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본경기가 시작되다 (5)
크와아아!
“이런 제기랄!”
“누가 죽어줄 것 같아? 죽다 만 것들이!”
푹! 퍼퍽! 퍽!
검은 피를 흘리는 시체들에게 창이 쑤셔 박혔다.
크아아아!
사람이라면 가슴, 배에 창이 박히면 고통으로 움직이지도 못한다.
그러나 언데드 몬스터는 이미 죽은 자. 죽은 자는 두 번 죽지 않는다.
창에 찔리건, 칼에 베이건 계속 움직인다. 이나연이 이를 악물고 고함질렀다.
“방심하지 마! 계속 찔러! 찔러 창!”
“이야아아!”
“찔러 창!”
퍽퍽퍽! 콰득!
시체가 십여 개의 창에 바늘꽂이가 되고, 그 와중에 머리를 맞은 놈은 일격에 터져나갔다.
털썩.
시커먼 피와 함께 뒤로 넘어간 좀비. 놈은 더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이나연의 눈에 빛이 돌아왔다.
“머리를 노려! 창 들어! 때려 창!”
“창 들어!”
“때려 창!”
부우웅!
이나연의 지시가 바뀌었다. 좀비에 꽂힌 창을 몸을 비틀어 빼내고, 사람들은 창을 70도 각도로 세웠다.
창은 기본적으로 장병기다. 장대나 다름없다.
앞에 뾰족한 날붙이가 있어 찌르기에 좋지만, 장대를 싸움에서 쓰는 가장 쉬운 방법은 후려치기다. 이건 별다른 숙련도 필요 없다.
“때려 창!”
“때려 창!”
부우웅! 퍽퍽! 콰득!
그저 내려치면 된다. 호흡만 맞추면 된다.
그리고 지금 이곳의 16명은, 장현만큼은 아니라도 다들 며칠간 수백 번의 창질을 해 온 사람들이다.
거기다가 들고 있는 무기도 창. 오크와의 싸움에서 숙련도도 쌓였다.
“때려 창!”
“때려 창!”
퍽퍽! 크아악! 콰득! 콰득!
묵직한 창대에 맞거나, 예리한 창날에 베인다. 최소 어깨 어림을 강타당하고, 운 나쁜 좀비는 머리가 두 조각으로 수박처럼 깨졌다.
물론 그걸로 바로 끝나지는 않았다.
크아아-
크아아!
좀비하면 숫자로 밀어붙이는 물량 공세다. 갑자기 앞 차량 문이 열리더니, 이번에는 수십 마리가 쏟아져 나왔다.
***
“이런 젠장!”
“뭐 이리 많아!”
“한 발 뒤로! 때려 창!”
이나연이 즉각 지시했다. 그러면서 본인의 창대를 옆으로 휘둘렀다.
부웅! 퍽!
궤도에 걸린 좀비의 머리가 산산이 터져나갔다.
이나연은 장현을 제외하고 신체 능력이 가장 뛰어난 축에 속했다. 거기에 팔랑크스의 창이 가진 신성력도 있었다.
“야아압!”
퍽! 퍽! 퍽!
창날이 아니라 창대로 갈겨도 좀비의 머리는 뭉개져 나갔다. 그렇게 전면에서 피와 살점을 뿌려대는 이나연.
‘나는 경찰이야! 사람들을 지켜야 해!’
새끼를 뒤에 둔 암사자처럼, 그녀는 사정없이 몰아쳤다. 최형석조차 그 서슬에 얼굴이 굳을 정도였다. 그렇게 한참을 싸우고 있을 때.
띠링!
[특수 직업 발현 : 디텍터]
[디텍터의 눈이 패시브로 발동됩니다.]
-드러나지 않은 정보를 알 수 있습니다. 디텍터의 눈은 과거를 보여줍니다.
-플레이어가 위기시 패시브로 작동됩니다.
-필요한 마나포인트 : 10
“앗?”
갑자기 눈앞에 문자열이 뛰어올랐다. 이나연은 멈칫했고 덕배의 비명 같은 외침이 일었다.
“나연 누나!”
크아악! 퍽!
달려들던 좀비의 머리가 터져나갔다. 이나연은 아차 하며 와당탕. 뒤로 굴렀다.
“누나! 괜찮아요? 물렸어요?!”
“괜찮아! 안 물렸어! 그게 아니라…!”
벌떡! 부웅부웅!
화급하게 일어나며 이나연은 고개를 저었다.
띠링! 띠링! 띠링!
그녀의 귀에만 들리는 이상한 울림소리. 그리고 빨갛고 파란 시각 표시들.
눈앞의 좀비들이 AR 게임처럼, 빨간 사각형으로 타게팅이 되었다가 사라졌다가 하는 것이다.
“내가 미쳤나?”
이나연이 고개를 빠르게 휘저으며 중얼거렸다.
그 모습을 본 장현이 다가와 물었다.
“왜 그래?”
“눈앞에서 뭔가가 떠.”
‘이벤트 발생이다.’
장현은 이나연의 말에 이채를 띠었다.
갑자기 눈에 뜬다는 것은 특수한 조건이 충족되었다는 의미.
직업이든 스킬이든 이나연이 레벨업을 할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뭐라고 뜨는데?”
“디……텍터라는데. 특수직업……. 앗 또 알림이 떠. 타게팅 그게 뭐지……?”
이나연의 눈앞에서 알림창이 반복해서 떠올랐다.
[타게팅 –분석중]
[타게팅 –분석중]
[타게팅 –분석중]
의문은 곧 풀렸다.
백 팩을 멘 남자. 파자마를 입은 노인. 장바구니를 든 여자에게 연달아 빨간 사각형이 떴다.
“저 사람들에게서 알림이 떠.”
이나연이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크워어어어!
‘디텍터 직업을 얻었군.’
장현은 디텍터 직업에 대해 잘 알고 있다.
마치 게임에서의 자동 조준 시스템처럼 패시브로 위험물에 대한 정보가 떠오른다.
레벨을 키우면 적의 능력치나 숨겨진 아이템까지도 알 수 있다.
디텍터의 눈은 대장장이에게 있어 감별에 버금가는 주요스킬로 분류된다.
장현은 이나연이 스킬에 집중하는 동안 그녀를 엄호했다.
뚜뚜뚜뚜.
[분석완료 – 유용한 아이템]
심지어 메시지가 변하기까지 했다.
그때 장바구니를 든 여자 좀비가 갑작스레 이나연을 향해 튀어 오르며 공격했다.
“조심해!”
마침 대비하고 있던 장현이 그녀의 앞으로 나서며 좀비를 상대했다.
동시에 한 손으로 이나연을 살짝 밀었다.
이나연은 반사적으로 데굴. 옆으로 구르기를 했다. 위
아래가 뒤집히고 불쑥 나타나는 좀비의 아가리가 목표물을 이나연에서 장현으로 바꿨다.
“크아아아!”
부웅! 빠악!
장현은 장바구니를 든 여자 좀비의 팔을 창대로 후려쳤다.
간단한 동작이었지만 딱딱해진 사체의 팔은 그대로 끊어져 나갔고, 그 바람에 들고 있던 장바구니가 떨어져 내렸다.
털썩! 주르르륵.
소금. 배추. 젓갈 통 등 장바구니에 있을 법한 것들이 쏟아져 땅에 굴렀다. 그 와중에 붉은 표시가 뚜뚜뚜! 소리를 내며 다시금 점멸한다.
“고마워. 장현. 그런데 이건 뭐지?”
안도한 이나연이 장현에게 감사를 표하는 도중 땅에 쏟아져 나온 것들에 주목했다.
‘소금?’
덥썩!
이나연은 잽싸게 그걸 집어 들고 펄쩍! 무릎의 탄력을 이용해 빠져 나왔다. 온몸에 검은 피와 질척한 점액이 가득 묻었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불쑥!
“장현! 이거 뭐야!”
이나연은 ‘소금’을 들어 장현에게 보였다.
의문을 풀어줄 사람은 그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데없이 이상한 세계에 떨어져서도, 유독 적응이 빨랐던 이십 대의 청년.
껌벅껌벅.
“소금? 소금이 뭐…….”
장현으로서도 소금의 쓰임에 대해서 딱히 아는 바가 없었다.
1회차에서는 그저 좀비를 쓰러트리고 빨리 떠났기 때문이었다.
디텍터 직업을 가진 이나연이 아니었다면 이번 역시도 그랬으리라.
“아! 맞다! 소금!”
한데 반응한 건 눈만 껌벅이는 장현이 아니라, 그 옆에 있던 덕배였다. 그는 짜악! 손뼉까지 치며 크게 외쳤다.
“소금을 먹여요! 좀비의 천적이야!”
“좀비의 천적? 소금이?”
장현이 처음 듣는다는 투로 묻고 이나연도 물었다.
“확실해?”
“아마도! 설정 중에 그런 게 있어! 판타지 소설이나 게임에서 종종 나온다고! 아이티의 미신에서 나온 건데 좀비 된 사람이 소금을 먹으면…….”
“됐어. 그럼! 줘봐.”
찌이익!
영문 모를 설명은 생략하고, 장현은 즉각 이나연에게서 소금 봉투를 빼앗듯이 받아 뜯었다.
“뭐, 뭐야!”
“지켜봐.”
갑자기 소금을 빼앗긴 이나연이 황당해하며 소리쳤으나, 장현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이어서 그는 쏴아아! 하고 좀비들이 쏟아져 나오는 앞문을 향해 물 뿌리듯이 소금을 뿌려버렸다.
좌르륵. 좌아아악.
굵은 소금이 모래처럼 쏟아져 내렸다. 효과는 즉각적이었다.
크으으. 크으으으.
비척비척. 비척비척.
하얀 소금을 뒤집어쓴 좀비들은 전기충격이라도 당한 듯 몸을 떨기 시작했다.
사람을 공격하는 것도 잊은 것인지, 어떤 놈은 바닥에 주저앉아 머리를 부여잡기도 했다.
“내……내가 왜…….”
“아아…….”
“공격해! 지금!”
“네 형님!”
장현의 외침에 최형석이 틈을 놓치지 않고 창을 휘둘렀다.
부우웅! 퍽! 퍽!
“아아악!”
“으악! 아아악!”
검은 피가 터지고, 뇌수가 튄다. 그럼에도 죽지 못하는 시체들의 비명은, 분명 인간에 가까웠다.
이나연은 확 안색이 바뀌었다.
“최형석 씨!”
“이나연!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마!”
장현이 이나연을 만류했다.
이나연은 장현이 제지하자 주춤했다. 그 사이 최형석은 사정없이 좀비들을 후려쳤다.
부우웅! 퍽! 퍽!
그는 좀비의 비명이든 인간의 비명이든 상관없이 치명적인 부위를 내려찍었다. 그리고 일갈했다.
“좀비 영화 안 봤냐! 꼭 보면 너 같은 년들이 발암이야! 좀비에 한 번 물리면 끝! 여유 부리다간 이 사람들 다 죽어!”
“…!”
퍽! 퍽! 콰득!
“이야아아!”
“때려! 창!”
뒤이어 덕배와 다른 사람들도 최형석에게 동조했다.
퍽! 퍽! 퍽!
“으아악! 아아악!”
“……”
이나연은 이를 악물었다.
확실히 인간이 비명을 지르건 어쨌건, 상대는 정상적인 인간의 모습이 아니다.
검은 피를 흘리고, 행동 불가능한 상처를 입고도 걸어 다닌다. 애초에, 겉모습만 보고 멈칫거리다 한 명이 죽어 나가기까지 했다.
차라리 오크나 스켈레톤이라면 그럴 일은 없었으련만…….
이나연은 충격받은 듯 넋이 나가고 눈에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장현은 그런 그녀를 힐끔 쳐다보고는 다시 눈을 돌려 최형석을 바라봤다.
‘확실히 쓸 만한 녀석이야.’
그는 아주 잘 해내고 있었다.
“으아악! 죽어! 죽어!”
방심하면 바로 죽는다는 공포가 사람들을 몰아세웠다. 길게 뻗은 창날은 사정없이 좀비들의 머리를 후려갈겼고, 삽시간에 차량은 정리되었다.
[좀비들을 모두 처치했습니다.]
[좀비들을 모두 처치했습니다.]
[훌륭합니다. 3차량 앞에까지의 좀비들을 모두 전멸시켰습니다. 다음 차량으로 이동하십시오.]
[남은 시간 03:07]
완전히 다 처치했다는 메시지가 떴다. 사람들이 어깨로 숨을 쉬고 있었다.
“후우……. 후우…….”
“짭새 누님. 거 소금 더 없어?”
핏물을 온통 뒤집어쓴 최형석이 묻는다.
“……”
이나연은 대답 대신 걸레짝이 된 시신들을 뒤졌다. 그렇지 않아도 눈앞으로 빨갛고 파란 아이템 표시가 뜨던 참이다.
뒤적뒤적.
“…여기 있어요.”
백팩을 쓴 남자. 뽀글이 파마를 한 아줌마 등에게서 주로 나왔다. 김장이라도 하려 했는지, 배추와 젓갈 통들이 나온 게 그녀는 슬펐다.
왠지 모르게 현실을 떠오르게 했으니까.
“자책하지 마세요. 누나. 이 아저씨는 우리 편을 살리려고 했을 뿐이에요.”
무심한 장현 대신 덕배가 나섰다. 침울해져 있던 이나연은, 이제 얼굴을 더욱 구겼다. 그 말이 맞았기 때문이다.
“좀비 영화에서 자주 나오는 장면 있잖아요. 그……. 그래도 사람인데 라거나, 저 사람 내 동생이야 라거나. 죽거나 죽이거나 하는 상황인데, 그런 때 빨리 결정 못 하면 다른 사람이 더 죽…….”
“알고 있어. 그만해.”
하아. 하고 이나연이 얼굴을 훔쳐냈다.
후두둑. 투둑.
좀비의 검은 피가 턱을 타고 흘러내렸다. 조폭도, 자신보다 어린 청년도, 다 자기 위치를 잊지 않고 있었다.
왠지 이나연 자신만이 갈피를 못 잡는 것 같아서 더욱 처참했다.
“죄송해요. 제가 잠시 흔들렸어요.”
“어? 어……. 어.”
마음을 다잡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를 받은 최형석이 얼결에 마주 숙였다.
“뭘. 내가 말이 심했지. 아까는 상황이 급해서. 이해하쇼.”
한편,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장현은 뒤에서 끄덕였다.
‘그럭저럭 괜찮군.’
장현은 이번 싸움에서는 별로 앞으로 나서지 않았다. 적절히 옆에서 치고 들어오는 좀비들을 견제만 하는 정도에 그쳤다.
‘팀웍이 이뤄지고 있어.’
처음에 방심해서 한 명이 죽어 나갈 때는 아차 싶었다. 저 정도는 당연히 잡을 수 있을 거라고 장현 자신도 방심한 것이다.
실수였다. 15년간 마족과 죽어라 싸워온 자신과 고작 며칠 전에 끌려와 싸우기 시작한 일반인들을 같은 범주에 두고 만 것이다.
사람의 마음은 약하다. 상대가 인간의 모습을 한 것만으로도 무심결에 경계를 풀어버리고 만다. 좀비가 소금을 뒤집어쓰고 인간의 비명을 지르자마자 멈칫한 이나연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