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화. 드림히트 성 (8)
이제 이성훈도 왔으니 준비했던 사업을 진행하면 된다.
“장현, 자네가 불러오길 원했던 이성훈을 데려왔으니. 이제 사업 얘기를 시작하도록 하지.”
몽슈 백작이 언급한 사업은 블랙펑키를 모델로 한 굿즈 생산, 에레뜨 주술진을 새겨 넣은 보호막 마스크, 디저트 카페 프랜차이즈.
이렇게 총 세 개였다.
“좋습니다. 말씀하시죠.”
장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성훈과 함께 몽슈 백작 앞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먼저 하나 물어보도록 하지. 자네는 대장장이라고 했지? 자네가 지금껏 제작한 아이템 중 가장 정성을 많이 쏟아야 했던 것은 무엇인가?”
몽슈 백작의 말에 장현은 바로 한 가지 무기가 떠올랐다.
“망치입니다.”
고민할 것도 없었다.
1회차에서부터 지금까지 쭉 사용했던 주무기.
수많은 금속으로 여러 형태의 망치를 만들었다.
크기에 따라, 재질에 따라, 강도 및 연성에 따라.
망치에 붙였던 이름 또한 다 달랐다.
“자네는 보호막 형성 마스크를 제작할 거라고 했었지. 나의 ‘드림’ 브랜드를 새길 마스크를 제작해주게. 필요한 지원은 내가 다 낼 테니.”
“알겠습니다. 제 의견을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구체적인 기획이 나오면 얘기해주게. 샘플을 보고 퀄 통과 되는대로 곧장 생산을 진행하도록 하지. 생산은 약속대로 헬릭스 성에서 하게 될 거야. 나는 배리어소년단과 블랙펑키를 모델로 써서 마케팅에 집중하도록 하겠네.”
“알겠습니다. 준비되는 대로 샘플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좋아, 이제 내가 할 얘기는 끝난 거 같군. 부디 만족할만한 성과를 가져오길 바라네. 혹시 필요한 게 있으면 얘기하게나.”
몽슈 백작의 말에 장현은 바로 요구사항을 말했다.
“제 일을 도울 성주님의 수하들과 마나 포인트를 지원해주십시오.”
장현은 이왕 해야 한다면 처음부터 최대한의 지원을 끌어낼 생각이었다.
“그야 물론이지.”
몽슈 백작은 책상 위의 버튼을 눌러 라라 비서를 호출했다.
곧바로 입구에 있던 라라가 안으로 들어왔다.
“예, 백작님. 부르셨습니까.”
“장현에게 블랙 스마트키를 내주도록.”
“알겠습니다.”
라라는 몽슈 백작의 말에 살짝 놀란 눈을 했으나 곧 인사하고는 돌아나갔다.
몽슈는 이어 장현을 돌아보고 말했다.
“라라에게 스마트키를 받아가도록 하게. 드림히트 성 내에서 스마트키를 내밀면 대부분의 지원을 받을 수 있네. 다른 필요한 일이 있을 경우 로슈 집사와 상의하면 되네. 그건 라라가 알려줄 거야.”
“감사합니다. 성주님.”
장현의 인사에 몽슈 백작은 날카로운 눈으로 뒷말을 덧붙였다.
“난 자네를 믿고 배팅을 했네. 부디 좋은 성과를 보여주게나.”
“절 믿고 배팅하신 걸 결코 후회하시지 않게 하겠습니다.”
장현은 이성훈과 함께 몽슈 백작의 집무실을 나왔다.
비서 라라가 그에게 스마트키를 내밀었다.
“장현님, 스마트키를 시스템 상태창에서 인증하시면 사용설명서가 전송될 것입니다.”
장현은 그녀에게서 스마트키를 받아들어 천천히 살펴보았다.
스마트키는 금속성질의 검은색 얇은 카드였다.
카드에는 드림히트라는 로고와 함께 몽슈 백작의 얼굴이 새겨져있었다.
“블랙 카드는 가장 높은 등급의 스마트키입니다. 솔직히, 장현님께서 블랙 등급을 받으실 줄은 몰랐습니다.”
“고마워, 잘 쓰도록 할게. 로슈 집사에게 연락하는 방법은 뭐지?”
“스마트키를 상태창에 인증하고 나서, 기기 등록까지 하시면 로슈 집사님께서 먼저 연락하실 겁니다. 그분이 인증확인 담당자시거든요. 상태창에서 설정으로 들어가셔서 등록으로 들어가 보십시오. 그러면 기기등록이 나올 겁니다. 그리고 카드 뒷면의 일련번호를 입력하면 로슈 집사님께 등록확인 요청 메시지가 전송됩니다. 그 후 연락이 올 때까지 기다리시면 됩니다.”
장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녀가 시키는 대로 했다.
[드림히트 성의 VIP로 등록이 되셨습니다.]
[사용설명서가 계정의 상태창에 전송됩니다.]
[로슈 집사에게서 온 아직 안 읽은 메시지가 1개 있습니다.]
기다릴 것도 없이 로슈 집사에게서 바로 연락이 왔다.
장현은 그에게서 온 메시지를 클릭해 열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본인은 몽슈 백작님을 모시는 집사부장 로슈입니다. 백작님께서 장현님께 전폭적으로 지원하라고 지시하셨습니다. 그러니 드림히트 성에서 필요한 것이 있거나 도움이 필요할 땐 언제든지 이 라인으로 저에게 연락하시면 됩니다. 다른 문의사항이 있으십니까?]
[지금은 없는 것 같군요. 필요하게 되면 연락드리죠.]
장현의 말에 로슈 집사는 영상 안에서 묵묵히 그를 쳐다보더니 이내 미소를 지으며 인사했다.
[그럼 첫 인사는 이것으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그 말과 함께 메시지가 사라지며 로슈의 영상도 사라졌다.
“후, 일단 괜찮은 카드가 하나 생겼군.”
막강하지만 지불해야 할 대가가 만만치 않은 카드였다.
장현은 이성훈과 함께 성주실의 집무실을 나왔다.
이성훈이 조심스레 물었다.
“장현님. 이제 우린 뭘 합니까?”
“이제 일하러 가야지.”
장현은 이성훈을 데리고 드림히트 성내를 둘러보았다.
곳곳에는 인큐버스와 서큐버스들이 한껏 멋을 낸 채 거리에 거닐고 있었다.
마치 지구의 번화가에 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장현이 눈여겨 본 것은 그들의 안면.
아직은 마스크를 쓴 자가 거의 없었다.
이들은 그 심각성을 모르고 있었다.
“평화롭군요. 마족들이 사는 세상 중에 이런 곳이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우리 헬릭스 성의 레스토랑도 그랬지만, 그곳은 우리가 만든 것이잖아요. 이곳은 사람의 손을 탄 것도 아닌데, 정말이지 우리가 살던 세상이랑 별 차이 없는 거 같아요. 이렇게 많은 마족들이 평범하게 일상을 보내는 모습이라니. 직접 보지 않았으면 믿지 못 했을 거예요.”
이성훈은 드림히트 성을 둘러보면서 살짝 충격을 받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 그런데 저들은 우리를 잡아와서 경기에 강제로 참가시켰지. 거기에서 우린 죽이고 죽으면서 저들에게 즐길 거리와 마나 포인트를 제공했지.”
이성훈의 반응에 장현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조금 전 몽슈 백작과 사업얘기를 할 때와는 표정이 완전히 달랐다.
장현의 말에 충격을 받은 표정이었던 이성훈의 얼굴이 억울하고 분한 표정으로 점차 변해갔다.
“그러니까요. 저들은 저렇게 행복하고 평온한 일상을 누리면서……. 왜 우리는 플레이어라는 신분으로 목숨을 건 전투를 치르게 하는 거죠?”
그에 장현은 덤덤하게 말했다.
“이성훈 그대가 잊고 있는 게 있군. 저들의 모습은 인간들과도 흡사해.”
“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역사 시간에 제국주의라고 들어봤지?”
“네, 그야 당연히 알죠. 우리나라가 일본 제국주의 놈들 때문에 아픈 역사를 겪지 않았습니까?”
“그래, 그렇다면 하나 물어보지. 식민지 주민들을 짓밟고 죽였던 제국주의자 놈들이 자기 가족들이나 친구들과 있을 때는 어떻게 지냈을 거 같나? 가족이나 친구들에게도 욕하고, 폭행하고, 식민지 피지배층 대하듯 했을 거라고 생각하나?”
“그건 아니겠죠. 자기들끼리는 정상적인 관계를 형성하겠죠. 굳이 그래야 될 이유가 없으니까요.”
“그래. 그들은 ‘우리’라는 범주에 있는 대상과 그 밖의 존재들에 대해 이중 잣대를 재지. 중국만 봐도 그래. 청나라 시절 그들은 영국에게 식민지나 다름없는 취급을 받았으면서도 우리한테는 자신들이 당한 것과 똑같이 굴었어. 일본 역시 그랬지. 그놈들도 미국에게 식민지로 점령당했었잖아.”
“그렇죠. 우리가 사는 세상도 그랬군요. 그러고 보면 인간과 마족은 별로 다르지도 않군요.”
“그러니 우리가 이들의 세계에서 친숙함을 느끼는 거겠지.”
“그런데 우리 대한민국은 일본 제국주의에게서 벗어났지 않습니까. 비록 미국의 도움이 있었지만요. 여기에서도 우리가 마족들에게서 벗어나 독립을 이룰 수는 없는 건가요?”
“있어. 그 독립, 이룰 수 있어.”
“네? 구체적인 방법이 있습니까?”
이성훈은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갑자기 역사니 제국주의니 하는 말을 꺼낸 이유가 이 얘기를 하기 위함이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장현은 그런 이성훈을 진지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일단은 저 몽슈 성주 말대로 마나 포인트를 벌어야겠지.”
“그 다음은요? 돈이 아무리 많아도 마족들과 싸울 무기가 없으면 저들을 이길 수 없잖습니까.”
“있어. 무기도.”
“있다고요?”
“마족은 물론, 마왕까지도 죽일 수 있는 무기가 있다고.”
장현의 확신어린 말에 이성훈은 입을 멍하니 벌리다가 다급히 물었다.
“그게 뭡니까? 장현님.”
“왜, 알면? 이성훈 주무관이 구해보게?”
장현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이성훈이 자신의 얼굴을 들이밀며 말했다.
“못할 건 뭐겠습니까. 저를 이곳으로 부른 건 장현님입니다. 얘기해주세요.”
이성훈의 눈빛에는 지푸라기라도 잡겠다는 심정이 깃들어 있었다.
반드시 그런 게 있어야 한다는 그런 열망이었다.
장현은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이성훈은 빌어먹고도 지옥 같은 이 마계에서 희망이라는 것을 가지고 싶었다는 것을.
장현은 휴, 하고 한숨을 쉬고는 입을 열었다.
“김덕배와 다른 동료들에게는 했던 얘기야. 내가 널 부르면서 할 얘기가 있다고 했었지? 그게 바로 이 얘기야.”
“네? 대체 무슨 얘기길래…….”
침을 꿀꺽 삼키는 이성훈에게 장현은 얘기했다.
자신이 회귀한 사실과 테세리움으로 만든 신의 무기를 만들려고 한다는 것, 그리고 창조신의 패드에 대한 얘기까지도 모두 털어놓았다.
얘기를 모두 들은 이성훈은 입을 헤 벌리면서 멍하니 있었다.
아무래도 장현의 말이 믿기지가 않는 것 같았다.
그러다 장현이 여전히 진지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자, 그제야 고개를 흔들며 입을 열었다.
“제가 요약을 해볼게요. 장현님은 회귀를 했고, 회귀 전 마왕에게 다섯 명을 제외한 모든 인류는 멸망했었다. 다섯 명 중 장현님이 회귀한 이유는 테세리움이라는 신의 금속으로 무기를 만들어 마왕을 쓰러트리기 위함이다. 여기까지 맞죠?”
“그래. 그런데 이번 생에선 대장장이 조각을 못 얻는 바람에 테세리움 금속 자체를 얻는 것에 차질이 생겼어. 지금은 드워프 족장을 만나서 방법을 찾으려고 하고 있어.”
“그리고 마왕을 죽일 또 하나의 방법이 있다고 했잖아요. 창조신의 패드라고요?”
“그건 마왕을 죽일 방법은 아니고, 마왕과 대공이 찾는 아이템인데 창조신과 관련 있는 아이템이야. 그걸로 마왕을 죽일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몰라. 아직 정체도 모르고 있어. 일단은 그것도 찾아야 해.”
“알겠습니다. 거기까지가 장현님이 해야 할 일이고, 우리가 도와야 하는 일이죠. 그리고 저의 역할은 마왕군과의 최후 전투 때 싸워서 이길 수 있도록 보급품을 마련하고 지원하는 거구요. 그래서 사업을 맡아서 키워야 한다는 거군요.”
“맞아. 똑바로 이해했군.”
장현은 이성훈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칭찬했다.
“거기까지 생각하고 계획을 짜셨다니. 놀랍기도 하고, 다행이기도 합니다.”
“다행?”
“희망이 생겼잖습니까. 마왕을 쓰러트리고 인류의 독립을 쟁취한다는 희망 말입니다.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지만, 더 이상 플레이어로 경기에 뛰는 검투사나 다름없는 노예 신분은 벗어나겠죠. 더불어 회귀자가 함께하고 있으니 성공할 확률도 더 높을 거고요. 이제야 이해가 되었습니다.”
“뭐가?”
“장현님의 그간 행동이 말입니다. 회귀자였기에 가능했었던 거군요, 모두. 어쩐지 처음부터 달라도 너무 다르긴 했어요.”
“어떤 점이 달랐지?”
“튜토리얼 때부터 지금까지 전부요. 다른 사람들이 두려움에 떨고만 있을 때, 장현님은 침착하게 흑전갈, 언데드, 오크 등에 맞서 싸웠었죠. 세이프존 영지에 와서는 각종 필수적인 아이템을 만들어 주시기도 했고, 크로커다일족을 상대로 승리를 쟁취해주시기도 했죠. 마족화가 된 크레온을 상대로 싸우던 모습은 마치 전신과도 같았는데 말입니다.”
이성훈은 말하다가 과거의 기억이 떠올랐는지 목소리를 얕게 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