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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장이 회귀해서 만능캐되다-69화 (69/211)
  • 69화. 안젤라의 재방문 (3)

    장현이 안젤라의 요청에 정밀하게 새겨넣는 것이 어렵다고 말한 것은 혹시 그녀가 트집을 잡을 때를 대비한 것이었다.

    소성주인 안젤라의 요청에 장현은 무조건 해야 했지만, 그녀의 마음에 들지는 그가 결정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장현이 세공한 그림을 그녀는 만족스러워했다.

    -수고했다. 과연 손재주가 무척 뛰어나구나. 기대한 것 이상이야. 약속대로 상을 주도록 하지.

    -감사합니다. 소성주님.

    -훗. 넌 내가 왜 이 그림을 세공하길 원했는지 아느냐?.

    -죄송합니다. 그것까지는 모르겠습니다.

    -죄송할 것까지야. 이 그림은 돌아가신 나의 모친께서 그린 것이다.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자유로운 존재가 되길 원하셨지. 그 바람을 담아 그린 그림이 유품이 된 것이다.

    그 후 안젤라는 장현이 세공한 목걸이와 귀걸이를 항상 차고 다녔다.

    비록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플레이어들이 ‘플레이어 런 킹덤’ 경기 때문에 영지를 떠나면서 장현 또한 그녀를 더이상 본적이 없었지만 분명한 건 그 그림이 안젤라의 어머니가 생전에 그린 그림이라는 것이다.

    ‘헬릭스 성주성과 불사조.’

    성주와 결혼하며 안젤라를 낳았지만, 안젤라의 모친은 서큐버스.

    자유로운 연애를 즐기는 성격의 그녀가 헬릭스와 결혼한 후 자의반 타의반 성주의 부인으로서 갇혀 지내다시피 살게 되자 답답한 마음을 담아 그린 그림이었다.

    헬릭스 성에 거주하면서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불사조.

    자유를 갈망하는 서큐버스의 염원이 담긴 그림이었다.

    “이, 이 그림을 어떻게 아느냐?”

    한참 팔찌에 새겨진 그림에서 눈을 떼지 못하던 안젤라가 장현에게 물었다.

    그제야 장현은 긴장을 풀었다.

    안젤라의 반응을 보니 그림에 대한 설정은 1회차 때와 같은 듯했다.

    “그저 소성주님을 위한 그림을 떠올리다 보니 헬릭스 성을 그려 넣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

    안젤라는 장현의 말에 더 말을 잇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는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팔찌를 집어 들고 손목에 찼다.

    찰칵.

    팔찌를 차자 시원한 기운이 퍼지며 포근하고 따뜻한 기분이 들었다.

    ‘어, 어머니.’

    안젤라는 문득 어릴 적 어머니 품에 안기던 기억이 떠올라 저도 모르게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이런. 내가 왜 이러지.’

    혹시 누가 그런 자신을 볼까 민망했던 그녀는 몸을 돌렸다.

    장현은 안젤라의 반응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흠, 다행히 그림을 새긴 게 제대로 먹혔구나.’

    그러다 안젤라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봤다.

    순식간에 그녀가 등을 돌리는 바람에 잠깐이었지만 그것은 눈물이었다.

    ‘이거 참 기분이 묘하군.’

    분명 안젤라의 호의를 얻기 위해 의도한 행동이지만 막상 그녀의 눈물을 보자 가책을 느꼈다.

    죽은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감정을 느끼게 일부러 의도했기 때문이다.

    ‘테오 이 자식, 하필 이런 걸 시켜서.’

    장현이 팔찌 선물을 기획한 건 테오의 전언에서 시작되었다.

    크레온을 쓰러트리고 퀘스트를 종료했을 때 테오의 전언이 떠올랐다.

    [장현, 이 메시지가 떠오른다면 너는 영지전에서 승리했을 것이다. 영지전을 끝내고 레벨업 해야 나의 이 말이 전해지도록 설정했기 때문이다. 영지전이 끝나고 나면 마계에는 중대한 이벤트가 발생한다. 바로 대공의 마도공학 박람회다. 마왕과 대공이 번갈아 가며 주최하는데 이번에는 대공이 주최할 차례다. 예전에도 넌 거기에 참석했을 테니 이번에도 참석할 수 있을 거야. 너도 알다시피 헬릭스는 대공의 최측근인 고위 귀족이기에 대공의 박람회에는 무조건 참석할 것이다. 박람회 이벤트 경기를 위해 영지에서 관리자급 이상의 플레이어들을 대동할 것이야.]

    ‘그렇군. 대공의 박람회가 곧 열리는구나.’

    장현은 테오의 메시지를 읽다가 앞으로 벌어질 중요 이벤트를 떠올렸다.

    마왕과 대공은 마계의 공학을 발전시키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

    박람회의 진정한 목적에 대해서는 장현과 그의 동료들도 자세히는 모른다.

    다만 추측하기로 창조신의 권능을 얻기 위한 아이템 제작에 필요한 높은 공학기술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마계는 지구와 비슷할 정도의 문명이 발달해 있다.

    마튜브, 마계 스토어, 패드, 시스템 상태창.

    이런 기술의 집약체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반도체를 비롯한 온라인 시스템이 깔려 있어야 한다.

    공대생이자 성삼전자의 영업사원이었지만 지구의 모든 문명과 기술을 알지는 못한다.

    다만 마계의 각 성주가 마왕과 대공의 지시에 따라 고유의 사업체를 갖고 있고 그것이 창조신의 권능이 담긴 아이템을 제작하는 데 필요한 것이라는 것 정도만 알고 있다.

    신계와의 전쟁이 일어난 이유도 그 아이템을 빼앗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마족이 지구를 침략해 사람들을 플레이어로 만들고 영지를 개발하게 한 것 또한 같은 맥락이다.

    지구의 높은 과학과 공학기술이 그 아이템을 제작하는데 필요했겠지.

    헬릭스 성의 주요 사업인 디스플레이 부품인 섀도우 마스크.

    아직 이 시점에서는 알려지지 않은 헬릭스 성주의 주요 사업인 힌지 모듈.

    이것들이 의미하는 바는 추측하건대 그 창조신의 아이템이 디스플레이 그중에서도 폴더블 디스플레이와 관련된 것일 가능성이 크다.

    ‘설마 핸드폰이나 패드 같은 걸까.’

    장현은 그런 생각을 떠올렸지만, 아직 그의 능력으로는 거기까지 알 수 없었다.

    그렇기에 안젤라의 도움이 필요하다.

    장현이 안젤라에게 선물을 직접 만들어 주면서까지 그녀의 마음을 얻으려는 것이 마왕과 대공의 최측근들만이 알 수 있는 비밀에 접근하기 위함이다.

    박람회에는 마계의 모든 귀족 가문이 참석한다.

    마계 공학의 발전을 추구한다는 것이 명분이지만 실상은 창조신의 권능이 담긴 아이템을 얻는 거라는 것은 장현도 알고 있다.

    ‘우리 플레이어들에게도 그 박람회가 기회였지.’

    장현은 마도공학 박람회에서 처음으로 마현, 테오, 아르헨, 제이미를 모두 만난다.

    대공의 박람회를 기념하기 위해 플레이어들이 참전하는 이벤트 경기가 열린다.

    인류 플레이어들은 또 다른 거인족 플레이어들과 생존을 걸고 싸우게 된다.

    이벤트 경기가 진행되며 각 성에서 온 플레이어들이 거인족에게 상당수가 죽어 나갔다.

    살아남은 자들은 자연스레 서로를 어느 정도 알게 된다.

    인류 플레이어 중 사실상 최강자들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이 경기에서 살아남은 자들은 이후 ‘플레이어 런 킹덤’ 경기에서 다시 만나게 되지만 그건 훗날의 일이다.

    그때쯤 마계에는 전례 없는 재난이 발생하게 된다.

    플레이어는 물론 마족까지 두려움에 벌벌 떨게 되는 공포의 바이러스가 퍼지게 된다.

    ‘아직까지는 먼 훗날의 일이야.’

    테오의 전언이 이어지며 장현은 상념에서 빠져나왔다.

    [나는 우리가 실패한 원인에 대해 계속 생각했다. 결국, 마왕과 대공이 그토록 얻고자 했던 창조신의 권능이 담긴 아이템의 정체를 알지 못한 게 문제였다고 생각한다. 넌 이번에 반드시 그것의 정체를 알아내서 먼저 가져야 해. 그러기 위해 준비한 계획이 있다. 너의 과거 이야기를 듣고 떠올린 것이다. 바로 헬릭스의 딸 안젤라에게 접근해 정보를 얻어내는 거다. 대공의 최측근인 헬릭스의 딸이자 소성주인 그녀는 어느 정도 비밀에 닿아있을 것이다. 네가 현실적으로 비밀을 알 수 있는 것은 그 방법밖에 없는 것 같구나. 물론 어렵다는 것은 잘 알지만 널 믿는다.]

    테오의 전언을 읽으며 장현은 난감했다.

    ‘안젤라에게 접근해 마왕과 대공의 비밀을 알아내라고. 대체 무슨 수로?’

    장현은 테오의 멱살을 잡고 물어보고 싶었다. 그의 말대로 안젤라는 대공의 최측근인 고위 마족 헬릭스의 외동딸이자 소성주의 지위를 가지고 있다.

    그녀의 입장에서 플레이어 장현은 노예에 불과하다.

    지구의 역사로 보자면 로마시대의 검투사 정도 되겠지. 경기에서 생존을 걸고 싸우면서 관람객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주인에게 돈을 벌게 해준다는 점에서 일치한다.

    노예 검투사가 주인의 딸에게 접근해 비밀정보를 빼오라니.

    장현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아직 테오의 전언은 끝나지 않았다.

    [물론 쉽지는 않은 일이지. 다만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안젤라는 서큐버스다. 그 점을 활용한다면 방법이 있다. 서큐버스는 남성을 유혹해 정욕과 마나를 흡수한다. 이것은 누구나 아는 이야기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있다. 서큐버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면, 서큐버스로 하여금 남성을 사랑하게 만든다면 그 서큐버스의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다고 한다. 심지어 목숨이라도 말이지. 서큐버스는 감정과 정욕의 화신인만큼 자신을 사랑에 빠지게 하는 상대를 만난다면 사랑밖에 모르는 여자가 된다고 한다. 장현, 그러니 넌 안젤라의 사랑을 얻어야 한다. 분명 해낼 것이라 믿는다. 과거 네가 말했던 화려한 연애 전적이 허풍이 아니라면 말이다.]

    테오의 전언은 거기서 끝났다.

    장현은 자신도 모르게 머리를 쥐어뜯었다.

    “아. 내가 어쩌자고 그때 그런 허풍을 떨었단 말이야. 설마 테오가 그걸 염두에 두고 이딴 계획을 짰다니. 이게 말이야.”

    장현은 절규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화려한 연애 전적이라고. 난 연애를 해본 적도 없단 말이야.’

    사실 그는 모태솔로였다. 대학에 들어갈 때 예쁜 여자친구와 연애하는 캠퍼스 생활을 꿈꿨지만, 현실은 달랐다.

    고백할 때마다 그저 여자에게 비슷한 대답을 들었을 뿐이다.

    ‘좋은 친구로 지냈으면 해.’

    ‘좋은 오빠 동생으로 지내고 싶어요.’

    ‘미안해. 난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 넌 분명 좋은 사람을 만날거야.’

    결국, 그는 한 번도 연애를 해보지 못하고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했다.

    ‘글로 연애를 배웠어요.’

    바로 장현을 위한 말이다.

    언젠가 동료들이랑 마계에 오기 전 일상에 관해 얘기를 나눈 적 있다.

    남자들이 모여서 나누는 대화란 대부분이 연애와 관련된 것이다.

    여자 경험 있냐는 질문에 차마 모태솔로라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비웃음거리가 될 것이 뻔했기에 그는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던 연애 상담 글들을 마치 자신의 경험담인양 풀었다.

    ‘아 그때 했던 거짓말이 이렇게 돌아오다니. 자승자박인가.’

    어쨌든 장현은 현실을 받아들였다. 이미 지난 일을 물릴 수도 없다. 다른 선택의 여지 또한 없다.

    테오의 말대로 안젤라의 사랑을 얻기 위해 뭐라도 해봐야 했다.

    그때 그를 부르는 소리에 상념에서 깨어났다.

    “이봐! 내 말 안 들려?”

    안젤라가 장현을 보고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죄송합니다. 소성주님.”

    장현은 아차 싶었다. 잠깐 든 잡생각에 깊이 빠져있었다.

    “날 앞에 두고 딴생각에 빠져있었던 거야?”

    “아닙니다.”

    “내가 방금 뭐라고 했는지는 들었어?”

    “죄송합니다. 소성주님. 잘 못 들었습니다. 그런데 딴생각에 빠져 있었던 게 아니라 이 팔찌와 관련된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팔찌와 관련된 생각이라고? 얘기해봐.”

    “팔찌가 소성주님과 잘 어울린다는 생각에 다음에는 어떤 장신구를 만들면 잘 어울릴까 그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장현의 변명에 안젤라는 미심쩍어했으나 어쨌든 기분 나쁜 말은 아니었다. 또 다른 선물이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하니 그 정도는 봐줄 수 있었다.

    “그래? 좋아. 그럼 팔찌랑 잘 어울릴 아이템 만들어봐.”

    “알겠습니다.”

    “좋아. 기대하겠어. 그건 그렇고 이제 다시 얘기할 테니 이번엔 똑바로 듣고 대답해. 두 번은 안 봐준다.”

    “네. 알겠습니다.”

    장현은 두 눈을 부릅뜨고 안젤라의 입을 바라보았다.

    한마디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기세에 안젤라는 그를 보고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큭큭, 그렇게 진지한 표정 짓지 마.”

    “아, 네.”

    그녀는 한차례 웃은 뒤 기분이 한결 풀린 듯했다.

    차분한 목소리로 팔찌에 세공된 그림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그림을 어떻게 그리게 되었냐고 물었다. 성주성과 불사조. 아무리 생각해도 성주성이라면 그럴 수 있다고 쳐도 불사조까지 그린 건 우연이 아니야. 넌 이 그림을 알고 있었던 게 분명해. 사실대로 말해.”

    안젤라는 더 웃지 않고 진지한 표정으로 장현을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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