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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장이 회귀해서 만능캐되다-32화 (32/211)
  • 32화. 헬릭스 성주 (2)

    “이놈들이 마지막으로 온 놈들이냐?”

    헬릭스의 물음에 로메드는 고개를 숙이며 충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성주님.”

    “에잉, 고작 10명뿐이란 말이냐.”

    “그, 그게 워낙 지구인들이 자질이 떨어져서……. 죄송합니다.”

    “그게 어디 네 잘못이냐. 됐다. 저놈들이 영지전의 승자가 될 수 있을 것 같으냐.”

    “성주님. 인간종족들이 저희 크로커다일 족을 이기긴 힘들 것입니다. 보아하니 리자드맨 종족도 상대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하긴 저렇게 약한 신체에다 마나 기운도 별 볼 일 없으니……. 승부는 이미 정해진 건가……. 그다지 기대할 것도 없겠군.”

    “그래도 승부는 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조금 전 크로커다일 족이 이길 거라고 하더니 갑자기 소극적으로 됐군.”

    “죄, 죄송합니다.”

    “됐다. 그보다 소성주에게는 이 녀석들이 들어온 걸 비밀로 해라. 녀석이라면 영지전에 개입하려 들지도 모르니.”

    “아, 그, 그게…….”

    크로커다일 병사가 식은땀을 흘리며 말끝을 흐렸다.

    그때 타타탁. 달려오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며 미녀가 등장했다.

    서큐버스 안젤라.

    풍만한 가슴과 잘록한 허리, 그리고 노출도가 높은 옷은 아무리 봐도 이 자리에 어울리는 복장은 아니었다.

    꿀꺽.

    어디선가 목으로 침을 넘기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의 등장으로 무겁기만 했던 분위기도 기묘하게 달아올랐다.

    서큐버스 특유 스킬인 매혹 스킬의 효과이다.

    안젤라는 그 존재만으로도 분위기를 바꾸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러나 그 분위기에 녹아들어서는 위험하다.

    ‘드디어 안젤라가 등장했구나.’

    장현은 헬릭스의 딸인 서큐버스 안젤라를 바라보며 눈빛을 빛냈다.

    딸바보나 마찬가지인 헬릭스이기에 장현이 헬릭스의 측근으로 다가가기 위해 매우 중요한 인물이다.

    안젤라는 다가오더니 그대로 양팔을 헬릭스의 목에 감으며 물었다.

    “아빠, 영지전에 참가할 새로운 플레이어들이 왔다길래 구경하러 왔어요.”

    “안젤라, 너는 영지전에 관심을 두지 않기로 약속했다. 이 일은 대공 전하가 관계된 중요한 일이라고 하지 않았느냐?”

    헬릭스는 난처한 표정으로 안젤라를 타일렀다.

    “아, 아빠! 내가 뭘 한다고 그래요 그냥 모처럼 생긴 구경거리를 즐기려는 건데. 이 경기가 생긴 것도 우리 마족들이 즐기라고 만든 거잖아요.”

    “어휴……. 그래 알겠다. 그래도 경기에 개입하는 건 안 돼.”

    “걱정하지 마세요. 저도 그 정도 분별력은 있으니까요.”

    “믿겠다. 일단 네 방으로 돌아가렴.”

    고개를 내저으며 헬릭스는 안젤라를 돌려보냈다.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한편 두 부녀 마족의 대화를 듣고 있던 장현 일행의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그들의 대화로 자신들이 곧 영지전이라는 새로운 사건에 맞닥뜨릴 것을 깨달은 것이다.

    ***

    헬릭스는 안젤라가 사라지자 언제 그랬냐는 듯 무표정한 표정으로 크로커다일 병사에게 손짓하며 말했다.

    “로메드, 이들을 안내하라.”

    “네. 성주님.”

    로메드라 불린 크로커다일 병사는 성주에게 인사를 한 후 장현과 강신배 일행을 이끌었다.

    “가자. 오늘은 이곳에서 묵고 내일 너희들이 지낼 곳으로 데려다주마.”

    “우리가 지낼 곳이라니요? 우린 이곳에서 지낼 생각이 없습니다.”

    강신배 일행 중 남자 한 명이 로메드에게 나서며 소리쳤다.

    스윽.

    로메드 병사가 씨익 웃었다.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그는 성문을 손으로 가리키며 남자에게 말했다.

    “크큭. 그러면 여기서 나가든가. 나가고 싶다면 언제든지 나가도 좋다.”

    “정말로? 나가도 상관 않는다는 말인가요?”

    “물론. 막지 않는다.”

    그때 강신배가 남자의 어깨를 짚으며 말렸다.

    “상영, 잊었나? 우리가 굳이 여기 세이프존으로 온 이유를 떠올려봐. 퀘스트대로라면 성 밖은 독안개로 가득 차 있잖아. 가긴 어딜 간다는 말이야.”

    “아…….”

    상영이라 불린 남자는 허탈한 듯 한숨 쉬었다.

    “참아. 이곳도 결국 퀘스트의 하나일 뿐이니 벗어날 기회는 온다.”

    “그래 신배.”

    이상영은 강신배에게 신뢰의 눈빛을 보냈다.

    크로커다일 병사는 아쉽다는 듯 두 사람을 보더니 몸을 돌렸다.

    “나가지 않을 거면 얌전히 따라와라.”

    이제 더이상 반발하는 자가 없었다. 사람들은 얌전히 크로커다일 병사가 안내하는 곳으로 이동했다.

    ‘벌써 저쪽은 강신배가 장악했군.’

    장현은 자신들의 앞에서 크로커다일 병사를 따라가는 강신배의 무리를 스윽 쳐다보며 한명 한명을 기억에서 떠올렸다.

    이상영은 은신술을 가진 어쌔신으로 기억했다.

    강신배의 명령을 받아 그에 반하는 자들을 하나하나 소리 없이 죽인 일급 암살자다.

    그만큼 강신배에 대한 충성도가 높다.

    다음은 김혜정.

    강신배의 연인이면서 타고난 머리 덕에 그의 책사 노릇을 하고 있다.

    사실상 이상영과 김혜정이 강신배의 오른손, 왼손이라 할 수 있다.

    김민석은 그의 돈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사업능력이 탁월하다.

    머리에서 온갖 마나포인트를 뽑아낼 수 있는 아이디어가 번뜩인다.

    마지막 남은 한 명을 보는 순간 무언가 희미한 기억이 떠올랐다.

    ‘저런 사람이 있었나……. 어디서 본 것 같기도 하고…….’

    장현은 자신의 기억에 확실히 남는 자가 아니라면 곧 죽을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하지만 그는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게 있었다.

    자신으로 인해 이미 과거는 비틀려 있음을.

    ***

    “여기가 너희들이 묵을 곳이다.”

    크로커다일 병사 로메드가 안내한 곳은 넓은 공터였다.

    거기엔 이미 백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서 웅성거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기시감을 느꼈다.

    “이거, 튜토리얼에 처음 온 상황 같은데.”

    “어 저 사람들 기억나.”

    “응?”

    “튜토리얼에서 우리랑 같이 있다가 죽었던 사람들이야.”

    “그러고 보니 저 사람은 기차에서 죽었었는데 어떻게 된 거지?”

    “뭐가 어떻게 된 거지?”

    김덕배 등 장현 쪽 일행이나 강신 배 쪽 일행이나 혼란스러워한 건 마찬가지였다.

    ‘저 사람들이 패자부활전에서 살아남았군.’

    튜토리얼에서 탈락한 자 중 많은 사람은 죽지만 그중에 일부는 되살아난다.

    그래서 튜토리얼이고 본경기와 가장 큰 차이다.

    장현은 그걸 알고 있었으면서도 살아남기 위해 그리고 포인트를 모아서 레벨을 올리기 위해 노력했다.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레벨 차이다.

    장현 일행과 강신배 일행은 이미 저들과는 레벨이 크게 차이 난다.

    바로 계급이 생기기 때문이다.

    병사 로메드가 걸어가자 공터에 몰려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쳐다보았다.

    장현 일행은 로메드를 따라갔기에 자연히 사람들의 시선이 그들에게도 쏠렸다.

    사람들의 앞으로 걸어간 로메드는 모여있는 군중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너희들은 앞으로 이곳의 주민으로 살게 된다. 너희 플레이어 중 대부분은 튜토리얼을 통과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패자부활전에서 살아남아 이곳에 도달한 것을 축하한다.”

    로메드의 축하한다는 인사에도 사람들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크흑.”

    더러는 울고 더러는 인상을 찌푸리며 눈을 감았다.

    패자부활전을 떠올린 것이다.

    그것은 흑전갈이나 오크 등 몬스터를 상대로 한 것과는 달랐다.

    바로 얼마 전까지 같이 목숨 걸고 몬스터와 함께 싸웠던 동료들을 먼저 죽여야 살아남는 게임이었다.

    짐승이나 몬스터를 죽이는 것과 같은 사람들을 죽이는 것은 다르다.

    이들은 살인했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튜토리얼 통과자들은 패자부활전의 내용을 몰랐기에 그저 다른 몬스터들을 상대로 힘들었나보다 생각했겠지만, 장현은 다르다.

    저들은 이미 살인을 거치고 올라온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건 안젤라.’

    장현이 고개를 주억거리는 동안 로메드는 계속해서 얘기했다.

    “그럼에도 튜토리얼을 한 번도 죽지 않고 통과한 자들이 여기에 왔다. 바로 이들이다.”

    로메드의 소개에 사람들의 시선이 다시 장현 일행에게 몰렸다.

    그것은 부러움, 질시, 증오 등이 섞인 복잡한 눈빛이었다.

    이어서 나온 로메드의 말에 감정의 빛은 더욱 짙어졌다.

    반면 김덕배를 비롯한 강신배들의 표정에는 미소가 어렸다.

    “너희들과 이들은 레벨에서 큰 차이가 난다. 튜토리얼을 통과해 여기까지 온 보상이지. 앞으로 이들은 너희들의 관리자가 될 것이다.”

    “관리자?”

    “우리가 저 사람들의 관리자가 되는 거야?”

    “이야……. 살아남은 보람이 있네.”

    관리자로 인정받자 기뻐하는 일행들을 보며 장현은 입가를 씰룩였다.

    관리자와 영지민으로 계급이 생긴 이상 사람들 사이에 갈등이 생길 소지가 커졌다.

    관리자는 영지민들에 비해 훨씬 레벨이 높아지고 보유 마나량도 증가한다.

    압도적인 힘은 권력의 남용을 가져오기 쉽다.

    1회차에서 최형석과 그 패거리들이 보여준 모습이 바로 그 예다.

    그들은 영지민들을 착취했다.

    자연스레 관리자와 영지민들 간에는 분열이 생기게 되었다.

    최형석이 강신배에게 패했던 이유도 그와 같다.

    ‘이제는 다를 거다. 내가 그렇게 두지 않을 거니까.’

    장현은 각오를 다졌다.

    ***

    장현일행과 강신배 일행은 숙소 건물을 따로 썼다.

    숙소라고 하기에는 초라한 곳이었지만, 다른 이들보다는 나았다.

    최소한 궁전 내 건물이었기 때문이다.

    최형석 이나연 김덕배 또한 각각 자신의 숙소를 할당받았지만, 장현의 방에 모였다.

    앞으로의 일을 의논하기 위함이다.

    덕배가 말문을 열었다.

    “관리자라니, 우리에게 무슨 일을 시키려고 그러는 걸까?”

    “같은 플레이어끼리 관리자를 두는 것도 그래. 마치 분열시키려고 하는 거 같아요.”

    “원래 무리가 모이면 서열을 정해야 한다. 안 그러면 개판이 되어버리지. 난 마음에 든다.”

    덕배의 의문에 이나연은 염려를 드러냈지만, 최형석은 도리어 맘에 들어 했다.

    “놈들은 우리를 통해 자신들의 진지를 건설하려는 게 아닐까 싶다.”

    장현의 말에 일행의 시선이 집중됐다.

    “진지 건설?”

    “그래. 이해하기 쉽게 말한다면 식민지 건설이겠지.”

    “아…….”

    식민지라는 말에 모두는 장현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이해했다.

    “장현 네 말은 마족을 일본놈들에 비유한 거네. 인류는 마치 일제 식민지 시대의 조선인들이고.”

    “비슷하다고 볼 수 있지. 상점 주인 혹시 기억하나?”

    “응 리자드맨이었잖아. 도마뱀 종족.”

    “그리고 우리를 인솔해 온 병사들은 크로커다일이었지.”

    “도마뱀에, 크로커다일이라. 그러고 보니 인간이 아닌 종족들이네.”

    “그런데 데니우스라든지 조금 전 봤던 성주와 그의 딸은 어땠지?”

    “어. 그러고 보니 그놈들은 조금 생김새가 달랐어. 성주는 사자 같았지만, 그의 딸은 몬스터라기보다는 인간형이었어.”

    “리자드맨과 크로커다일은 우리처럼 마족에게 지배당했을 거야.”

    장현은 이미 알고 있지만 추측하듯 말했다.

    지배당한 종족은 대부분 죽음을 피할 수 없다. 밟으면 꿈틀하듯, 결국은 불만이 폭발하고 항거하게 된다.

    마족은 그 순간을 노린다.

    그들이 노리는 건 음차원의 마나.

    불만, 공포, 고통이 극대화되어야 음차원의 마나가 강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음차원의 마나를 모으는 도구가 따로 있다.

    장현은 창문을 열고 어디에서나 보이는 큰 기둥을 바라봤다.

    “저게 뭐라고 생각해?”

    “저 기둥 뭔가 불길한데.”

    장현의 물음에 덕배가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저기서 강한 마나의 기운이 느껴진다. 덕배 말대로 불길한 마나의 기운이.”

    “혹시 말이야. 저게 저놈들의 목적이 아닐까?”

    덕배의 물음에 장현이 눈에 이채를 띠었다.

    ‘이 녀석 감이 예리한데.’

    기둥은 성주성과 영지에서 음차원의 마나를 모아 축적한다.

    때로는 영지 생태계에 필요한 작용들에도 쓰이지만, 이를테면 작물 생산 따위라든지.

    그 외에 남는 마나는 기둥을 통해 집적되어 마왕과 대공에게 보내진다.

    똑. 똑. 똑.

    “들어가도 되나요?”

    끼이익.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들어온 것은 강신배였다.

    “흐음. 여기 다들 있었군요.”

    “예의가 없군. 들어오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들어오다니. 그것보다 무슨 일이지?”

    장현은 냉랭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야 앞으로의 일을 의논하기 위함이지요.”

    강신배는 장현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 말에 장현은 흥미롭다는 듯 그를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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