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화. 세이프존을 정탐하다 (5)
마현의 당문 무공의 전수는 계속되었다.
[십성은 곧 대성이나 마찬가지. 십성에 이른 독으로 제조할 수 있는 독의 종류는 다음과 같다. 신경독, 혈액독, 부시독, 균독이 있다. 신경독은…….]
마현이 전한 독은 4가지였다. 신경독은 몸을 마비시킨다. 성취가 약할 때는 단순히 몸을 움직이는 데 불편하게 하는 정도에 그치지만, 성취가 올라가면 원하는 부위만 마비시킬 수 있다. 극성에 이르면, 원하는 부위뿐 아니라 마비되는 시간도 조절할 수 있게 된다.
혈액독은 혈액에 독을 침투시켜야 한다. 독기발출이 가능하다면 사용할 수 있다. 성취가 올라가면 중독속도의 조절이 가능하다.
극성에 달하면 중독과 동시에 사망케 할 수 있다.
부시독은 부패하는 시체에서 추출한 독이다.
피부를 즉시 부식시키는 독성이 있다. 이 독에 중독된다면 증상이 나타난 부위를 즉시 절단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균독은 공기 중에 세균을 뿌려 중독시키는 것이다.
전염성이 매우 강하며 내공으로 만든 세균이기에 해독은 시전자 만이 할 수 있다.
그 외에도 권장지공의 박투 무공을 비롯해 암기술이 전해졌다.
폭우이화정, 추혼비접, 추혼연미표, 만천화우 등 당문의 유명한 암기술이 장현에게 전해졌다.
마현에게 지식을 전수받으며 장현은 정신력의 소모가 무척 컸다.
방대한 지식을 한 번에 받아들이는 만큼 뇌에 과부하가 걸렸다.
그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몸을 움직였다.
영지 방향을 찾기 위해 다시 높은 나무 위로 올라가 주위를 둘러본 그는 난감한 상황에 부닥쳤다.
‘이런 크로커다일 영지 근처로 와버렸네.’
삼두견 들과 싸우며 이동하다 보니 자신의 영지와 동떨어진 크로커다일의 영지로 돌아오고 말았다.
‘어떻게 해야 하나.’
오성의 성취를 얻기 전의 장현이였다면 고민할 것도 없이 돌아갔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그는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영지전에서 감자재배를 한발 먼저 해내며 강신배 무리에게는 앞선다고 생각했다.
리자드맨은 크로커다일 족에 굴복했으니, 사실상 남은 적은 크로커다일뿐이다.
‘좋아. 크로커다일 영지로 다시 가보자.’
그는 크로커다일 족을 정탐하기로 마음먹었다.
혼자서라면 최소한 몸을 빼내는 데는 문제 없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한몫했다.
장현은 어느새 세이프존 내로 다시 들어왔다.
‘장현, 저기에 화기가 느껴진다.’
세이프존으로 들어서자 쑤엉이 장현에게 말했다.
‘화기의 종류가 뭔지 알겠어? 삼두견이 설마 세이프존 내에 돌아다니진 않을 텐데.’
‘삼두견의 화염은 아닌 거 같아. 이건 대장장이가 물건을 제조할 때의 화기 느낌인데. 마치 화로에서 장현이 불을 일으켰던 때처럼 말이야.’
‘쑤엉, 그곳이 어디야?’
장현은 쑤엉의 말에 뭔가 느껴지는 게 있었다.
‘혹시 아모스가 말했던 아투렉이 아닐까.’
그는 조심스레 쑤엉이 가리키는 곳을 향해 나아갔다.
쾅!쾅!쾅!
소음이 들리는 곳을 향해 나아간 그의 눈에 리자드맨 한 명이 보였다.
그의 옆에는 광물들이 잔뜩 있었고, 조잡한 용광로를 만들어 광물을 넣어 녹이고 있었다.
쾅쾅 두들기던 소리는 절벽의 암석을 캐내는 소리였던 것이다.
‘어디 한번 만나볼까.’
스윽.
장현이 모습을 드러내자 리자드맨은 깜짝 놀라 당황한 목소리로 외쳤다.
“이, 인간이 어떻게 여기에. 넌 누, 누구냐?”
“혹시 당신이 아투렉인가?”
“어, 어떻게 인간이 아투렉을 알지?”
리자드맨은 아투렉이라는 이름을 장현이 언급하자 깜짝 놀라 물었다.
반면, 장현은 그 말에 그가 아투렉이 아님을 알았다.
“그대는 아투렉이 아닌가 보군.”
“난 아탑이다. 인간이여. 아투렉이라는 이름을 어디에서 들었느냐?”
“아모스에게 들었다. 그대가 아탑이군. 그대의 이름 역시 아모스에게 들었다.”
“아, 아모스? 그는 크로커다일 족에 잡혀갔는데……. 넌 크로커다일 족의 노예인가?”
아탑이라는 리자드맨은 아모스를 언급하자 대번에 경계심을 드러냈다.
“난 크로커다일 족의 노예가 아니다. 인간 영지 관리자이다.”
“그, 그렇다면 아모스를 어떻게 아는가? 그는 또 지금 어디에 있지?”
“그는 죽었다.”
장현은 일단 아모스의 존재를 죽은 것으로 하기로 했다.
살아있다고 했다가 죽는다면 곤란해진다.
차라리 죽었다고 하고 나중에 그의 시신을 가지러 간다는 식으로 해서 찾으러 가는 게 좋겠다는 판단이 섰다.
아모스가 죽었다고 하자 대번에 아탑이 분노를 드러냈다.
“네 놈이 그를 죽였는가?”
“아니 그 반대다. 그가 내 생명을 구하고 죽었다. 난 그에게 생명을 빚진 상태지.”
장현의 말에 쑤엉이 놀란 듯 말을 걸어왔다.
‘앗! 장현은 거짓말쟁이였구나. 내가 다 보고 있었는데. 전혀 생명의 은인이라고 느끼는 거 같지 않던걸.’
‘그냥 좀 닥치고 있어.’
‘헐! 어떻게 나한테 그런 말을! 더는 네 부탁 들어주지 않을 거야.’
‘지금, 중요한 대화 중이니 좀 기다려봐.’
쑤엉으로 인해 장현의 얼굴은 절로 찌푸려졌다.
아탑은 그런 장현의 표정을 보고는 아모스의 희생으로 인해 슬퍼하는 거라고 오해했다.
“흠……. 그와 있었던 일을 알고 싶은데 알려줄 수 있겠소?”
조금 경계를 푼 그는 장현의 말이 사실인지 확인하고자 했다.
“그건 어렵지 않지. 사실 난 크로커다일 족 영지에 잠입하다 그와 마주쳤어.”
“크로커다일 족에 잠입했다고. 그 이유는 뭐지?”
아탑은 마치 수사관처럼 캐물었다.
“그건 알다시피 영지전 때문이다. 너희 리자드맨 족이 우리에게 쳐들어왔기 때문에 다음번엔 크로커다일 족이 쳐들어올지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장현의 말은 충분히 일리가 있었기에 아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가 아모스가 할당량을 못 채워서 크로커다일에 얻어맞는 것을 봤다. 같이 사냥하러 갔던 일족들이 다 죽었다고 했다. 할당량을 채우기 힘들다고 사정을 봐달라고 했지.”
“으음…….”
아탑은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장현은 그런 아탑의 표정을 유심히 살피며 말을 이어갔다.
“크로커다일은 할당량을 채우지 않으면 크레온에게 말한다고 했다.”
“으드득……. 빌어먹을 크레온! 빌어먹을 크로커다일. 으아아아아아!”
아탑은 분노를 쏟아냈다.
장현은 아무런 말 없이 그를 바라봤다.
그 또한 1회차에서 겪었던 일이라, 종족을 떠나서 그 마음은 이해할 수 있었다.
대상이 마왕과 마족이냐 크레온과 크로커다일 족이냐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어쩌면 결국 모든 일의 근원은 마왕이다.
한참 동안 울분을 토해내던 아탑은 조금 후 진정되었는지 다시 장현에게 물었다.
“그래서 그다음은 어떻게 됐지?”
“그 후에 그는 사냥을 위해 세이프존 밖으로 나갔다. 나도 함께 따라갔지.”
“잠깐 그대가 아모스를 따라 세이프존 밖으로 갔다고, 그게 사실인가?”
아탑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물었다.
“그렇다.”
장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목숨을 걸어야 했을 텐데 대체 인간인 그대가 왜 굳이 그런 위험을 감수한 거지?”
“우린 힘을 합쳐 크로커다일 족에게 대항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겨우 그 때문에 목숨을 걸고 세이프존을 나섰단 말인가.”
“고작이 아니다. 일족의 운명을 위해서다.”
장현은 아모스를 통해 리자드맨이 추구하는 가치를 이해했고, 그것을 바탕으로 대화를 이끌었다.
1회차와는 명백히 달라진 부분이다.
“내가 그를 목숨 걸고 따라갔기에, 위기의 순간 그는 나의 목숨을 살리고 대신 죽은 것이다.”
“혹시 그가 남긴 말은 없는가?”
장현은 왜 그가 그런 말을 하는지 알았기에 바로 대답했다.
“어머니 에레뜨의 이름으로 나를 친구라고 했다.”
“아아아…… 정말이었구나……. 정말이었어.”
아탑은 장현의 손을 붙잡고 눈물을 주르륵 흘리며 외쳤다.
장현이 말한 것은 리자드맨이 아니면 알 수 없기에, 고작 영지전에서 잠깐 본 인간이 알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던 것이다.
장현의 얘기를 들은 아탑은 장현에게 적극적으로 협력하기로 했다.
아탑은 바로 호칭부터 달라졌다.
“난 여기에서 무기 제작에 필요한 금속을 만들고 있었다. 친구.”
“음……. 친구라고?”
“그렇다 친구. 아모스가 에레뜨의 이름으로 친구라고 선언했으니 그대는 나 아탑과도 친구다.”
“고맙다. 친구.”
장현은 아탑이 내미는 손을 마주 잡았고 아탑은 마구 흔들더니 포옹했다.
시큼한 리자드맨의 비린내가 장현의 코를 찔렀다.
장현은 격하게 포옹하는 아탑을 살짝 밀어내며 물었다.
“하나 물어볼 게 있다.”
“뭐든지 물어라. 친구.”
“이걸로 뽑아낸 금속을 제작하는 것도 아탑 네가 하는 건가?”
“아니다. 내가 아닌 아투렉이 한다.”
장현은 아탑의 대답에 눈을 빛냈다.
“아투렉. 아투렉이라면 리자드맨 종족의 대장장이면서 아모스가 차고 있던 손목 보호대를 만든 자가 맞나?”
“잘 아는군. 그 아투렉이 맞다.”
“날 그에게로 안내해줄 수 있나? 부탁이다. 친. 구.”
장현은 친구라는 단어를 강조하며 아탑에게 부탁했고 아탑은 흔쾌히 받아들였다.
“좋네! 친구. 그대는 아투렉의 친구이기도 하니. 어차피 이 작업이 끝나면 아투렉에게 갈려고 했다네. 그때 같이 가도록 하세.”
“고맙다.”
장현으로서는 드디어 리자드맨 종족의 대장장이 기술을 배울 수 있게 되어 크게 기뻤다.
‘연금술사 조각 퀘스트를 할 수 있게 됐다.’
테세리움 금속의 가공이야말로 마왕을 쓰러트릴 유일한 수단이다.
장현은 자신의 목표를 한시도 잊지 않았다.
연금술사 조각의 퀘스트를 수행하다 보면 언젠가 테세리움을 가공해 낼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하나씩 풀어나가면 된다. 언젠가 연금술사 조각의 비밀을 풀게 되겠지. 그때가 바로 테세리움을 얻는 날일 것이다.’
우선은 리자드맨의 금속 제작부터 배워야 했다.
“아탑 한 가지 물어볼 게 있다. 비록 지금은 아니지만 얼마 전까지 리자드맨과 우리 인간은 영지전을 두고 다투었다. 그런데도 그대는 나를 친구로 생각하는가?”
“음……. 그러고 보니 내가 친구 그대의 이름을 묻지 않았군. 인간 친구여 그대의 이름을 알려다오.”
“장현, 나의 이름은 장현이다. 친구.”
“장현, 장현, 장현……….”
아탑은 몇 번이나 반복해 장현의 이름을 되뇌고는 단호하게 말했다.
“걱정하지 마라. 장현. 설령 인간 종족과 우리 리자드맨 종족이 싸우더라도 장현 그대가 우리의 친구라는 건 변함이 없다. 그대가 우릴 배신하지 않는 한 우리는 그대를 친구로 생각할 것이다.”
단호한 어투로 아탑은 말을 이었다.
“그리고 우린 어차피 크로커다일 종족에게 종속되었기에 인간들과는 영지전을 다투지 않는다. 우리 종족은 슬프게도 영지전에서 이미 탈락했다네.”
“음. 그거참 애석한 일이지만 동시에 우리 인간에게는 다행한 일이라 뭐라 말하기가 어렵군. 우리가 함께 같은 배를 탈 수 있게 되었으니까.”
“그러니 편하게 말해보게. 부탁할 게 무엇인가?”
“난 그대 리자드맨의 대장장이 기술을 배우고 싶네.”
“뭐라고? 우리 리자드맨의 대장장이 기술을 배우고 싶다니……. 혹시 장현 그대는 대장장이인가?”
“그래. 난 대장장이면서 동시에 연금술사이기도 하지.”
아탑은 장현의 말에 의아한 듯 물었다.
“대장장이는 알겠는데, 연금술사는 뭐지?”
“아탑 자네가 지금 하는 저 금속을 만들어내는 일이지.”
“아……. 내가 하는 일을 인간들은 연금술이라고 부르는가 보군.”
아탑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럼 리자드맨들은 뭐라고 부르지?”
“아쉽게도 내게는 명칭이 없다네. 그저 대장장이 아투렉을 돕는 자일 뿐이라네.”
“음……. 그건 이해할 수 없는 일이군.”
“무엇이 말인가?”
“난 연금술사이면서도 대장장이. 두 개의 일은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둘 다 중요한 일이다. 대장장이는 물론 무기를 비롯한 다양한 아이템을 만들어내지만, 그 모든 것들은 금속이 있어야 한다. 연금술사는 바로 그 금속을 만들어내는 일을 하지. 좋은 금속을 만들어 낼 수 없다면 결코 좋은 아이템을 만들 수 없어.”
“그대는 과연……. 훌륭한 인간이다. 친구. 넌 내 일에 자긍심을 불어넣어 줬다.”
아탑은 장현의 말에 감격했다.
그리고는 장현을 다시 한번 크게 껴안으며 포옹했다.
장현은 떨떠름했지만 피하지 않고 마주 안았다.
‘휴……. 퀘스트를 얻기 위함이지만 곤혹스럽군.’
사실 리자드맨의 호감을 얻기 위해 한 말이지만 이것은 장현이 진심이 담긴 말이었다.
연금술은 정말로 고도의 창조능력이다.
흔한 돌과 동물의 사체로부터 금속을 만들어내는 일이다.
연금술사가 그 일을 해주지 않는다면 결코 대장장이는 아이템을 만들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