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장장이 회귀해서 만능캐되다-45화 (45/211)
  • 45화. 영지를 가꾸다 (1)

    퍽!퍽!퍽!

    휙휙휙!

    땅 파는 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이성훈이 소릴 높이며 영지민들을 독려했다.

    “좀 더 깊이 파세요. 터를 단단히 닦아야 합니다.”

    토목에서는 터 다지기가 기초다.

    영지민들이 이제 토목과 건축에 매달렸다.

    집을 짓기 위해서다.

    자신들이 앞으로 지내야 할 집이기에 누구도 불평하지 않았다.

    한 팀은 곡괭이로 땅을 파고 있었고, 다른 한 팀은 삽으로 흙을 퍼 나르고 있었다.

    “언젠가 꼭 내 집을 갖고야 말겠다고 결심했었는데, 마계에서 직접 집을 지을 줄이야.”

    정하진이 땅을 파다 말고 중얼거리자, 옆에서 흙을 퍼 나르던 김인환이 받았다.

    “대한민국에서 못 이룬 꿈 마계에서 이룬다니 허탈합니다. 전 평생 전세살이만 했습니다.”

    “아저씨는 전세라도 사셨군요. 전 월세만 살았어요. 다세대주택에서 원룸으로 메뚜기 뛰듯 옮겨 다니며 살았죠.”

    “정하진씨도 힘들게 사셨군요.”

    그때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김태석이 한마디 했다.

    “흐흐. 염병할. 가난한 게 자랑이다. 자랑이야. 제기랄.”

    “뭐요?”

    “흙수저로 살다가 온 게 뭐가 자랑이라고 흙 파고 나르면서 그딴 소릴 하냐고. 짜증 나게.”

    김태석은 장현과 최형석의 말을 어기고 부하들과 삼두견에게 죽은 뒤 혼자 패자부활전에서 살아 돌아왔다.

    그 후로 최형석과도 사이가 어색해졌다.

    이 모든 상황이 짜증과 분노가 되어 김태석을 예민하게 만들고 있었다.

    “이봐. 지금 시비 거는 거야?”

    이들의 다투는 모습은 감독관인 이성훈의 눈에 띄었다.

    “거기 왜 그러십니까. 싸우지 맙시다.”

    “아니 관리자님. 저 사람이 갑자기 시비를 건다 아입니까.”

    “무슨 문제 있습니까? 김태석 씨”

    “킥. 문제는 무슨. 니미, 씨벌. 퉤.”

    김태석은 피식 웃으며 침을 찍 하고 뱉고는 이성훈을 노려보았다.

    불과 얼마 전까지 기차역에서 겁에 질려 뒤로 빠져 움직이던 나약한 공무원이 그보다 계급이 높은 관리자가 되었다.

    심지어 튜토리얼에서는 이나연 뒤에 숨어 벌벌 떨던 자가 아닌가.

    김태석은 패자부활전에서 살아난 이후로 과거와 성격이 달라졌다.

    큰 형님이던 최형석을 볼 면목이 없었다.

    예전 같으면 술 한잔하면서 풀 수도 있었겠지만, 이번은 정도가 지나쳤다.

    김태석의 잘못으로 동생들이 삼두견 무리에 모조리 죽어버린 것이다.

    그 때문에 최형석도 심사가 복잡해 김태석을 외면하고 있었다.

    “뭐라고?”

    이성훈은 최형석의 태도에 눈썹을 꿈틀거렸다.

    한편, 이성훈 역시 김태석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튜토리얼 때 최형석과 함께 사람들을 괴롭히던 장면에서부터 기차역에서 분란을 일으키는 행동까지 그는 다 기억하고 있었다.

    눈살 찌푸리는 일이 많았지만 참았고 참을 수밖에 없었다.

    자칫 목숨이 날아가는 위험이 항상 존재하는 곳에서 쓸데없는 짓으로 죽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저런 꼴통들은 언제든 사고 치지.’

    그가 평소 최형석 김태석 조폭 무리를 보면서 한 생각이었다.

    일반인치고 조폭을 좋아할 사람은 없다.

    평범한 일반인으로 살아온 이성훈도 다를 것이 없었다.

    ‘역시는 역시군.’

    기차역에서 무리한 행동 끝에 죽은 듯하더니 운이 좋은지 몰라도 되살아 여기까지 왔다.

    그렇지만 그때와 지금은 많은 차이가 있다.

    가장 큰 것은 바로 이성훈은 죽지 않고 통과했고, 김태석은 한 번 죽으면서 능력치가 리셋되었다는 것이다.

    장현과 전투를 치르며 여기까지 살아서 온 유일한 다섯 명 중의 하나.

    경험이 평범한 공무원을 진정한 플레이어로 탈바꿈시켰다.

    그는 사실 그리 순하기만 한 사람은 아니었다.

    공무원으로 지내면서 민원인에게 받은 스트레스, 상사와 조직에 받은 스트레스로 상당한 분노가 내재하여 있었다.

    그 분노가 지금 터져 나오려 했다.

    이성훈이 피식 웃었다.

    “지금 영지민 새끼가 감히 관리자인 나한테 개기는 거냐?”

    “뭐? 이 새끼가 지금 관리자 됐다고 눈에 뵈는 게 없나?”

    “눈에 뵈는 게 없는 건 네놈인 거 같은데. 기강을 잡기 위해서라도 보여주지. 덤벼봐.”

    이성훈은 창과 방패를 활용한 전투술을 배우고 익힌 데다 최근에는 리자드맨과 전투에서도 목숨 걸고 싸웠다.

    반면 김태석은 경비대원도 아니다.

    지구에서 조폭 아니 설령 종합격투기 챔피언이었다고 하더라도 마나 포인트가 초기화된 영지민 수준으로는 결코 관리자를 이길 수 없다.

    이성훈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김태석이 가소로웠다.

    “개새끼, 그까짓 관리자인지 뭔지 됐다고 깝쳐? 어디 죽어봐라! 이 씨발놈아.”

    김태석이 곡괭이를 들고 이성훈에게 덤볐다.

    곡괭이를 위로 쳐들고서는 힘차게 내려찍었다.

    장현이 만든 곡괭이는 한쪽은 도끼 부분과 한쪽은 곡괭이로 되어 있었다.

    쉬익!

    그중 기다란 곡괭이 끝부분이 이성훈의 정수리를 노리고 날아왔다.

    “인벤토리.”

    슥.

    이성훈의 손에는 어느새 창과 방패가 들려 있었다.

    쾅!

    타격음이 울려 퍼졌지만, 이성훈은 무난히 막았다.

    영지민과 관리자의 레벨 차이는 사실 넘기 힘든 벽이 있다.

    김태석은 모든 스탯이 초기화된 상태.

    반면 이성훈은 레벨이 3이 되면서 신체 능력만 따졌을 때 일반인에 비하면 초인이나 마찬가지.

    “겨우 이 정도 힘으로 그렇게 건방 떨었나.”

    이성훈은 김태석의 공격을 가볍게 막으며 그를 향해 비아냥거렸다.

    “이익! 이 새끼가.”

    분노한 김태석이 마구 곡괭이를 휘둘렀다.

    쾅! 쾅! 쾅!

    김태석의 곡괭이는 결코 방패를 뚫지 못했다.

    ‘흥! 더이상 볼 필요 없군.’

    이성훈이 어느 순간 창을 휘둘렀다.

    창대가 휘어지며 김태석의 무릎을 쳤다.

    퍽!

    “어억!”

    털썩!

    무릎 공격을 허용한 김태석이 중심을 잃고 넘어졌다.

    이성훈이 쏜살같이 달려와서 방패로 내려찍었다.

    쾅!

    방패 날로 내리쳐 죽일 수도 있었다.

    이성훈의 행동을 자제시킨 건 최형석의 존재였다.

    ‘쳇! 그 아저씨만 아니었다면.’

    김태석을 죽인다면 최형석과 껄끄러워질 게 분명했다.

    그렇게까지 할 정도로 김태석과 원한이 쌓인 것은 아니었다.

    이성훈은 방패 면으로 내리쳤다.

    퍽! 퍽!

    “으으아아악!”

    방패는 장현이 거대흑전갈 껍질로 연성한 무리늄 재질이다.

    같은 무리늄이라도 상급 중급 하급이 있다.

    튜토리얼에서 장현이 무리늄을 연성했을 때는 하급에 가까웠다.

    거대흑전갈은 다르다.

    기존 무리늄과는 재질이 크게 차이가 난다.

    그 때문에 연성을 위해 중급연성술이 필요했을 정도다.

    그런 방패이기에 단단하면서도 묵직하다.

    “크아아악!

    방패로 내려치는 이성훈의 공격에 김태석은 양팔을 가드해 막았지만, 팔뼈가 바스러지는 듯한 충격을 느꼈다.

    우둑! 우두둑!

    팔뼈에 이어 가슴뼈도 부러졌다.

    김태석의 입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쿨럭. 크억!

    그때 쓰러진 김태석을 내려보던 이성훈이 방패를 치켜들었다.

    "날 죽이려 했으니 죽어도 원망하지 마라."

    "으이익."

    당황한 눈으로 김태석은 이성훈을 쳐다봤다.

    입술을 깨물며 살기에 찬 냉랭한 눈빛.

    김태석은 죽음을 느끼고 눈을 질끈 감았다.

    이성훈은 방패를 치켜든 채 그런 김태석을 노려보았다.

    “거기까지 하지.”

    때마침 익숙한 목소리에 이성훈은 뒤를 돌아보았다.

    최형석이었다.

    이성훈은 김태석에게서 물러난 다음 최형석을 돌아보았다.

    “최형석 씨. 이자는 절 죽이려 했습니다. 거기다 다른 영지민들에 시비 걸면서 분란까지 일으켰고요. 이대로 물러서면 제가 일하기 힘들어집니다.”

    “음……. 앞으로 그런 일 없을 거야."

    "알겠습니다. 최형석 씨."

    이성훈은 바닥에 쓰러진 채 인상을 찌푸리는 김태석을 힐끔. 바라보더니 자리를 옮겼다.

    이어 그는 주위에서 쳐다보고 있던 영지민들을 향해 손뼉 치며 소리를 높였다.

    짝짝!

    "자자. 다시 일합시다. 이제 여기가 우리 집이고 여러분이 살 터전이니 열심히 합시다."

    "네. 감사합니다. 관리자님"

    "죄송합니다. 저희 때문에……."

    이성훈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작업을 독려했고, 정하진과 김인환은 자신들로 인해 일이 커지게 된 데에 대해 사과했다.

    "아닙니다. 원래 작업현장에서는 잡음이 생기는 법이죠. 예상범위 내라 괜찮습니다."

    이성훈은 웃으며 대답했다.

    조금 전까지 무기를 들고 싸움을 한 사람 같지 않게 태연한 모습에 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김태석과 시비가 붙고 싸움하기까지의 과정을 본 대부분의 영지민들은 이성훈이 보여준 모습으로 인해 관리자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게 되었다.

    ‘어차피 한 번쯤은 이런 일이 있을 거라 예상했다. 이번 일이 오히려 잘된 거 같군.’

    과하지도 덜하지도 않았다.

    영지민을 통솔하기에도 문제를 일으킨다고 바로 죽이는 것과 적당히 혼내주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내가 원하는 건 적당히 가깝게 지내면서 적당히 존중받는 것. 그게 최고지'

    뭐든 '적당히'를 선호하는 공무원 이성훈의 마인드였다.

    최형석은 김태석을 내려보았다.

    언제나 든든하던 동생이었다.

    자신의 실수에 조직이 무너질뻔한 날 끝까지 뒤를 지켜주던 그였다.

    목숨보다 중한 의리.

    그게 서로간에는 존재했었다.

    그런 관계가 틀어진 건 오크던전에서 장현이 자신과 김태석을 살려주면서부터다.

    그때부터 최형석이 장현을 큰형님으로 모시기로 했고 김태석은 거기에 불만을 품은 것이다.

    ‘멍청한 놈. 보는 눈이 없으니 이런 꼴을 겪지.’

    부산을 휘어잡고 전국구로 날리던 조직의 두목이 새파랗게 어린 20대에게 굽히고 충성한다는 게 충격이고 실망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장현과 최형석의 말을 거역했겠지.

    동생들을 이끌고 기차역을 떠나 독자적인 행동을 취했고 그 결과는 모두의 죽음으로 끝났다.

    김태석이 패자부활전에서 무슨 일을 겪었는지는 모른다.

    다만 그가 자신의 말을 지키지 않고 동생들을 선동해 떠났으며 혼자 살아 돌아왔다는 것.

    그것이 중요했다.

    ‘배신이나 마찬가지.’

    최형석에게 부하의 배신은 용서할 수 없는 일.

    김태석을 바라보는 최형석에게서 싸늘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바보 같은 놈.“

    "형님……."

    "네가 한 행동은 나에 대한 배신이나 마찬가지다. 너라면 그걸 모르지 않을 거다."

    "형님이 먼저 우릴 배신했잖습니까.“

    김태석의 적반하장에 최형석이 분노했다.

    "이 새끼가."

    "우릴 내버려 두고 그 어린놈을 형님으로 모시고 따라갔잖습니까. 그게 배신이 아니면 뭡니까. 형님이 우릴 배신한 거라고요. 예전의 형님이었다면 그렇게 했겠습니까. 우리 조직의 보스가 그런 사람이었느냐고요."

    김태석의 변명은 어느새 절규가 되어 울부짖고 있었다.

    "나는 너희들을……. 살리기 위험이었다."

    "살리기 위함이라는 개소리는 집어치우십시오. 그건 비겁한 변명입니다. 형님은 그냥 우릴 버리고 장현에게 붙은 거라고요. 솔직히 장현을 따라다닌 이유가 뭡니까. 강해지기 위해서 아닙니까. 그럼 우리는요? 갈수록 적은 강해지는 데 가만히 있으면 그다음에는요. 언제까지 피해야 합니까. 겁쟁이처럼 숨어서 기다리는 게 우리 주먹들이 할 행동이냐고요. 형님이야말로 가슴에 손을 얹고 얘기해보란 말입니다."

    김태석의 외침에 최형석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고통. 회한. 슬픔으로 복잡했다.

    “난 언제나 너희들과 함께였다. 이곳에 오기 전부터 온 이후로도 쭈욱. 튜토리얼부터 기차에서까지 난 함께였다. 기차역에서의 임무는 소수정예가 필요했기에 자원한 것. 네가 동생들을 잘 끌어내 뒤를 받쳐주길 바랐는데……. 내 말대로 기다렸다면 지금 너와 동생들 모두 살아서 관리자가 되었을 것이다. 저 공무원도 살아서 관리자가 되었는데 너희들이 그러지 못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 모든 일의 책임은 결국 너에게 있다.”

    최형석의 마지막 말에는 단호한 결심이 서려 있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마음대로 하십시오.”

    김태석은 고개를 저은 후 더이상 말을 않았다.

    스윽.

    최형석은 김태석이 떨어뜨린 곡괭이를 집어 들었다.

    “큭큭큭큭. 그 곡괭이로 절 죽이려고요. 좋습니다. 제가 죽을 자리는 형님 곁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배신의 대가를 치르는 거다. 김태석. 미리 죽은 동생들의 곁에 가서 사죄해라.”

    최형석은 곡괭이의 도끼날이 밖으로 향하게 잡고는 뒤로 젖혔다.

    최형석은 단호히 결심하고 내리쳤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