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본경기가 시작되다 (9)
“히든 퀘스트?”
“이름만 들어도 범상치 않은데.”
이나연을 둘러싼 김덕배와 최형석이 한마디씩 했다.
그때 뒤를 이은 장현의 질문.
“퀘스트 내용이 뭐지?”
“내 몸에 들어있는 마족의 기운을 없애려면 카오스 보석을 찾으라고 해요.”
그 말을 들은 최형석이 투덜거렸다.
“카오스 보석, 뭐야 그걸 어디서 구하란 말이야.”
“용암지대에 있다고 해요.”
“용암지대라면 기차 타고 지나왔던 곳 말이야?”
“그런 거 같아요.”
“음…….”
장현을 제외한 일행들에게서 침음성이 흘러나왔다.
“난 이나연과 함께 용암지대에 가려고 한다.”
“아니, 저 때문에 모두를 위험에 빠트릴 순 없어요.”
장현의 말에 이나연이 손을 내저었다.
“굳이 모두가 갈 필요는 없지. 이나연과 나 둘만 가도 돼.”
장현의 말이 끝나자 양쪽에서 즉각 거부의 외침이 터졌다.
“무슨 소리야! 나도 갈 거야. 마침 나도 열에너지가 필요했어. 불의 정령과 계약을 해야 해.
덕배가 화염의 정령 계약 스크롤을 꺼내 들고 흔들었다.
“저도 갑니다. 형님.”
“그럼 저들은? 같이 가면 거의 죽는다고 봐야 해.”
장현이 쉬고 있는 생존자들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생존자들은 그들이 오크 동굴에서부터 훈련시킨 사람들이었다.
잠시 머뭇거리던 덕배와는 달리 최형석은 단호했다.
“저들은 제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알아서 할 겁니다. 태석이도 여기 있으니 전 형님을 따라갑니다.”
그때 김태석의 표정이 굳어졌지만, 최형석은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다.
설령 알았어도 신경 쓰지 않았을 테지만.
장현은 덕배의 장검을 잡고 감별스킬을 사용했다.
[용병의 장검]
-용병으로 잔뼈가 굵은 자가 애용하던 장검이다.
-공격력 70
-내구도 50
-강화가 가능합니다.
장현은 장검의 정보에서 강화에 시선을 주었다.
‘강화 정보를 알려면 감별 스킬이 있어야지.’
장현이 가진 감별 스킬이 강화의 상세정보를 읽어냈다.
*강화
-총 3번의 강화가 가능합니다. 한 번의 강화 시도에 20의 마나포인트가 요구됩니다.
-2강까지는 강화 성공 확률이 90%입니다.
-3강의 성공 확률은 40%입니다. 강화에 실패할 경우 장검은 박살 납니다.
“강화 시도에 20포인트가 필요해. 어떻게 할래?”
“음……. 나 장검과 스크롤 사느라 지금 가진 게 딱 22포인트인데……. 에라 모르겠다. 할게.”
덕배의 대답에 장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모루와 망치를 꺼냈다.
모루 위에 장검을 올린 장현은 기초 연성술을 사용했다.
“기초 연성술.”
장현의 손이 빛나기 시작했다.
‘기초연성술에 강화능력이 있어서 다행이야.’
원래 강화를 시도하기 위해서는 강화 스크롤이 있거나 마법사가 있어야 한다.
장현은 연성술을 얻었을 때, 상세설명에서 강화에 대한 부분을 발견했었다.
연성술을 몇 차례 사용하면서 어느 순간 강화가 가능함을 알았다.
장현이 망치를 쥐었다.
손에서 빛나던 빛이 망치까지 감쌌다.
모루 위에 덕배의 장검을 올리고 스킬을 사용했다.
“강화!”
[마나포인트 20이 소요됩니다. 계속하시겠습니까?]
“덕배, 포인트를 지불해.”
“어떻게 내는 건데?”
“장검에 손을 대.”
“이, 이렇게?”
덕배가 장검 손잡이를 잡았다.
“계속한다.”
장현이 알림에 답하자, 덕배의 마나포인트가 쑤욱. 하고 빠져나갔다.
“어어.”
놀란 덕배가 당황한 신음성을 내뱉었다.
그때 장현이 빛으로 덮인 망치를 내리쳤다.
쾅!
[강화가 성공했습니다.]
[장검 +1]
장검은 강화의 영향으로 빛이 번쩍이고 날은 예리해져 있었다.
“오오오. 이게 강화의 효과인가.”
덕배가 자신의 장검을 만지며 감탄했다.
“이제 첫 강화를 했을 뿐이야. 마나스톤만 충분하면 한 번 정도는 더 해도 될 거다.”
덕배의 눈빛이 빛났다.
“포인트를 꼭 모아야겠어.”
“일단 넌 사람들에게 설명부터 해.”
“알았어.”
덕배가 사람들에게 간 후, 장현은 최형석과 이나연의 무기도 강화했다.
역시 필요한 포인트는 20이었고 3강까지 가능했다.
“자, 한 번 살펴봐.”
강화한 무기를 받은 두 사람은 덕배처럼 놀란 얼굴을 감추지 못했다.
“이게 강화?”
이나연이 삼단봉을 만졌다.
쉭! 차르륵.
삼단봉을 펼치자 강인한 봉이 모습을 드러냈다.
봉 끝을 가볍게 바닥에 두드렸다.
탕!
봉의 각 단 연결 부분도 흔들림 없었다.
쉭!
쉬쉭!
그녀는 호신술 익히기에서 익혔던 기술들을 연습했다.
꾸벅.
최형석은 사시미를 받아들고는 허리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그는 수많은 전투를 경험한 몸, 자연히 검에 대해서도 많이 알았다.
장현이 강화한 사시미는, 최형석이 봐왔던 일본 명도나 독일제 명검 못지않았다.
아니 오히려 훨씬 뛰어났다.
가볍게 손가락으로 튕기자 사시미 날이 팅! 하고 맑은 소리를 냈다.
최형석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한번 장현에게 고개를 숙였다.
“형님……. 감사합니다.”
“그 정도면 한동안은 문제없을 거야. 포인트를 많이 모아. 그래야 강화를 더 할 수 있어.”
“네! 형님.”
장현은 몸을 일으켰다.
무기 강화를 함으로써, 연금술사 조각의 경험치가 올랐다.
‘어서 중급 연금술사에 도달해야 해. 앞으로 6번의 강화를 추가하면 중급에 도달한다.’
상태창의 강화 탭 옆에 떠 있는 (4/10) 표시.
팔랑크스의 창에 은을 연성한 것이 강화로 인정되었다.
세 명의 무기를 강화해준 것은 장현이 중급 연금술사에 도달하기 위함이 컸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라면 나머지 생존자들의 무기까지 강화해준다면 금방 될 수 있겠지만 무리다.
6번의 강화까지 120포인트가 필요했다.
아쉽지만 저 생존자들에겐 그 정도의 포인트가 남아 있지 않았다.
그들 또한 보상을 얻기 위해 포인트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장현의 포인트를 저들을 위해 쓸 생각은 전혀 없었다.
회귀 전 장현의 보호구와 무구는 최상급이었다.
부족한 전투 실력을 보완하기 위한 스스로의 생존방식.
물론 장현이 대장장이였기에 가능했지만, 그는 좋은 장비를 갖추는 것의 중요성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원래의 장비대로 갖추기 위해선 포인트를 조금도 낭비할 순 없어.’
현재 장현의 무기는 팔랑크스 창. 그것도 진은이 아닌 실패작이다.
그것을 제대로 만들려면 용암지대에서 최대한 포인트를 쌓아야 한다.
이제 출발할 때다.
“설명은 충분히 했어. 저들은 여기에서 기다리고 있겠대. 기차에서 봤던 용암지대로 간다고 하니 사실 아무도 안 따라오려 했어.”
끄덕.
예상한 일이다.
간신히 기차 내부로 들어왔겠지만, 그들도 보았다. 용암의 무서움을.
자신들보다 조금 늦게 기차 내부로 들어오려던 자들이 한순간에 녹아내렸었다.
장현을 따라가려는 마음이 있겠지만, 직접 눈으로 본 충격은 마음속에 각인이 되었을 것이다.
“태석이가 있으니 여긴 괜찮을 거다.”
“아, 그 사람이라면 뭐.”
최형석의 말에 덕배는 수긍했다.
최형석의 오른팔이라는 김태석은 최형석을 대신해 부하들을 이끌고 있다.
무력은 출중했지만, 오크 들과 싸우다 죽다 살아난 후 전투에 소극적으로 되었다.
그래도 부하들을 통솔하는 데는 별 무리 없을 터. 생존자 중 김태석만 한 사람도 사실 없었다.
“그럼 가자.”
장현의 말에 세 사람은 그를 따라 기차역 밖으로 움직였다.
***
김태석은 덕배의 얘기를 듣고 난 이후 반발심이 컸으나 드러내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세 사람이 떠난 직후 부하들을 불렀다.
생존자 스무 명 중 여덟 명이 최형석의 부하들이었다.
“다들 아까 김덕배가 한 얘기 들었지?”
“네 형님.”
“큰 형님이 저 장현이라는 놈을 형님으로 모시면서부터 이상해지셨다.”
“태석 형님……. 저도 큰형님의 변해버린 모습이 아쉽습니다. 우리는 내버려 두고 계속 저 장현이란 애송이한테만 붙어 있어요. 지금도 큰 형님은 우릴 버려뒀잖아요. 큰형님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습니까.
김태석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큰 형님이 장현이란 애송이와 함께 다닌 다음부터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되게 강해지셨다.”
“맞습니다. 원래부터 강하셨지만, 지금은 그때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이유가 뭔지 아느냐?”
“아무래도 좋은 아이템을 얻고 보상을 받았기 때문이 아닐까요?”
“맞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큰형님과 장현, 김덕배, 이나연 저기 네 사람이 마나포인트를 독차지하고 보상과 스킬을 독점하고 있지.”
“큰 형님이 우릴 버리시다니! 어찌 이럴 수가 있습니까!”
“큰형님이 우릴 먼저 버렸으니, 우리도 이제 알아서 살길을 찾아야지.”
“그, 그 말씀은?”
“덕배 말 들었잖아. 지금 네 사람이 먼저 간 것도 분명 아이템이나 스킬을 얻으려고 간 거야. 그걸 우리가 먼저 가진다.”
“전 형님을 따르겠습니다.”
“저도 따르겠습니다!”
주위의 사내들이 복명하며 고개를 숙이는 가운데, 김태석은 눈을 빛내며 미소를 그리고 있었다.
***
“후, 지독하게 덥네.”
김덕배가 전장의 맵 스킬을 사용해 장현 일행의 앞에 서서 나아가고 있었다.
용암지대인 탓에 온몸에서는 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덕배야, 이쪽이 맞아?”
“누나, 맞다니까. 이쪽으로 길이 나 있어.”
덕배는 전장의 맵에 나온 길을 따라 일행을 안내하고 있었다.
아직 레벨이 낮아 50m 이상은 보지 못하지만, 그 정도만이라도 큰 도움이 되었다.
그때 장현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울렸다.
“적이 온다. 조심해.”
“뭐, 아직 나타난 건 없는데.”
김덕배는 전장의 맵을 확인하며 반문했다.
“다가오고 있어.”
장현의 말에 최형석과 이나연은 재빨리 무기를 꺼내 전투준비를 했다.
김덕배 또한 반신반의하면서 장검을 꺼냈다.
그때, 전장의 맵에도 반짝이는 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정말 나타났어.”
덕배의 목소리에는 놀라움이 담겨있었다.
전장의 맵의 유효거리는 50m다.
장현이 적의 등장을 감지할 수 있는 거리는 최소 50m 이상이라는 말이다.
투두둑.
크허허헝.
달려오는 적은 삼두견 한 마리였다.
“개? 개가 머리가 셋이야.”
김덕배가 삼두견을 보고 놀란 탄성을 지을 때 장현이 주의를 시켰다.
“조심해. 그게 다가 아니야. 덕배! 정령계약 스크롤을 준비해!”
“뭐?”
“스크롤로 불을 막을 수 있다.”
“아차!”
덕배는 뒤늦게 무언가 떠오른 듯, 스크롤을 꺼내 들었다.
게임을 많이 해본 덕배에게 용암지대 몬스터가 불 공격을 한다는 것 정도는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것이었다.
이윽고 켈베로스가 불을 뿜었다.
불길은 정확히 일행의 제일 앞에 있는 덕배에게로 쏘아졌다.
“으아아아.”
덕배는 스크롤을 앞으로 들어 올렸다.
화염이 스크롤에 다가오자 스크롤에서 빛이 터져 나오며 켈베로스의 불을 흡수해버렸다.
화아악.
잠시 후 불길은 사라졌고, 삼두견들은 당황한 듯 짖어댔다.
컹컹컹!
“지금이야! 쳐!”
장현이 삼두견들을 향해 달려들며 창을 내질렀다.
푹!
삼두견의 머리 하나가 터져나갔다.
이어 다른 손에 든 망치가 이제 이두견이 된 마물의 머리를 다시 빠갰다.
머리가 하나 남은 개가 장현의 다리를 물려고 입을 벌렸다.
화르륵!
다시금 불길이 뻗어 나올 때, 장검이 날아와 삼두견의 마지막 머리를 잘랐다.
툭! 투두둑.
“후. 깜짝 놀랐네.”
덕배가 장검을 수납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히 스크롤이 불길을 흡수했으니 망정이지 통구이가 될뻔했어. 가만, 입에서 불을 내뿜다니 혹시 지옥견 켈베로스?”
덕배의 추측에 장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런 거 같아.”
장현이 알기로 켈베로스는 개보다는 늑대 쪽 속성이 강하다.
그 말은 개별로 활동하는 게 아니라 무리 짓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놈들이 다가오고 있어.”
덕배가 소리치기 무섭게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크르릉.
컹컹.
타타닥.
삼두견들이 여기저기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뛰어!”
장현이 외치면서 달려나갔다.
동시에 일행들에게 오크 동굴에서의 전술을 언급했다.
“4인 1조 전술 기억나지?”
“당연하지!”
“네 똑똑히 기억합니다.”
“그럼요!”
셋은 동시에 우렁차게 대답했다.
“덕배를 가운데 두고 우린 덕배를 감쌀 거야. 덕배는 놈들의 불길을 흡수해줘. 너의 역할이 중요해. 나연은 디텍터 스킬로 혹시 뒤에서 다가오는 놈들이 있는지 살펴줘.”
“걱정하지 마세요.”
이나연은 디턱터의 눈만이 아닌 호신술 익히기 스킬도 있었기에 자신 있었다.
“온다!”
삼두견 한 마리가 장현의 정면에서 다가왔다.
쉬쉭!퍽!
장현의 창과 망치가 움직이고, 최형석의 사시미가 번뜩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