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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장이 회귀해서 만능캐되다-20화 (20/211)
  • 20화. 본경기가 시작되다 (4)

    [기초연성술을 사용합니다.]

    장현의 손에서 화악. 붉은빛이 솟았다.

    연성술에 따라오는 특수효과라고 할 수 있다.

    장현이 은광석을 주무르자 곧장 반응이 일었다.

    파파팟!

    번쩍. 번쩍 빛이 터져 나왔다.

    빛 속에서 장현은 은이 재구성되는 걸 볼 수 있었다. 대략 10분에 달하는 시간이 지나고 정련이 끝났다.

    “흠.”

    장현은 가공한 은을 살폈다.

    외형은 차이가 없지만, 그는 성질이 달라졌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지독하게 차갑군.’

    뼛속으로 파고들 것 같은 시린 기운.

    그것은 단순한 냉기와는 달랐다.

    신성력의 영향이다.

    “좋아.”

    이번 미션에서 상대할 자들은 언데드.

    이 기운은 언데드에게 치명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장현은 이제 무른 금속인 은을 팔랑크스의 창에 바르기 시작했다.

    치지직. 파박.

    구리창의 표면이 새하얗다 못해 파란빛을 띄기 시작했다. 장현은 그 모습에 입맛을 다셨다.

    ‘중급 연성술만 되었어도 진은을 얻을 수 있을 텐데.’

    ‘진은’으로 만들 수 있는 아이템만 있다면 마족을 상대하는 게 훨씬 수월해진다.

    얼핏 떠오르는 것만 해도 구원의 팔찌, 사원의 장갑, 신의 건틀릿등. 하나같이 1회차에서 마족을 상대로 위력을 증명한 ‘진은’ 소재의 아이템들이다.

    현재 초보 연금술사 레벨 3.

    늘었다지만 부지런히 숙련도를 쌓아야 한다.

    ‘일단은 나중으로 돌리자.’

    여기에 친구들의 지식을 훑어보면 더 많을 테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최후의 5인이 쌓은 지식의 양은 막대한 데다, 정확하지 않다는 문제가 있었다.

    ‘우리가 모든 것을 다 알지는 못해.’

    모험가 아르헨조차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수많은 갈림길이 있다. 정보는 완벽하지 못하고, 검증이 필요하다.

    결국, 모든 건 장현이 일일이 맨땅에 헤딩하며 확인해야 한다.

    “일단은 지금 일에만 집중해야지.”

    장현은 팔랑크스의 창에 연성한 은을 덮기 시작했다.

    ‘합금한다면 가장 좋겠지만.’

    시간이 부족하기도 하고, 팔랑크스의 창은 임시 방편용.

    합금보다는 코팅이 간편하다.

    지금은 소재를 보다 아껴야 할 때.

    장현은 기전력 스크롤을 꺼내 펼쳤다.

    치치칙.

    스크롤이 펼쳐지자 대충 덮은 은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번쩍. 번쩍.

    물리적으로 꾹꾹 눌러서 붙인 은의 자잘한 조각들이, 전기적 인력에 끌려 창날에 피막을 형성하며 뒤덮었다.

    “됐군. 이것으로 언데드를 상대하기 훨씬 수월해졌다.”

    장현이 은피막이 번쩍이는 창날을 쓰다듬었다.

    치이익! 치이익! 부글부글.

    기전력은 전기에너지다. 욕조에 담긴 구리와 은은 계속해서 거품을 띄워 올렸다.

    “후우… 크…!”

    전도체인 은과 구리가 먼저 흡수해주긴 했지만, 장현 역시 전기충격을 계속 받아야 했다. 코팅을 끝낼 때 즈음엔 머리카락이 사방으로 쭈뼛쭈뼛 솟아 있었다.

    [우리 KRT 119 열차가 잠시 후 용암지대에 들어섭니다. 모든 승객분은 안전띠를 매어주시고, 창문에 붙지 않도록 주의해주시기 바랍니다.]

    “……아슬아슬했군.”

    팔랑크스의 창을 완전히 코팅 했을 때, 기차가 용암동굴에 진입한다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덜컹. 덜컹.

    끼이익. 덜커덩.

    기차가 몹시 흔들리며 내부의 온도가 급격히 올라갔다. 마치 한증막 사우나실에 들어온 거 같았다.

    “일단 나가야겠어.”

    장현은 세면대에서 땀으로 축축해진 얼굴을 씻고는 화장실에서 나왔다. 나오자마자 본 것은 기차 창가의 폭발이었다.

    화르륵.

    “으허헉!”

    “안돼!”

    아아아악!

    콰콰쾅!

    장현이 뚫어놓은 창문이 터져나갔다.

    기차가 용암동굴을 통과한 영향이다.

    후드득.

    아직 기차 내로 들어오지 못했던 사람들이 용암에 휩쓸려 추락했다.

    동시에 그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폭발에 휩쓸렸다.

    다행히 좀 더 일찍 들어왔던 사람들은 창가에서 떨어져 있어 피해가 적었다.

    “으헉……. 장현아. 너……괜찮은 거냐?”

    끄덕.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김덕배, 이나연, 최형석 세 사람은 모두 무사했다.

    장현을 곧장 따라온 덕분이었다.

    “큰 형님. 역시 형님을 따라가야 살길이 보이는군요. 우리도 늦었다면 저 사람들처럼 죽었겠죠.”

    최형석은 사시미를 목 앞에 대고 긋는 시늉을 하며 아찔하다는 듯 말했다.

    그러고 보네 세 사람은 데니우스에게 산 무기가 각각 달랐으면서도 같았다.

    최형석은 한 손에 사시미를 다른 손엔 팔랑크스의 창을 가지고 있었다.

    이나연은 허리춤에 삼단봉을 차고 손에는 팔랑크스의 창을 쥐고 있었고,

    덕배는 용병의 장검과 팔랑크스의 창을 역시 가지고 있었다.

    “이걸 어떻게 골랐어?”

    “어. 신성력이 있다길래. 아무래도 언데드엔 신성력이잖아?”

    “……”

    장현은 덕배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탄식했다.

    “운이 좋은 건가.”

    가끔 그런 놈이 있다. 분명히 죽는 게 당연한 환경에서, 어떻게든 살아나는 그런 놈이.

    최형석이야 전투력 때문에 그렇다 치고, 이나연이야 실력이 있으니 그렇다 쳐도, 게임 좀 한 전직 프로게이머 지망생이자 현재는 일반 직장인인 덕배가…….

    “잘했다. 여러모로.”

    “어. 그래?”

    “그래.”

    아무래도 이놈이 제 살길을 찾아내는 본능 같은 게 있는 모양이었다. 따지고 보면 샐러맨더 소환 스크롤. 그걸 장현보다 먼저 고른 것 또한 덕배 아니던가.

    “될놈될. 안될안. 능력도 능력이지만 운빨 좋은 놈은 못 따라가지.”

    한때 아르헨이 입에 달고 살았던 말을 장현이 중얼거렸다.

    ***

    “헉……. 헉…….”

    “으아! 죽는 줄 알았어!”

    얼마 후, 다른 사람들이 도착했다. 기차역에 도착한 사람들은 100명이 넘었는데, 이곳에 모인 사람은 불과 20명도 안 되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이나연이 걱정하자 장현은 고개 저었다.

    “나중에 다시 만날 거다.”

    열차는 단 한 차량만 있는 게 아니었다.

    지금은 어디까지나 가혹한 튜토리얼. 너무 많은 사람을 초반에서 탈락시키면 마족들의 흥미 또한 떨어진다.

    “어떻게 알아요?”

    “아니면 말고. 그리고 지금 남을 걱정해 줄 때가 아니다. 우린 아직 안전한 게 아니야.”

    장현이 말을 뱉었을 때 기차의 스피커가 울려 퍼졌다.

    치지직.

    -아아 들리나요? 살아남은 분들께 먼저 축하의 인사를 건네겠습니다. 여러분은 본경기의 첫 번째 미션을 통과하셨습니다.

    “뭐지? 그 데니우스인가…….”

    덕배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스피커에서 나는 소린데.”

    최형석이 지적해줬다.

    사람들은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에 집중했다.

    - 이제 두 번째 미션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지금부터 기차의 뒤 칸부터 10분마다 하나씩 순서대로 추락합니다.

    - 여러분이 생존하기 위해선 제일 앞칸으로 이동해야 합니다. 그냥 이동하면 재미가 없겠죠. 후후.

    - 그래서 동료와의 재회를 준비했습니다. 즐겁게 만남의 시간을 가지길 바라요. 크큭.

    뚜욱.

    방송은 끝났으나 사람들은 얼어붙었다.

    “기차가 추락한다고?”

    끼이익. 쿠르릉.

    누군가 데니우스의 말에 반문하기도 전에 기차가 몹시 흔들렸다.

    화다닥 창밖을 본 남자 하나가 소리쳤다.

    “으아아, 저기 화물칸이 추락했어.”

    “뭣?”

    외침과 동시에 모두의 시선이 창문으로 향했다.

    덜컹덜컹.

    그 말대로, 후미에 있던 화물 열차 하나가 추락했다.

    퍼어엉.

    누런 용암이 덩어리를 사방으로 튕기고, 차량이 직각으로 용암에 꽂히며 반파됐다.

    치이이이.

    잠시 후 잔해가 용암에 녹아 사라지는 것을 본 사람들이 부들부들 떨기만 할 뿐 입을 열지 못했다.

    혹여 도착이 조금만 늦었더라면, 저 안에서 같이 죽었을 터다.

    덜컹. 드르륵.

    장현이 침묵을 깨고 문을 열었다.

    “가지.”

    추락한다는 걸 알고도 가만있다면 바보다. 데니우스는 이미 답을 제시했다.

    제일 앞칸으로 가야 한다고.

    “으아악! 가야 해!”

    “먼저 움직여야 해. 늦으면 죽어.”

    침묵을 깨는 소리에 사람들의 의식이 현실로 돌아왔다.

    후다다닥!

    사람들은 장현을 밀치고 다음 칸으로 빠르게 뛰어갔다.

    “쯧.”

    아직도 저렇게 조심성이 없다니. 장현은 사람들의 뒷모습을 보고 혀를 찼다.

    데니우스는 기차를 떨어뜨리는 것만 언급한 게 아니다. 재회를 준비했다는 말도 했다.

    ‘동료라.’

    먼저 탈락한 사람들이다. 곧 그들을 맞을 준비를 해야 했다. 살벌하게.

    으으아아악!

    과연. 아니나 다를까. 먼저 앞서 나간 사람들에게서 고함이 터져 나왔다.

    “기, 김 씨?”

    크르륵.

    “으으으……. 아……파……아……파.”

    “아, 아니야! 저건 좀비야!”

    비척. 비척.

    살점이 뜯어져 나가고 혈관이 노출된 채 다가오는 사람. 그중 몇은 낯이 익었다. 기차역에 오던 중에 스켈레톤에게 당한 사람들이었다.

    “이. 이게 어떻게 된……?”

    “게임 페널티야. 스켈레톤에게 죽은 자는 좀비가 된다.”

    당황하는 덕배에게 장현이 일러 주었다.

    얼마 전까지 오크를 상대로 같이 싸웠던 동료가, 좀비가 되어 다가오는 모습에 사람들은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아……파……왜……나……만…….”

    “너희들이!!!”

    크어어어!

    죽기 전의 기억이라도 남아 있는 걸까. 십여 마리의 좀비들이 이를 드러내며 흉성을 울렸다.

    “너희만 산거냐! 우린 죽게 놔두고!”

    크아아악!

    “우와앗!”

    생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속도였다. 갑자기 달려든 김 씨. 좀비가 된 남자가 다른 남자를 덮쳐 쓰러뜨렸다.

    크아아. 꽈드득.

    그리고 즉각 목을 물어뜯었다. 또 하나. 그리고 또 하나.

    찌이익. 질겅. 질겅.

    툭. 데구르르.

    좀비가 물어서 잘라버린 남자의 머리가 굴러서 장현 앞까지 굴러왔다. 살아남은 스무 명. 아니 열아홉 명의 얼굴에서 싹! 하고 핏기가 가셨다.

    ‘이대론 안 돼. 다들 겁먹어서 몸이 굳었어.’

    장현은 일행들의 굳은 표정을 보고 고함을 질렀다.

    “계속 얼빠져 있을 거야! 저건 적이다!”

    “읏!”

    차차착!

    장현의 호령에 사람들이 정신을 차렸다. 제일 먼저 반응한 건 이나연이였다.

    “창 들어요! 방어 자세!”

    부우웅!

    날붙이가 아니어서 오히려 부담이 덜했을까. 이나연이 팔랑크스의 창을 거꾸로 쥐고 휘둘렀다.

    빠각!

    “크아아!”

    창대에 맞아 죽은 살이 터져나간다. 흩뿌려지는 피는 검은 색. 그게 사람들에게 현실감을 주었다.

    ‘다행이군. 역시 경찰 출신이라 그런지 빨라.’

    장현은 이나연의 재빠른 대응에 만족했다. 이어 한명 한명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계속되는 전투에서 혼자서만 해결할 수 없다.

    그건 바람직하지도 않고 마왕 공략이라는 목표 달성에 적합하지도 않다.

    “이런!”

    “제기랄! 죽어!”

    푹! 푸슉!

    이나연 덕에 몇 초를 번 사람들이 정신을 차리고 태세를 갖췄다.

    본 경기에 들어선 사람들은, 더이상 순진하던 일반인이 아니었다.

    그들은 잠시 알던 얼굴이 좀비가 되어 나타난 모습에 당황했을 뿐, 전투는 이제 익숙했다.

    “뭉쳐요! 오크 때처럼! 들어 창!”

    푸슉!

    이나연이 팔랑크스의 창으로 좀비를 찌르며 소리 높였다.

    “들어 창!”

    타다닥.

    사람들이 창대를 세웠다. 제일 앞은 수평으로. 그다음 줄은 15도. 30도. 45도로 차츰차츰 각도를 높여간다.

    좌우로 4인 1조. 전후로도 4인 1조. 도합 16명이다. 16개의 창이 고슴도치처럼 빡빡하게 몰리자, 삽시간에 든든한 진형이 이루어졌다.

    그 모습을 본 장현의 눈빛이 빛났다.

    ‘역시 이나연은 교관으로 적임자군. 영지 전에서 교관 겸 경비대장 할 사람은 이나연만 한 자가 없어.’

    장현은 이나연의 행동을 관찰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전투에 참전하지 않고 관찰하는 것은 각각의 능력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1회차와 달리 죽지 않고 살아남은 자들, 그들 중에 쓸만한 자들을 찾아내야 한다.

    ‘많이도 안 바란다. 한두 명만이라도 좋으니 쓸만한 자가 나와야 할 텐데.’

    장현은 눈에 불을 켜고 한명 한명을 자세히 살폈다.

    그중에 자신이 만든 무기를 받을 자가 있길 간절히 바랐다.

    모든 사람을 살려서 데리고 갈 수는 없다.

    본경기가 진행되며 계속 사람들은 죽어갈 것이다. 살아남은 자들로 대업을 이루려면 쓸모 있는 자들을 살려야 했다.

    ‘아직은 내가 나설 때가 아니다.’

    그는 전투의 세세한 부위까지 지켜보며 몰입했다.

    자신도 모르게 새롭게 변한 팔랑크스의 창을 쥔 손에 힘이 꾸욱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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