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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장이 회귀해서 만능캐되다-92화 (92/211)
  • 92화. 거인족과의 경기 (9)

    김덕배의 장검에 기운이 덧붙여졌지만, 그것은 내공의 기운과는 달랐다. 마나의 기운이었다.

    “이야아아앗!”

    타타탓.

    그는 자신의 뒤에 마현이 버티고 있다는 사실이 든든했다.

    힘껏 검을 내질렀다.

    우두둑!

    휘두른 장검이 거인의 옆구리에 박혔다.

    “쿠우우우어. 빌어먹을 난쟁이가!”

    거인에게 충격은 안겼지만, 그것이 치명적이지는 않았다.

    도리어 화를 부추겼다.

    거인은 장검을 옆구리에 꽂은 채 비틀거리더니, 이윽고 몸을 일으켰다.

    양손을 맞잡고 팔을 위로 힘껏 들어 올렸다.

    허리를 한껏 돌린 거인은 그대로 풀 스윙을 하듯 양팔을 휘둘렀다.

    맞잡은 양손이 거대한 바위처럼 김덕배의 몸을 향해 날아왔다.

    “흥! 어딜!”

    김덕배는 지나치게 흥분했다.

    원래의 그였다면 무리하게 적을 향해 돌진하거나 하는 행동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마현을 사부를 모셨다는 점, 그리고 그 사부가 등 뒤에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이 과한 행동을 하게 만들었다.

    ‘흠, 과하군.’

    마현은 덕배의 상태를 정확하게 짚었다.

    종종 혈기가 지나친 젊은 무인들이 저러곤 했다.

    경험 많은 고수들은 언제나 침착함을 유지했지만, 경험이 일천한 자들은 평상심을 유지하기 힘들어했다.

    그래서 강호초출의 무인들이 일찍 죽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그건 수많은 실전 속에서 자연스럽게 얻어지는 것.

    가르쳐서 되는 일이 아니다.

    문제는 지금 이 상황은 연습이 아닌 실전이며, 혈기 왕성한 젊은이가 마현이 갓 들인 제자라는 것이다.

    ‘제자를 받자마자 죽도록 내버려 둘 순 없지.’

    마현이 땅을 박차며 김덕배의 뒤를 따라 움직였다.

    후우우웅.

    거인이 양팔을 스윙하듯 공격해왔다.

    김덕배는 거인의 품속으로 파고들어 공격을 피한 뒤 허점을 노려 복부나 목을 베려했다.

    계획은 좋았으나, 현실은 생각과 다르게 흘러갔다.

    “어라.”

    그가 생각한 것보다 거인의 스피드가 빨랐다.

    김덕배가 뛰어드는 것을 파악한 거인은 순식간에 뒷걸음질 치며 동시에 팔을 휘둘렀다.

    순간적으로 김덕배는 당황했고.

    거인의 주먹이 자신의 머리를 노리고 날아드는 것을 바라만 봐야 했다.

    ‘이런! 너무 방심했어.’

    김덕배는 자신의 잘못을 자책하며 눈을 질끈 감았다.

    퍼억!

    눈을 감은 김덕배의 귀로 타격음이 들렸으나, 정작 그는 아무런 고통도 느끼지 않았다.

    살며시 눈을 뜬 그의 앞에는 마현이 검을 뽑고 있었다.

    충격음은 거인이 낸 게 아닌, 마현이 낸 것이었다.

    털썩!

    거인은 강기에 뚫린 커다란 흔적을 남긴 채 뒤로 넘어갔다.

    거인의 복부는 휑한 게 무언가가 통째로 쥐어뜯은 것만 같은 모양새였다.

    그 모습을 휘둥그런 눈으로 지켜보던 김덕배의 귀로 마현의 목소리가 들렸다.

    “몸에 쓸데없는 동작이 많다. 또한 생사대적을 앞두고 생각이 많아. 그로 인해 동작이 둔해져 적에게 오히려 약점을 노출했다.”

    “죄송합니다.”

    김덕배는 어쩔 줄 몰라하며 고개를 숙여 사과했다. 마현이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아니다. 외려 제대로 무공도 익히지 않았던 네가 이 정도를 할 수 있었다는 게 대견하다. 이제 내가 하는 것을 지켜보거라.”

    “네.”

    마현이 검을 빼들었다.

    검을 든 손을 아래로 늘어뜨린 채 거인에게 달려가던 마현이 한순간 손을 움직였다.

    스팟!

    조금 전 김덕배가 보인 자세와 비슷했다.

    차이가 있다면 한 박자가 빨랐다는 것과 검에서 뻗어 나온 기운이 달랐다는 것.

    스걱.

    쿠쿵.

    단 한 번의 동작으로 거인을 쓰러트린 마현에, 덕배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는 그 자리에서 격동에 차 바닥에 엎드렸다.

    마현이 일부러 그와 같은 자세를 취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감사합니다. 사부님.”

    “내가 한 게 어떤 건지 알겠느냐?”

    “솔직히 느낌은 오는 데 잘 모르겠습니다.”

    “계속 반복해야 한다. 한 동작이 완전히 몸에 익을 때까지 반복해봐라.”

    “네, 사부.”

    마침 거인족 한 마리가 다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마현은 그놈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럼, 저놈에게 가서 다시 배운 걸 해보거라.”

    “이야아아앗!”

    김덕배는 기합을 내지르며 조금 전 마현이 보여줬던 동작을 흉내 냈다.

    이어 마현이 그랬듯 늘어뜨린 검을 그대로 들어 올려 거인에게 뻗었다.

    그때 그의 등 뒤에서 마현이 따라오며 그의 팔을 툭툭 쳤다.

    “여기서는 무릎을 좀 더 굽히고 허리를 펴야 한다. 그래야 힘이 더 실릴 수가 있다.”

    마현이 지적하며 도와준 덕에 김덕배는 비슷한 동작이지만 무언가 달라진 걸 느낄 수가 있었다.

    “아…….”

    “알겠느냐?”

    김덕배가 고개를 끄덕였다.

    말로 알려주는 것과 실제로 그의 몸을 만져주며 동작을 고쳐주는 것은 확연히 달랐다.

    “방금 전의 느낌을 기억하거라. 눈으로 보고 몸으로 느낀 것을 잊지 않기 위해서는 반복된 훈련이 필요하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그럼, 나는 이제 다른 이들을 도와줘야 하니 지금부턴 혼자 해보도록 하거라.”

    툭툭.

    마현은 김덕배의 어깨를 두드렸다.

    “감사합니다. 사부님.”

    등을 보이고 손을 흔드는 마현에게 덕배는 허리를 숙이며 인사했다.

    “움바리 사바라 움메오. 일어나라 나의 병사여.”

    최형석이 사령술사 지팡이에 마나를 넣으며 주문을 외웠다.

    스르륵.

    덜커덕. 덜그럭.

    투욱. 투욱.

    땅에서 흙을 뒤집어쓴 채 몸을 일으키는 존재가 있었다.

    거대한 몸을 일으킨 언데드는 거인족이었다.

    온몸에 발리스터 화살을 꽂힌 채 일어선 거인족은 조금 전에 죽은 자였다.

    “최형석 씨, 사령술이 많이 늘었네요. 방금 죽인 적을 언데드로 일으키다니 대단해요.”

    이나연이 감탄을 터트렸다.

    “네 부대와 훈련하면서 사령술이 꽤 늘었다. 그 덕에 레벨이 올랐지.”

    “도움이 되었다니 기쁘군요. 성취를 얻은 것을 축하해요. 이제 날 엄호해주세요. 선두는 내가 맡겠어요.”

    이나연은 최형석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녀의 호신술 익히기 역시 한 단계 진보했다.

    무엇보다 성기사로서 레벨이 올라감에 따라 여신의 신성력이 자연스레 늘어났다.

    그녀의 뒤를 최형석이 부리는 언데드 거인족이 쿵쿵 거리며 따라갔다.

    성기사와 언데드가 함께 나아가는 모습.

    무언가 이질적이면서도 잘 어울렸다.

    “여신이시여, 제게 당신의 힘을 주소서. 당신의 적을 물리치려고 합니다.”

    이나연이 기도와 함께 검을 뽑았다.

    그녀의 몸에서 밝은 신성력이 뿜어져 나왔다.

    “쿠르르, 저놈들은 뭐지?”

    이나연과 언데드 거인을 본 거인족들은 당황해 서로를 돌아보았다.

    자신들의 일족이었던 자가 죽었다 살아난 모습을 본 거인들의 얼굴에는 두려운 빛이 감돌았다.

    “흐흐흐, 어디 동족이었던 자를 상대로 얼마나 잘 싸우는지 보자꾸나.”

    최형석은 자신이 일으킨 언데드 거인을 사랑스럽게 바라봤다.

    “우리가 기차에서 동료였던 좀비들을 상대할 때 어떤 기분이었는지 생각해보면 알 수 있지.”

    장현이 최형석의 옆에서 말했다.

    “그렇군요. 그러고 보니 기차역에서 좀비가 나타났을 때 사람들의 충격이 컸죠. 이나연도 그때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아 마족화될 뻔 했고요.”

    “그래.”

    장현은 기차역에서 이나연이 마족화가 될 뻔했던 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김지혜.

    비록 영지에서 재회하긴 했지만, 이나연에게 큰 상처로 남았던 사람이다.

    튜토리얼 때부터 다른 이들을 보호하려 했던 이나연.

    겁에 질려있던 자들은 자연스레 이나연에게 몰려들었다.

    그 중 김지혜는 특히나 더 이나연을 의지했다.

    이나연 역시 자신을 따르던 김지혜를 챙겼다.

    그런 김지혜가 스켈레톤들에게 목이 잘려 죽자, 이나연은 이성의 끈을 놓았다.

    그 순간을 노린 마족이 그녀에게 접근했다.

    ‘정말 큰일 날 뻔 했지. 그녀가 그때 변이자가 되었다면 지금의 성기사 이나연은 없었겠지.’

    장현은 거인족을 상대로 맹활약하는 이나연을 보며 고개를 휘휘 저었다.

    “여신의 칼날!”

    이나연의 외침과 함께 그녀의 칼에서 강한 빛의 기둥이 솟아올랐다.

    기둥은 마치 검의 모습과도 같았다.

    검의 형상을 띤 빛의 기둥을 중심으로 강력한 신성력이 퍼지며 마계의 대기가 치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타올랐다.

    검은 연기를 뿜어내는 빛의 칼날에 거인들이 주춤거렸다.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때, 이나연이 뛰어들었다.

    스걱.

    그녀의 검이 휘둘러지자 빛의 기둥이 수백, 수천 조각으로 쪼개져 퍼져나갔다.

    그 조각에 스치는 모든 것이 잘려나갔다.

    숲도, 바위도, 거인족도. 가릴 것 없이 모두 마찬가지였다.

    쿠쿵.

    다행히 대부분의 조각들은 거인족들을 향해서 쏘아졌다.

    후두둑.

    신체가 수십 조각으로 잘린 거인족들이 쓰러졌다.

    “헉, 헉. 됐다.”

    그녀는 자신의 기술이 성공한 것에 기뻐했다. 하지만 극심한 체력을 소모한 듯 크게 지친 모습을 보였다.

    그녀가 쓴 여신의 칼날은 기존 디텍터의 병기술에서 얻은 스킬이다. 성기사 직업을 얻음으로 인해 스킬에 추가 변화가 생긴 것이었다.

    좌중은 이나연의 신위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마현이 감탄을 내뱉었다.

    “저 소저, 검공이 매우 놀라운 수준이군. 무공은 아닌 거 같은데. 스킬인가.”

    “맞아요. 저 기술은 나연 누나가 최근 얻은 스킬이에요.”

    김덕배가 뿌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스킬이라는 게 확실히 대단하군. 저 정도의 위력을 보일 수 있다니. 무인이 아닌 일반인에겐 저 정도만 해도 놀라운 성취지.”

    “무림인에 비한다면 어떤가요?”

    김덕배와 마현은 거인족들을 상대하며 대화를 나누었다. 두 사제는 어느새 꽤나 친밀해져 있었다.

    “저 정도면 검신합일의 경지에 비유할 수 있겠지.”

    “언 대주보다 강한 건가요?”

    “본신의 실력으로만 본다면 언 대주가 강하겠지만, 저 소저의 스킬이라는 검공만 놓고 본다면 언 대주도 위험할 수 있겠지.”

    “그럼 나연 누나가 더 강한 거군요. 스킬이라고 해도 나연 누나의 것이니까요.”

    “승부는 그것만으로 결정 나는 것이 아니다. 당장만 봐도 알 수 있지. 저 소저는 저 스킬을 쓰고서 저렇게나 지쳐 있지 않느냐.”

    마현의 말에 김덕배는 이나연을 쳐다보았다.

    확실히 그녀는 조금 전의 스킬로 지쳐있었다.

    “이후에는 스킬을 사용하기 부담스러울 테니 본신의 힘으로만 상대를 해야 한다. 강자를 상대로 저 스킬을 사용했는데, 한 번 만에 쓰러트리지 못 했다? 그러면 이후에는 아주 위험해지겠지.”

    “일종의 필살기군요. 성공하지 못하면 자신이 위험해지는 그런 거요.”

    “그렇다고 할 수 있겠지. 그러니 넌 필살기를 쓴 이후에도 계속해서 적을 몰아붙일 수 있도록 본신의 능력을 키워야 한다.”

    “네, 그래서 제가 이런 훈련을 받고 있는 건가요?”

    김덕배가 불만스런 얼굴로 자신의 검을 흔들었다.

    마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김덕배는 장검을 들고 한 가지 방식의 공격을 계속해 반복하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이나연의 병기술 익히기와도 흡사했다.

    마현이 그에게 설명했다.

    “네가 하는 것은 삼재검법이라는 것이다. 모든 검술의 기본이지. 가로 베기, 세로 베기, 찌르기로 이루어진 검술의 기본 동작으로, 모든 응용 검술의 기본이다. 이 세 가지 초식을 완벽하게 다룬다면 이후 어떤 초식을 익히든 빠르게 습득할 수 있을 것이다.”

    “사부, 무슨 말씀인지는 알겠는데요. 이건 제가 혼자서 연습할 테니 사부가 쓰던 검술을 가르쳐주시면 안 되나요? 한 번 휘두르면 거인족의 몸뚱이가 터져나가는, 그런 검술 좀 가르쳐주세요.”

    “기지도 못하는 녀석이 날려고 하다니. 감당할 수 있겠느냐?”

    “일단 한 번 해보는 거죠. 지금 기초부터 다질 시간이 어디 있습니까. 부족한 건 스킬로 때우죠, 뭐.”

    처음 마현의 제자가 되었다는 감격은 어느새 사그라지어 있었고, 기본적인 검술을 배우는 것에 대한 불만이 차올랐다.

    기본기는 장현에게 배운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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