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화. 새로운 준비 (2)
가장 먼저 반응한 건 김덕배였다.
“뭐 코로나 바이러스라고? 그게 그렇게 강력하단 말이야?”
“그래. 아마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안 되겠지. 그건 중세 유럽을 휩쓸었던 흑사병의 창궐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거야.”
“하, 마계에서 이제 바이러스 전염병까지 겪게 되다니! 여기서는 치료할 수단도 없잖아.”
모두들 김덕배의 한탄에 공감이 됐는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장현은 김덕배와 생각이 달랐다.
‘이건 설령 우리가 대한민국에 그대로 있었더라도 감당하기 어려운 바이러스였다. 수단이 없는 건 마찬가지였겠지.’
1회차 때 마계를 휩쓴 바이러스는 대공의 박람회가 끝난 이후 어느 한 마족의 성에서 시작되었다.
마르바스 성.
마계의 재난이 시작된 곳이고, 최후의 전투가 벌어질 장소이다.
원래는 마계의 질병 및 제약을 연구하는 성이었으나, 코로나 바이러스가 퍼지면서 가장 먼저 궤멸되는 곳이었다.
마계 서부 마르바스 성의 중앙에 위치한 연구소.
한 마족이 갑각류의 집게를 딸각이며 문을 열고 들어섰다.
그 마족은 질병 연구소를 관장하는 소장 디레지.
그는 얼굴이 파랗게 질린 채 입을 열었다.
“성주님, 큰일 났습니다. 정체불명의 심각한 질병이 퍼지고 있습니다. 도저히 통제가 되지 않을 정도입니다.”
“대체 무슨 질병이기에 그리 호들갑이냐. 여기가 마르바스 성이란 것을 잊은 거냐. 질병 연구소장이라는 자가 고작 바이러스로 이렇게 호들갑이라니.”
검은 갈기 사이로 눈썹이 꿈틀거리며 중후한 목소리가 울렸다.
그가 바로 마계의 질병과 제약, 바이오를 관장하는 마르바스 성주였다.
“죄, 죄송합니다. 성주님. 이번 영지전에서 살아남은 생존자 중에 갑자기 이상한 호흡기 질환 증상을 보이는 자가 발생했는데, 기존에 발견된 적이 없는 바이러스입니다. 연구소에 있는 모든 능력으로도 치료가 안 됩니다. 심지어 치료하던 의료진들마저 쓰러졌습니다.”
의료진들마저 쓰러졌다는 소장의 말에, 마르바스는 그제야 표정이 진지해져 다시 물었다.
“그 영지민은 어디 출신이냐?”
“지구의 중국이라는 곳에서 온 인간 플레이어입니다.”
“중국이라. 이렇게 골 아픈 일이 터질 줄 알았으면 대공의 박람회나 갈 걸 그랬군.”
마르바스는 귀찮다는 이유로 박람회에 가지 않았던 것을 후회했다.
“쓰러진 자들이 있는 곳으로 안내해라.”
“예 성주님.”
디레지가 몸을 부들부들 떨며 조심스레 갑각류의 팔을 올려 얼굴을 가렸다.
그의 얼굴 주위로 마나 보호막이 생겨났다.
그 모습을 본 마르바스가 고개를 저었다.
“보호막?”
“성주님, 조심하셔야합니다.”
“알겠다. 어서 가보자.”
마르바스는 디레지 소장이 이 정도까지 경계하는 모습을 보자 마음이 급해졌다.
그 역시 보호막을 신체 주위에 둘렀다.
마르바스와 디레지는 서둘러 플레이어들이 거주하고 있는 영지로 이동했다.
영지에 들어선 그는 저도 모르게 신음을 흘렸다.
“이, 이럴 수가……. 이게 대체.”
곳곳에 마족 병사들과 인간 플레이어들이 쓰러져 있었다.
쓰러진 자들은 죽은 것은 아니었으나 몸을 꿈틀거리며 가슴을 쥐어뜯었다.
헉. 헉. 헉.
“사, 살려줘! 숨이 안 쉬어져.”
쓰러져 있는 마족 병사가 엎어진 채 손을 뻗어 도움을 요청하고 있었다.
그중에는 흰색 연구원복을 입은 마족도 있었다.
디레지 소장 말대로 연구원들마저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이다.
으어어억!
“괴, 괴로워. 도와줘!”
크르륵. 캭. 캭.
한 건물 안에서 몬스터의 울음소리가 들리더니 영지민들이 우르르 도망쳐 나왔다.
그들은 신체 일부가 뜯겨져 있었다.
“서, 성주님. 병사들이 이상합니다. 우리를 공격하고 있어요.”
도망쳐 나오던 영지민 중 한 명이 마르바스를 보더니 달려와 소리쳤다.
그의 뒤에는 이성을 잃은 마족 병사가 눈이 시뻘개진 채 쫓아오고 있었다.
그것도 영지민들의 신체 일부를 입으로 뜯어먹으며.
크르륵.
마족 병사는 마르바스 성주를 보더니 고개를 갸웃하며 괴성을 질렀다.
“이, 이런! 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마르바스가 그 모습에 분노하여 마기를 폭발시켰다.
마르바스의 공격에 몬스터화된 병사는 그대로 머리가 터져 죽었다.
푸드득.
죽은 병사의 신체가 터지면서, 흘러나온 파편의 일부가 마르바스의 보호막 위로 떨어졌다.
다행히 보호막 덕에 감염은 피했다고 느낀 그때.
그의 주위로 수십 명에 달하는 마족 병사들이 이성을 잃은 채 다가오고 있었다.
크르륵. 캭. 캭.
“아. 안 돼. 이런 젠장.”
마르바스는 몬스터화가 된 병사들을 보고 당황해 피할 곳을 찾았다.
싸울 수는 있지만 싸우다가 보호막이 한순간이라도 사라지게 되면, 감염을 피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피하는 게 최선이었다.
디레지 소장이 공포에 떨며 물었다.
“서, 성주님. 어떡합니까?”
“어떡하긴, 도망쳐야지. 어서 마왕님께 도움을 요청해야 해.”
마르바스는 다가오는 무리 중 감염된 병사들의 수가 적은 쪽을 향해 달려 나갔다.
곧 코로나 바이러스에 걸린 마족 병사들이 성 밖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들은 살아있는 자를 찾아 계속해 움직였다.
이 사실은 장현 일행 외에는 마왕조차도 아직 모르고 있었다.
대공 성이나 헬릭스 성에서는 한참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장현 씨가 회귀했다는 말이 진짜라고 쳐요. 그럼 이제 마왕을 죽이고 우리가 살기 위해서 뭘 해야 하는 거죠?”
이나연이 불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모두의 시선이 장현에게로 쏠렸다.
“우리가 희망을 걸 수 있는 건 먼저 신의 금속인 테세리움으로 만든 무기야. 그것만이 마왕을 죽일 수 있어. 그 다음은 다른 고위 마족들과 마왕군을 상대할 수 있어야 해. 그러기 위해서는 가능한 많은 플레이어가 살아남아야 하고, 단합된 군사력을 갖춰야 해.”
“일단 마왕을 쓰러트리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거네. 그럼 테세리움 무기는 어떻게 얻을 수 있는 건데?”
장현의 말을 듣고 김덕배가 물었다.
마현에게 대답한 내용을 장현은 다시 한번 얘기해줬다.
설명을 모두 들은 일행들은 납득을 하긴 했으나, 표정이 어두워져 있었다.
장현은 일행들과 함께 소성주에게로 갔다.
안젤라는 헬릭스와 함께 있었다.
그녀는 대공의 성에 온 김에 인근에 있는 드림히트 성을 방문하길 원했다.
드림히트 성은 안젤라의 외가가 있는 곳이었다. 드림히트성의 성주 몽슈 백작이 바로 그녀의 외할아버지였다.
“아버지, 드림히트 성에 꼭 들르고 싶어요.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를 못 뵌 지 너무 오래되었잖아요. 얼마 전에도 연락 오셔서 박람회 끝나고 돌아가기 전에 꼭 들르라고 하셨단 말이에요.”
“안젤라, 지금 마계 상황이 심상치가 않아. 이번 박람회에서 창조신의 패드를 복구할 기술들이 다 완성된 걸 봤잖느냐. 나는 곧장 성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럼 아버지는 먼저 성으로 돌아가세요. 저만 따로 갔다 올게요. 외할머니가 지금 마계 최고의 아이돌 그룹을 만든다고 해서 가보고 싶단 말이에요.”
“마계 최고의 아이돌이라니, 크큭. 배리어소년단이라도 만든단 말이냐.”
배리어소년단은 마계에서 최고로 인기 좋은 인큐버스 남성 그룹이다.
엔터테인먼트에 큰 관심이 없는 헬릭스조차도 알 수밖에 없을 정도로 유명한 아이돌이다.
몽마족인 인큐버스와 서큐버스는 타고난 미모와 미성을 활용해 마계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꽉 쥐고 있었다.
그들의 노래와 안무에 환호하는 마계의 수많은 마족들이 팬덤을 이뤄 굿즈 구매에 마나 포인트를 쏟아 부었다.
그 덕에 몽마족은 마계에서 가장 부유한 종족 중 하나였다.
몽슈 백작은 그 몽마족의 수장이자, 수많은 엔터테인먼트 사업체를 소유하고 있는 이였다.
헬릭스가 안젤라의 어머니인 서큐버스 헤라를 아내로 맞이한 것 또한, 마계의 마나 포인트를 긁어모을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영역을 뻗치기 위해서였다. 물론 헤라의 미모가 아주 뛰어나다는 점 또한 작용했다.
안젤라는 그런 헤라의 미모를 그대로 물려받았다.
“미모가 다가 아니라는 뜻을 가진, 블랙펑키라는 그룹이라고 하네요. 깜찍하지 않나요? 저 꼭 보고 싶어요. 아버지.”
“알겠다. 네가 정 그렇다면 허락하마. 다만 항상 조심해야 한다. 마왕 측에 시비의 빌미를 주면 안 돼. 대공 전하께 위협이 되는 일을 벌인다면 나로서도 해결을 못할 수 있다.”
“걱정 마세요. 아버지.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있는데, 아무리 마왕 측이라도 절 함부로 건들진 못할 거예요.”
끄덕.
헬릭스는 안젤라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마계 전체에서 팬덤을 몰고 다니는 인큐버스 아이돌그룹, 배리어소년단.
그들의 소속사는 바로 드림히트. 바로 몽슈 백작이 키운 아이돌들이다.
스타 제조기라 불리는 그가 이번에는 인큐버스가 아닌 서큐버스로 아이돌 그룹을 만든다고 하니.
자연스레 관심이 갈 수 밖에 없었다.
그의 영향력은 마계 전역에 뻗어있었다.
마왕 측에서도 그를 함부로 대할 순 없을 터였다.
마계의 마족들이 패드를 손에서 놓지 않는 이유. 그건 패드를 사용해서 즐기는 영상 플랫폼 마튜브 때문이었다.
플레이어들의 경기가 펼쳐지기 전까지 마튜브의 최고 조회수는 항상 배리어 소년단의 콘텐츠가 차지했었다.
안젤라가 그런 몽슈 백작의 사업을 이을 수 있다면, 장차 그에게도 큰 도움이 될 것이었다.
설령 사업을 잇지 못하더라도 상관은 없었다. 헬릭스 성의 사업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렇잖아도 너에게 사업을 하나 맡겨볼까 했는데, 이번에 외가에 가서 잘 배워보도록 하려무나. 이왕이면 몽슈 백작과 마리 부인께 도움을 요청하면 좋겠지.”
마리 부인은 몽슈 백작의 아내이자 안젤라의 외할머니였다.
“고마워요, 아빠!”
안젤라는 다시 애교를 부리며 헬릭스에게 매달렸다.
헬릭스가 웃으며 물었다.
“흠, 그래서 과연 누굴 너랑 함께 보내야 할까? 고민 좀 해봐야겠구나. 로메드는 지금 병사들을 관리해야 해서 보낼 수가 없는데.”
“걱정 마세요. 플레이어 장현과 함께 갈게요. 이번 박람회에서 그의 능력을 보셨죠? 앞으로 우리 성의 사업에서 큰 역할을 하게 될 거예요.”
“플레이어 장현? 박람회에서 봤을 때는, 뭐 전투력은 쓸 만했지만. 사업에서 큰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헬릭스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제가 보기에 그는 감각이 있어요. 기존 제품을 흡사하게 만들어낼 줄 알아요. 물론, 그것뿐이라면 큰 기대는 안하겠지만. 이외에도 새로운 가치 있는 상품을 창조할 수가 있어요.”
“그래?”
헬릭스는 안젤라의 칭찬이 놀라웠다.
안젤라의 안목은 무척이나 높았다.
서큐버스 종족의 특성상 예술적인 감각이 뛰어난데다, 어릴 적부터 뛰어난 예술품들을 직접 감상하고 제작하면서 자라왔기에.
안목이 높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녀가 칭찬을 하다니, 관심을 한번 가져볼만했다.
“좋다, 그렇게 하려무나.”
“고마워요. 아버지.”
그렇게 장현도 모르는 사이, 드림히트 성으로의 이동이 결정되었다.
“네? 저 혼자 소성주님을 따라가야 한다는 말씀입니까?”
장현은 일행들과 함께 소성주를 알현하고서 깜짝 놀랐다.
대공의 박람회를 마쳤으니 당연히 영지로 돌아갈 것이라 생각했다.
얼마 후 코로나라는 바이러스로 인해 지옥이 펼쳐진다.
조금이라도 빨리 돌아가서 대비를 해야 하는데, 난데없이 드림히트 성으로 간다니.
‘드림히트 성이라면 몽마족의 성이었던가. 안젤라의 외할아버지가 거기 성주라고 했던 거 같은데. 코로나19 바이러스가 퍼지는 마르바스 성과는 거리가 꽤 멀긴 하지만, 마계에 안전지대란 없다. 그 뒤에 헬릭스 성으로 돌아가는 길도 상당히 위험할 거야.’
1회차에서의 그는 드림히트 성에 갈 일이 없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퍼질 무렵 헬릭스 성의 플레이어들은 곧바로 영지로 복귀했었다.
마현에게는 자신의 회귀 사실을 제대로 알렸지만 테오, 아르헨, 제이미에게는 말하지 못했다.
마현처럼 ‘염라문의 사제’ 같은 접점이 없는 탓이 컸다.
동시에 여러 명에게 다가갈 여유도 없는데다, 테세리움이라도 얻었다면 설득해볼 수 있었겠지만.
지금은 무리였다.
‘어차피 그들과는 킹덤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그때까지 미리 준비를 해서 내 말을 들을 수밖에 없게 만들면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