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튜토리얼 두 번째 퀘스트 (3)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겐 강한 놈들이라고. 너희들이 도망쳐 나온 이상 저놈들은 무리를 지어 일시에 몰아칠 거다.”
“네가 그걸 어, 어떻게….”
크르륵!
크허헝!
최형석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동굴 밖으로 오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으아아아.”
“오, 오크야! 진짜 오크야!”
고릴라 같은 오크를 처음 본 사람들이 혼란에 빠진 사이 장현이 앞서 움직였다.
“인벤토리!”
그는 도끼를 꺼내 정면에서 날아오듯 다가오는 오크의 머리를 후려쳤다.
퍽! 타악!
장현은 좀 전에 그랬듯이 한 손에는 독을 운기 한 채, 다른 한 손에는 도끼를 휘두르며 휘저었다.
쉬익! 퍼억!
“...?”
그의 옆으로 커다란 돌이 날아와 오크의 머리를 찍었다.
돌이 날아온 방향을 보니 뜻밖에도 최형석이 돌을 던진 자세로 씩씩대고 있었다.
“개새끼들, 다 죽여 버린다! 으아아아!”
흡사 광전사라도 된 듯 최형석은 돌에 맞은 오크에게 달려들었다.
퍽!퍽!퍽!
바닥에 떨어진 돌을 쥔 최형석은 순식간에 세 번을 내질러 오크를 죽였다.
그러고도 부족한지 이미 숨이 끊어진 오크를, 계속해서 내려찍었다.
분노가 투지로 변해 있었다.
“...”
크허어어엉!
그런 최형석을 노리고, 다른 오크 하나가 허공에서 공격해 들어왔다.
“헛…!”
쉬이익! 퍽!
막 몸을 피하려던 최형석 앞에, 조금 전 공격해온 오크가 바닥을 뒹굴었다.
장현이 도끼를 던져 공격한 것이다.
“멍청히 있지 말고 빨리 일어나. 오크는 많다. 괜한 에너지 낭비할 시간에 한 마리라도 더 잡아.”
장현은 오크의 머리에 박힌 도끼를 뽑아 들며 한마디를 던졌다.
“흐흐흐, 씨X.”
최형석은 죽은 놈에게서 나온 마나 스톤을 즉각 흡수했다.
그러자 턱까지 닿아있던 숨이 조금 가라앉았다.
힘도 조금 돌아오는 게 느껴졌다.
크허허헝!
“으아아아.”
그 사이에, 곳곳에는 난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오크들과 사람들, 그 사이에서 전투라기보다 일방적인 사냥을 하는 장현.
“허억. 허억….”
질질질!
최형석은 있는 체력을 다 쏟아부어, 남자를 일으켜 어깨에 둘러멨다.
몸도 가누지 못하는 그가, 싸움판에 휘말리면 즉시 죽을 것이기에.
“혀. 형님…. 이러지 마시오.”
“입 닥쳐! 내가 널 죽게 놔둘 것 같냐!”
끄으응! 지이익.
“크허엉!”
그 모습을 난전 중에 빠져나온 오크 몇 마리가 보았다.
“이런 씨…. 크아악!”
퍽! 콰득!
반응이 늦었다. 최형석은 왼쪽 어깨를 물어뜯기고 말았다.
선혈이 펑펑 솟구쳤다. 물론 오크는 면상이 뭉개졌지만 위기였다.
“제, 젠장!”
“형님…. 형님! 나 놔두쇼! 이러다 형님이 죽소!”
“닥치라니까! 새끼야! 내가 죽으면 죽었지! 엉!”
붕! 붕!
어쩔 수 없이 김태석을 땅에 눕히고 최형석은 남은 오른팔로 돌을 휘두르며 상대했다.
“쪽팔리게 사내새끼가! 쫄따구 뒤지는 꼬라지 못 본다! 제기랄! 죽으면 같이 죽는 기야!”
“형님….”
울먹울먹하며 김태석이 최형석을 바라본다.
그렇게 악전고투하는 두 사람을 보는 눈이 있었다.
‘저 녀석?’
퍼억! 퍽!
장현은 오크 사냥을 하면서도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그러다가 위험에 빠진 사람들을 보면 돌을 던져 도와줬다.
그는 인간 중에서 가장 강력한 예비대이자 저격수였다.
“으아악! 꺄아아악!”
“누나! 앞은 제가 막을게요! 뒤에 좀!”
“알았어!”
덕배와 나연이 유기적으로 움직였다.
덕배가 앞을 막고 나연이 뒤를 경계하자, 전세는 조금씩 사람들에게 유리하게 바뀌어 갔다.
콰직! 빠각!
확실히 무기를 든 효과가 큰 것이다.
덕배 쪽은 안전한 듯하자, 장현은 최형석을 유심히 살폈다.
본래 그는 이번을 끝으로 최형석을 제거해 버릴 생각이었다. 계속해서 문제를 일으킬 암 덩어리를 들고 가는 건 위험하니까.
그런데.
질질질. 지익. 질질질. 지익.
뜻밖에 녀석은 부상자를 뒤로 호송하며 보호하고 있었다.
예전 기억 속의 냉혹하고 잔인한 조폭 두목과는 다른 모습이다.
‘저놈이 이런 모습도 있었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지금 최형석은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이다.
그런 와중에도 태석이라는 자를 지키고 있다.
부하든 동생이든, 그 모습은 장현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이게 뭐지? 저놈도 과거 회귀했나? 아니면….’
장현은 의문을 접고, 조금 더 지켜보기로 했다.
콰득!
-크허어어엉!
장현의 도끼가 마지막 남은 놈의 머리통을 쪼갰다. 그것으로 오크와의 전투는 끝났다.
“으아아악!”
“살려줘….”
“흐흑, 엄마…. 엄마!”
곳곳에서 부상자들의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장현은 쓰러진 사람들을 돌아보며 혀를 찼다.
“이래서 내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던 거야.”
“...”
김덕배와 이나연은 말없이 입술만 깨물었다.
하지 않아도 될 전투였고 희생이었다.
전투가 끝나고 장현은 김덕배와 이나연에게 어찌 된 일인지 물었다.
최형석이 선동질을 해서 사람들을 동굴로 이끌었다고 했다.
대략 80여 명, 그중 절반이 죽거나 다쳤다.
최형석이 데리고 간 자들은 여기 모인 사람 중 그나마 싸울 줄 아는 자들이었다.
전투 인력을 반 이상 소모해 버렸으나 이미 벌어진 일이다.
철벅. 철벅.
장현은 피 웅덩이를 걸으며 이 사태의 원흉인 최형석에게 다가갔다.
“크으으으….”
전투의 흥분이 끝난 탓인가, 최형석은 피 웅덩이에 누워 신음만 흘려댔다.
그는 온몸에 성한 데가 없었다.
얼굴, 오른쪽 어깨, 왼쪽 옆구리. 심지어 다리까지,
오크의 손톱자국과 이빨 자국으로 가득했다.
만약 그에게 도끼 같은 무기가 있었더라면 저런 상황까지는 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쯧쯧…. 그래서 무기를 제대로 갖추지 않은 상태에서는 함부로 움직이지 않는 게 최선이라 기다리라고 했거늘.’’
꿀렁. 꿀렁.
특히 심한 곳은 옆구리. 창자가 터졌는지 움켜쥔 손 사이로 계속해서 피가 흘러내리고 있다. 그야말로 걸레짝이었다.
장현을 본 최형석의 눈이 이글거렸다.
“너…. 너….”
쿨럭쿨럭!
“살고 싶나?”
장현의 물음에 격렬한 기침을 토해낸 최형석이 원독 가득한 눈으로 외쳤다.
“너…. 이 새끼야! 너한테 맞아 다친 상처만 아니었어도…!”
쿨럭쿨럭!
다시 말이 끊어졌다.
장현은 그 모습을 보며 냉랭하게 물었다.
“흑전갈 던전에서 너희에게 마나 스톤 빼앗겨서 죽어버린 사람들에게도 그 말을 해보지.”
“.,.!”
최형석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그리고 그가 당혹한 모습에 장현은 냉소했다.
“그래도 양심이 남아 있긴 했던 모양이네. 아직은.”
“...무슨 개소리야.”
“아니. 어쨌든. 보아하니.”
툭툭.
장현은 만신창이가 된 최형석과 옆에서 숨만 겨우겨우 쉬고 있는 남자를 발로 걷어찼다.
움찔! 움찔!
겉보기엔 시체인데, 아직 살아 있는 모양이다. 장현은 그를 뒤집어 얼굴을 확인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김태석이었던가. 최형석의 행동대장.’
지난 삶에서, 대장인 최형석보다 더 악랄하게 사람들을 괴롭히던 놈이었다. 특히나 장현에게.
싸움도 못 하는 놈은 나가 뒈지라고 수시로 발길질하고, 그때마다 이 악물고 매달려야 했던, 지난 삶의 그림자가 스쳐 간다.
“내. 내. 내 동생 살려줘…. 나는 몰라도 내 동생 만은….”
“뭐. 조폭끼리의 의리냐?”
“살려주십시오….”
“...”
최형석이 머리를 조아리며 빌었다.
“살려주십시오. 진짜 죽을 줄은 몰랐습니다. 일단 우리부터 살고 보자고…. 그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
“다 내 잘못입니다. 내가 끌고 나갔고, 그 때문에 너무 많이 죽었습니다. 하지만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다고…. 누가 살려줍니까. 누굴 믿으란 말입니까.”
“...”
“난 아무도 안 믿습니다. 믿으면 배신당하니까. 애초에 믿지 않으면 배신당할 일도 없으니까. 그래서….”
최형석의 목소리는 잦아들었다.
‘최소 서른 개.’
스윽.
최형석과 김태석, 두 놈을 살리는 데 필요한 마나스톤이다.
한 명당 열다섯 개의 마나스톤을 체력에 때려 부으면 일단 빈사 상태는 피할 수 있다.
문제는 그럴 필요가 있느냐이다.
최형석도 그렇지만 특히 김태석 저 녀석은 나중에 언제라도 배신하거나 뒤통수칠 가능성이 있다.
그런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있을까.
잠시간 생각을 하던 장현은 터벅터벅 최형석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결론이 났다.
장현은 그에게 마나 스톤 서른 개를 건넸다.
“가져.”
“어?”
최형석의 눈이 크게 뜨였다.
“마음 변하기 전에 받아서 체력에 다 부어라. 체력 스탯 15가 상승하면, 어지간한 부상은 회복될 거다.”
“...”
최형석은 불신과 의심이 가득한 눈이었다. 하지만 행동은 재빨랐다.
후두둑. 홱!
그는 먼저 장현의 손에서 떨어진 마나스톤을 줍고, 절반은 자신이, 나머지 절반은 김태석의 입에다 억지로 물렸다.
“태석아. 먹어라. 마나스톤이다. 체력, 체력을 올려!”
“끄응!”
다행히 말이 들렸는지 김태석은 마나스톤을 흡수했다.
그리고 얼마 후, 꿀럭 피를 게워내고 몸을 일으켰다.
“혀…. 형님.”
“살았구나.”
최형석이 주르륵.
굵은 눈물을 흘렸다.
그는 장현을 보고 살짝 목례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으득! 이를 갈았다.
“삼식이. 명후. 철민이…. 너희들….”
최형석은 죽은 이들을 하나씩 찾아 부릅뜬 눈을 감기고 그들의 소매에서 단추를 하나씩 떼어냈다.
찌익.
뒤이어 손칼로 왼팔 소매를 찢었다.
그리고 장현이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했다.
지익.
“삼식이.”
지이익.
“명후. 철민아.”
툭. 툭.
자해였다.
칼로 자신의 왼팔을 그으며 죽은 이들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이거였나.’
그 모습을 본 장현은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이전 생에서 최형석, 이 악랄했던 놈의 양팔은.
‘흉터로 가득했었지.’
멀쩡한 부분을 볼 수도 없이, 거미줄 같은 흉터로 가득했었다.
어쩌면. 정말로 어쩌면.
이 인간말종 같은 놈도, 나름 뭔가 사연이 있었던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뭐 다른 것도 조금은 마음에 들었지만.’
장현의 마음에 든 것은 그의 말 중에 지나간 한 문구였다. ‘하지만 가만히 기다리고 있었다고…. 누가 살려줍니까.’ 최소한 그는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남으려 했다.
물론 남의 마나스톤을 강탈하려 한 죄, 장현을 무시하고 오크에게 쳐들어간 죄는 크지만.
적어도 그는 스스로를 구하려 하는 자였다.
그것이 조금. 장현의 마음을 움직였다.
물론 장현은 자원봉사자는 아니었다.
‘지금 진 빚은 톡톡히 갚게 해주지!’
그런 생각을 하며 그는 비릿하게 웃었다.
사태가 정리되자, 장현은 구해온 재료들을 손질하기 시작했다.
짜르륵. 찌익.
먼저 힘줄을 찢어 가르고, 여러 가닥을 하나로 꼰다. 다음으로 얼기설기 엮인 심줄을 잡아당긴다.
쭈우욱!
긴 뼈를 잡고, 비슷비슷한 것들 사이로 얽는다.
스륵. 스륵.
장현은 손수 창을 만드는 시범을 보이고 있었다.
주위에 몰려든 사람들은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봤다.
자신의 목숨을 지켜줄 것이기에 한 가지라도 더 배우기 위해서다.
장현은 오크뼈 중 갈비뼈 하나와 다리뼈를 하나씩 집어 힘줄로 꽉 동여맸다.
창날을 대체해야 했기에 일일이 뼈를 갈아대느라 지쳤지만 어쩔 수 없었다.
스킬을 쓴다면 좀 더 수월하고 효과적이겠지만, 마나가 필요하다.
본인의 스탯에 쓰기에도 마나가 부족한 사람들이다.
여분의 마나포인트가 있지도 않을 것이고, 장현이 마나를 외상으로 지급해 줄 수도 없다.
사실 장현이 도와준다고 해서 이들이 어디까지 살 수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대부분 죽을 것을 알기에도 이러는 건 예전의 기억 때문이다.
무기 하나만이라도 간절했던 시절의 기억.
나중의 영지 전을 위해서는 하나라도 더 살아야 강해지는 것이 이롭겠지만 맹목적으로 보호해줬다가는 자체적으로 마나를 얻지 못해 더 약해질 뿐이다.
그러므로 가장 효율적으로 돕는 것은 기본적인 무기를 주는 것뿐이다.
장현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내가 이들에게 베풀 수 있는 배려는 여기까지다.’
장현은 어디까지나 앞서나가는 자다.
다른 이의 길을 터주는 것은 할 수 있지만, 개개인의 목숨까지 다 지켜줄 수는 없었다.
장현은 인류멸망이라는 큰 흐름을 바꾸러 온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