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화. 거인족과의 경기 (3)
거인이 삼두견의 화염 공격과 스켈레톤들의 찌르기에 신경이 분산된 틈을 타 크레온이 거인의 뒤쪽 사각지대에서 공격해 들어갔다.
크어어엉.
화르륵.
삼두견의 공격에 뒤돌아 팔을 휘둘렀다.
그 공격으로 삼두견은 박살나서 소환 해제되었지만, 언데드 크레온은 이 틈을 놓치지 않았다.
크레온이 생전에 쓰던 마라늄제 둔기를 휘둘렀다.
후우웅.
최형석이 마나를 계속해서 공급해줌에 따라 크레온은 전혀 지친 기색 없이 휘둘렀다.
반면 거인은 상당히 지쳤는지 이전보다 반응 속도가 느렸다.
콰직!
크레온의 둔기가 거인의 머리를 부수었다.
비틀.
쿠쿵.
거인은 머리에서 피를 흘리며 무릎을 꿇었다.
그때 다시 크레온이 둔기를 양손으로 잡고 반원을 그리며 거인의 머리를 향해 내려쳤다.
퍼퍽!
마치 바위가 쪼개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거인은 머리가 완전히 박살이 나 죽었다.
언데드 크레온이 거인족을 이겼다.
거인이 죽고 마나 스톤이 나오자, 최형석이 눈을 빛내며 달려가 재빨리 흡수했다.
[거인족을 처치하였습니다.]
[거인족 킬 : 10]
[레벨이 올랐습니다.]
‘드디어 열 명째.’
거인족 열 명을 사냥하자 레벨업 알림이 떴다.
“잘했어, 크레온.”
크레온을 칭찬한 최형석은 자신의 몸에서 느껴지는 기운에 만족했다.
‘이제 슬슬 직접 전투에 나서볼까?’
뒤에서 지켜만 보고 있으려니 피가 끓었다.
항상 전투의 최전선에서 싸워왔는데, 사령술사가 된 후부턴 직접 전투를 벌이기보다 언데드를 이용한 전투를 했었다.
기껏 무기를 들고 싸워도 자신의 원래 무기인 사시미를 쓰는 일은 없었다.
창과 방패를 쓰는 집단전투의 한 축으로만 싸워왔다.
그러다보니 갑갑했다.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듯.
그럼에도 어쩔 수 없었다.
그는 장현이 아니었기에.
‘이제는 해볼 만할 거 같은데.’
최형석의 눈이 빛났다.
아직 장현에게는 한참이나 모자라지만, 눈앞의 거인족은 직접 쓰러트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오랜만에 놀아볼까.”
최형석이 씨익 웃으며 양손에 사시미를 쥐고 직접 달려 나갔다.
장현은 쑤엉을 소환했다.
최형석이 삼두견을 소환해 후방을 교란했듯, 쑤엉 역시 같은 역할을 했다.
다만 중급 정령이 된 쑤엉이 뿜어내는 화염은 삼두견의 그것과는 화력 자체가 달랐다.
화아악!
등 뒤에서 날아온 쑤엉의 화염은 거인족을 태워버렸다.
그뿐 아니라 거인의 전면에 있던 김덕배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들어 방패!”
이나연이 지시를 내리며 방패로 전면을 막았다.
김덕배와 김태석 역시 재빨리 방패를 들어올렸다.
화염은 일행들의 방패를 달구었고, 방패 손잡이까지도 열기가 전해졌다.
“크윽! 쑤엉의 화염이 엄청나게 강해졌어. 용광로 같아. 쑤엉이 이 정도로 성장했으면 장현은 말할 것도 없겠지.”
김덕배가 방패 뒤에서 우는 소리를 했다.
이나연과 김태석 또한 같은 심정이었다.
장현은 튜토리얼 때부터 달랐다. 성장 속도가 눈부시게 가팔랐다.
부지런히 쫓아가야했다.
안 그러면 장현이 저 멀리 혼자 가버릴 것만 같았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지금 거인족을 집중해 쓰러트려야했다.
전투의 최전선에 서야지만 강해질 수 있다.
이번 경기가 끝나고 나면 생존자들은 영지에 남아있는 자들과는 비교조차 안 될 정도로 강해질 것이다.
“찔러 창!”
이나연의 명령에 김태석의 곡괭이와 김덕배의 창이 거인족의 목을 동시에 찔렀다.
푹푹!
끄어어억. 쿠쿵.
“이번 놈은 내 차례지.”
김태석이 마무리로 거인족의 목을 날렸다.
그는 무기를 거두고는 마나스톤을 흡수했다.
일행들은 느리지만 꾸준히 성장하고 있었다.
어느덧 경기장 좌측에서 난입한 거인족들이 모두 쓰러졌다.
후우.
플레이어들 모두 한 숨 돌리며 휴식을 취했다.
언제 다시 거인족들이 나타날지 모른다.
무엇보다 아직 보스가 남아 있다.
무림인들 중 거인족에게 희생된 자들이 꽤 있었지만 그들은 익숙한 듯 곧 시신을 수습했다.
그때 한 젊은 청년이 장현에게 다가왔다.
“반갑습니다. 그대의 무위에 경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당문의 무공을 쓰는 듯 하던데 혹시 출신을 알려줄 수 있겠습니까?”
경계가 어린 표정임에도 예의를 잃지 않고 무림인 특유의 포권을 취하고 있었다.
장현은 그가 언무룡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내임을 알고 있었다.
‘마현을 따르는 친위대장.’
무력을 중요시하는 언가는 무림 오대세가의 한 축이다.
정사마가 합쳐진 무림맹은 출신에 따라 파가 나뉘었지만, 마현의 극강한 무위만을 추종하는 자들 또한 꽤 많았다.
언무룡은 그런 이들을 이끄는 친위대의 수장이었다.
“난 장현, 이쪽은 나의 동료들입니다. 우리는 대한민국에서 왔습니다.”
“대한민국? 처음 들어보는데, 혹시 그대는 중원인이 아니란 말이오?”
언무룡은 들어보지 못한 나라 이름이 나오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렇습니다.”
“그럼, 무림인도 아닌 그대가 당문의 무공은 어떻게 익혔는지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튜토리얼에서 히든 보상으로 얻었습니다.”
“음. 알겠습니다.”
언무룡은 미심쩍었지만 상대가 밝히려 하지 않자 할 수 없이 포권을 취하며 인사하고는 물러났다.
그는 마현에게 다가가 장현이 한 말을 전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언무룡의 말을 들은 마현.
그가 이내 직접 장현에게 다가왔다.
“반갑소. 장현 대협. 난 저들을 이끌고 있는 마현이라고 하오.”
“장현입니다. 그리고 이들은 제 동료들입니다.”
장현은 마현에게 포권을 취하며 정식으로 인사했다.
마현은 흐뭇하게 입 꼬리를 올렸다.
그의 태도에서 호감을 느낀 것이다.
“이쪽에서부터 최형석, 이나연, 김덕배, 김태석입니다.”
“인원이 별로 되지 않는구려.”
확실히, 마현의 무림인들이 수십 명이 넘어가는데 반해 장현 일행은 고작 다섯 명에 불과했다.
일정 수준 이상의 강자로 제한하다보니 기준을 통과하는 자들의 수가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다.
지구인과 무림인의 차이였다.
“최형석이오. 큰 형님을 모시고 있소.”
장현이 일행을 소개하자 최형석이 가장 먼저 나서서 자신을 소개했다.
마현은 최형석이 장현을 큰 형님으로 칭하자 ‘과연.’이라며 고개를 끄덕였을 뿐 이상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외모로 보았을 때는 최형석이 나이가 훨씬 많아보였다.
하지만 무림에서는 강자가 윗사람이 되는 경우가 흔했기에.
“반갑소. 그대의 능력 또한 놀라웠소이다. 사령술에 능하면서도 본신의 무력 또한 뛰어나다니. 훌륭하오.”
최형석의 입 꼬리가 스윽 올라갔다.
마현의 무위는 그도 직접 봤다.
장현 외에도 거인족들을 손쉽게 잡는 자가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었다.
무력만 따진다면 장현을 능가할 것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래도 큰 형님의 뛰어난 점은 무공이 다가 아니니까.’
최형석은 마현과 장현을 번갈아 보며 내심 저울질했다.
마현의 시선이 이어 이나연에게 향했다.
이나연은 고개를 까닥하며 가볍게 인사했다.
“전 이나연입니다.”
“반갑소. 그대의 지휘 또한 놀라웠소. 일행을 일사분란하게 이끄는 모습에 감탄했다오.”
“감사합니다.”
이나연은 미소를 지었다.
“김태석이외다.”
“전 김덕배입니다.”
“반갑소이다.”
마현은 이번에는 짧게 인사를 받아주었다.
장현, 최형석 이외에는 사실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나연은 진법을 이끄는 수장으로 보였기에 눈여겨 볼만하다 생각한 것이다.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칭찬의 말이 없자, 김태석과 김덕배는 표정이 살짝 굳었다.
자존심이 상했지만 사실 그들도 스스로가 모자라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특히 김덕배는 명목상이지만 영지전에서 영주라는 직을 가졌었기에 더욱 크게 자괴감을 느꼈다.
‘내가 명색이 영주인데, 너무 약해서 거들떠도 안 보는구나. 제길.’
실력이 받쳐주지 않는 직위는 허무하다는 것을 느꼈다.
마현은 이윽고 장현에게 말을 건넸다.
“장 대협, 무림인이 아니라고 들었소만 무공을 익히고 있었구려.”
마현은 장현을 보자 한눈에 그가 스킬로 무공을 흉내 내고 있는 게 아니란 걸 알아봤다.
장현의 기를 운용하는 수준은 스킬로 흉내 내는 게 거의 불가능한 정도였다.
장현 역시 그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이번에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사부에게 거짓말을 하면 신뢰를 잃게 돼.’
두 사람은 회귀 전 사제지간이자 동시에 동료였다.
이번 생에서도 마현은 장현에게 가장 중요한 존재가 될 것이다.
장현이 언무룡에게 했던 대답과는 달리 이번에는 고개를 끄덕이며 시인하자, 마현은 눈빛을 빛냈다.
언무룡에게 이미 스킬로 무공을 얻었음을 전해 들었는데.
자신에게만 사실대로 시인한 건 무언가 이유가 있어서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때 장현이 마현을 바라보며 말했다.
“당문독공을 익혔습니다.”
“혹시 그것은 스킬로 얻은 것이오?”
“아닙니다.”
마현의 곁에 있던 언무룡이 장현의 말에 낯빛을 굳혔다.
“아니, 당신. 나한테는 무공을 스킬로 얻은 거라고 했잖소. 왜 내게 거짓말을 한 것이오?”
언무룡의 말투가 곱지 않았다.
자신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걸 대놓고 시인했으니 어찌 그가 곱게 보일까.
“언 대주, 그만. 장 대협에게도 이유가 있을 테니 기다리게.”
“알겠습니다, 맹주. 죄송합니다.”
마현의 말에 수긍을 하기는 했으나, 장현을 보는 눈빛은 여전히 차가웠다.
당사옥과 현학 역시 눈빛이 변했다.
그 둘은 진작부터 장현에게 궁금한 것이 많았기에 눈여겨보고 있었다.
마현 맹주가 장현에게 다가가자 기회다 싶어 다가온 것이다.
현학은 마현에 이어 무림인 중 무척이나 인지도가 높은 고수.
더군다나 마현과도 친밀한 관계였기에, 마현의 친위대들은 그를 제지하지 않았다.
장현은 언무룡과 현학은 신경 쓰지 않고 마현만을 직시했다.
마현은 장현이 이후로 아무 말 없이 자신을 쳐다보기만 하자, 무언가 느낀 듯 전음으로 물었다.
-혹시 내게 비밀리에 하고픈 말이 있는 것이오?
입술도 움직이지 않는 가운데 들려오는 마현의 전음.
장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마현이라면 자신의 행동에서 의도를 눈치 챌 거라고 생각했다.
끄덕.
장현은 고갯짓으로 대답했고, 마현의 눈빛이 빛났다.
-자네 잠시 나랑 얘기 좀 하세.
장현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마현은 장현과의 대화를 위해 주위를 물렸다.
“무룡, 난 장현 대협과 잠시 얘길 나눌 테니 호위를 좀 부탁하네.”
“알겠습니다. 맹주.”
언무룡은 주위 사람들에게 수신호를 했다.
척척척.
십여 명의 무림인들이 순식간에 장현 일행을 둘러쌌다.
“이거 뭐냐!”
최형석이 고함을 질렀다.
동시에 일행들은 방패를 들고 창을 전면으로 내밀었다.
싸늘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장현이 일행들을 진정시켰다.
“괜찮아. 잠시 얘기 좀 하고 올 테니 기다려.”
“장현아, 괜찮을까?”
끄덕.
장현이 마현에게 다가가자, 호위무사들은 마현과 장현을 위한 공간을 만들었다.
마현은 기의 벽을 추가로 만들어 소리가 새어나가지 않게 했다.
“장 대협. 이제 누구도 듣지 못한다오.”
“네. 맹주님.”
“하하. 무림인이 아닌 분께 맹주라는 호칭을 들으니 기분이 좀 이상하구려. 거두절미하고 묻겠소. 내게 하고픈 말이 당문독공과 관련된 것이오?”
마현은 입가에 미소를 그대로 둔 채 차가운 눈빛으로 장현을 훑었다.
꿀꺽.
마현이 회귀 때 전해준 기억이 떠올랐다.
-장현. 과거로 돌아가서 나를 만난다면 그 얘길 꺼내어 보거라. 내가 무림에 출두하게 된 계기. 그건 오직 너에게만 들려준 얘기다. 이유는 문파의 문주에게만 내려오는 임무이기 때문이다. 일인전승 문파 염라문의 32대 문주 마현이 너에게 염라문을 맡긴다.
“지금부터 할 얘기는 누구도 들어선 안 되는 얘기입니다.”
장현이 얘기를 엿들으려는 현학과 당사옥을 힐끔거리며 말했다.
마현이 고개를 저었다.
“걱정 말게. 지금 여기는 기의 벽이 쳐져 있어서 누구도 듣지 못하네.”
“전, 염라문의 33대 문주. 미래에서 회귀한 회귀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