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화. 리자드맨과 싸우다 (2)
전투가 벌어지면 김덕배는 항상 전장의 맵을 켰다.
이번에도 그는 맵을 한참 살피더니 이성훈에게 말했다.
“전장의 맵으로 지금 봤는데 저들 리자드맨 중에 특별히 높은 레벨은 없어요. 다들 비슷한 레벨로 나와요. 리자드맨 관리자는 없는 거 같아요.”
“아, 감사합니다. 영주님.”
김덕배의 말을 들은 장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한마디 했다.
“이게 덕배가 깃발 사수자여야 하는 이유다.”
“아……. 그렇군요. 정말 큰 도움이 됩니다.”
이성훈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김덕배는 전장의 맵으로 자신의 주위 상황을 항상 체크할 수 있다.
적이 얼마나 있는지, 강한 자는 얼마나 있는지. 그뿐 아니라 지도를 통해 지형도 알 수 있다.
즉, 피하려고 한다면 얼마든지 도망 다닐 수 있다는 의미다.
“덕배, 넌 그 능력을 발휘해 최대한 안전을 도모해라.”
“나도 싸우고 싶은데…….”
김덕배는 허리춤에 매여있는 장현이 선물로 준 장검을 가리키더니 손에 든 깃발을 바닥에 쿵쿵 찧으며 말했다.
용암 동굴에서도 그는 보호받으며 화염의 펜던트로 동료들을 보조하기만 할 뿐이었다.
그 때문에 직접 싸우고자 하는 열망이 컸다.
“그러다 체크메이트 당하면 우리 모두 끝입니다. 영주님.”
이성훈이 김덕배에게 주의줬다.
“아……. 알겠습니다.”
덕배는 자신이 맡은 임무의 중요성을 깨닫고 조용히 전투를 바라보았다.
리자드맨은 인간들을 우습게 보고 있었다.
“크크크, 허약한 인간 놈들이 우리 땅을 노린다. 감히 가당치도 않은 꿈을 꾼 놈들을 죽여버리자!”
“인간 놈들을 모조리 죽여버리자!”
취리리리릭!
으아아아아아!
리자드맨들은 무기도 없이 맨몸으로 덤벼들었다.
그들의 피부 껍질은 질기면서도 미끈거린다.
적의 공격에 큰 타격을 받지 않지만, 그들의 공격력 자체는 강하다.
‘어디 한번 지켜볼까.’
장현은 흥미롭게 지켜봤다.
장현 일행이 세이프존에 도착하기 전 영지민들과 한번 교전했었지만, 그때는 이나연이 경비대원들에게 훈련을 시키기 전이였다.
경비대원들 역시 이번엔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들을 훈련한 이나연, 최형석, 이성훈, 김덕배 역시 확신했다.
경비대원들은 하나같이 창과 방패로 무장하고 있었고, 그것들은 장현이 연성하고 만든 무구들이다.
더군다나 감자를 먹어 본래 가진 마나가 소실되기는커녕 마나량이 늘어났기에 전투력 또한 당연히 상승했다.
튜토리얼에 처음 왔을 때만 해도 공격력이 100이 넘는 자가 드물었으나, 지금은 모두가 공격력 100이 넘었다.
그렇기에 모두들 질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
우르르르르.
리자드맨의 돌진하는 기세가 심상치 않다.
꽤 많은 수의 군대가 돌진을 하니 그 울림이 땅을 타고 전해져와 작은 지진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들의 돌진은 용맹도 전의도 아닌 오만이었다.
이미 승리를 확신하며 돌진하는 리자드맨들.
반면 인간 쪽은 훈련이 되어 있다고는 하나 영지전에서의 집단전투는 처음이었다.
땀으로 방패와 창을 쥔 손이 미끄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들 사이에서는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장현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전투를 조망하고 있었다.
이나연의 구령이 떨어졌다.
“들어 방패!”
“들어 방패!”
이나연의 지시에 복명하며 경비대원들은 일제히 방패를 들어 올렸다.
동시에 창은 하늘을 향하게 세웠다.
리자드맨들이 5m 앞까지 다가왔을 때 이나연의 지시가 떨어졌다.
“찔러 창!”
“찔러 창!”
푹.푹.푹!
콰직. 우두둑.
1열의 창이 리자드맨의 선두 무리를 꿰뚫었다.
리자드맨들은 창 공격에 일순 당황했지만 밀어붙였다.
“놈들이 이상한 무기를 지녔지만, 우리가 더 강하다!”
리자드맨들이 몸으로 부딪쳐왔다.
쾅! 쾅! 쾅!
리자드맨들의 몸통 공격은 선두열의 방패에 부딪혔다.
경비 대원들은 연습한 대로 무게중심을 낮추고 버텼고, 뒷열에서 지지해 주었다.
이때 이나연의 지시가 떨어졌다.
“뒷열은 좌우로 흩어져 학익진을 펼치며 포위하라!”
이나연의 지시에 경비대원 중 뒷열 쪽에서 양옆으로 흩어지더니 리자드맨들을 방패로 밀어붙이며 포위했다.
리자드맨들은 자연스레 한곳으로 모였다.
그때 이나연의 고성이 울렸다.
“찔러 창! 사정없이 죽여버려!”
“으아아아아!”
푹푹푹푹!
이나연의 명령에 경비대원들은 포위한 채 가지고 있는 창으로 일제히 리자드맨들을 공격했다.
“으으아아악!”
리자드맨들은 단결된 인간들의 전술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이나연은 승리를 확신했다.
장현 등을 돌아보며 어떻냐는 듯 미소를 지었다.
“어, 어? 저기!”
덕배가 손가락으로 전면을 가리켰고, 전투를 지켜보던 사람들의 표정이 굳어 있었다.
“정신 차려! 이나연! 전투는 끝나지 않았다.”
장현이 소리를 질러 주의를 시켰다.
“뭐? 그게 무슨.”
휙 하고 고개를 돌린 그녀의 눈앞에 예상 못 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었다.
창에 꿰뚫렸음에도 치명상을 입지 않은 리자드맨들은 다시 일어났다.
콱!
“크으윽.”
자신의 몸을 꿰뚫은 창을 붙잡은 채 일어나기 시작하는 리자드맨들을 보며 경비대원들은 당황하고 겁에 질린 채 멍하니 있었다.
“이……. 이놈들 어떻게 창에 관통당하고도 죽지 않는 거지.”
“크으윽. 인간! 우리 리자드맨은 이 정도로 죽지 않는다.”
리자드맨은 창을 잡고 완전히 몸을 일으켰다.
이어 겁에 질린 경비대원의 방패를 다른 손으로 붙잡아 당겼다.
“으어어어.”
리자드맨이 손을 뻗었다.
차차차창.
리자드맨의 손톱이 길게 뻗어 나오더니 경비대원의 방패를 쳐냈다.
쿠쿵!
경비대원은 애써 방패를 붙잡았지만, 한 손으로 잡은 방패는 쉽게 중심을 잃고 허점을 보였다.
콰직!
리자드맨의 손톱이 방패를 빗겨 경비대원의 몸통을 꿰뚫었다.
“으아아아악!”
손톱에 꿰인 경비대원은 리자드맨과 달리 쓰러져서는 일어나지 못했다.
꿈틀. 꿈틀.
경비대원의 손이 꿈틀대더니 툭 하고 붙잡은 창과 방패를 떨구었다.
데구루루.
콰지직.
리자드맨은 쓰러진 자의 방패와 몸통을 밟고 넘어가 다음 목표를 향해 몸을 움직였다.
“으아아!”
몸에 창이 꽂힌 채 사람을 죽이는 리자드맨을 본 경비대원들은 공포에 질렸다.
그들은 전의를 상실했다.
자신의 무기가 적에게 통하지 않는다는 두려움에 잠식되었다.
경비대원들은 여기저기서 리자드맨에 쓰러지기 시작했다.
“안 되겠군. 다들 가자!”
지켜보던 장현은 빠르게 뛰어들었다.
슬쩍 이나연을 보니 그녀도 당황한 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이나연, 뭐 하는 거야. 정신 차려!”
“아……. 자, 장현씨. 어떡하지. 사람들이 죽어가. 나 때문이야…….”
이나연이 정신이 나간 채 눈물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트라우마다.
튜토리얼을 겪으면서 곁에 있던 사람들이 죽어 나갔던 충격이 다시금 같은 일을 반복해서 겪으면서 상처가 되살아났다.
“지금 그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경비대원들 전체가 사기가 꺾였어. 우리가 이길 수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해. 경비대장이 이러고 있으면 어떡해! 모두를 죽일 셈이야?”
장현은 달리면서 이나연을 독려하고는 경비대원들 사이를 돌파해나갔다.
그 뒤를 김덕배, 최형석, 이성훈이 따라갔다.
“들어 방패!”
두둥.
장현의 목소리가 전장에 울려 퍼졌다.
혼란에 빠져있던 경비대원들의 시선이 장현에게 꽂혔다.
‘보여준다.’
창과 방패를 활용해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 보여줄 생각이다.
순식간에 최전선에 도착한 장현이 리자드맨 무리를 향해 뛰어들었다.
붕붕붕!
창이 움직였다.
푹.푹.푹.
창은 빠르게 리자드맨의 머리를 찔렀고 머리가 박살 난 리자드맨들은 더 이상 일어나지 못했다.
장현은 종횡무진 움직였다.
한 놈의 머리를 부수었다 싶은 순간 창은 이미 다른 리자드맨의 머리를 찔러가고 있었다.
쓰러져가는 리자드맨들이 하나둘씩 늘어갔다.
“놈들의 머리를 공격하라! 머리가 부수어진 놈들은 더이상 일어나지 못한다!”
쉬익.
콰직.
장현은 바닥에 쓰러진 리자드맨의 머리에 다시 창을 찔러 넣고는 창에서 손을 놓았다.
스윽.
아직도 살아있는 리자드맨들이 장현의 주위로 몰려들었다.
그들은 인간 무리 중 장현을 가장 위협적인 상대로 인식한 듯했다.
피식.
장현은 그 모습을 보며 방패를 들어 올렸다.
“공격 수단은 창 외에 방패도 있다. 방패는 막는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다. 잘 지켜보도록.”
그는 말과 함께 방패를 휘둘렀다.
쉬익.
쾅!
방패에 부딪힌 리자드맨이 튕겨 날아갔다.
이어 장현은 쓰러진 놈에게 빠르게 다가가 방패 날 부위로 리자드맨의 머리를 박살 냈다.
우직!
그게 시작이었다.
그는 몸을 방패에 붙인 채 모여있는 리자드맨 무리에 돌진했다.
쾅!쾅쾅!
리자드맨들 역시 그냥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손톱을 날카롭게 뻗어 장현을 공격했으나 그는 손톱 공격을 방패에 비스듬하게 부딪히더니 재차 몸통 공격을 이어갔다.
쾅! 쾅쾅!
장현이 방패를 휘두를 때마다 리자드맨의 머리가 부수어지거나 팔다리가 잘려나갔다.
그때 장현의 뒤를 따라온 관리자들이 장현의 전투를 보고는 따라하기 시작했다.
‘내가 이럴 때가 아니야.’
이나연은 멍하니 있다가 장현의 동작을 보았다.
경비대장인 자신이 넋 놓고 있었다는 게 부끄럽다.
아무리 장현이 강하고 전투에 능하다고 하더라도 경비대장은 그녀다.
이대로 있기에는 경찰이자 무술인으로서 부끄러웠다.
“들어 방패!”
어느새 이나연이 크게 외치며 리자드맨에게 달려들었다.
경비대원들이 그녀를 바라봤다.
장현을 비롯한 관리자들 역시 이나연을 바라봤다.
“여어…… 돌아왔구나! 그래야 경비대장이지!”
“헤헷. 나연누나! 같이 가보자구!”
더이상 이나연은 여리고 약한 사람이 아니었다.
“들어 방패!”
다시 한번 울리는 이나연의 외침에 최형석이 복창하며 방패를 들었다.
“들어 방패!”
척!
김덕배도, 이성훈도 따라 외치며 방패를 들었다.
“들어 방패!”
“들어 방패!”
척!척!
경비대원들도 용기를 내 따라 외치기 시작했다.
“대장을 따른다! 들어 방패!
”들어 방패!
척!척!척!척!
여기저기서 외치더니 어느새 전장에 함성이 울려 퍼졌다.
“가자! 놈들을 부숴버리는 거다! 찍어 방패!”
함성을 뚫고 이나연의 외침이 울려 퍼졌다.
으아아아아아!
“가자!”
아아아아아!
죽여버려!
경비대원들이 일제히 기합을 지르며 리자드맨들에게 덤벼들었다.
인간 경비대원들과 리자드맨 무리가 재차 충돌했다.
투두두두두둑!
쾅!쾅!쾅!쾅!
이나연이 외치며 방패를 옆으로 세워 휘두르더니 쓰러진 리자드맨을 방패로 내려찍었다.
“으아아아아!”
“찍어 방패!”
경비대원들이 이나연의 구령에 호응해 리자드맨에게 다시 덤벼들었다.
쾅!
콰직!
경비대원들과 리자드맨들이 다시금 어우러졌다.
“죽어! 이 새끼들아!”
“찍어 방패!”
쾅! 콰지직!
경비대원들이 용기를 내 방패를 휘두르고 내려찍었다.
장현이 보여주고 이나연이 보여준 전투방식이다!
전장의 분위기가 일순 반전했다.
그러자 리자드맨들의 기세가 순식간에 꺾였다.
“취이이익. 후퇴하라.”
“인간들이 예상보다 강하다. 후퇴하라. 취이이익.”
공격해온 리자드맨들 중 살아남은 무리가 도망치기 시작했다.
“놈들을 뒤쫓지 마라. 전열을 정비하는 게 우선이다.”
이나연은 굳이 도망가는 리자드맨들을 쫓지 않고 내버려 두었다.
“이, 이겼다.”
“와아아아아.”
전투에서 살아남은 경비대원들이 함성을 질렀다.
영지민들이 기뻐하는 와중에, 그 분위기에 동참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다.
“나 때문이에요.”
이나연이었다.
그녀는 쓰러져 죽은 사람들을 보며 그제야 참았던 눈물을 흘렸다.
“내가 좀 더 냉정했더라면. 집단 훈련뿐 아니라 개인훈련까지 시켰더라면. 그러면 저들은 다시 죽지 않아도 되었을 거예요.”
“그랬겠지.”
장현은 이나연의 자책에 냉정히 말했다.
“지휘자란 그런 것이다. 이나연. 넌 이들을 책임지는 경비대장이다. 항상 제2의 대책, 제3의 대책을 세워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항상 정신을 차리고 있어야 해. 네가 멍하니 있다가는 다른 사람들을 다 죽게 만들 거야.”
이나연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고개를 떨구었다.
김덕배가 안타까운 표정으로 그녀를 보며 장현을 나무랐다.
“자, 장현아 안 그래도 나연누나가 자책하는데 굳이 이 상황에 그런 식으로 말을 하다니…….”
“김덕배. 너도 정신 차려!”
장현은 김덕배의 태도에 더 화가 치밀었다.
“응?”
“넌 깃발을 사수해야 할 임무를 가졌다. 그런데 전장에 나와서 싸우다니! 그러다 깃발을 뺏겼다면 영지전은 그대로 종료되었을 것이다. 튜토리얼에서 겪은 걸 벌써 잊은 거냐. 퀘스트를 통과하지 못한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아……. 미, 미안해.”
“이성훈! 당신도 마찬가지! 김덕배는 영주라는 것을 잊었나? 영주를 보좌해야 한다는 건 영주의 깃발을 노리는 자로부터 방비해야 하는 임무를 가진 거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랑 똑같이 전투에만 집중했었지!”
“죄송합니다. 장현씨!”
“이건 연습이 아니야. 실전이다. 실수는 용납되지 않아.”
“......”
장현의 호통에 승리했다는 기쁨도 잠시 모든 사람은 침묵한 채 듣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장현은 후. 하고 한숨을 쉬더니 한 마디를 더했다.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스스로 역할을 다해야 한다. 그러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하고 죽으리라는 것을 명심하길 바라.”
장현은 마지막 말을 남기고 먼저 자리를 벗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