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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장이 회귀해서 만능캐되다-71화 (71/211)

71화. 안젤라의 재방문 (5)

콸. 콸.

로메드는 술잔에 쏟아지는 술을 보며 침을 삼켰다.

킁. 킁.

절로 코가 벌렁거렸다.

이 향은 크로커다일족의 전통적인 아나콘다주가 틀림없다.

로메드가 과거 헬릭스 성에 오기전 부족원들과 사냥하고 다닐 때 즐겨 마시던 술이다.

비록 로메드와 부족은 달랐지만 식음료 문화는 크게 차이나지 않았다.

장현이 크레온을 죽이지 않았다면 그가 담아놓은 이 술은 결코 로메드에게 오지 않았을 것이다.

장현에게 가진 감정이 그다지 좋지는 않았지만 이 술을 선물 받으면서 안 좋은 감정은 눈 녹듯 사라져갔다.

“아. 정말 맛있군. 오랜만이야.”

로메드는 탄성을 지르며 술잔을 한 번에 들이켰다.

그러더니 아쉬운 듯 입술을 핥았다. 그의 눈에 장현의 앞에 놓인 술 항아리가 보였다.

“이걸로는 기별도 안 가는군. 그거 이리 줘.”

로메드는 장현앞에 놓인 항아리를 가지고와서는 양손으로 잡고 벌컥벌컥 들이켰다.

콸콸콸.

항아리에서 술과 아나콘다 고기가 흘러나와 로메드의 입으로 빨려 들어갔다.

으적, 으적.

아나콘다 고기는 씹어 먹고 술은 벌컬벌컥 마셔댄 로메드 때문에 술항아리는 순식간에 동나버렸다.

“뭐야, 벌써 다 떨어진 거야? 이봐, 이거 또 없어?”

로메드는 아쉬운지 빈 항아리를 들고는 장현에게 물었다.

장현이 김민우에게 고갯짓을 하자 그가 대답했다.

“창고에 저장해둔 게 몇 항아리 있습니다.”

“이봐 요리사 양반. 자네 이 술항아리 하나 더 가져와.”

“예, 한 항아리면 될까요?”

장현이 쉐프에게 얘기하는 것을 듣던 로메드가 나섰다.

“그냥 날 그 창고로 안내해라.”

그러고는 안젤라의 눈치를 보았다.

안젤라는 피식 웃더니 허락했다.

“다녀와. 정신 놓지는 말고.”

“네 걱정마십시오. 소성주님. 감사합니다.”

꾸벅 인사하고는 로메드는 요리사를 따라 밖으로 나갔다.

안젤라는 밖으로 나간 로메드를 보더니 장현에게 슬쩍 물었다.

“혹시 저 아나콘다 술 말고 다른 술도 있나? 난 저거 너무 독해서 별로야.”

“네. 혹시 소성주님 취향에 맞으실지는 모르겠지만 와인이 있습니다. 여기 레스토랑 이름이 와인 스테이크 레스토랑입니다. 하하하.”

“그럼 줘봐.”

장현은 직접 와인이 보관된 냉장고로 가서 한 병 꺼냈다.

‘이것도 써먹는구나.’

테오의 전언을 받고 난 후 장현은 두 가지를 준비했다.

하나는 팔찌였고, 두 번째는 술이었다.

인터넷에서 본 연애칼럼 내용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성과 가까워지는 데는 술만 한 게 없다. 술은 속마음을 털어놓게 해줌으로써 순식간에 친밀해지도록 도와준다. 술자리로 인해 역사가 이루어진 얘기를 한번쯤은 다들 들어봤을 것이다. 심지어 이성 앞에서 긴장하는 쑥맥이라 할지라도 술을 마시면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도 과감히 고백하는 경우가 많지. 술은 용기를 불러주는 좋은 친구다. 물론 이성 역시도 술이 들어가면 상대가 더 멋있어 보이거나 예뻐 보이기도 한다. -알아두면 쓸모 있는 연애잡학-]

“한 잔 하시죠. 우리 영지에서 심은 열매로 담은 와인입니다.”

“흐음. 라스트베리인가.”

“이름은 잘 모릅니다. 지구에 있을 때 본 포도와 비슷한 과일이었는데, 라스트베리라는 이름이 있나 보군요.”

끄덕.

“이건 라스트베리, 피 맛이랑 비슷한 맛인데 이걸로 술을 담그다니, 너도 취향이 독특하구나.”

“피 맛이라니 너무 하는군요. 포도 같아서 술을 담았는데.”

장현은 안젤라에게 술을 따라줬다.

쪼르륵.

안젤라는 장현이 따라주는 술을 마시며 불만스러운 투로 말했다.

“흐음. 피 맛이라고 하니 안 좋게만 생각하는군. 생고기를 먹어본 적 없나?”

“물론 먹어봤습니다. 육회도 좋아하죠. 그런데 그걸 피 맛이라고 하진 않습니다.”

푹!

안젤라가 갑자기 나이프를 집어 들고는 마베리코 스테이크 고기를 찔렀다.

흠칫!

장현이 놀라 그녀를 보자 안젤라는 고기를 내밀었다.

“봐, 이 핏물 뚝뚝 떨어지는 고기. 피 맛이 이래도 싫어? 너도 맛있게 먹었으면서 말이야.”

안젤라가 내미는 고기는 굽기를 레어로 한 탓에 고기사이에 붉은 육즙이 가득했다.

장현은 그것을 보고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그는 입가에 슬쩍 미소를 그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건 피 맛이 아닙니다.”

“뭐? 피 맛이 아니라고? 이 뚝뚝 떨어지는 피를 보고도 그런 소릴 하다니.”

장현이 여유롭게 말하자 안젤라는 뭔가 울컥하는 기분이 들었다.

물론 무력으로 보나 지위로 보나 안젤라가 절대적인 갑의 위치이므로 강제로 그를 굴복시킬 수도 있다.

‘그건 싫어. 그럼 내가 이 자식한테 지는 걸 인정하는 거잖아.’

안젤라는 그를 권위가 아닌 언변으로 이기고 싶었다.

장현은 안젤라의 항의에 쿡쿡 웃었다.

술 기운 때문인지 몰라도 안젤라가 문득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큐버스는 미모의 화신이나 마찬가지다.

실제로 그녀는 지구에서 본 어떤 연예인보다도 아름다웠다.

“피가 보이지 않는 게 아닙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이건 피가 아니라 단백질 미오글로빈입니다.”

“뭐, 미오 뭐라고?”

“미오글로빈. 돼지 근육에 산소 공급하는 단백질인데 공기나 열에 노출될 경우 붉어집니다. 고기의 수분이 미오글로빈 때문에 붉게 보이는 거라 핏물은 아닙니다. 즉 이 돼지고기의 육즙은 피 맛이 아닌 단백질 맛이지요.”

장현은 안젤라에게 친절히 설명했지만, 안젤라에게는 재수 없게만 보였다.

‘이 자식, 아우 열 받아.’

안젤라는 분했다.

장현은 나름 미식가였다. 연애를 글로 배울 때 데이트에 대한 것 또한 공부하고 배웠다.

그 중에 하나가 맛집과 요리에 대한 기사와 칼럼을 꾸준히 읽는 것이었다.

그 시절 공부했던 내용이 마계에서 서큐버스를 상대로 써먹을 줄은 상상도 못했지만, 인생이란 건 이렇게 알 수 없다.

장현은 설명하는데 집중하느라 순간 안젤라의 반응을 놓쳤다.

글로 연애 공부를 한 부작용이다.

순간 오싹한 기분이 들은 장현은 안젤라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나이프를 꽉 움켜쥔 채 장현을 노려보고 있었다.

‘허억! 갑자기 왜 이래.’

장현이 흠칫한 사이 안젤라는 쏘아내듯 말했다.

“그래. 너 참 잘나고 똑똑하구나.”

“아닙니다. 기분 나쁘셨다면 죄송합니다.”

“죄송할 게 뭐 있어. 넌 정말로 잘났단 말이야. 그래 이 라스트베리로 와인도 만들 줄 아는데다, 미오글로빈인지 뭔지도 알고, 싸움도 잘하고, 뭐든 척척 잘해내지.”

안젤라는 고함을 지르다 갑자기 테이블에 주저앉아 스스로 술잔에 술을 따라 마셨다.

장현은 그녀가 화내다가 도리어 빈정대듯 칭찬하자 머쓱해져서 무어라 말하지도 못했다.

“한 잔 따라드리겠습니다.”

장현은 달리 할 말이 없어 안젤라의 술잔에 와인을 따라주었다.

“너희 인간들은 신기해.”

안젤라가 피식 웃으며 와인을 따르는 장현에게 말했다.

“무엇이 말씀입니까?”

“금방 이런 상황에 적응한다는 게 신기해서 말이야.”

“그렇습니까.”

“그래. 뭐라 해야 할까. 너랑 네 동료들을 보면 서로간에 정이 느껴져.”

“같이 살아남기 위해 협력한 동료여서 아닐까요.”

“그런가. 어떻게 보면 난 너희들의 그런 정이 부러워. 네 입장에서는 미친 소리 같겠지만 말이야.”

안젤라는 술을 한잔 마시더니 이내 또 한잔 따랐다.

“제가 따라드리겠습니다.”

“그러든지. 그럼.”

장현은 다시 안젤라의 잔에 와인을 채워주며 조심스레 물었다.

“소성주님이야말로 부족할 것 하나 없어 보이시는데 저희가 부럽다는 게 저로서는 이해가 안 가는군요.”

“훗, 소성주. 그러면 뭐하냐. 난 어머니도 없고. 친구도 없고 동료도 없는걸.”

안젤라는 자조적인 어조로 말했다. 장현은 그런 그녀에게서 쓸쓸하고 외로운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마침 이 상황은 안젤라와 장현 단 둘만 있었다.

김민우는 조리실에 있었고 로메드는 혼자 아나콘다 술을 마시러 갔으니 당분간 방해할 사람은 없었다.

“저도 어머니가 안계십니다. 그리고 아버지도요. 안젤라님은 아버지라도 계시잖아요. 그것도 마계의 고위귀족이신 아버지가요.”

“역시. 그렇게 생각하겠지.”

안젤라는 장현의 말에 피식 웃었다. 어차피 장현이 그녀를 이해해줄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그녀는 그저 홀짝 홀짝 와인을 마셨다.

“그런데 어찌 저는 안젤라님에게서 동병상련의 감정이 느껴지는 걸까요. 모든 걸 다 가지신 거 같은 분에게서요.”

장현은 그런 말과 함께 다시금 그녀의 잔에 조용히 와인을 따라주고는 자신의 잔에도 술을 따랐다.

물끄러미 자신을 바라보는 안젤라에게 말했다.

“건배 할까요?”

“건배?”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하는 안젤라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같은 감정을 공유하는 사람끼리 함께 잔을 비운다는 뜻입니다. 함께 건배를 외치며 잔을 부딪치는 행위는 나의 행복과 상대방의 행복이 이루어지길 바라는 일종의 의식입니다. 그 뒤에 술잔을 비움으로써 나는 너의 마음을 받았다는 것을 상대에게 보여주는 거지요.”

“…….”

안젤라는 얼굴이 붉어진 채 장현이 한 말을 다시금 되새겨보았다.

“건배!”

장현이 술잔을 내밀며 말하자, 안젤라 또한 술잔을 내밀었다.

쨍!

술잔이 부딪히는 소리가 조용한 가운데 울렸다.

안젤라가 자신의 술잔을 잠시 응시하더니 그대로 마셨다.

“받았다.”

“저도 받았습니다.”

장현은 그녀의 말에 화답하며 술을 그대로 원샷했다.

안젤라가 물었다.

“그러고 보니 넌 손재주가 있었지. 무언가를 만드는 게 즐거운 것이냐?”

“즐겁냐고요.”

장현은 그녀의 물음에 자신의 삶을 돌아보았다.

어릴 때는 만드는 것이 즐거웠던 거 같기도 한데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공대생이 된 건 그저 취업이 잘된다고 해서였고 과제가 주어졌기에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성적에 맞는 대학, 성적에 맞는 직장을 갔고 그 상황에 어울리는 행동을 했을 뿐이다.

‘그저 살아남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그 뿐이었던 것이지.’

이 곳 마계에 와서라고 다르진 않았다.

대장장이 조각을 우연히 얻었고, 마계에서 생존하기 위해 아이템들을 만들었을 뿐이다.

가치 있는 아이템을 만들수록 다른 플레이어들은 자신을 존중해줬고 살아남기 수월했다.

‘살아남기 위해 하는 일에 재미란 게 개입할 수가 있나. 그건 내게 있어 사치다.’

장현은 스스로의 결론에 쓴웃음이 나왔다.

안젤라가 그런 장현을 보고 의아한 듯 되물었다.

“왜 대답을 못하지? 혹시 만드는 게 좋아서, 재밌어서 하는 거 아니었어?”

장현은 물끄러미 그녀를 바라보았다.

재밌어야 하는가.

마계의 고위귀족인 소성주에게는 그래야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플레이어 장현에게는 그렇지가 않다.

“재미를 느껴본 적은 없습니다. 그저 살아남기 위해서 남들에게 도움이 되고 인정받기에 만들었을 뿐입니다. 잘 만들수록 그들은 절 더욱 대접하고 인정해줬으니까요. 그래서 더 잘 만들려고 했습니다.”

“넌 즐기지 않는데도 그렇게 잘 만들 수 있는 거야? 이 팔찌의 세공도 이렇게나 잘하면서. 난 말이야. 그림을 그리는 게 즐거운데도 잘 못 그려. 그런데 넌 즐기지도 않으면서 그렇게 잘할 수 있단 말이야. 아니 그렇게 잘할 수 있으면서도 어떻게 스스로 즐기지를 못하는 거지.”

안젤라는 장현의 말에 분한 듯 그리고 납득하지 못 하겠다는 듯 소리쳤다.

“어떻게 스스로 즐기지 못 하냐고 하시면 저도 드릴 말씀이 없군요.”

“이 멍청아!”

“네?”

안젤라는 진정 화가 났다.

자신은 그와 서로의 행복을 빌어주는 의식을 치른 사이다.

그런데 한 번도 즐거움을 느껴보지도 못한 채 계속 대장장이로 살아왔다니. 안타까우면서도 화가 났다.

“넌 내게 네 자신의 행복을 빌어주길 바랐잖아. 그래서 건배도 한 거 아니야. 그런데 넌 남한테 인정받고 그저 살아남기만 하고 있었으니 대체 너의 행복은 뭐란 말이야.”

“안젤라님, 그건 그저 술을 마시는 일종의 의식에 불과합니다. 그렇게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으셔도.”

“이 나쁜 놈! 그럼 너도 나의 행복이 이루어지길 바란다고 한건 거짓말이었구나. 내 마음을 받았다는 것도 그저 너에게는 가벼운 장난이었어.”

“아, 아닙니다. 그건.”

갑자기 상황이 생각한 것과 전혀 다르게 돌아가자 장현은 당황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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