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 영지전을 준비하다 (6)
장현은 최형석 앞에 삼두견 사체 한 마리를 놓았다.
“자, 사령술을 한번 해봐. 어떻게 사용하는지는 상태창에 나와 있을 테니까.”
“네, 형님.”
최형석은 평소와 달리 살짝 상기되어 있었다.
네크로맨서라는 게 아무래도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사령술 1단계 초혼.”
최형석의 입에서 주문이 흘러나왔다.
초혼.
혼을 부른다는 것이다.
“음…….”
최형석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왜 뭐 문제라도 있어?”
“음……. 아닙니다. 마나가 훅하고 빠져나가서 잠시 몸에서 힘이 빠져서 그렇습니다.”
최형석의 대답에 장현은 피식 웃었다.
“그거야 스킬을 쓰는데 마나가 빠져나가는 건 당연하잖아. 겪어보지 않았던 것도 아니고.”
“아 그동안 스킬을 쓸 땐 전투 중이다 보니 사냥하고 나면 곧바로 보충되었는데…… 지금은 그게 안 되다 보니 으음…….”
최형석은 힘겨워하면서도 사령술에 성공한 듯했다.
뼈밖에 없는 삼두견 사체가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이제 움직여봐.”
“네!”
최형석은 뭐라 중얼거리며 삼두견을 향해 손을 뻗었다.
온 신경을 집중해 스킬을 펼치는 그를 본 장현은 속이 후련했다.
“왜 잘 안 되냐?”
“음……. 명령을 내렸는데 주인으로 아직 인식을 안 하는 거 같습니다.”
삼두견과의 싸움에는 마나포인트를 미끼로 쉽게 조절했지만, 지금은 마나포인트를 아껴가며 사용하려니 삼두견이 말을 안 듣는 것이다.
앞으로 삼두견 뿐 아니라, 더 강한 몬스터나 더 많은 몬스터를 조종해야 할지도 모르는데. 그때마다 마나로 조종하는 것은 너무나 비효율적이라는 게 최형석의 생각이었다.
최형석은 한참을 고생하다가 마침내 삼두견 한 마리를 뜻대로 움직이는 데 성공하고 나서 바닥에 뻗어버렸다.
“헉헉. 너무 힘들군요.”
“왜? 손만 뻗는 거 같더니 힘들었나 봐.”
“죄, 죄송합니다. 형님.”
“뭐가?”
“스킬을 시전하는 게 간단한 게 아니었군요.”
최형석은 지친 얼굴로 사과했고 장현은 피식 웃었다.
“설마, 지금 이걸로 끝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이래서 어떻게 전투에 써보겠어. 다시 하자.”
“혀, 형님 마나가 없습니다.”
“.....잠깐 쉬었다가 감자 농사하러 가자.”
아차 싶었던 장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고, 최형석은 한숨을 쉬며 안도했다.
***
장현은 연성한 거대 흑전갈 방패를 만들어서 관리자들과 경비대원들에게 나눠주었다.
“일단 경비대원용 방패까지만 만들었어. 나머지는 시간이 좀 걸릴 거 같아.”
“창이랑 잘 어울리겠어요. 고마워요. 장현씨.”
“이야. 방패 가볍고 튼튼한데. 펜던트를 쓴 보람이 있구나.”
이나연이 감사해할 때 덕배는 옅은 아쉬움과 체념이 담긴 한마디를 했다.
“덕배, 널 위한 선물을 따로 준비했다. 펜던트가 아깝지 않을 거야.”
“아, 정말?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말과 다르게 김덕배는 기대감이 큰 듯했다.
“네가 쓰던 용병의 장검과 같은 형태로 만들어봤다. 거대흑전갈 사체를 베이스로 연성한 금속이라 기존에 쓰던 검보다 강할 거야.”
장현은 인벤토리에서 거무튀튀한 장검을 꺼내 김덕배에게 내밀었다.
“고, 고마워 장현아.”
“다음에 더 좋은 재료를 얻으면 또 만들어주마.”
김덕배는 장검을 조심스레 받아들었다.
묵직한 촉감에 이어 광택이 나는 검날이 눈에 들어왔다.
“아아…….”
김덕배는 더이상 펜던트에 대해 아쉬움이 없었다.
한편, 이성훈 또한 장현이 만든 방패를 만져보며 감탄했다.
그는 한 손으로는 방패를 잡고 다른 손으로는 창을 쥐었다.
“이거, 마치 고대 로마 병사 같군요.”
스윽.
척.척. 휘릭!
이성훈은 방패를 들어 전면을 막은 채 창으로 공격하는 시늉을 했다.
그걸 본 이나연이 눈에 이채를 띠었다.
“이성훈 씨! 지금 자세가 상당히 좋군요.”
이성훈은 허리를 꼿꼿이 편 채 방패는 최대한 몸에 밀착해 있었다.
이나연의 칭찬에 이성훈은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였다.
“아, 그냥 미드랑 영화를 좀 본 게 다인걸요. 잘 모릅니다.”
“그런가요. 그래도 제가 보기에는 여기 세이프존에 오기 전보다 자세가 좋아졌어요. 무게중심이 낮아지면서 단단하고 안정감 있는 자세가 됐어요.”
“아하……. 감사합니다. 이나연씨.”
이성훈은 이나연의 칭찬에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했다.
이나연은 무술을 오랫동안 수련하다 보니 상대방의 자세만 봐도 빈틈을 찾아낼 수 있었다.
여자의 몸으로 조폭 보스인 최형석에 대항했던 것 역시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이나연의 눈으로 봤을 때, 원래의 이성훈은 빈틈투성이였다.
말 그대로 일반인이 무기를 든 수준.
그녀에게 무기를 준다면 한 호흡 만에 목숨을 뺏을 자신이 있었다.
그런 이성훈이 지금 방패를 들자 순식간에 달라졌다.
‘빈틈이 상당히 줄었어.’
오크 던전에서부터 창을 다루는 훈련을 받은 데다 실전을 거쳐오면서 성장한 면도 있지만, 방패의 효과가 컸다.
물론 그녀라면 당장에라도 이성훈에게 빈틈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만약 저런 방패를 든 자가 여럿이라면.’
그렇다면 어렵다.
이나연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좋았어.”
주먹을 치켜들며 환호성을 지르는 이나연의 모습에 이성훈은 어리둥절했다.
“뭐, 뭐가요?”
“음……. 그 방패요.”
이나연은 장현을 돌아보며 인사했다.
“고마워요, 장현씨!”
장현은 피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나연의 제안대로 창과 방패를 활용한 집단전투 훈련이 시작되었다.
그녀는 50명의 경비대원들 앞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구령은 들어 방패! 와 찔러 창! 으로 정한다. 복창한다. 들어 방패!”
“들어 방패!”
“말로만 하지 말고 손은 뒀다. 뭣하나! 움직여!”
척.척.
이나연의 호통에 경비대원들은 재빨리 방패를 들어 올렸다.
“동작이 늦다! 거기 방패를 더 올려야지!”
“죄, 죄송합니다.”
이나연은 훈련에 들어가니 마치 원래부터 교관이었던 사람처럼 몰입했다.
‘훈련이 힘들수록 살아남을 가능성이 크다.’
오크 던전에서는 시간이 부족했기에 훈련량 또한 부족했다.
이제는 그때와 상황이 다르다.
영지가 생겼다.
그 말은 한동안은 계속해서 머무르게 된다는 말이다.
이럴 때 훈련을 집중해야 한다.
그녀는 마치 훈련 시키는 사명을 띤 사람처럼 소리지르며 독려했다.
“이제부터 돌아가면서 세 부대의 협공을 견뎌내는 훈련을 할 거야. 나부터 하도록 할게. 최형석, 이성훈, 김덕배 세 사람은 각자 부대원들 이끌고 우리 부대를 공격해줘.”
“좋아. 내가 전면을 맡지.”
최형석이 흔쾌히 대답했다.
“그럼 내가 오른쪽을 맡을게.”
이어 덕배가 대답했다.
“난 왼쪽이네. 잘 부탁합니다. 영주님”
이성훈이 김덕배에게 가볍게 인사했다.
그 말에 김덕배는 못 들을걸 들은듯한 반응을 보였다.
“아……. 닭살 돋게 무슨 영주님입니까”
“장현씨가 덕배씨를 영주로 임명했지 않습니까. 덕배씨도 받아들였고요.”
이성훈은 김덕배의 반발에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건 그렇지만 영주님이라는 호칭은 좀 그렇다구요.”
“제가 호칭을 함부로 하면 영주에 대한 권위가 서질 않습니다. 제가 조직 생활을 하다 와서 그럴 수도 있지만 덕배씨도 군대를 다녀왔으니 알지 않겠습니까. 위계서열의 중요성을요.”
“네…….”
김덕배는 물론이고, 웃으며 바라보던 이나연과 최형석도 어느새 진지하게 이성훈의 말을 듣고 있었다.
이성훈은 어느새 자연스레 일행에 섞여들었다.
몇 되지 않는 관리자인 데다 튜토리얼을 함께 통과해 동료애가 싹트고 있었다.
장현은 이성훈의 말에 빙그레 웃었다.
‘확실히 쓸만해. 이성훈이 덕배를 잘 받쳐줄 거 같군.’
공무원 출신인 이성훈은 김덕배의 일을 세부적인 부분에서 보조해 줄 것이다.
고개를 끄덕이며 장현은 훈련을 지켜봤다.
“들어 방패!”
“들어 방패!”
이나연의 외침과 구령으로 훈련이 재개됐다.
김덕배와 이성훈이 나머지를 맡았다.
“방패 높이가 안 맞잖아! 제대로 들어 이 자식들아!”
최형석이 눈이 뻘개진 채 흥분해서 소리질렀다.
훈련이었기에 얼굴을 노리진 않고 창으로 방패를 두들기며 밀고 당겼다.
쾅! 쾅!
퍽! 퍽!
최형석이 전면을 부술 듯 밀어붙이자 이나연 부대의 최선두 대열이 순식간에 뒤로 밀리기 시작했다.
“밀집해!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무릎은 굽히고 버틴다! 중심을 낮춰! 방패를 믿고 동료를 믿는 거야. 밀리지 않게 버틴다!”
이나연이 소리치자 그녀의 부대원들은 다시 힘을 냈다.
그 모습을 장현은 한 발짝 떨어진 데서 지켜보고 있었다.
“확실히 거대흑전갈로 만든 데다 중급연성술로 연성해서인지, 오크뿔이에욤 창으로는 끄떡없는군.”
장현이 지켜보고 있는 이유는 방패가 어느 정도 견디는지 지켜보기 위함이었다.
중급 연성술로 연성한 금속은 확실히 놀라웠다.
‘이제 마나를 얻고 다음 아이템을 만들 차례다.’
화로를 만들면서 중급대장장이로 가기 위한 퀘스트는 2개가 남았다.
영지 방어에 필수적이면서 자급자족을 위한 것이어야 했다.
‘우리가 자리를 잡을 때까지는 영지전을 벌일 수 없다.’
기존에 자리 잡은 세력들인 크로커다일과 리자드맨 종족.
1회차 때도 마나 포인트가 뒤처지는 상황에서 초반에는 그들에게 밀렸지만, 감자두더지를 발견하고부터 인간플레이어들은 순식간에 강해졌다.
감자를 재배해 마나포인트를 빠르게 흡수할 수 있었던 것이다.
강신배를 필두로 한 인류가 영지전에서 승리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물론 크로커다일과 리자드맨의 관리자급은 꽤 강력하다.
오크로드 이상이라고 보면 된다.
그런데도 장현은 그들보다는 오히려 강신배 일행을 더 경계했다.
‘강신배, 이번엔 내가 감자 두더지를 먼저 가졌다. 어떻게 할 테냐.’
***
장현은 화염의 정령 쑤엉도 키울 겸, 마나 포인트도 얻을 겸 해서 700kg의 은을 꺼냈다.
‘지금 이걸 연성하려 해도 마나가 부족해. 대신 쓸만한 거로 만드는 것 정도는 가능하지.’
연성술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마나가 필요한데, 지금은 전량 소진했다.
가진 것을 활용하는 방법뿐.
‘아깝긴 하지만 어차피 나중에 다시 쓸 수 있으니.’
연성술로 진은을 만들 게 아닌 다음에야 인벤토리에 처박아 두는 것보다 영지 건설에 필요한 아이템으로 만드는 게 낫다.
장현은 이것으로 100개의 곡괭이를 만들 생각이다.
50명의 경비대원은 창과 방패.
100명의 농부는 곡괭이.
나머지는 그때그때 역할이 정해지면 필요한 아이템을 제작하면 된다.
곡괭이는 땅을 파기 위한 용도이지만, 동시에 전투용으로 쓸 수도 있다.
‘그러고 보니 갓 오브 곡괭이라고 불렸던 녀석이 있었지.’
갓 오브 곡괭이는 1회차에서 강신배 무리에 속했던 자다.
튜토리얼에서 죽었다 부활한 영지민 출신으로 강신배가 감자 재배를 위해 곡괭이질을 시켰는데, 의외로 적성에 맞았던 거 같다.
누구보다 열심히 곡괭이 질을 했고 나중에는 곡괭이를 무기로 삼았다.
장현은 그 당시 대장장이로서 그에게 곡괭이를 만들어주면서 물어본 적이 있다.
‘왜 하고많은 것 중에 곡괭이를 선택했냐고.’
그의 대답이 아마도.
‘살면서 같은 동작으로 가장 많이 휘둘러 본 게 곡괭이라고.’
같은 동작으로 반복훈련만큼 기초가 단단해지는 건 없다.
그리고 누구보다 강한 기본기는 그 자체만으로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
당시 ‘갓 오브 곡괭이’ 그자의 일격을 막아내는 자가 흔치 않았다.
마현 사부 역시 극찬했었다.
곡괭이를 내려치는 힘과 속도로 끝을 본 자라고.
누구보다 빠르게 누구보다 강하게.
그리고 타격 후에 다시 원위치로 돌아가서 반복하는 그에게 약점은 있어도 쉽게 노리지 못했다.
‘갓 오브 곡괭이’, 그의 곡괭이를 제작해본 장현은 중급대장장이 퀘스트의 3번째 아이템으로 곡괭이를 선택했다.
‘은은 잘 휘기에 곡괭이 자루로 해야 하고, 오크 뿔이에욤은 얼마나 되나.’
인벤토리에 남은 오크뿔이에욤은 100명분을 만들기에는 모자랬다.
‘어쩔 수 없지. 일단 있는 건 다 동원해봐야지.’
현재 가진 금속은 오크뿔이에욤, 오크뼈에욤, 무리늄.
각각의 양은 적지만 임시도구로는 쓸만했다.
중급대장장이 퀘스트는 장비를 만들라고 되어 있을 뿐, 어떤 재질로 만들어야 하는지는 없다.
즉, 현재 가진 재료들로 기존에 만들지 않았던 아이템들을 만들면 된다.
‘이제 슬슬 만들어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