 오는 길에 진짜 죽는 줄 알았습니다.”
“왜, 무슨 일이 있었어?”
“하, 그 얘길 어찌 몇 마디 말로 하겠습니까. 차라리 안 갔다면 그 마음고생을 하지도 않았을 텐데요.”
이성훈은 돌아오는 길에 벌어진 일을 떠올리며 고개를 흔들었다.
사실, 이렇게 빨리 헬릭스 성으로 돌아올 줄 알았다면 굳이 드림히트 성까지 갈 필요도 없었다.
물론 후리스 의상을 새로 제작한 것과 사료 회사를 돌아본 것, 또 드림히트 성의 발달한 도시를 견학한 건 꽤 큰 경험이긴 했다.
이성훈의 표정을 본 김덕배는 의문이 들었으나 어차피 곧 간담회 시간을 가질 예정이었기에 넘어가기로 했다.
장현은 오랜만에 만난 동료 및 리자드맨들과 인사를 나누고는 김덕배, 이나연, 최형석, 이성훈과 간담회 겸 회의 시간을 가졌다.
장현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는 궁금한 게 많았다.
“이성훈 주무관에게 들었어. 영지에 내가 깜짝 놀랄만한 일이 벌어져 있을 거라고 하던데, 그게 뭐야? 오는 길에 봤더니 공사도 꽤 대대적으로 하고 있는 것 같던데.”
김덕배가 웃음을 띠우며 말했다.
“섀도우 마스크 말이야. 네가 리자드맨 상인 지로발한테 재료를 부탁했다고 하던데.”
“응, 그랬지.”
장현은 자신이 지로발에게 부탁했던 것을 떠올렸다.
그는 대공의 마도공학 박람회에 갈 때 지로발에게 섀도우 마스크를 보여주며 그 재료들을 구해달라고 했었다.
“붉은 산맥의 드워프들에게 부탁한 재료가 왔다는 거야?”
그렇잖아도 영지에 돌아오는 대로 섀도우 마스크를 직접 만들어 볼 생각을 했었다. 상당히 반가운 소식이었다.
그렇지만 이성훈이 말한 대로 깜짝 놀랄만한 일이라고 하기까지는 좀 어려웠다.
이성훈이 이걸 얘기한 건가 싶을 때.
김덕배가 크게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그래. 오긴 왔지. 근데 재료만 온 게 아니야.”
“재료만 온 게 아니라면? 뭐야, 속 시원히 말해봐.”
장현의 답답해하는 표정을 본 김덕배가 이내 본론을 말했다.
“붉은 산맥의 드워프들이 헬릭스 성으로 이주해왔어. 우리 영지에서 같이 지내게 될 거야. 영지 밖에 공장 짓는 거 봤다고 했지? 그게 바로 섀도우 마스크 생산 공장이야.”
“뭐? 그게 정말이야?”
“그래. 네 놀란 표정을 보고 싶어서 주무관에겐 비밀로 해달라고 했지.”
장현은 이성훈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는 딴청을 피우며 시선을 피했다.
장현은 깜짝 놀란 한편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하나 있었다.
“붉은 산맥의 드워프들이 이곳으로 이주해온 이유가 대체 뭐야? 공장까지 짓는다는 건 뭔가 대량 생산을 하기라도 하는 거야?”
붉은 산맥에 공장이 이미 있는데 헬릭스 성에다 공장을 또 짓는다?
대량 수주라도 받은 거 아닐까 유추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드워프들이 만든 섀도우 마스크를 그동안 샘플 형태로 마계의 여러 업체들에게 납품을 했었다 하더라고.”
“그래서?”
샘플 정도야 충분히 납품할 수 있었다.
디스플레이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섀도우 마스크가 꼭 있어야만 했으니까.
다만, 장현이 알기로 마계의 섀도우 마스크는 대부분 피엔디가 독점을 하고 있었다.
헬릭스 성에서 만든 섀도우 마스크 샘플이 퀄을 통과한다고 해서, 곧장 피엔디 제품을 헬릭스 성의 제품으로 바꿀 수 있을까.
그는 고개를 저었다.
‘쉽지 않아.’
장현이 여러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김덕배에게서 놀랄만한 소식이 전해져 왔다.
“파인애플에서 붉은 산맥의 드워프들이 만든 새도우 마스크 샘플을 보고 대량 납품을 요구했다고 해. 그것 때문에 대량 양산형 공장이 필요했었나봐. 붉은 산맥의 공장은 샘플 테스트용이라 대량으로 양산을 하기엔 시설이 부족하다 했거든.”
“파인애플에서 대량 납품을 요구했다고?”
파인애플은 마계의 패드 점유율 1위 업체였다.
대량 납품을 요구했다면 이미 퀄은 통과한 것이다.
이것은 어마어마한 지각변동이나 다름없었다.
“제넥스 성에서도 이번에 4K 화질을 구현할 수 있는 섀도우 마스크를 만들었다고 하던데, 어떻게 헬릭스 성에서 납품할 수 있었지?”
“나도 그것까지는 모르겠어. 기술적인 부분은 드워프나 알겠지. 극비사항이라 절대 외부에 알려져서는 안 되잖아. 내가 영지의 영주가 아니었다면 이것까지도 몰랐을 거야.”
김덕배의 말에 장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김덕배가 조심스런 어조로 말을 이었다.
“얼핏 들은 거라 정확하지 않을 수 있는데, 헬릭스 성의 섀도우 마스크는 레이저 패턴이라 빠른 속도로 대량 생산이 가능하다고 했던 거 같아. 그리고 수율이 안정적이라서 만족한다고 했어. 지금 당장은 4K지만 8K도 가능할 수 있는 기술이라고 칭찬했던 거 같아. 그런데 나도 그게 무슨 말인지는 잘 모르겠어서 얘기하기가 좀 조심스럽네.”
장현은 어떤 상황인지 깨달았다.
마왕과 대공 측에서 한시라도 빨리 창조신의 패드를 복구하길 원하는 것이었다.
소형 디스플레이인 패드에서 4K를 넘어서 8K 화질까지 가능한 섀도우 마스크는 장현이 생각해도 헬릭스 성의 섀도우 마스크뿐이었다.
피엔디의 섀도우 마스크에 대해서라면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현재 패드가 퍼지는데 큰 기여를 했고, 독점적인 지배력을 갖고 있긴 했지만. 그 한계가 명확했다.
그들의 섀도우 마스크로는 4K 이상의 고화질을 구현하는 게 기술적으로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마왕과 대공 입장에서는 의미 없는 기술에 불과했다.
창조신의 패드는 분명 높은 화질을 구현할 수 있는 섀도우 마스크를 필요로 할 테니까.
그게 아니었다면 벌써 창조신의 패드를 복구하고도 남았을 것이었다.
장현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물었다.
“알겠어. 그럼 드워프족이 일부만 온 거야? 아니면 붉은 산맥의 드워프 대부분이 이주한 거야?”
“그건 내가 설명하지.”
갑작스레 들려온 등 뒤의 목소리에, 장현이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이럴 수가. 내가 이렇게까지 인기척을 못 느꼈다니.’
장현은 눈앞의 존재를 보며 깜짝 놀랐다.
그의 앞에는 1m 정도 키의 땅딸막한 드워프가 서 있었다. 턱수염이 가슴까지 길게 드리워진 게 인상적이었다.
그 뒤를 따라 네 명의 드워프가 더 따라 들어왔다.
‘혹시 이 자가 바로.’
1회차 때 장현과 함께 최상급 대장장이로서 이름을 날렸던 붉은 산맥의 족장, 포프.
자신의 등 뒤까지 기척을 드러내지 않고 다가올 수 있는 드워프는 그 밖에 없었다.
장현의 예상대로였다. 조금 전 말했던 드워프가 인사를 건네왔다.
“난 붉은 산맥에서 드워프 족장을 맡고 있던 포프라고 하네. 영지의 실세라고 하는 플레이어가 귀환했다고 떠들썩하기에 인사차 들렀네.”
“반갑습니다, 전 장현입니다.”
장현 역시 예를 갖춰 인사했다.
드워프 족장 포프의 명성은 1회차 때부터 들어봐서 잘 알았다. 비록 실제로 보는 건 지금이 처음이었지만.
포프는 드워프족 최고의 장인. 이미 최상급 대장장이에 올라있는 상태였다.
대장장이 조각이 없는 장현이 현재 고급 대장장이에 머물러 있는 점을 감안하면, 자타공인 현 마계 최고의 대장장이는 바로 포프였다.
예를 갖춰야만 하는 존재였다.
포프가 자신의 뒤를 따라 들어온 네 명의 드워프들을 소개했다.
“이들은 우리 붉은 산맥의 드워프 장로들이오. 좌측부터 드레이그, 흐레이드, 레진, 오르트라고 하오.”
소개를 받은 드워프들이 한 명씩 자신의 이름을 대며 인사했다.
“반갑소, 난 드레이그요.”
“반갑소, 난 흐레이드요!”
“반갑소, 난 레진이오.”
“반갑소, 난 오르트라고 하오.”
장현은 그들 한명, 한명에게 예를 갖춰 인사했다.
그리고 포프를 향해 다시 말했다.
“조금 전 직접 말씀해주신다는 것에 대해 얘기해주시겠습니까.”
“음, 그대도 소식을 들었을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헬릭스 성으로 이주를 결심한 것은 섀도우 마스크 사업부서의 본사에 해당하는 헬릭스 성에서 대량 양산을 위한 공장을 짓기 위함이 첫 번째요. 그리고 두 번째는 서부의 마르바스 성에서 퍼진 코로나 바이러스를 피하기 위함이오. 헬릭스 성의 방역시설이 어느 곳보다 우수하다고 들었기에, 이주를 결정하게 되었지. 붉은 산맥은 방벽 같은 게 없어 외부에서 접근하기가 너무 수월해, 전염병 같은 걸 방어하기가 너무 어려운 환경이었소.”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파인애플로부터 대량 수주를 따냈다는 게 정말입니까?”
“음, 벌써 그 얘기를 들었나 보군. 사실이오.”
“아직 완성을 못했다고 들었는데, 이미 완성이 된 것입니까?”
“그렇소. 파인애플이 극비를 요구했기에 대공의 박람회에는 제출하지 않은 것이었소.”
그 말에 장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안젤라에게 서운함이 일었다.
그녀라면 모르지 않았을 텐데, 자신에게까지 비밀로 했을 줄이야.
그러나 이어지는 포프의 말에 서운한 감정은 사라졌다.
“성주님 외에는 누구도 몰랐을 것이오. 공장을 짓기 시작하면서 김덕배 영주 정도나 더 알게 된 것이고 말이오.”
“그렇게 된 것이군요.”
장현은 그의 말에 안젤라조차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