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화. 리자드맨과 싸우다 (1)
장현은 화로 앞에 앉아 꺼내놓은 금속들을 하나씩 집게로 집어 불에 넣었다.
‘쑤엉, 부탁해.’
‘내 힘이 필요한가 보군.’
화염의 정령 쑤엉은 자신의 몸체 일부분을 화로 안에 넣어두었기에, 항상 화로에 불을 일으킬 수 있었다.
화르륵!
쑤엉이 불을 일으키자 화로는 순식간에 강한 불길을 뿜어냈고 이내 금속은 빨갛게 달구어졌다.
‘흠. 불길은 분명 강한데 생각보다 뜨겁지 않은걸.’
‘그거 내 덕인 줄 알아. 내가 네 안에 존재하기 때문에 더위나 추위를 느끼는 일은 이전보다는 덜 할 거야.’
‘아예 영향을 안 받는 건 아니네.’
‘그건 아직 내 능력이 약해서 그래.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온도 내에서야. 그러니 부지런히 날 키우라고!’
뭔가 장현에게서 아쉬워하는 기색을 느꼈는지 쑤엉은 빠르게 변명했다.
‘물론 그래야지!’
테세리움을 다루기 위해서는 극도의 고온이 필요하다.
장현은 쑤엉을 반드시 키워야만 하는 처지다.
땅땅땅!
금속이 충분히 달궈지자 장현은 모루로 옮겨 힘차게 망치를 두들겼다.
푹푹푹!
한 번 두드릴 때마다 금속은 점점 납작해졌고 그는 금속의 부위마다 다른 힘으로 두드렸다.
끝은 날카롭게, 가운데는 평평하고 뭉툭하게 두들겨갔다.
점점 금속의 끝은 곡괭이 모양이 되어갔다.
화르륵!
다시 화로에서 달군 뒤 이번엔 금속의 반대쪽 끝을 두들겼다.
‘한쪽은 곡괭이, 다른 쪽은 도끼.’
자신의 영지민들 중 ‘갓 오브 곡괭이’가 탄생할 수도 있지만, 알 수 없다.
반대쪽에 도끼날을 단다면 또 다른 공격수단도 될 수 있을 뿐 아니라 물건을 자를 때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됐다.”
어느새 한 쪽은 곡괭이 다른 쪽은 도끼날이 붙어있는 곡괭이가 만들어졌다.
이제 곡괭이에 곡선의 각도를 넣어야 한다.
곡괭이가 휘어있는 각도는 아무렇게나 정한 것이 아니다.
‘힘의 분포와 회전원리가 들어가 있다고 했던가.’
‘갓 오브 곡괭이’ 그의 요구대로 제작할 때는 까다로웠지만, 그 덕에 장현 역시 성장했다.
물건을 만들 때 사용자의 신체, 아이템의 역할 움직임 그 모든 것에 물리학과 수학이 들어가야 한다는 걸.
‘그 덕에 고급 대장장이가 될 수 있었지.’
대장장이 조각은 그걸 자동으로 계산해줬지만, 지금은 스스로 계산해야 한다.
장현은 상태창에 계산기 기능을 꺼내 복잡한 수식을 넣었다.
그는 수식을 보며 정밀히 작업을 이어갔다.
“끝인가.”
장현은 자신이 완성한 곡괭이를 바라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때 그의 눈앞에 알림이 떠오르며 아이템 완성을 알렸다.
[새로운 아이템을 제작하였습니다.]
[아이템에 이름을 지어주세요.]
“곡괭이.”
[아이템의 이름이 ‘곡괭이’로 명칭 되었습니다.]
[중급대장장이가 되기까지 제작해야 할 아이템은 1개입니다. (3/4)]
‘됐다.’
장현은 곡괭이를 만들며 중급대장장이까지 이제 1개의 아이템만이 남았다.
영지민들은 그가 만든 곡괭이로 감자 두더지가 파놓은 지대를 중심으로 땅을 파고 감자 씨를 뿌렸다.
이 과정에서 이성훈이 큰 역할을 했다.
그는 인원 배치부터 농사지을 구역까지 정하고 일의 진척 상황까지 하나하나 관리했다.
***
“우와 이 감자들 봐.”
“정말 감자가 3일 만에 자라다니.”
장현은 화로에 감자들을 구운 다음 사람들에게 나눠주었다.
우걱!
우걱!
관리자와 영지민을 가리지 않고 다들 모여서 구운 감자 먹기에 여념이 없었다.
“와 맛있네! 이거. 얼마 만에 먹는 음식이냐. 진짜 그리웠다. 그리웠어.”
김덕배가 제일 반겼다.
식탐이 강했던지라 마계에 와서 제일 아쉬웠던 게 음식이었다.
마나 때문에 허기가 지진 않았지만 씹는 식감을 느껴보고 싶었던 것이다.
“쩝.쩝. 형님 소금은 없겠죠?”
“배가 불렀군. 소금이 어딨어?”
“혹시 형님 연금술로 어떻게 만들 수 없을까요? 쩝쩝.”
최형석의 말에 장현은 생각지도 못한 문제에 대해 생각해 봤다.
‘연금술로 소금을 만든다라…….’
정 하려고 한다면 불가능하진 않을 것이다.
이곳의 흙은 다양한 만큼 소금농도가 높은 지역을 찾을 수 있을 것이고, 연금술로 정제한다면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소금은 네크로맨서에게 강하지.’
기차에서 스켈레톤에게도 효과를 봤었다.
“이나연, 혹시 소금 없나? 기차역에서 소금 들고 있던 거 같은데.”
“이미 스켈레톤한테 뿌리느라 다 썼지.”
“아……. 아쉽네. 소금엔 감자가 있어야 되는데…….”
“왜 사령술로 스켈레톤 되살려보는 건 어때? 그럼 그놈이 소금을 다시 토해낼지도 크크큭.”
이나연은 자신이 한 농담이 재밌다는 듯 킥킥거렸다.
“응? 스켈레톤을 되살려봐? 혹시 가능할지도…….”
최형석은 이나연의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급히 감자를 먹어치운 후 사령술 스킬을 발동했다.
[사령술 – 스킬 영혼검색]
최형석의 눈이 검게 물들더니 마치 흑옥같이 변했다.
그와 함께 그의 눈이 사방을 훑었다.
“오………. 보인다. 보여.”
“케켁. 뭐, 뭐가 보인단 말이야. 진짜 스켈레톤이 있어?”
이나연이 최형석의 말에 벌떡 일어나 물었다.
모든 사람의 시선이 최형석에게 쏠렸다.
“아니, 스켈레톤은 아닌데……. 수많은 영혼이 보여.”
“여기에서 죽은 영혼들인가 보네. 잠깐 우리 이전에 있었던 사람들이 있단 말이야?”
“음……. 리자드맨 크로커다일이 주로 있는데 아무래도 원래 이 지역은 이 종족들의 땅이었던 거 같아. 잠깐, 저기 사람도 있어. 흠……. 복장이 특이한데.”
“이 봐 최형석 씨, 복장이 어떻길래 특이하다는 거야.”
“아 거참 이 아가씨 성질 급하네. 안 그래도 얘기해주려고 했어. 그 뭐냐……. 반지의 제왕 영화 있잖아……. 그래 거기에 나오는 사람들 복장 같다.”
“반지의 제왕? 뭐야 판타지 코스프레도 아닐 테고. 요즘 시대에 그런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이 있으려나. 어디 유럽 소수민족이라면 몰라도. 흠……. 그 말은 일단 우리나라 사람은 아니라는 말인데.”
최형석의 말에 이나연은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재차 그에게 물었다.
“혹시 그 영혼이랑 대화도 가능해? 우리 이전에 사람이 있었다니! 반드시 정보수집 해야 해.”
“기다려. 한번 해볼 테니까.”
이나연의 말을 들은 최형석은 허공에 대고 뭔가 얘길 하는듯했다.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사람들은 유심히 그가 하는 행동을 지켜봤다.
그중 장현은 짚이는 게 있었다.
‘클라우드 제국민, 아르헨 세상의 사람들이겠군.’
이곳은 크로커다일과 리자드맨의 세상.
자연히 죽은 자들은 그들밖에 없다.
그 외에 인간들이 있다면, 지구인들과 비슷한 시기에 이곳에 떨어진 사람들이다.
그들 역시 영지전을 벌이고 있을 테고, 최형석은 그 중 영지전에서 죽은 자들을 아마도 불러낸 것이리라.
장현의 예상은 맞았다.
“이 사람 영혼은 지구인이 아닌가 본데. 클라우드 제국? 그런 나라 들어본 사람 있어?”
최형석은 사람들을 둘러보며 물었다.
관리자뿐 아니라 영지인들 중에서도 없었다.
“저, 저기. 제가 역사 교사였는데 세계사에도 그런 나라는 없었습니다.”
영지민 중 40대로 보이는 남자 한 명이 손을 들며 대답했다.
그는 정하진이었다.
“오호, 당신 학교 선생이었어?”
“네…….”
“선생님이 그렇다는데 맞겠지. 내가 무식해도 선생님 말씀은 들었어.”
“아……. 네.”
“하여튼 이 선생님 말씀으로는 클라우드 제국이라는 곳은 지구의 역사에 없었어. 그렇다면 지구가 아닌 곳이라는 건데.”
“최형석. 그 영혼은 그 제국에서 뭐 하던 사람이었지?”
“상인인데 영문도 모르고 끌려왔다고 합니다.”
“상인이라……. 나중에 그 영혼에 정보를 얻어야 할 필요가 있을 테니 언제든지 부르면 나타날 수 있도록 해둬.”
“네 알겠습니다.”
장현의 요청에 최형석은 영혼과 다시 대화를 시도했다.
“형님. 이제 이 영혼을 언제든지 불러낼 수 있습니다. 방금 이자에게 들은 얘기가 있는데 크로커다일 영지와 리자드맨 영지에는 특별한 광물들이 많다고 합니다. 그것으로 다양한 금속을 비롯해 소금도 채취한다고 합니다.”
“소금이라……. 언데드 무리와 싸우는 데 도움이 되겠군. 그런데 크로커다일이 소금도 생산했나……. 의외인데.”
“크로커다일족은 소금을 따로 채취하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자연스레 만들어진 소금 덩어리인 암염이 그 지역에서 만들어진다고 합니다.”
최형석의 말에 장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1회차 때는 자신이 연금술사가 아니었고, 당시에는 소금에 관해 관심이 없었다.
소금의 효능은 한참 후 다른 생존자들에게서 들어서 알게 된 사실이다.
‘기차에서 소금이 언데드에 효과를 보이는 걸 확인했어.’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것 중 언데드에게 효과를 발휘하는 건 소금과 은.
계속해서 확보해야 한다.
신성력을 가진 이나연이 있지만, 그녀도 아직은 신성력 레벨이 약하다.
‘어차피 영지전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라도 크로커다일이나 리자드맨과는 싸울 수밖에 없어. 영지전이 끝나고 난 이후에 알아봐야겠군.’
연금술사 조각을 가진 장현이 소금을 연성해 무기에 도금하듯 코팅한다면 앞으로 언데드와의 전투에 유리해질 것이다.
***
[퀘스트의 내용이 추가됩니다.]
-영지전 승리에 관한 사항:
- 이제 영지전이 시작되었습니다. 상대 영지의 깃발을 뺏으면 그 영지를 복속한 것으로 인정됩니다. 마찬가지로 깃발을 뺏기면 영지전에서 패한 것으로 간주됩니다. 영지의 깃발을 사수할 관리자를 선출하세요. 관리자 모두의 동의하에 선출됩니다.
상태창에 알림이 떠올랐다.
관리자들에게만 뜬 알림이다.
이나연이 관리자 일행들을 보며 말을 꺼냈다.
“퀘스트가 바뀌었어. 혹시 이 알림 모두 다 뜬 거야?”
“응. 아무래도 장현이 해야 하지 않을까? 깃발이 제일 중요한 거 같은데.”
김덕배가 이나연의 물음에 반문했다.
“아니, 덕배가 한다. 영주는 덕배니까. 시간 없으니 빨리 정하자.”
“알겠어. 열심히 하도록 할게.”
“동의합니다.”
“저도 동의합니다.”
장현의 말에 당사자인 김덕배를 포함해 모두가 동의함으로써 깃발 사수자는 정해졌다.
스릉.
알림과 함께 김덕배 앞에 흰색 깃발이 생겼다.
깃발의 기에는 김덕배라고 쓰여있었다.
그걸 본 최형석이 씨익 웃었다.
“이 자식, 출세했구만.”
“그, 그런가요? 하하.”
퀘스트 내용추가 알림이 뜬 것과 동시에 적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놈들이다!”
“리자드맨이 쳐들어왔다.”
장현의 영지 경비병들이 적의 침입을 소리 높여 알렸다.
‘드디어 시작인가.’
장현은 이나연을 돌아보았다.
“훈련의 성과를 시험해 볼 때군. 어때 이나연? 우리가 개입해야 할 것 같나?”
“위험하다 싶으면 그때 개입하죠. 저들은 분명 우리가 이때쯤 마나가 떨어졌을 거로 생각하고 쳐들어온 거 같아요. 만약 영지민들끼리 저들을 물리친다면 우리의 사기는 많이 증가할 거고 반대로 저들의 사기는 꺾일 거예요.”
“그렇겠지. 관리자라도 이제 상대할 자신이 있다고 생각한 거겠지. 그게 착각임을 보여줘 봐.”
리자드맨과 크로커다일의 관리자들은 엉덩이가 무겁다.
분명 영지전 상대자들의 실력을 확인하기 위한 용이니 희소한 관리자급 인원을 보내진 않았을 것이다.
‘혹시라도 저들 중에 관리자급이 포함되어 있다면 그때 내가 나서도 된다.’
그때 최형석이 요청했다.
“형님, 저는 싸우고 싶습니다. 피가 끓어오릅니다.”
“기다려, 곧 기회가 올 거야. 지금은 이나연과 경비대원들의 훈련 성과 확인이 먼저다.”
“네…….”
아쉬워하는 최형석의 대답을 뒤로하고 장현을 비롯한 관리자들은 경비대원들과 리자드맨의 전투를 지켜봤다.
이나연만이 지휘를 위해 한눈에 상황을 볼 수 있는 높은 곳에 올라갔다.
영지라고는 해도 성벽도 방벽도 아직 없는 평원이기 때문이다.
이성훈이 일행들에게 물었다.
“그런데 크로커다일은 안 보이고 리자드맨만 공격해왔네요. 혹시 저들 중에 관리자는 없을까요? 있다면 저들만으로는 어려울 텐데요. 관리자는 관리자가 상대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성훈의 지적은 타당했다.
“이나연의 집단전은 상대가 관리자급이어도 상대할 수 있을 정도야. 어느 정도 밀릴 수는 있겠지만 큰 타격은 받지 않을 거다. 일단은 확인될 때까지 기다려본다.”
“알겠어요.”
관리자급은 뿜어내는 기세부터가 다르다.
리자드맨 종족 중에 관리자급이 있다면 장현의 눈에 띄지 않을 리 없다.
‘아직은 관리자급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아.’
그때 김덕배가 자신의 스킬을 사용해 전장의 맵을 활성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