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화. 리자드맨과 친구가 되다 (1)
[연금술사 조각의 권능]
- 조각의 보유자가 모르던 내용을 새로 알게 되면 연금술사 조각은 이를 흡수해 분석합니다.
[리자드맨 종족의 금속 제련법을 분석합니다.]
[리자드맨 종족의 금속 제련법을 익혔습니다.]
[연금술사의 이해 폭이 향상됩니다.]
장현은 아탑에게 리자드맨족의 금속 제련방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는 연금술사의 권능으로 아탑의 가르침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장현의 눈앞에 한 남자가 나타났다.
처음 연금술사 조각을 얻고 초보연성술을 시전했을 때 나타나던 남자였다.
‘이번엔 중급 연성술을 시연하려나 보군.’
남자의 손에서 빛이 뻗어져 나왔다.
손을 한차례 휘젓자 빛이 퍼지더니 연성할 영역을 설정하라는 문구가 떴다.
남자는 다시 손을 휘저었고, 손의 움직임에 따라 빛이 일정한 범위를 설정했다.
그리고는 빛의 영역 안에 광물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광물들은 뭉치고 녹아내렸다.
그러다 광물이 모두 녹았을 때 남자가 다시 한차례 손을 휘저었다.
남자의 손의 움직임에 따라 녹아내린 액체 상태의 광물이 뭉치기 시작했다.
어느새 뭉친 광물이 금속으로 변했다.
이어 남자의 모습이 사라졌다.
‘이게 끝인가.’
장현이 그런 생각을 할 때 그의 눈앞에 다른 장면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번엔 연성술을 시연하던 남자가 아닌 리자드맨이 나타났다.
리자드맨은 한 명이 아닌 수십 명으로 이루어진 무리였다.
무리의 선두에 선 리자드맨은 한눈에 봐도 주술사로 보였다.
리자드맨 주술사가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주술사의 기도에 따라 다른 리자드맨들이 따라서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에레뜨…….’
장현은 자신도 모르게 에레뜨라는 단어를 떠올렸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선두에서 기도를 올리는 저 주술사가 바로 에레뜨라는 것을.
주술사의 기도가 절정에 달했을 때 하늘에서 천둥·번개가 쳤다.
우르릉!
번쩍!
번개는 주술사 앞에 있던 바위에 떨어졌고, 바위는 그대로 녹아내렸다.
바위가 있던 자리에 금속이 하나 떠올랐다.
주술사가 그 금속을 양손으로 잡고 번쩍 쳐들었다.
‘저 금속이 아모스가 차고 있던 손목 보호대의 재료군.’
장현은, 이 영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았다.
리자드맨의 금속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것이다.
‘이 영상 역시 연금술사 조각의 권능이구나.’
리자드맨 연금술사인 아탑에게서 그들의 금속제련과 가공을 배우며 연금술사 조각의 권능이 발휘된 것이다.
장현은 리자드맨이 저 금속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또한 이해할 수 있었다.
이 금속은 리자드맨들에게 있어 단순한 금속이 아니었다.
그들의 생존에 대한 열망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마계의 틈바구니에서 마족, 몬스터, 동류 유사인종인 크로커다일족, 그리고 인류까지 그들에겐 적이 많았으나 반면 무기라고는 없었다.
생존하고자 하는 그들의 열망에 세계가 답했다.
그것이 이미 멸망한 신인지, 마왕인지 그저 우연인지 알 수 없지만 하나는 확실하다.
그들은 기도했고, 때마침 떨어진 번개에 금속이 나왔다.
당연하게도 리자드맨 족은 그 금속에 애착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마침 그 금속은 신비한 힘을 가지고 있었고, 리자드맨의 대장장이가 금속을 가공해 보호대를 만들게 된 것이다.
에레뜨는 기도 후 리자드맨들에게 외쳤다.
[우리 리자드맨의 신께서 자비를 베푸셨다. 모든 리자드맨은 신의 선물인 저 금속을 양산하는 걸 절대 사명으로 삼아야 한다.]
에레뜨가 진정 신의 음성을 들었는지는 알 수 없다.
리자드맨들은 이때부터 신의 선물인 금속을 양산해야 한다는 절대 사명을 갖게 되었다.
장현은 비로소 리자드맨의 금속에 대해 완전히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이게 연금술사 조각의 권능’
에레뜨의 영상은 금속을 연성하기 위해서는 리자드맨의 염원과 간절함을 이해하고 그 감정을 느껴야 함을 알려주었다.
일종의 스토리 텔링이다.
금속에 얽힌 스토리를 들려줌으로써 금속의 가치를 알게 해준다.
그것을 깨닫자 장현은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중급연성술!”
장현의 외침과 함께 그의 손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는 영상 속의 남자가 보여준 것과 같이 손을 휘저었다.
스윽.
장현의 손에서 뻗어 나간 빛이 아탑이 모아놓았던 광물에 스며들었다.
화아아.
광물이 순식간에 녹아들었다.
“아, 아니. 이게 대체 뭐란 말인가.”
아탑이 당황한 목소리로 외쳤다.
장현의 손과 광물을 번갈아 쳐다보던 그는 어느 순간 눈이 튀어나올 만큼 놀랐다.
광물이 녹아들면서 불순물은 사라져가고 남아있던 결정체들이 응집되기 시작했다.
잠시 후 장현의 앞에 새로운 형태의 금속이 나타났다.
[잃어버린 리자드맨의 금속을 복원시켰습니다.]
[리자드맨 종족의 숙원을 해결했습니다.]
[장현에 대한 리자드맨들의 호감도가 큰 폭으로 증가합니다.]
[명성 포인트가 증가하였습니다.]
[한 종족의 숙원을 해결했기에 역사적 의의를 생성했습니다.]
[새롭게 탄생한 리자드맨 금속의 이름을 지어주세요.]
“에레뜨.”
‘에레뜨로 만들면 어떤 아이템이라도 능력치가 20% 상승한다고.’
장현은 에레뜨의 성능이 이 정도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탑은 다른 의미로 놀랐다.
“이, 이건.”
아탑이 몸을 덜덜 떨면서 금속 에레뜨를 어루만졌다.
“다, 다르다. 그런데 더 완전해.”
아탑은 금속을 만지는 순간 알 수 있었다.
이것이야말로 자신의 부족에게 구전으로 전해져 내려오던 금속의 원형이라고.
오직 이것만을 목표로 살아왔는데, 드디어 해냈다.
비록 인간인 장현이 한 것이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해냈다는 것이 중요할 뿐이다.
더구나! 그 인간은 자신의 친구다.
“치, 친구. 이걸 어떻게 한 건가?”
“우연히 깨달음을 얻게 되었어. 그것 또한 그대가 가르쳐준 바가 있었기에 가능했지.”
“내게 알려줄 수 있겠나?”
“당연한 말을 하는군.”
장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을 했고, 그의 시원한 대답에 아탑은 만면에 미소를 지었다.
“진정 그대는 하늘이 우리 리자드맨에게 내린 선물일세.”
“그 말은 좀 부담스러운데…….”
“아니야. 리자드맨의 어머니이신 에레뜨께서 신에게 금속을 선물 받은 뒤로, 우리는 수많은 세월을 금속을 양산하기 위해 노력해왔네. 그럼에도 쉽지 않았네. 그대가 연금술사라는 직업을 얘기했을 때 무척 기뻤지만, 한편으로는 서글펐다네. 제대로 된 금속을 만들어내지도 못한 책임 때문이었지. 그런데 이제 달라졌어.”
“이 금속 때문인가?”
“그렇네. 그대가 만들어낸 금속. 이것의 제조법을 알려주시게. 부탁하네. 나를 비롯해 우리 리자드맨 족은 그대를 은인으로 여길걸세.”
아탑의 말에 장현은 빙긋 웃었다.
“은인이라고 할 것까지야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
장현의 긍정적인 대답에 아탑은 감격했다.
“그럼 바로 시작해 보도록 하지.”
“조, 좋아.”
아탑은 냉큼 용광로의 작업대를 장현에게 양보했다.
장현은 용광로를 점검했다.
연성술을 펼쳤던 것과 같은 조건으로 맞춰야 했다.
완전히 똑같이는 불가능하지만 가능한 한 비슷하게는 할 수 있을 거 같았다.
‘일단 온도를 좀 더 높여야겠는데.’
화력을 좀 더 키우기 위해 바람구멍을 키웠다.
리자드맨족의 용광로 화력은 풀무에 의한 방법이었는데 이것으로 온도를 높이기에는 다소 한계점이 보였다.
‘응?’
장현이 용광로를 살펴보던 중 내벽에 무언가 표식이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건 뭐지……. 혹시 마법식인가.’
장현이 마법에 대해서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테오가 전한 지식 덕에 마법식에 대해서 어느 정도의 지식은 갖추고 있었다.
‘바람의 마법의 한 종류 같은데.’
용광로의 화력을 조절하기도 하면서 용광로의 아래에서 예열된 공기를 위로 불어 넣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여기 용광로 내부에 마법 식으로 보이는 게 새겨져 있어. 혹시 리자드맨 족에 마법을 사용하는 자가 있나?”
“마법이라고? 마법을 익힌 리자드맨은 없는데…….”
장현의 물음에 아탑은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뭔가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아……. 에레뜨의 주술을 이어받은 리자드맨들이 있다. 그들은 주술을 익혔다. 마법이 아닌 주술이다.”
“이건 마법식인데……. 혹시 그들이 마법도 익혔을 가능성이 있나?”
“그건 잘 모르겠다. 난 마법과 주술의 차이를 모른다.”
“그렇군. 그 주술을 이어받았다는 리자드맨이 아마도 여기 용광로에 마법식을 새긴 거 같아.”
“아니, 그건 아닐 것이다. 이 용광로는 오래전부터 전해져오던 유산이다. 최근에 용광로에 손을 댔다면 내가 모를 리 없다.”
장현의 물음에 아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이 마법식을 좀 살펴봐야겠어.”
장현은 용광로의 마법식을 자세히 살폈다.
마법식은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문양이 헝클어져 있었다.
마법식을 새기거나 다룰 줄 아는 자가 리자드맨 종족 내에 있었다면 이 상태로 놔두진 않을 것이다.
‘내가 이걸 손봐볼까.’
장현이 마법식을 새로 만들어야 하는 거라면 아무리 테오의 지식을 전해 받았다고 해도 어려웠을 것이다.
마법에 대한 개념 자체가 박혀 있지 않은 데다, 적재적소에 마법을 사용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치는 거라면 다르다.
기존에 있는 마법식을 원본과 대조해 틀린 부분을 맞추는 것이면 족했기에.
스윽. 슥.
장현은 마나를 마법진에 주입했다.
슈웅.
마법진이 활성화되려는 듯 빛이 나오더니. 깜빡깜빡했다.
그는 계속해서 마나를 주입했다.
어느 순간 상태창이 떠올랐다.
[마법진을 수정 또는 삭제하시겠습니까?]
- 수정, 삭제, 취소.
‘수정.’
장현이 수정을 선택하자 마법진이 낱낱이 분해되었다.
‘흠……. 여기에서 이거를 이렇게 고치고, 저기서 이렇게 고치면 되려나.’
테오에게서 전해 받은 마법진에 지금 보는 용광로의 마법진 또한 들어 있었기에 장현은 차근차근 주의하며 마법진을 고쳐나갔다.
마법진은 입력과 출력의 신호가 이어져 있고, 그 사이사이 연결과 증폭으로 이루어져 있다.
장현이 손을 댄 것은, 이어져야 할 자리가 훼손된 부분을 원래의 자리로 잇는 것이었다.
무려 3250개의 연결 마디 중 253개가 훼손되어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됐다.”
우우웅.
마법진이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동시에 용광로 내에서 바람의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다.
펄럭.
세차게 흘러나오는 바람이 장현의 머리칼을 흩날렸다.
“아탑, 이제 됐다. 불을 지펴.”
“맡겨두게.”
아탑은 용광로 옆에 있던 막대기를 쥐고 흔들었다.
팟!
막대기 끝에서 불꽃이 일었다.
장현이 지팡이를 보고 감탄했다.
“오호, 화염의 지팡이를 갖고 있었군.”
“음. 튜토리얼 통과하면서 난 이것을 샀네. 금속을 추출해야 할 임무를 띠고 있으니 어쩔 수 없었지.”
아탑은 전투용 무기를 갖고 있지 않았다.
그는 가진 마나를 모두 쏟아부어 화염의 지팡이를 샀다.
아탑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리자드맨족의 금속을 추출하는 것이고 후대에 전승하는 것이다.
그는 화염의 지팡이로 용광로에 불을 지폈다.
화르륵.
활활.
불을 지피자 공기가 가열되었다.
후욱.
활성화된 마법진은 공기를 가운데로 밀어 올렸다.
잠시 후 가스가 훅. 하고 발생하면서 용광로 내부의 온도가 급격히 올라가기 시작했다.
“뒤로 물러서. 온도가 너무 높다.”
“이, 이게 원래 이 정도까지 온도가 올라가지 않았는데…….”
당황한 아탑이 중얼거렸다.
“마법진을 수정하면서 열풍관의 온도가 급격히 올라갔다. 이게 원래 이 마법진의 기능이야.”
“아…….”
아탑은 넋을 잃은 채 바라보았다.
용광로 상단부가 가스로 가득 차 팽창되었다.
출렁. 출렁.
또르륵.
이어 용광로 하단부에서 광물들이 녹아 액체가 되어 흘러 내려와 모였다.
그것은 밝은 회색에 검붉은 불순물들이 섞여 있었다.
“이, 이게 우리 리자드맨의 금속인가?”
“아직 멀었다. 아탑. 여기 불순물을 제거해야 해.”
“어, 어떻게 불순물을 제거하지?
장현은 아탑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쑤엉을 불렀다.
‘쑤엉, 여기 불순물을 제거해줘.’
쑤엉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쑤엉, 뭐 하는 거야? 왜 대답이 없어?’
그래도 쑤엉은 답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