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화. 헬릭스 성주 (1)
장현은 이성훈이 만든 부교를 다른 사람들에게 보였다.
“다들 봐봐. 이성훈 씨가 이런 식으로 부교를 만들었어.”
“오호, 이 정도면 용암도 건너갈 수 있겠어.”
“흠……. 꽤 쓸만한 자군요.”
장현의 말에 김덕배와 최형석이 부교를 보더니 새삼스러운 눈빛으로 이성훈을 바라봤다.
이후부터는 이성훈이 부교 제작에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그러는 동안 장현은 부츠형 신발 제작에 집중했다.
곧 부교는 빠르게 만들어졌다.
부교는 1.5m 정도의 다리를 4개 가진 천막의 모양새였다.
장현은 일행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자, 이제 내가 먼저 건너가면서 부교를 설치할 테니 다들 잘 따라와.”
모든 스탯이 월등한 장현이 부교를 설치하는 게 나았기에 그가 제일 먼저 나섰다.
장현이 부교 하나를 용암에 던졌다. 부교는 한걸음에 뛰기 좋은 위치에 놓였다.
풍덩, 풍덩.
푹. 푹.
치이익.
“됐어.”
부교가 용암 웅덩이에 고정되자 다음 부교를 던졌다.
푸시식.
부교의 다리를 이루는 뼈는 조금 부식되는듯했지만 역시나 녹지 않았다.
장현은 한 걸음씩 먼저 딛고 나아가며 용암 웅덩이에 부교를 설치했다.
건너편까지 부교가 완성되었다.
하나씩 밟아 가다 중간위치에서 부교를 밟았을 때 살짝 비틀거렸다.
부교가 미끈거린 탓이다.
아무래도 서둘러 만들다 보니 부교를 이루는 가죽에 묻은 삼두견들의 피 때문인듯했다.
삐그덕.
부교의 가죽 안쪽에 뼈 봉으로 고정해놓은 부분이 기분 나쁜 소리를 냈다.
용암의 열기 때문에 내구성이 점점 약해지는 듯했다.
서둘러야 하는데 아무래도 위험해 보였다.
“넘어올 때 조심해, 부교 가죽이 미끄러워.”
장현은 뒤따라서 건너올 사람들에게 주의를 주었다.
사람들은 아직 부츠도 신지 않고 장현을 보고 있었다.
“자, 다들 서둘러 부츠 신고 외투로 신체를 단단히 감싸도록 해요.”
김덕배가 사람들에게 말하고는 먼저 삼두견 가죽으로 만든 부츠를 신고 외투를 입었다.
“그래, 서두르자고. 언제 독안개가 퍼질지 몰라.”
이어 이나연, 최형석을 비롯해 이성훈 공무원들 일행까지 복장을 입었다.
장현은 이미 건너가 있었기에 김덕배부터 한 명씩 건너기 시작했다.
그러다 사고가 발생했다.
미끄덩.
부교를 밟은 여자 공무원 한 명이 발을 딛다가 중심을 잃었다.
“어어……. 으아아아!”
“아, 안돼!”
풍덩. 풍덩
그 여성은 외마디 비명을 남기며 무의식적으로 앞서가던 일행을 붙잡았다.
붙잡힌 사람 역시 같이 용암 웅덩이로 빠졌다.
두 사람은 순식간에 용암에 빠져 녹아내렸고, 가죽신과 가죽 외투만이 용암 위로 떠 올랐다.
위기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동시에 부교들이 균형을 잃고 쓰러져 용암 속으로 가라앉기 시작한 것이다.
“아아악, 살려줘.”
“젠장! 서둘러 뛰어.”
“빨리! 빨리 가!”
공포에 젖은 채 버둥거리던 사람들이 서둘러 부교를 건넜다.
다행히 건넌 사람도 있지만, 이성훈의 일행들 대부분이 용암에 빠졌다.
그들은 그동안 전투에서 비껴있어 여태껏 살아날 수 있었지만, 그만큼 신체 능력이 떨어진 탓이 컸다.
“아……. 안돼!”
공무원 중 장현 바로 뒤에서 따라 건너다 혼자 살아남은 이성훈이 그 모습을 보고는 눈물을 흘렸다.
장현이 그런 이성훈을 끌어당기며 재촉했다.
“뭐해, 서둘러 와. 머뭇거리다 너도 죽어.”
“크윽. 네.”
이성훈은 눈물을 훔치며 서둘러 건넜다.
그렇게 장현을 포함해 다섯 명만이 용암 웅덩이를 통과해 반대편으로 건널 수 있었다.
그 뒤로는 순탄했다.
동굴을 직선으로 달려 나오자 지상으로 연결되었다.
겨우 용암 웅덩이를 건너 지상으로 나온 일행들 앞에 새로운 환경이 펼쳐졌다.
지평선을 모두 덮은듯한 성벽이 그들의 눈앞에 있었기 때문이다.
“뭐지 저 성벽은?”
“어마어마한 높인데……. 저기가 세이프존일까요?”
“그렇겠지. 안 그렇습니까? 형님.”
다들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눈을 떼지 못하며 멍하니 중얼거렸다.
장현은 성벽을 노려보았다.
‘저기다. 영지 전 퀘스트가 시작될 곳이.’
그동안은 생존을 위해서 달려왔다면 이제는 저 영지에서 새로운 전투가 시작된다.
바로 이 종족들과의 영지 전.
장현이 일행들을 이끌고 성벽에 다가갔을 때 알림이 뜨며 성문이 열렸다.
[세이프존에 입장했습니다.]
끼이익.
드르륵.
거대한 크로커다일이 그 악어 같은 길쭉한 입에 미소를 걸치며, 장현 일행을 맞았다.
놀랍게도 크로커다일은 두 발로 서서 사람 말을 하고 있었다.
“신입은 네놈들이 다냐? 저기에 가서 기다려라. 아직 더 올 놈들이 있으니까.”
크로커다일이 가리키는 곳에는 거대한 원통의 기둥이 땅에 박혀 하늘 끝까지 뻗어있었다.
“지구의 K-3 소속 플레이어들이 왔습니다. 이들이 플레이어 중 가장 먼저 입장했습니다.”
크로커다일은 어디론 가를 향해 보고했다.
‘K-3는 한국의 부산을 의미한다. 이제 곧 서울의 생존자들이 오겠군.’
장현은 1회차에서의 기억을 떠올렸다.
서울 출신의 플레이어 중 주목할 만한 사람이 있다.
강신배.
20대의 정치인으로 청년보수당을 이끌고 있지만, 실상은 비틀린 극우주의자다.
과거에는 최형석마저 그에게 당하고 말았다.
처음에 그는 최형석에게 굽히고 들어갔다.
적당히 최형석을 떠받들어주며 방심시켜 그의 신뢰를 얻고 오른팔이 되었다.
그리고 최형석이 신뢰를 하였을 때, 그것이 최형석의 마지막이었다.
‘영리하긴 영리한 놈이지. 결국, 최형석을 누르고 일인자가 되었으니. 그래도 이번엔 안될 거다.’
장현이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성문이 다시 열렸다.
크로커다일을 지나쳐 정문을 통과한 자들은 5명이었다.
“으아아! 살았다. 살았어.”
“으허허헝.”
“호들갑 떨지 마.”
그중 마지막에 들어온 남자가 동료들에게 주의를 시키더니 장현 일행을 바라본다.
‘강신배.’
그가 바로 서울 쪽 무리를 이끌었고 나중에 대한민국을 대표했던 강신배다.
“강신배, 저기 다른 사람들이 와있어.”
동료의 말에 뒤따라 들어온 강신배가 장현 일행을 보고는 다가왔다.
“우리 말고도 살아서 온 사람들이 있었군요. 난 강신배라고 합니다. 여긴 튜토리얼을 같이 통과한 일행들입니다. 우린 서울 사람들입니다. 당신들은 어디에서 왔나요?”
강신배가 최형석에게 다가와 인사했다. 상냥한 얼굴에 미소를 짓는 얼굴이었다.
강신배의 인사에 가장 먼저 나선 건 최형석이였다.
스스로 장현의 동생을 자처했던 그는 이런 상황에 먼저 자신이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난 최형석이다. 우린 부산에서 왔다. 그리고 저기 계신 분이 우리를 이끄신 분이다.”
최형석이 강신배에게 장현을 소개했다.
강신배는 최형석이 일행의 대표로 생각하고 있다가 생각지 못한 말에 눈에 이채를 띠고 장현을 바라보았다.
“아하, 반갑습니다. 꽤 젊으신 분 같은데 이분들을 이끄셨다니 대단하십니다.”
“난 장현이다. 그쪽도 마찬가지인데 굳이 입에 발린 인사 따윈 생략하지. 거기랑 여기랑 살아남은 인원도 같은데.”
장현의 툭 쏘는 반말에 강신배는 미간을 잠시 꿈틀거렸지만 참았다.
꽤나 강해 보이는 최형석이 리더라고 소개하는 것을 보고 그는 장현이 예사 인물이 아님을 느꼈기 때문이다.
한편 장현은 강신배가 눈알을 굴리며 자신을 탐색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예전에도 저렇게 웃는 얼굴로 온갖 비열한 수를 다 썼었지.’
장현은 강신배를 보면서 예전 기억을 떠올렸다. 그는 웃으면서 사람을 찌를 수 있는 자다.
제물이 필요할 때 자신에게 반하는 자들을 하나하나 처리하면서 결국 권력을 잡았다.
이들은 서로가 최악의 적수가 될 뻔했다는 것을 알까.
물론 이번엔 그렇지 않을 것이다.
‘내가 주도할 거니까.’
장현과 강신배가 눈빛을 교환하고 있을 때, 크로커다일 문지기 병사가 다가와 말했다.
“신입 플레이어들, 성주님을 뵈러 가야 한다. 날 따라오도록.”
그 말에 장현을 제외한 사람들은 의문스러웠지만 일단 따라갔다.
마족의 말에 반문이나 저항을 했던 자들이 터져 나갔던 경험이 뇌리에 박혀있었기 때문이다.
크로커다일 병사가 성문 안쪽으로 들어가자 궁전이 나타났다.
궁전은 이슬람 사원의 궁전 같은 외양이었다.
대리석과 같은 하얀 벽면에 화려한 금으로 입혀진 무늬는 성주의 부와 권위를 나타내고 있었다.
그러나 그 화려한 외관에도 불구하고, 금박으로 입혀진 무늬에서 느껴지는 흉흉함은, 왠지 모를 불길함을 자극하고 있었다.
‘피지배 종족의 피와 눈물로 지어진 궁전…….’
장현은 인류가 패배했던 과거를 다시 떠올리며 투기를 다졌다.
크로커다일 병사는 궁전 안까지 사람들을 데리고 들어갔다.
그러자 거대한 의자에 인간형의 마족이 앉아있었다.
‘헬릭스.’
장현은 의자에 앉은 마족을 보며 중얼거렸다.
눈앞의 성주는 강철같은 근육과 사자머리를 지닌 마족이였다.
그는 어쩐지 나태에 찌들어 보이는 표정이었다.
그럼에도 그에게서는 이 공간을 제압하는 기이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포식자를 둔 피식자의 압박감이 이런 거겠지.’
헬릭스는 한 줌에 살의도 내비치지 않고도, 압박감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 속에서, 헬릭스의 입에 느슨한 미소가 걸렸다.
마치 이 분위기를 즐기는 것처럼 말이다.
지금, 이 공간에서 완전히 편안히 있는 것은 헬릭스 한 명뿐이었다.
‘여기서 자신 이외에는 누구도 편히 있을 수 없다는 거겠지. 이번 회차에서는 저놈을 이용해야 해.’
장현은 헬릭스를 보며 터질 것 같은 투기를 억눌렀다.
1회차에서는 마왕에게 대항하는 시발점이 헬릭스에 대한 반기였다.
힘을 갖춘 그는 동료들과 함께 헬릭스를 처단함으로써 마족과의 전투를 시작했었다.
‘그건 오판이었지.’
장현은 테오, 아르헨을 비롯한 동료들과 반란을 일으킨 시점에서 인간족을 필두로 한 플레이어들은 전쟁물자가 너무나도 부족했다.
마왕과 마족들에게는 그들이 지배하는 수많은 영지에서 차출한 물자들과 인재들이 즐비했다.
영지에서는 마나 함유량이 높은 식량과 치료제들을 생산했으며, 문명이 발달한 영지의 지식인들을 소환했다.
바로 그들이 마왕과 대공의 명령하에 경기 시스템을 만들었고 지금은 관리하는 관리자들이다.
물론 데니우스 같은 힘만 강한 마족들도 있지만, 마법과 술법을 비롯해 심지어 공학과 과학자들까지 즐비했다.
그런 점에서 헬릭스는 힘을 추구하는 순수한 마족.
신계와의 전투에서 공을 세워 성주 직을 받은 대공의 최측근이다.
비록 자식인 안젤라에게는 한없이 약한 면도 있지만, 성주라는 자리를 차지한 고위 마족이다.
‘헬릭스 성의 약점은 문명 수준이 뒤처진다는 것.’
장현은 그가 기억하던 헬릭스 성을 떠올렸다.
황량한 벌판에 독안개로 가득 찬 지역.
생명체는 크로커다일 족과 리자드맨 종족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리자드맨은 술법을 추구하는 종족이지만 크로커다일 종족은 힘을 추구하는 종족.
영지를 정비하고 경영하는 쪽에서는 인재가 없다는 말이다.
1회차에서 장현이 헬릭스를 처단하고 영지를 차지했을 때 닥친 문제가 바로 이 부분이다.
마계의 다른 영지들에 비해 한없이 부족한 식량과 마도 공학 아이템들이다.
식량은 마나를 품고 있기에 생명 유지 외에도 부상을 빨리 회복하고 강해지는 역할을 한다.
마도 공학 아이템은 시스템을 활용할 수 있는 도구에 가깝다.
‘그런 점은 지구와 흡사하지.’
칼과 창으로 싸우던 인류가 총을 사용하고, 다음은 핵무기를 사용하면서 문명이 발달했듯이 마계를 이루는 문명은 마도 공학이다.
‘가능한 이곳을 최대한 개발해 최후의 전쟁을 위한 인류의 본거지로 삼아야 해.’
그때까지는 장현이 헬릭스의 측근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마왕과 대공은 전쟁을 벌이게 될 것이고, 인류는 대공의 편에 서서 마왕을 먼저 처리해야 하니까.’
마왕은 도저히 플레이어들만으로 쓰러트리기는 불가능한 존재임을 확인했다.
대공을 도와 마왕을 쓰러트린 후 그다음 대공을 쓰러트리는 것만이 유일한 해법이다.
‘그때 테세리움 무기가 필요하지.’
장현은 다시 한번 자신의 계획을 점검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장현이 생각에 잠겨 있을 때, 헬릭스가 권태하고 나른한 목소리로 옆에 서 있는 크로커다일 병사에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