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화. 영지전을 준비하다 (5)
“이, 이게 뭐야? 사냥할 게 없다더니 있었네.”
“감자두더지야.”
덕배의 물음에 대답한 장현은 이어서 설명했다.
“화로를 만들기 전에 이곳 환경을 둘러봤어. 화로제작에 필요한 재료를 구하려고 땅을 보던 차에 특이한 걸 발견했지.”
“특이한 거라면? 그 감자두더지라는 것과 관련 있는가요?”
이나연이 장현이 들고 있는 감자두더지를 힐끗 보며 중얼거렸다.
끄덕.
장현은 말을 이었다.
“땅에 구멍이 여러 개 뚫려 있던데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어. 마치 바닷가 뻘에 있는 개구멍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창을 쑤셨는데 이게 나오더라고. 감별스킬로 알아보니 이름이 감자두더지였어. 이 꼬리에 달린 주머니 부위 이름이 감자야.”
“그럼 감자 농사를 짓자는 게?”
김덕배는 그 말에 뭔가를 알아챈 듯 물었다.
“맞아. 감별스킬로 살펴보니 이 꼬리에 있는 감자 부위가 마나를 담고 있어. 놀랍게도 이 하나당 백 개의 감자씨를 담고 있어. 이 감자두더지는 땅속을 헤집으며 감자씨를 파종하듯 심어둔 뒤 감자가 자라면 식량으로 사용하는 거였어.”
장현은 1회차의 경험으로 아는 것을 감별스킬로 포장해 설명했다.
“오오…….”
김덕배가 감탄사를 흘릴 때, 이나연이 질문했다.
“잠깐만요, 장현씨. 그런데 농사를 지으면 재배하기까지 걸리는 기간이 있잖아요.”
장현은 그녀의 질문에 씨익 웃으며 손가락을 세 개 펼치며 말했다.
“삼일이야. 삼일이면 감자가 다 자라.”
“삼일? 그렇게나 빨리 자란단 말이에요? 그렇다면 이해가 되네요”
이나연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삼일 만에 재배된다면 그걸로 농사지어서 마나 포트를 쌓는다는 걸 이해할 수 있다.
“장현씨, 저도 질문이 있습니다.”
이성훈이 손을 들고 말했다.
장현은 얘기해보라는 듯 턱짓했다.
“그렇게 빨리 감자가 자라고 그걸 감자두더지가 먹고 자란다면 감자 두더지는 무척이나 강력할 거 같은데요. 도리어 감자두더지 사냥하다가 저희가 위험해질 수도 있지 않을까요. 명색이 마계의 생물체인데 말입니다.”
이성훈의 지적은 예리한 구석이 있었다.
장현은 그의 지적이 내심 반가웠다.
쓸만한 자라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감자 두더지를 모른다면 이성훈처럼 생각할 수 있다.
장현이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었던 건 1회차에서 감자 두더지를 사냥해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강하지 않은 세이프존 영지민들을 위해 안배된 잡몹일뿐이다.
그렇다고 경험해봐서 안다고 얘기할 수 없었던 장현은 또다시 감별 스킬로 포장해서 설명했다.
“이건 나의 감별 스킬로 알 수 있었어. 이놈들은 그다지 강하지 않아. 물론 너무 쉽게 생각하면 곤란하겠지만, 삼두견이나 스켈레톤같이 우리가 봐왔던 몬스터들에 비할 정도가 아니야. 비교하자면 흑전갈보다 조금 강한 정도일 거야.”
“아하, 튜토리얼에 적응하기 위한 퀘스트 대상이 흑전갈이었듯, 세이프존에서는 감자두더지가 그런 놈인가 보구나.”
김덕배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덕배가 포인트를 잘 짚어주었기에 장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다만 그때는 흑전갈을 잡는 게 퀘스트였지만 이번의 퀘스트는 영지전에서 승리하는 것이 다르지.”
그 말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의문을 제시했던 이성훈도 납득했다.
“그렇군요. 장현씨가 감자 두더지를 직접 잡아봤으니 누구보다 잘 알 거로 생각합니다. 듣고 보니 감자 농사는 해볼 만하지 싶습니다. 감자에서 얻은 마나가 영지전을 승리로 이끌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 감자 농사를 짓는데 이의는 없는 거지?”
장현이 관리자들을 한 명 한 명 바라보며 물었다.
이미 모두가 이해했기에 이의는 없었다.
“그럼 그 부분은 이성훈, 당신이 맡아줘.”
“제가요?”
이성훈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당신 공무원이잖아. 여기서 이 일을 제일 잘할 사람이 당신 말고 누가 있겠어. 덕배는 영주고, 이나연은 경비대장이야. 아니면 최형석이 당신보다 잘하겠어?”
이성훈은 흘깃 옆에 있는 최형석을 쳐다보았다.
그는 눈을 부라리며 이성훈을 노려보았다.
‘내가 생각해도 저 사람은 아니야. 할 수 없구나. 마계에서도 공무원 생활을 해야 하다니…….’
이성훈은 내심 씁쓸했지만, 자신이 이곳에서 쓸모를 증명해야 살아날 수 있다.
“알겠습니다. 제가 해보겠습니다.”
“좋아.”
이성훈이 마지못해 받아들인다는 것을 알았지만 장현으로서는 알 바 아니다.
쓸모가 없다면 챙길 이유도 없다.
“형님 저는 뭘 합니까?”
최형석은 다른 이유로 섭섭해했다.
모두가 임무를 맡았는데 자신은 아무 역할을 주지 않자 기다리다 못해 장현에게 물었다.
“넌 나랑 방패를 만들자.”
“네? 방패요?”
최형석은 장현의 말에 뜨악했다.
이건 그가 원한 바가 아니었다.
호위기사 같은 무력을 담당하는 역할을 맡고 싶었지, 막노동하고 싶은 건 아니었다.
그 기색을 느낀 장현의 미간이 좁혀졌다.
“방패도 만들고 그 외에도 만들 게 많아. 감자 농사를 하려면 농사 도구들도 만들어야 하고. 나 혼자 다 하란 말이야?”
“아……. 그러면 저기 영지민들 좀 데려와서 도우라고 할까요?”
“왜 나랑 둘이서 하기 싫어?”
“아닙니다! 전 형님을 따르기로 맹세했지 않습니까. 시키는 뭐든 할 수 있습니다.”
“그럼 시키는 대로 해.”
“네…….”
장현은 최형석의 반발을 잠재웠다.
‘이놈은 내가 옆에 데리고 있어야 해.’
최형석이 조폭 출신이다 보니 모든 걸 힘으로 풀어가는 경향이 있다.
앞으로 영지전을 치러야 하고 갈수록 여러 사람과 어울려야 한다.
지금 최형석의 기를 죽여놓았지만, 몸에 밴 습관은 남아 있을 터.
이대로라면 그는 언젠가 동료에게 칼 맞든지 칼부림하는 식의 문제를 일으키게 될 것이다.
그가 딴짓을 못 하게 장현 곁에 두는 게 제일 나았다.
광전사이면서 사령술사인 최형석을 제어할 자는 장현밖에 없었다.
동시에 그가 대장장이 작업을 통해 자신을 다스릴 수 있길 바라는 마음 또한 있었다.
대장장이 일은 무척 고되고 힘들다.
어지간한 끈기와 인내심이 없다면 버틸 수 없다.
광전사이자 사령술사의 길을 걷게 될 최형석이 인간으로서의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데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형님, 그런데 말입니다. 제게 사령술에 집중해보라고 하셨는데 그건 언제 합니까?”
최형석은 아무래도 대장장이 일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빠져나갈 구석을 다시 찾았다.
“이 일부터 하고 나서.”
“네. 알겠습니다.”
“사령술 연습할 때는 나도 도와줄 테니 억울해하지 마라.”
“아닙니다. 억울해하다뇨.”
“하기 싫은 티가 팍팍 나는데.”
“앗……. 죄송합니다……. 형님.”
“됐다.”
최형석이 넙죽 엎어져 사과하려 하자 장현은 그를 막아 일으켜 세웠다.
‘혹시 연금술사 능력을 성장시키는 데 도움 될 수도 있으니 사령술에 대해 어느 정도 알아두는 것도 좋겠지.’
연금술은 세계의 근원에 다가가는 폭넓은 학문이다.
원래의 성질을 변화시켜 다른 성질로 바꾸는 것이기에, 사령술 역시 통하는 면이 있으리라 생각했다.
‘어쩌면 사령술에서 무언가 깨달음을 얻을지도 모르니.’
***
장현은 창과 방패를 만들기 전에 먼저 인벤토리 정리를 위해 모든 아이템을 꺼냈다.
먼저 거대 흑전갈 사체가 나왔다.
이어 오크 던전의 은광에서 얻은 은 또한 꺼냈다.
무려 700kg이나 되는 은 덩어리가 바닥에 쌓였다.
그걸 본 최형석은 눈이 튀어나올 만큼 놀랐다.
“혀…… 형님, 이…… 이것들은 다 뭡니까?”
“튜토리얼에서 얻은 것들이다.”
“튜, 튜토리얼에서요. 대체 언제…….”
튜토리얼이라면 최형석이 장현과 대립각을 세울 때다.
‘역시 형님은 보통 사람이 아니구나. 이, 인간이 아니야. 내가 이런 사람을 상대로 어떻게 해볼 생각을 했다니.’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 거대흑전갈을 지금 내가 혼자 상대하면 사냥할 수 있을까.’
잡을 수 있다고 자신할 수 없었다.
이제 장현에 대해서는 더이상 놀랄 일이 없으리라 생각했지만, 이번에도 그는 놀랐다.
최형석은 절로 침을 꿀꺽 삼켰다.
장현은 그런 그의 표정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짐작했다.
최형석이 자신에게 경외심을 가질수록 딴생각하지 않을 것이기에.
장현은 인벤토리에서 꺼낸 아이템들을 훑어봤다.
그의 눈에 아이템들의 정보가 들어왔다.
[거대 흑전갈 연성에 필요한 마나 포인트 –500]
[은 1kg 연성에 필요한 마나 포인트- 10]
중급 연성술사가 되면서 얻은 능력 중의 하나가 지금 보이는 상태창의 변화이다.
재료를 보면 연성에 필요한 마나량 정보가 보인다.
‘방패를 만들려면 이놈이 적당하겠어.’
장현은 거대 흑전갈 사체를 골랐다.
이어 그는 감자 두더지를 잡으면서 얻은 감자들을 모조리 먹어치웠다.
쑤엉에게 부탁해 불에 구웠기에 맛도 괜찮았다.
그렇게 마나를 흡수해서 얻은 마나 포인트가 600.
거대흑전갈 사체 하나를 연성할 수 있는 양이다.
‘마나가 부족하군…….’
항상 그렇다.
모든 조건이 잘 맞아떨어진 적은 없다.
지구에서도 시간이 있으면 돈이 없고, 돈이 생기면 쓸 시간이 없다.
마계라고 해서 사람이 사는 삶은 크게 다르지 않다.
대부분 사람은 언제나 가진 것이 모자란 법이다.
‘나라고 다르겠냐 이거지.’
그래도 하나씩 성장하고 있다는 거에 위안을 얻는다.
장현은 중급 연성술을 발동시키며 손을 뻗었다.
벽돌을 만들면서 중급 연성술의 연성 방식에 익숙해졌다.
거대 흑전갈은 장현의 손짓에 따라 빠르게 변화해갔다.
‘연성할 때부터 만들 물건을 고려해야겠지.’
중급 연성술의 특성 중 하나가 연성된 금속의 형태를 설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조각처럼 복잡하고 섬세한 작업은 어렵지만, 두께나 모양 정도는 정할 수 있었다.
‘방패는 대략 가로길이가 1m에 세로길이가 60㎝, 폭은 20㎝ 정도. 경비대원용 50개부터 만들려면.’
장현은 머릿속에서 계산한 그림을 잡고 연성을 진행했다.
연성이 진행되면서 급격하게 정신적 피로가 찾아왔다.
마침내 기다란 상판이 눈앞에 펼쳐졌을 때 장현은 털썩 주저앉았다.
아쉽게도 거대흑전갈이라도 재질이 흑전갈인 것은 같아서 시스템은 새로운 금속으로 인식은 하지 않는 듯했다.
“후……. 지치네.”
대장장이 일을 할 때랑은 다르다.
1회차 때 대장장이 조각을 얻고 물건을 제작할 때는 어깨와 팔이 그리고 허리와 목이 아팠었다.
그것도 마나 포인트가 해소해줬기에 금세 적응할 수 있었다.
물론 작품이 완성되고 나면 피로감이 몰려왔지만, 연금술은 또 다르다.
철저히 정신노동이다.
“형님, 볼 때마다 신기합니다. 손을 그냥 뻗으니 저 거대한 사체가 금속 덩어리가 되는군요.”
장현은 최형석의 말을 들으며 쓴웃음이 나왔다.
겉보기에는 저렇게 단순해 보인다.
손만 뻗으면 빛이 번쩍하고 쏘아져 금속으로 바뀌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정작 그 작업을 위해서는 머릿속에서 얼마나 많은 정신노동이 일어나는지 모를 거다.
금속의 불순물을 정리하고, 사용하고자 하는 용도에 맞는 특성을 설정해야 한다.
그 모든 걸 스킬을 발동시키는 한순간에 다 해야 한다.
자칫 잘못하면 마나는 마나 대로 쓰고 실패작이 나온다.
장현은 1회차 때 수없이 많이 실패를 겪어봤기에 지금 새로운 연성술도 실패 없이 하는 것이다.
그런데 최형석이 쉽게 얘길 하니 뭔가 빈정이 상했다.
동시에 재밌는 생각이 났다.
“부러워할 필요 없어. 너도 스킬 있잖아. 방패 만드는 작업은 이제 곧 끝나니까 사령술을 해보자.”
“오! 감사합니다. 형님.”
최형석은 기뻐했다. 재미없는 대장장이 작업이 끝나는 것 때문인지, 자신의 스킬을 익히는 것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최형석은 그간 사시미를 들고 싸우는 일을 해왔다. 광전사가 됐을 때도 별반 다를 바가 없다.
원래 지구에서부터 싸우는 일은 밥 먹듯이 해왔을 테니 마나가 체력을 회복시켜주기에 오히려 더 수월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령술은 다르지.’
사령술은 네크로맨서, 일종의 흑마법 계열이다.
마법이나 흑마법은 어마어마한 정신노동을 필요로 한다.
‘크크, 한번 겪어봐라.’
장현은 최형석을 골려줄 생각에 씨이익 진한 미소를 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