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화. 장현의 선물 (2)
화르륵.
쑤엉이 불을 하얗게 지폈다.
백열하는 불 속으로 장현은 마라늄 금속을 넣었다.
곧 금속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지금이야! 바람을 넣고 불을 더 강하게 지펴.’
화로에 바람이 공급되면서 불이 더욱 강해졌다.
곧 마라늄이 빛을 내더니 끝에서부터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그 순간 장현은 마라늄을 화로에서 꺼내 모루에 옮기고는 재빨리 망치로 두들겼다.
땅땅땅!
망치로 두들기면서 조금씩 마라늄이 펴지기 시작했다.
‘더욱 얇게 펴야 해.’
장현은 계속해서 마라늄 금속을 펴나갔다.
이번엔 무기를 만드는 게 아니라 금속인형을 만드는 것이기에 접지 않고 펴기만 했다.
한참을 두들기며 골고루 펴나가자 금속은 얇고 넓은 판이 되었다.
아직 뜨겁게 달구어진 판이 천천히 식는 동안 그는 인형을 보며 도면을 그렸다.
금속인형을 만드는 작업은 복잡한 과정을 거친다.
철판을 만들고 도면의 모양대로 철판을 잘라야 한다.
그 후 그걸 용접과 가접으로 붙인 후에 표면을 매끄럽게 하는 샌딩 작업까지 하고 나면 색칠하는 도장작업으로 끝을 맺는다.
장현은 만티코어 형태를 머리, 몸통, 다리, 날개로 나누었다.
그러다 보니 마라늄 금속이 네 덩이가 필요했다.
찌이이익.
마라늄을 얇게 편 판에 각각의 형태대로 그림을 그리고 오려냈다.
잘랐다고 해서 그걸 바로 쓸 수는 없다.
모양을 잡아야 했다.
선대로 자른 판을 휘어서 머리 형태를 만들었다.
‘이건 숙련도가 올라와야 하는데.’
무기나 농기구 등의 아이템을 만드는 것과 금속인형 같은 조형을 만드는 것은 다르다.
용도에 따라 휘어짐의 정도가 각기 다르다 보니 맞추는 게 어려웠다.
아무리 그가 1회차때 대장장이 조각의 소유자였다곤 하지만, 숙련도가 필요한 작업은 연습이 필요했다.
고급 대장장이만 되었어도 훨씬 수월했겠지만 아직은 중급 대장장이였다.
그렇더라도 그의 안목은 회귀전과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몸이 아직 못 따라가 줄 뿐.
장현은 끙끙거리며 휘었다 폈다를 반복한 끝에 간신히 만티코어 형상을 만들었다.
다음으로 그는 각각의 마디를 붙이는 용접작업을 위해 연성술 스킬을 사용했다.
치이익.
중급 연성술에 이른 그의 손이 스쳐 지나갈 때마다 부위별로 대충 이은 접합 부위가 매끄럽게 합쳐졌다.
마치 그 부분이 원래 이어져 있었던 것처럼 되었다.
“이제 어느 정도 만티코어 형태가 나는걸.”
집중해서 작업을 했더니 정신적으로 지쳤다.
이제 남은 건 눈, 코, 그리고 꼬리다.
만티코어는 원래 냉혹한 눈을 가지고 있어 쳐다만 봐도 일반인은 다리가 풀려 주저앉을 정도로 무섭다.
이건 선물용인만큼 가능한 순둥순둥한 눈동자를 붙여줄 생각이었다.
‘어릴 때 키우던 규봉이의 눈처럼 만들면 되겠지.’
그가 지구에서 키우던 강아지 닥스훈트 규봉이의 눈이 가장 순둥순둥했다.
규봉이가 자신을 올려다보며 간식을 바랄 때의 그 눈과 표정을 떠올리며 장현은 만티코어 금속을 세공하기 시작했다.
‘세공을 할 땐 녹이는 속성이 좋겠지.’
연성술을 약하게 쓴다면 세공에 사용하기 적당하다.
장현은 손가락을 세워 연성술 스킬의 빛을 미세하게 뽑아냈다.
처음에는 이런 조절이 안 되었지만, 계속 사용하다보니 익숙해져 가능해진 것이다.
손가락에서 금속을 녹이는 빛이 뿜어져 나오자 마라늄은 삽시간에 녹아들었다.
치이익.
‘눈동자의 가운데는 볼록하고, 양 끝은 오목하게. 모양은 동글동글하게 하면 좀 더 순둥하겠지.’
손가락이 미세하게 계속 움직였다.
눈을 끝내자 이어서 코도 곧장 들어갔다.
코끝을 동글동글하게 붙이자, 확실히 규봉이와 비슷한 분위기가 풍겼다.
‘마치 쉬하고 나서 보상으로 간식을 바라는 눈빛인걸.’
장현은 마지막으로 엉덩이에 말린 꼬리를 붙이는 것으로 작업을 끝냈다.
연성술의 영향으로 색상도 붉은 빛깔이 돌았기에 따로 색칠하는 도장작업은 생략해도 되었다.
그때 알림이 떠올랐다.
[새로 제작한 아이템의 이름을 지어주세요.]
“만티코어 조형상.”
[새로운 아이템 만티코어 조형상이 마계 아이템 목록에 올랐습니다.]
[재료 레벨 4의 금속으로 만티코어 조형상을 제작하였습니다.]
[고급 대장장이까지 1개의 제작 퀘스트가 남았습니다. (3/4)]
“호오, 꽤나 괜찮은데. 정말 자신할 만했구나. 그런데 인형이 아니라 조형상이군.”
지로발이 장현이 만든 만티코어 조형상을 보고 감탄했다.
그가 보기에 드워프제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충분히 상품으로서의 가치가 있었다.
더구나 인형이 아닌 조형상 아닌가.
희귀성으로 따지자면 오히려 드워프제 인형보다 더 낫다.
만티코어 조형상은 디테일한 부분도 나무랄게 없었다.
각 부분의 연결고리 마감 또한 깔끔했다.
‘이거 정말 괜찮은데. 이정도면 충분히 상품이 되겠어.’
상점 주인답게 그는 순식간에 만티코어 조형상의 상품성을 측정했다
일반적으로 조형상은 금속판을 연결시켜 제작하기엔 이음새 부분이 매끄럽지 못하다.
아무리 샌딩 작업을 한다 하더라도 흔적은 남기 마련이고, 그런 흔적이 적을수록 가치가 높아진다.
그런데 장현이 만든 조형상에는 그러한 점이 보이지가 않았다.
마치 원래부터 하나로 이어졌고, 그것을 휘고 조각해낸 것처럼 보였다.
‘이걸 정말 이 녀석이 만든 건가. 에레뜨 금속을 복원시켰다기에 금속 제련에 뛰어날 거라 생각했지만, 조형하는 재주도 보통이 아니야.’
지로발은 혹시 마법의 작용인가 싶어서 마법의 흔적을 살펴보았지만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마법아이템과 스크롤을 팔고 있기에 마법 특유의 에너지를 느낄 수가 있다.
‘마법도 아니야. 그렇다면 순수하게 손재주로 했다는 건데.’
지로발은 몸에서 전율이 흘렀다.
분명 조형상을 깊이 들여다보면 거칠었다.
눈, 귀, 머리카락의 갈퀴와 날개까지.
표현이 썩 부드럽지 못했다.
그러나 그게 더 예술성을 돋보였다.
좀 전까지 느껴지지 않았던 장점이 돋보였다.
꿀꺽.
‘자, 잡아야해. 이 녀석은 마나 포인트를 낳는 황금거위나 다름없어.’
지로발의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는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상점 주인의 권한을 떠올렸다.
[상품 공급자와 독점 계약을 맺게 되면 수수료로 매출의 3%를 가질 수 있다.]
마왕이 리자드맨 종족을 지배하면서 그는 쭉 상점 주인이라는 임무를 맡게 됐지만, 한 번도 독점 계약을 맺을 기회가 없었다.
영지 내에 뛰어난 발명가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걸출한 대장장이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눈앞에 있는 장현 정도가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다.
지로발은 긴장되는 마음을 숨기기 위해 노력했다.
“내가 제안할 게 있는데 말이야.”
장현은 자신이 만든 만티코어 조형상을 바라보다 지로발의 말에 고개를 돌렸다.
“제안이라, 뭐지?”
“이 만티코어 조형상 말이야. 독점 공급계약을 맺었으면 하는데 어때?”
“독점계약?”
플레이어들에게 제안하는 조건 중에 좋은 조건은 드물다.
만약 그런 조건을 받을 수 있다면 그건 대단한 행운이라고 할 수 있다.
1회차 때 최고의 대장장이로서 자신의 비위를 맞추는 상점 주인을 상대로 갑의 위치가 되었던 경험도 물론 있었다.
그런 장현도 처음부터 그런 대접을 받은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상점 주인 중에 좋은 자는 드물며 대부분의 신입 플레이어는 좋은 먹잇감이다.
여러 번 속고 뒤통수를 맞아가며 배운 경험으로는 그랬다.
리자드맨이라고 해서 다를까.
자연스레 독점공급을 제안하는 지로발에, 장현은 본능적으로 경계심이 들었다.
그는 문득 궁금해졌다.
리자드맨으로써 은혜를 갚겠다는 신념과, 상점 주인으로써 이익을 추구하고자 하는 욕망.
이 사이에서 지로발이 어떤 선택을 할지.
처음에 특별상점으로 호구 잡으려던 모습 그대로라면 그냥 끝이다.
어차피 여건이 된다면 스스로 마계 스토어에 입점하고 직접 만든 상품을 소싱할 생각이었다.
그렇지만 아직은 먼 미래.
그동안은 기존의 상점을 이용하는 것도 괜찮을 것이다.
“독점이라면 8대2로 해주지. 물론 드워프제와 마찬가지로 300 마나 포인트로 가격을 책정해서 말이야.”
“300 마나 포인트에 8대2라…….”
장현은 모호한 반응을 내비쳤다.
8대2라면 꽤 나쁘지 않다.
평균적으로 마계에서 통용되는 비율이 7대3인걸 감안한다면 최소 등 처먹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장현이 대답이 없자, 지로발은 애가 닳았다.
“이건 정말 좋은 제안이야. 네가 이쪽 물정을 몰라서 그래.”
“글쎄. 왠지 다른 데서도 그 정도 조건으로는 할 수 있을 거 같은데. 넌 이걸 엄청 갖고 싶어 하지 않았나. 그럼 좀 더 신경써봐.”
“이봐. 이보다 더 좋은 조건은 없어.”
“그럼 조건이 있어. 일단 독점 공급은 만티코어 조형상 하나만으로 하지.”
장현의 말에 지로발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장현이 제작한 모든 제품에 대한 독점 공급권을 원했기 때문이다.
“앞으로 만들 제품이나 마계 아이템 목록에 올라온 제품들도 내가 독점 공급하고 싶은데.”
“욕심이 많군. 먼저 너의 능력을 보여야 하지 않을까. 네가 말한 비율이 제일 좋은 비율인지도 알아봐야지. 그리고 비율만 중요한 게 아니라고. 영업도 중요하잖아.”
실상은 그게 아니지만 장현은 둘러댔다.
직접 상점을 마계스토어에 입점 시킬 것이기에 만티코어 조형상 외에는 계약할 생각이 없었지만 굳이 알려줄 필요는 없었다.
더군다나 지금 시점에서 플레이어가 마계스토어를 알고 있다는 것 또한 말이 되지 않는 일이다.
그에게 분명 의심을 받게 될 것이다.
다행히 지로발은 그대로 넘어갔다.
“알겠다.”
“그리고 조건이 또 있어.”
“뭐지?”
“만티코어 조형상을 만들 원재료 말이야. 앞으로 거기에 필요한 금속을 비롯해서 원재료들은 지로발이 준비해줘.”
“원재료 전부를 말이야? 물량이 엄청날 텐데.”
“어려운가. 그럼 나도 굳이 독점공급권을 너한테 줄 필요는 없는 거 같은데. 원재료를 공급해줄 수 있는 상점에 독점공급권을 주는 게 나로서는 더 나으니 말이야.”
장현은 표정을 굳히며 말했다.
“아니다, 할 수 있다. 그렇게 하도록 하지.”
지로발이 서둘러 승낙했다.
“넌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다른 사람이군. 대장장이가 이렇게 사업머리도 있을 줄이야. 직접 사업을 해도 되겠어. 대신 나와의 계약 내용은 비밀로 붙여야 돼. 이런 내용이 알려진다면 기존 고객들의 불만을 감당하기 힘들다. 그뿐 아니라 같은 업계에서도 배척받게 되거든.”
“물론이다. 그런 건 염려하지 말도록.”
장현은 지로발의 주의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합의가 이루어지자 장현은 미소를 지었다.
이 정도면 나쁘지 않다.
아니, 오히려 그의 말대로 좋다고도 할 수 있다.
지금은 고작 중급 대장장이이자 튜토리얼을 갓 클리어한 상태.
아직 영지에 제대로 된 사업체도 갖지 못한 상태의 플레이어에게 독점 공급계약을 맺는 상점 주인을 구하기란 쉽지 않다.
무엇보다 원재료를 알아서 구해준다는 점이 컸다.
그렇게만 해준다면 나중에 장현이 따로 상점을 마계스토어에 입점시키더라도 그와는 협력할 용의가 있었다.
지금 지로발이 장현에게 해준 조건은 분명 리자드맨 종족의 은인이라는 점이 작용한 것이다.
“그럼 계약 스크롤을 쓰도록 하지.”
지로발이 스크롤로 된 계약서를 내밀고, 장현이 꼼꼼히 확인한 후 승인하자 시스템 알림이 떴다.
[장현과 지로발의 계약이 성립되었습니다.]
[플레이어 장현이 제작한 만티코어 조형상은 리자드맨 상인 지로발이 독점적으로 공급합니다. 조형상에 필요한 원재료는 지로발이 제공합니다. 세부사항은 붙임 첨부파일을 참고하세요.]
[붙임 : 세부사항]
장현과 지로발 모두 만족스런 거래였다.
‘앞으로 마나 포인트 걱정을 할 일은 없겠군.’
마족에게 비싸게 팔아먹을 수 있는 물품을 만들면 마나 포인트 때문에 사냥을 할 필요가 없었다.
더불어 영지의 먹거리 사업을 하나 마련했다는 것이 고무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