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장장이 회귀해서 만능캐되다-22화 (22/211)
  • 22화. 본경기가 시작되다 (6)

    장현은 최형석과 이나연을 번갈아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최형석이 무게를 잡아주고 있어 다행이야.’

    그가 없었다면 분위기가 축 처졌을 것이다.

    장현은 자신이 일일이 일행들을 다독이는 것은 상상도 하고 싶지 않았다.

    이래서 막무가내인 도살자가 초반에는 더 좋다.

    저만 살 수 있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니까.

    상대가 몇 시간 전만 해도 같은 인간이었다는, 그런 물렁물렁한 생각은 하지도 않는다.

    물론 저런 성격은 가면 갈수록 통제하기 어렵다.

    다른 인간과 이 종족과 심지어 다른 차원의 인간들과 교류해야 하는 이상, 이나연처럼 선악의 기준이 확실한 사람이 안정적이다. 길게 보면 말이다.

    ‘제이미만 해도 그랬으니까.’

    장현은 이나연에게서 제이미와 유사한 느낌을 많이 받았다.

    이나연이 스킬을 얻는다면 신성계열이 아닐까 생각했건만 디텍터라는 게 의외다.

    장현이 일행들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때 최형석이 다가와 물었다.

    “그런데 형님. 어디 좀 안 좋으십니까? 이번에는 영 활약을 안 하시던데요?”

    “딱히 나서지 않아도 될 거 같아서. 마나 포인트나 챙겨. 다들 성장해야지. 나 혼자 다 쓸어 담으면 나중에 나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하게 된다.”

    “아하. 기회를 주시는 거군요. 과연 우리 형님이십니다.”

    “누가 당신 형님이야?”

    전직 조폭의 형님이라니.

    그것도 저 최형석의 형님이라니. 생각만 해도 손발이 오그라들었다.

    “아아……. 우리 형님 또 이러신다.”

    장현이 최형석을 쏘아보자 머쓱해진 그는 고개를 돌리며 물러났다.

    장현은 안 그래도 정신없었는데 최형석 때문에 인상을 찌푸렸다.

    최형석이 궁금해했듯 장현이 좀비들 사냥에 나서지 않은 데는 이유가 있었다.

    스스로 말한 것처럼 다른 이들에게 성장의 기회를 주는 것도 있었지만 테오의 전언 때문이다.

    좀비가 등장하자마자 떠오른 테오의 메시지가 있었다.

    10계 마법으로 압축되어 전달되는 테오의 지식.

    전에는 최초로 마나 포인트 100을 쌓았을 때 알림이 울렸다.

    이번에도 전언을 위해 미리 설정한 조건이 충족되었다는 말이다.

    [치익! 장현. 지금 메시지는 본경기의 열차에서 언데드를 만난 상황을 가정해 작성한 것이다.]

    [너도 알다시피 난 백마법과 흑마법을 가리지 않았다. 비록 몸은 백마법에 속했지만 흑마법 또한 소홀하지 않았다. 누군가는 이런 나를 욕하기도 했지만 결국 내가 옳았다. 너도 알다시피 마계에서는 백마법보다 흑마법이 더욱 큰 도움이 되었다.]

    [이번 역시 마찬가지. 지금 전해줄 것은 흑마법사인 네크로맨서에 대한 정보다. 기차 퀘스트의 보스 몹인 스켈레톤 킹. 놈을 쓰러트리면 그의 사령술을 얻을 수 있다.

    [사령술을 얻는 것은 언데드를 부릴 수 있다는 것. 설령 네가 쓰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적당한 사람에게 익히게 한다면 도움이 될 거다. 잘 생각해서 결정하도록.]

    치익. 하는 소리와 함께 전언이 꺼졌다.

    끊기듯 이어지던 상황이 듣기 불편했지만, 요점은 이해했다.

    ‘사령술이라…….’

    장현은 눈을 가늘게 떴다.

    네크로맨서. 시체를 일으켜 조종하는 사령술사.

    확실히 사령술을 얻는다면 분명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사람을 상하게 하지 않고, 이쪽의 전력 소모도 없으니까.

    또한, 지금 당장은 쓸 일이 없겠지만, 자신의 무구를 사용하는 언데드를 상상해본 적은 있었다.

    여기에 자신의 연금술과 궁합도 좋다.

    ‘마계에는 마속성 물질도 넘쳐나지. 강력한 언데드 부대를 부릴 수도 있다.’

    물론 막대한 마나포인트와 재료가 필요하겠지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이 있다면 장현과는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한테는 그림의 떡일 뿐이야.’

    대장장이의 극을 본다는 것은 정신 또한 가다듬는 수양이 요구되는 일이다.

    네크로맨서는 사령술사다.

    사령술을 익히기 위해선 분노나 증오 같은 부정적인 감정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 중에서 복수심에 불타는 놈이 있을까?’

    장현의 눈이 덕배. 최형석. 이나연을 훑었다.

    일단 이나연은 패스. 성격이 너무 곧았다. 좀 전의 싸움에서도 보았지만, 상대가 인간이면 무조건 지키고 구하려는 습성이 있었다.

    김덕배도 패스. 이 녀석은 나중에 시스템을 다룰 중요한 일을 해야 한다.

    더군다나 화염의 펜던트를 가졌기에 장현을 도와야 한다.

    혹시나 광기에 빠져 정신줄을 놓게 되면 곤란했다.

    ‘그럼 남는 건 최형석이로군…….’

    조금 전 자신에게 한 소리 듣고 머쓱해하며 최형석에게로 시선이 향했다.

    죽은 자들의 시체를 일으켜 부하로 부리는 것은, 일반인이라면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들 수 있다.

    장현 자신은 회귀 전 수많은 죽음을 겪었다. 윤리적이니 도덕적이니 하는 것보다 그에겐 오직 실리가 중요했다.

    마왕을 쓰러트리는 목적 달성에 도움이 되기만 한다면 무엇이라도 할 생각이 있었다.

    최형석은 여기 있는 사람 중 사령술사에 가장 적합한 자다.

    ‘저놈이라면 어쩌면 괜찮을지도.’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장현은 다음 칸으로 넘어가려다가 멈칫했다.

    “음……. 이것들은…….”

    머리가 터져나간 좀비들의 시체.

    꼭 금속이 아니라도 연성할 수 있는 재료가 있다. 당장 거대흑전갈의 사체가 그랬고, 오크들의 사체역시 그랬다.

    그렇다면 한때 인간이었던 좀비 역시 이론상으로는 연성할 수 있지 않을까?

    그는 좀비를 향해 손을 뻗었다.

    "감별."

    장현의 중얼거림과 동시에 알림이 떠올랐다.

    [대장장이 직업의 특수효과 ‘감별’을 사용하였습니다.]

    [감별 경험치가 1 증가하였습니다.]

    [언데드 ‘좀비’]

    -네크로맨서에 의해 언데드로 부활한 ‘지구인’ 종족입니다.

    -좀비에게서 연성 가능한 물질은 네크로맨서에 의해 강화된 뼈와, ‘시독’의 독성을 띤 피가 있습니다.

    -뼈 강도 : 70

    * 네크로맨서의 기운이 1 담겨있습니다.

    -피부 강도 : 30

    * 네크로맨서의 기운이 1 담겨있습니다.

    - 은과 소금에 접촉 시 뼈와 피부의 강도가 30% 하락합니다.

    “……이게 되네.”

    장현은 좀비들의 시체를 인벤토리로 옮겼다.

    슉슉 사라져가는 시체들. 차 안을 가득 채웠던 좀비가 하나둘 사라지자, 이나연이 복잡한 얼굴을 하는 것이 보였다.

    “……씁쓸하군.”

    장현 또한 기분이 좋지 않았다. 좀비들은 플레이어 중 죽은 자뿐 아니라 지구에서 죽었던 자들도 포함되어 있다.

    지구가 갑작스레 마계에 정복된 날, 우연히 시장보고 집에 가던 주부들 또한 있었다는 말이다.

    그들을 모두 때려죽인 것이, 나중에 유족들에게 원망받지 않았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

    ‘그나저나 소금이라. 이나연이 각성하기 시작한 건가?’

    아까 보았다시피, 소금은 꽤 유용한 요소다. 본래 미약한 정화력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지, 언데드를 상대로 할 때 상성에서 먹고 들어간다.

    다만 이것은 전회차에서는 알지 못했던 것이었다.

    장바구니를 든 여자 좀비가 있기는 했지만, 설마하니 그 안에 든 소금이 좀비를 무찌르기 좋은 수단이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

    마족들이 그렇게 친절한 놈들이 아닌데.

    덜컹덜컹.

    “때려 창!”

    “때려 창!”

    퍼억! 퍼퍼벅! 투콱!

    “크으으으!”

    “미안! 편안하게 가세요!”

    퍼억! 쏴아아악!

    초반의 죽음이 거짓말처럼, 열차를 타고 가는 내내 더 이상의 희생은 없었다.

    솨르르르.

    비척. 비척.

    “으아……. 이게 왜…….”

    “나는……. 나는…….”

    이나연이 소금을 찾아서 뿌리면, 그 소금에 맞은 좀비들은 민달팽이처럼 흐늘거렸다.

    “지금이야! 찍어!”

    “때려 창!”

    “때려 창!”

    퍽! 퍼걱! 투학!

    원래 움직임이 불안정한 좀비들이라 서로 엉켜서 데굴거렸고, 그 위로 최형석을 필두로 한 사람들의 창이 쏟아져 내렸다.

    “흐윽……. 미안해요! 성불하세요!”

    울먹울먹하면서 이나연이 좀비들의 소지품에서 소금을 찾고, 그리고 다시 뿌렸다.

    ‘쯧쯧…….’

    장현은 그런 그녀를 보고 고개를 내저었다.

    역시나 성정이 무르고 연약한 데다가 분명히 치유할 수 없는 좀비인 걸 알면서도 자꾸만 손에 사정을 두려 한다.

    ‘저러다 멘탈 나가서 폭주라도 하면 골치 아픈데.’

    부웅! 부우웅! 퍼걱!

    개인 전투력으로만 놓고 보면, 최형석도 아득히 미치지 못한다.

    마음만 독하게 먹으면 장현 없이도 이 사람들을 이끌고 본 게임까지 갈 수도 있었다.

    그랬던 여자가 지난 생에서는 허무하게 무너지고 말았으니, 참 재능의 낭비다 싶었다.

    “…소금 받아요.”

    턱.

    또 열차 한 칸을 다 쓸어버리고 나서, 이나연이 1kg짜리 소금 봉투를 사람들에게 나눠 주었다.

    매번 멘탈이 깨져서 울먹울먹하면서도, 할 일은 꼬박꼬박하는 게 어찌 보면 대견하기도 했다.

    “하나 물어볼 게 있는데. 이나연.”

    “……?”

    이나연이 침울하게 돌아보았다.

    “아까부터 잘도 소금 찾아내던데 어떻게 한 거야, 직업이라도 생겼어?”

    발끈하는 이나연에게 손사래를 치고 물을 말만 물었다.

    이나연이 잘근잘근 입술을 깨물다가 툭. 말을 던졌다.

    “디텍터.”

    “……디텍터? 디텍티브의 그?”

    “아마도. 경찰이라서 그런 모양이야.”

    “흐음…….”

    장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영어권에서 디텍티브(Detecetive)는 형사다. 경관으로 쓰이기도 하고.

    탐문. 탐색을 하기에 탐정 같은 의미도 있지만, 한국에 적용하자면 경찰이 맞다.

    “운이 좋아. 직업을 얻은 사람이 거의 없는 듯한데.”

    “……너는 뭔데?”

    “대장장이라고 말했잖아. 연금술사이기도 하고.”

    “대장장이에 연금술사……. 그럼 네가 운이 훨씬 좋은 거 아냐? 직업이 두 개나 있으면?”

    “재능이지.”

    “……”

    이나연은 어이가 없는지 입만 턱 벌렸다. 뭔가 쏘아붙이고 싶었던 모양인데, 대놓고 재능이라고 더 질렀으니 할 말이 없어진 듯했다.

    뭐. 그런 거야 어쨌든.

    “적을 볼 때 무슨 표식 같은 게 떠?”

    “…빨갛고 파란 게 떠. 저 앞으로 뭐가 있는지 보이기도 하고.”

    “음.”

    장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디텍터. 일단 탐지계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건 도적이나 패스파인더 계열의 역할을 대신한다.

    “그럼 탐지 좀 켜 봐. 앞쪽에 무슨 몬스터가 얼마나 있는지도 알 수 있어?”

    “야. 내가 무슨 소머즈야? 당장 차 벽이 가로막고 있는데 무슨……. 어?”

    항의하던 이나연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는 잠시 눈을 감더니 뭔가에 집중했다.

    “빨간 점이 보이는데…….”

    “빨간 점?”

    “응. 빨간 점. 앞에 있어. 지금 이것들은 파란색 점.”

    이나연이 앞칸 차량을 가리켰다. 그리고는 바닥에 쓰러진 좀비들을 가리켰다.

    “노란 점이랑 초록 점도 있고……. 우리가 초록색이야. 소금이 노란색이고.”

    “그 외에 다른 건?”

    “다른 건 없……. 아. 있다. 아주 진하고 큰 빨간 동그라미. 주변에 다른 점도……. 어어?”

    말하다 말고 이나연이 눈을 크게 떴다.

    “……형광색이야.”

    “뭐?”

    “앞으로 나오는 좀비들. 형광색이라고. 빨간색인데, 색이 달라.”

    이나연의 머리에는 지도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지도는 기다란 기차의 설계도 같은 모양이었고 동그란 점들이 지도 위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인제 보니 여기 기차의 지도네. 확실해. 앞으로 3칸 남았어. 그런데……. 앞칸은 그냥 빨간색인데, 그다음 칸은 아주 형광색으로 빛나는 느낌이야.”

    “보스 몬스터와 그 가디언들이로군.”

    이나연의 소감을 장현이 간단하게 해석했다.

    오크 던전에서 그랬듯, 각 스테이지에는 보스가 있다. 아마도 이 언데드 열차에서는 스켈레톤 킹이라는 놈이 보스로 판정될 터였다.

    “앗……. 어?”

    “뭐야?”

    이나연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녀는 잠시 눈을 감더니, 다시금 부릅뜬 눈으로 뒤를, 이제껏 일행이 지나온 열차들을 가리켰다.

    “뒤의 파란색들이……. 다시 붉은색으로 변했어!”

    “뭐?”

    “뭐!”

    그 말이 뜻하는 바를 모두가 알아차렸다.

    이제껏 쓰러뜨리고 온 것들은 좀비들이다. 그리고 좀비는 언데드다. 죽여도 죽여도 다시 살아난다.

    끄어어어-

    덜컹덜컹!

    열차가 달리는 소리를 뚫고, 뒤에서 끔찍한 비명이 일고 있었다.

    “앞으로 가! 서둘러!”

    차악!

    뒤를 맡은 장현의 목소리가 소리 높게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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