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화. 안젤라의 재방문 (6)
안젤라는 벌떡 일어나더니 아까 꺼냈었던 섀도우 마스크와 힌지 모듈을 장현에게 던졌다.
“시간이 충분하다면 만들어낼 수 있다고 했으렷다.”
“아, 이런.”
장현은 당황한 와중에도 조심스레 그것을 집어 들었다.
너무도 갑작스런 상황변화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안젤라는 이어 큰소리로 로메드를 불렀다.
“로메드! 로메드!”
그때 로메드는 술 창고에서 아나콘다 뱀술을 항아리째 계속 마시다가 취해 쓰러져있었다.
그는 멀리서 안젤라의 목소리가 들리자 몸을 일으키며 대답했다.
“소성주님. 끄어어억!”
로메드는 비틀거리며 일어서려 했지만.
풀썩, 다리가 꼬여 넘어졌다.
“뭐하는 거야? 내가 취할 정도로 마시지 말라고 했거늘! 이게 무슨 꼴이야!”
안젤라가 크게 화를 냈다.
로메드는 갑자기 화를 내는 안젤라의 모습에 영문을 몰랐다.
이런 경우가 비일비재했기에 금새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고 사죄했다.
“죄, 죄송합니다. 소성주님.”
“에잇! 너도 꼴보기 싫어. 난 먼저 성주성으로 갈 테니 넌 알아서 오도록 해!”
안젤라는 버럭 화를 내며 나가버렸다.
“헉! 소성주님! 안젤라 소성주님!”
로메드는 당황하며 안젤라를 뒤쫓아 갔다.
장현은 그저 어리둥절한 채 안젤라가 나간 문을 가만히 쳐다보다 서둘러 뒤쫓아 갔다.
‘뭐지, 내가 뭘 잘못한 건가?’
장현은 안젤라가 왜 갑자기 화를 내며 가버렸는지 알 수 없었다.
‘설마 대장장이 일을 즐기지 못했다는 것 때문에?’
그건 아닐 것이라 생각했다.
생각해보니 조금 전 안젤라의 심기를 건드린 것이 여러 번 있었다.
피 맛이 나는 라스트베리 와인이라든지 육즙을 미오글로빈이라고 지적한 것이라든지.
‘내가 너무 말 꼬투리를 잡았군.’
이래서 글로 배운 연애는 실제로 도움이 안 되는 것이다.
장현이 자책하며 뒤따라나갔다.
그때 안젤라는 이미 성문 입구까지 빠르게 가고 있었다.
멀리서 봐도 그녀가 씩씩 거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게 그렇게나 화낼 일인가.’
장현은 한숨이 나왔다.
지네차에 올라탄 안젤라는 싸늘한 표정으로 멀리서 자신을 바라보는 장현을 향해 말했다.
“잘.받.았.다. 나는 먼저 성에 돌아가 있겠다. 내가 준 숙제에 대한 답을 기대하고 있겠다. 그때도 지금처럼 똑.똑.한 모습을 기대하도록 하겠다.”
“…….”
할 말이 없었던 장현은 그저 안젤라가 숙제라고 던져준 아이템들을 인벤토리에 넣어뒀다.
이렇게 된 것 어떻게든 그것의 정체를 조금이라도 파악해야 했다.
“소성주님! 안젤라님!”
로메드가 비틀거리며 뛰어오더니 안젤라의 지네차에 올라탔다.
“흥! 그렇게 취한 채 지네차를 몰려고 하다니. 음주운전으로 나까지 다치게 할 생각이냐. 넌 필요 없으니 뒤쪽에 가서 누워있든지 해라. 운전은 내가 하겠다.”
“죄송합니다.”
로메드는 자신의 잘못을 잘 알고 있기에 두 말 않고 지네차의 뒤 칸으로 이동했다.
“가자!”
안젤라는 지네차에게 명령하며 떠났다.
꾸우웅.
“아니, 이게 대체 뭐야. 장현. 안젤라님이 왜 저렇게 화가 나신거야.”
멀어져가는 안젤라의 지네차를 보며 김덕배 등이 다가와 물었다.
“장현, 소성주님이 우리보고 같이 가자고 한 거 아니었어? 레스토랑에서 음식이라도 먹으면서 기다린다더니 갑자기 무슨 일이래.”
“그러게, 나도 모르겠어.”
장현도 영문을 몰랐던지라 해 줄 말이 없었다.
“이거 참. 혹시 요리가 기대에 못 미쳐서 화가 나신건가.”
김덕배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중얼거렸다.
이성훈, 최형석, 이나연 또한 한마디씩 거들었다.
“그럼 우리는 어떡하지. 성주성에 갈 준비는 끝났는데. 소성주 혼자 가버렸잖아.”
“성주가 불렀다니 우릴 데리고 갈 사람이 또 오겠지.”
“장현씨 조금 전에 소성주와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여자의 직감으로 안젤라가 화가 난 이유가 공적인 일 때문은 아니라는 느낌을 받은 이나연이 장현에게 슬쩍 물었다.
장현은 한숨을 푹 쉬더니 조금 전 안젤라와 대화한 내용을 알려줬다.
라스트베리 와인의 피 맛에 이어 고기 육즙인 미오글로빈을 언급했을 때 이나연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육즙이 미오글로빈이라구요?”
“그래, 고기에 있는 붉은 육즙은 핏물이 아니라 수분과 미오글로빈이라는 단백질 때문에 붉게 보이는 거라고 했더니 갑자기 버럭 화를 내더니 뛰쳐나갔어.”
이나연은 장현의 말에 안젤라가 왜 화가 났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아는 척하는 게 재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것만 가지고 저렇게 화가 나서 뛰어갈 것 같지는 않았다.
그녀는 다시 물었다.
“그 뒤에는 또 다른 얘기 없었나요?”
“뭐 건배하고 술을 몇 잔 마시다가 내가 무언가를 만드는 손재주가 있는 거 같던데 즐겁냐고 물어보더라고.”
“그래서요?”
이나연의 눈이 반짝 빛났다.
미오글로빈인지 뭔지 다음에 이런 얘기를 하며 건배까지 했다면 역시 화난 이유가 그 때문은 아니었던 것이다.
“즐거웠던 적이 없다고 했지. 그냥 살기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한 거였다고 했어. 사실이 그렇잖아. 그랬더니 갑자기 버럭 화를 내더니 저렇게 가버리는군.”
“즐거웠던 적이 없다는 말에 화를 냈다고요. 흠. 이상한 여자일세.”
이나연도 고개를 갸우뚱했다.
장현의 말만 들었을 때는 안젤라가 화를 낸 이유를 짐작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럼 숙제는 뭔가요?”
“아까 이걸 만들 수 있냐고 묻기에 시간만 충분히 주어진다면 만들 수 있다고 했어 물론 고급 대장장이가 되어야하고 설계도도 있어야하지만 말이야. 그랬더니 이걸 던져주고 가네.”
장현은 인벤토리에서 안젤라에게 받은 아이템들을 꺼내 보여줬다.
“이건 뭐죠?”
“헬릭스 성에서 생성하는 주력 상품인 듯한데 비밀리에 취급하나봐. 마도 공학이 집약되어 있다고 했어. 알아보려면 시간이 좀 필요할 거 같아.”
“음, 그렇군요…….”
이나연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장현도 잘 모른다고 하니 더 물어볼 것도 없었다.
“그보다 걱정이군요. 소성주의 분노를 산 거 같던데 별 일 생기는 건 아니겠죠?”
불안해하는 이나연의 질문에, 장현이라고 무작정 안심시켜 줄 수도 없었다.
안젤라는 어떻게 튈지 모르는 여성 마족이다.
한편 이야기를 듣고 있던 김덕배가 장현에게 말했다.
“장현 그런데 소성주에게 했던 모습 평소 내가 알던 네 모습이랑 다른 거 같아. 육즙이 붉은 이유를 그렇게 설명했다는 것도 그렇고. 굳이 그런 걸 지적할 필요가 있었어? 더군다나 건배까지 했다니 내가 아는 장현이 아닌 거 같아.”
“맞아. 나도 그게 이상했어. 장현 씨가 이런 모습 보인 건 확실히 의외야.”
김덕배의 말에 이나연이 동조했다.
장현은 그들의 말에 해명할 필요성을 느꼈다.
스스로가 생각해도 평소의 자신과는 달랐으니 이대로 있으면 동료들의 의심을 살 수도 있다.
앞으로 안젤라와 관련된 일은 계속해서 추진 할 수밖에 없다.
털어놓고 도움을 구하는 게 더 낫겠다는 판단이 들자 장현은 입을 열었다.
그는 다만 진실 속에 거짓을 섞어 말했다.
“미안해. 사실은 서큐버스 안젤라의 진실한 사랑을 얻으라는 퀘스트를 받았어.”
“뭐라고. 안젤라의 사랑을 얻으라고?”
“그래. 이건 히든 퀘스트야.”
장현이 해명할 수 있는 건 퀘스트 뿐이었다.
과거로부터 회귀했다거나 테오의 전언을 받았다는 말은 아직 할 수 없다.
적어도 최후의 동료인 그들과 먼저 얘기를 하기 전에는 다른 자들에게는 비밀이었다. 아무리 동료라고 할지라도.
그렇기에 히든 퀘스트를 받았다고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었다.
다행히 다들 의아해하긴 했지만 납득했다.
퀘스트라는 게 어떤 종류가 떨어질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미지의 것이기에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히든 퀘스트가 소성주의 사랑을 얻는 거라고. 확실히 굉장히 난이도가 높겠지만 보상 역시 크겠어. 무려 헬릭스 성의 소성주잖아.”
김덕배는 걱정과 흥분이 교차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장현이 소성주의 사랑을 얻기 위한 퀘스트를 수행하고 있었던 것이라면 평소와 다른 그의 행동이 모두 설명된다.
다만 그는 마계에서 퀘스트를 수행하면서도 사랑도 할 수 있다는 것이 부러웠다.
‘제길! 나도 연애하고 싶단 말이야.’
그는 슬쩍 이나연을 곁눈질했다.
예쁜데다가 착한 마음씨를 가진 이나연은 매력적이었지만 그녀는 자신을 그저 어린 동생 이상으로는 생각하지 않았다.
스스로도 그녀를 동경하는 것인지 좋아하는 마음인지 애매했다.
‘아니야. 장현은 그저 퀘스트를 얻은 거라고. 아. 나도 나연 누나의 사랑을 얻으라는 퀘스트 같은 거 떨어지면 어쩔 수 없이 용기 내볼 텐데.’
김덕배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줄도 모르고 곁에 있던 이나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장현씨가 그랬던 건 과연 퀘스트 때문이었군요. 그런데 궁금한 것이 있어요. 소성주의 사랑을 얻으라는 퀘스트의 완료 조건이 뭔가요? 소성주가 사랑한다고 고백이라도 해야 하는 건가요, 아니면 그 이상 육체적인 관계라도 가져야 하는 건가요?”
이나연이 고개를 숙이며 얼굴을 붉혔다.
궁금했지만 질문 자체가 부끄러운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주위에 있던 일행 모두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장현의 입만 쳐다보았다.
김덕배는 긴장했는지 꿀꺽 하고 침을 삼키는 소리를 냈다. 장현에게까지 들렸을 정도다.
“그건 나도 몰라. 히든 퀘스트 제목은 ‘안젤라의 사랑을 얻어라’인데 연계 퀘스트였어. 퀘스트 완료 에 대한 판단 기준은 나도 정확히 모르겠어. 시스템에서 알려주겠지. 고백을 받으면 퀘스트 완료 알림이 뜨는지 봐야겠지.”
“안 뜨면요?”
“그럼 다음 단계를 진행해봐야겠지.”
꿀꺽.
김덕배의 침 넘어가는 소리가 다시 들려오자 장현은 눈살을 찌푸렸다.
‘저 자식은 대체 뭘 생각하는지 모르겠군.’
이나연이 재차 물었다.
“연계 퀘스트라면 1단계를 해내야 다음 퀘스트가 나오겠군요. 그리고 1단계 퀘스트가 안젤라의 사랑을 얻으라는 것이고요.”
이나연의 질문에 장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그런 거 같아.”
“과연, 소성주의 마음을 얻는다는 게 대체 어떤 건지 궁금하군요.”
이나연의 의문에 장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이 부분은 알아도 말해줄 수 없는 부분이었다.
장현은 그보다 안젤라가 내준 숙제가 신경 쓰였다.
굳이 일행들에게 그것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았다.
그 때 영지민 중 한 사람이 다가와 이성훈에게 보고했다.
이성훈은 화들짝 놀라며 말을 꺼냈다.
“저기 큰일이 났습니다.”
“왜 무슨 일인데?”
김덕배가 물었다.
“그, 그게…….”
이성훈은 주섬주섬 머뭇거리며 장현의 눈치를 살폈다.
장현 역시 이성훈의 행동에서 심상치 않다는 걸 느꼈다.
“왜 무슨 일이길래 그래?”
그가 표정을 굳히고, 재촉하자 이성훈은 눈을 질끈 감고 말했다.
“강신배 일행들이 도망쳤습니다.”
“뭐라고! 언제?”
장현이 싸늘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언제 도망쳤는지 모르겠습니다. 분명 소성주님이 올 때 그들 역시 집합했었습니다. 그런데 조금 전 소성주님이 떠나면서 다들 신경이 분산될 때 도망친 듯합니다.”
“젠장! 하필 이런 때라니.”
강신배는 반드시 확보해두어야 할 인물이다.
그가 가진 능력은 위험하다.
‘차라리 놈을 죽였어야 했나.’
그라면 분명 어딜 가서든 입으로 살아남을 것이다.
상대가 마족이라 하더라도 어떻게든 설득시켜 살아남을 것이다.
마족이 된 크레온을 설득하면서 그는 자신의 능력을 증명했다.
“혹시 이정환이라고, 강신배 일행이던 그 대장장이도 같이 사라졌나?”
“네. 김혜정과 이정환 모두 사라졌습니다. 생존자중 관리자급들은 모두 사라졌습니다.”
“젠장!”
‘소성주를 그렇게 떠나게 두지 않았어야했는데.’
결국 소성주를 화나서 떠나게 만든 게 강신배에게는 도망칠 기회를 제공한 것이다.
이 또한 결국 장현의 책임이었다.
장현은 이정환의 비밀에 대해 파악을 하지 못한 점이 신경 쓰였다.
크로커다일족과의 전투에서 등장한 발리스터라든지, 마라늄제 전차라든지.
그걸 제작한 자가 이정환이다.
‘성주성에 다녀온 후 그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려 했는데 이렇게 놓칠 줄이야.’
마음 같아서는 곧장 그들을 직접 추격하고 싶지만 지금은 헬릭스 성주성으로 가야 한다.
자칫 그들을 쫓다가 성주성에 가는 게 늦을 경우, 대공의 박람회에 불참하게 되는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그는 입술을 깨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