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튜토리얼 첫 번째 퀘스트 (5)
스킬 한방의 힘이 깃든 장현의 주먹이 최형석의 배에 가볍게 닿았다.
“끄아아아악….”
최형석은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리며 원망의 눈초리를 장현에게 보냈다.
장현은 나직한 목소리로 다시 말했다.
“힘 조절하기도 쉽지 않네. 한 번 더.”
퍼어억!
“억!”
한 번으로 끝날 거로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최형석은 또 한 번 지독한 격통 속에서 파들파들 떨었다.
고통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으아악! 끄아악! 어억! 차…차라리 죽여!”
내장이 터진다면 이런 고통일까.
“개자식…. 죽여버리겠어…. 반드시! 크윽!”
최형석이 그렇게 원한을 품자.
장현은 혀를 차며 고개를 내저었다.
“쯧쯧, 아직 정신을 못 차렸어. 끝까지 가보자는 거지.”
퍼억!
“끄억!”
장현의 주먹이 날아들었다.
가뜩이나 엉망이 된 그는 거의 기절 직전까지 두들겨 맞았다.
그렇게 결국 기절했다.
이 정도면 옛 원한은 풀었다고 할 수 있다.
당사자는 억울하겠지만, 한 짓이 있으니 전혀 미안하지 않았다.
자신은 최형석을 죽일지 말지 진지하게 고민했다.
‘암세포 같은 존재다. 그냥 정리할까?’
일순 냉혹한 한기가 그의 눈을 스쳐 갔다.
굳이 이런 자를 살려둘 필요가 있을까 싶다.
‘아니. 더러운 칼은 더러운 나름대로 용도가 있을지도.’
예전에 최형석은 징글징글하게 오래 살아남았다.
놈은 분명히 독이고, 암세포 같은 놈이다.
하지만 독은 독대로 쓰임새가 있지 않은가.
고민이 이어지는 사이,
“저. 저기?”
“음.”
옆에서 그를 부르는 소리가 있었다.
돌아보니 경찰 이나연이다.
“고마워. 도와줘서….”
“착각하지 마라.”
꾸벅 숙이려던 고개가 멈칫한다.
“뭐?”
이나연이 숙이려던 고개를 들고 돌아보자 장현은 절래. 한번 고개를 내저었다.
그 태도에 이나연의 눈이 날카로워지고 목소리에는 경계심이 묻어있다.
“알아둬야 할 게 하나 있다.”
“...”
경계. 그리고 의심.
그런 기색이 빠르게 이나연의 얼굴을 스쳐 간다.
장현은 툭툭. 기절한 최형석의 몸을 발로 차며 말했다….
“이 조폭 놈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야. 여기는 경찰이 없어. 군인도 없고. 대한민국의 치안시스템은 더는 존재하지 않아.’”
“...”
“본인이 경찰이라 딴에는 사람들을 보호하고 싶겠지만…. 뭐 그건 좋아. 그런데 스스로 살 수 있게는 해 줬나?”
“뭐라는 거야? 그리고 너 왜 계속. 말투가 그따위야?”
울컥한 이나연의 말투가 거칠어졌다.
순간 장현의 눈에 깊은 슬픔이 서렸다.
말로 설명할 수 있는 세계가 아니다.
그의 표정에서 무언가 느꼈음인지 기세 좋게 쏘아붙일 것 같던 이나연이 움찔했다.
장현은 그런 그녀를 보며 말을 삼켰다.
‘겪지 않으면 모른다, 이 상식을 벗어난 세계를….’
이곳의 모든 사람은, 잔혹극의 광대에 불과하다는 것을. 모두를 지키기엔, 아직은 자신이 너무 약했다.
그뿐이었다.
누구도 이들의 구원자가 되어줄 수는 없다.
장현은 타이머를 슬며시 보고 작게 한숨을 쉬었다.
“늦었군. 싸우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되는지 곧 보게 될 거야.”
스스슥-
여기저기 퍼져있던 독전갈이 흩어지며 도망쳤다.
마치 무서운 것이 올 거라는 듯.
때마침 모두에게 알림이 울렸다.
어느새 10시간이 지난 것이다.
[1단계 메인 퀘스트가 종료되었습니다.]
***
우우우웅!
허공에서 진동음이 요란하게 울리더니 빛이 퍼져 나왔다.
빛 속에서 데니우스가 걸어 나왔다.
“호? 이거 의외의 상황이군요.”
그의 얼굴에는 놀라운 기색이 서려 있었다.
“...”
그 눈은 자신을 향해 있었다.
장현은 이를 악물고 자신을 눌렀다.
‘참자.’
초보자 주제에 스탯 100을 찍었다.
시선을 끌게 된 건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었다.
“근력 100…. 거기에 히든스킬이라…. 오호. 히든 퀘스트까지 클리어하셨군요.”
“운이 좋아서.”
장현은 냉담하게 대답했다.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두 명이 주고받는 대화에 눈이 커졌다.
“문제 될 것 있나?”
“없지요. 후후. 이거 이거.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되는 신인이군요. 그저 기쁠 뿐입니다.”
‘그렇겠지. 지금 내 성장세는 보통이 아니긴 하나, 특이할 것도 없으니.’
마법세계나 무협세계등, 기본적으로 장현이 살던 세계보다 강한 자들도 많았다.
무엇보다 후에 닥칠 영지전.
영지전에서 쓸 만한 하인을 구하는 것 또한 그들의 목표이기에, 성장세가 가파르다 한들 날 죽일 생각은 없을 것이다.
실제로 데니우스는 장현에 관심을 보였으나, 그 관심은 경계와는 결이 달랐다.
오히려 재미있는 장난감이라도 찾은 듯한 흥미였다.
장난감. 데니우스에게 장현은 아직 그 수준밖에 안 되는 것이다.
'그래 웃어둬라. 마족! 그 웃음이 영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짝짝.
데니우스의 눈이 가늘어지더니 손뼉을 쳤다.
“대체 원하는 게 뭐냐. 우린 언제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거냐?”
그리고 이 질문은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묻고 싶은 것이기도 했다.
장현은 그 질문을 데니우스에게 해서, 모두를 한 번에 납득시킬 생각이었다.
“저런. 안됐지만 여러분의 집은 앞으로 여기입니다.”
“...”
“허억!”
“무슨 소리야!”
“우릴 풀어줘! 집에 가게 해줘!”
와악하고 뒤에서 비명이 울린다.
이미 대답을 알고 있었던 장현은 담담했다.
데니우스는 그런 장현을 이채 어린 눈빛으로 바라본 후 고개를 돌려 모두에게 말했다.
“의미 없는 일입니다. 지금 막 1단계 퀘스트가 끝났습니다. 여러분 중 많은 사람은 여기서 탈락하게 되었습니다. 그분들에게는 이런 얘기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탈락이라니?”
“의미가 없다니. 그 무슨?”
두려움이 섞인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데니우스의 말이 심상치 않게 들린 것이다.
씨익!
데니우스가 그런 사람들의 반응을 보며 웃었다.
하얗게 빛나는 날카로운 이빨. 그 끝에 흉측한 붉은 혀가 걸린다.
“성실히 수행한 분들에게는 보상이, 그렇지 못한 사람은 벌칙을 받아야 하지 않을까요.”
“벌칙?”
“그게 무슨 소리야! 지금…”
우우우.
불안을 느낀 사람들의 비명과 원성이 쏟아진다.
그 가운데서 데니우스는 기묘하게 울림이 있는 소리로 말했다.
[퀘스트에 실패한 사람들은 저와 함께 다음 단계로 갈 수 없습니다.]
딱!
데니우스가 손가락을 튕겼다.
펑! 퍼펑!
그 순간 여기저기에서 사람들이 터져나가기 시작했다.
풍선처럼 부푼 사람들이 수백 편의 조각이 되어 사방으로 흩어졌다.
퍽! 퍼퍽!
진득한 피에 젖은 육편이 살아남은 사람들에게로 날아왔다.
“으악!!”
“아아아악!”
주위는 한순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하고 말았다.
살아남은 자들도 끔찍한 광경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토하거나 일부는 기절했다.
“크.”
장현은 그 모습들을 다 눈에 담고 있었다.
처음에 죽은 국회의원 아들을 포함해, 총 49명의 사람이 몸이 터져 죽었다.
사람들의 죽음을 지켜본 그는 이를 악물고 데니우스를 노려본다.
데니우스는 즐겁다는 듯 장현을 마주 본다.
“총 300명 중 49명이 탈락자로 결정되었습니다. 통과한 분들은 축하합니다. 저와 함께 2단계 던전으로 이동하겠습니다.”
[총원 300명 중 251명이 2단계로 이동합니다.]
[정산을 시작하겠습니다.]
[플레이어 장현 총 400포인트를 획득하였습니다.]
[숨겨진 조각을 획득하였습니다.]
[특수-연금술사 조각을 획득하였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연금술사 조각이라고?’
장현은 조금 전 뜬 알림창을 터치했다.
그러자 상세설명이 떠올랐다.
[특수 - 연금술사 조각]
[물질과 물질의 반응을 통해 새로운 물질을 발견, 창조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반복 작업을 통해 숙련도를 올릴 수 있으며, 숙련도의 상승에 따라 보다 상위의 스킬을 얻을 수 있습니다.]
[특수한 조건을 달성하여, ‘파라셀수스’의 조각으로 진화시킬 수 있습니다.]
[연금술사의 조각 - 특수 직업군에 대한 가능성]
[관련 스킬 - 기초연성술 Lv.1]
[-??? Lv. 0]
[-??? Lv. 0]
[-??? Lv. 0]
“이게 무슨.”
장현은 설명을 읽어보고 한숨을 쉬었다.
대장장이를 목표로 하고 있는데, 엉뚱하게 연금술사가 나와 버렸다.
보아하니 이건 베누스. ‘마지막 요새’에서 만났던 그 노인이 얻었던 숨겨진 조각인 듯했다.
그런데 갑자기 왜 이런 게 나온 거지.
‘플레이어 랭킹 1위 그에 따른 보상인가. 계기는 무리늄이겠군.’
잠시 생각해보니 짚이는 것이 있었다.
흑전갈의 독침을 마계수 잎에 감싸 숙성시킨 것.
딴에는 대장장이 일이라 여겼는데, 따져보면 가공을 하기 전 무리늄을 ‘연금’한 것이 먼저였다.
‘행동의 결과. 그렇군.’
대장장이 직업이라는 칭호도 그랬다.
수없이 내려찍고 두들긴 끝에 무기를 만들자 기다렸다는 듯이 직업이 생성되었으니까.
‘그런데 왜 대장장이 조각은 생기지 않았지?’
장현은 자연스레 대장장이 조각으로 의문이 이어졌다.
도끼를 처음 만든 건 대장장이 조각을 얻는 조건은 아닌 듯했다.
‘할 수 없구나. 예전처럼 마스터레벨에 도달하는 수밖에.’
장현은 대장장이 조각에 관한 생각을 털어내고 시스템 메시지로 눈을 돌렸다.
[특수한 조건을 달성하여, ‘파라셀수스’의 조각으로 진화시킬 수 있습니다.]
파라셀수스. 전설로 회자하는 연금술사다.
지금 당장은 연금술사의 조각이지만, 이후에 진화시킬 수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 특수한 조건을 달성하면, 대장장이의 조각을 헤파이투스의 조각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실마리를 얻었다.
보상으로 얻은 것이 대장장이 조각이 아닌 연금술사 조각이란 것이 아쉽지만, 나쁘진 않다.
대장장이 조각이 있다면 최고단계인 마스터 레벨까지 빠른 시간에 도달할 수 있다.
숙련도의 문제일 뿐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반면 대장장이 직업은 초보에서부터 각종 직업 퀘스트를 수행해야 상위 레벨로 올라갈 수 있다.
꽤 까다롭긴 하지만 1회차에서 마스터레벨에 올랐던 장현에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무엇보다 기대조차 않았던 보상이다.
더구나 직업군에서 연금술사는 대장장이보다 더 희귀한 직종이다.
오히려 좋다고 할 수 있었다.
대장장이 일을 하다 보면 재료 수급에 골치를 앓는 경우가 많다.
그런 때, 연금술 능력은 큰 도움이 되리라.
‘이번엔 시작부터 예전과 다른 길로 가는구나.’
예전과 같은 길을 가서는 마왕을 쓰러트릴 수 없다.
새로운 가능성과 기회를 가능한 한 많이 가져야 한다.
짧은 상념을 정리하고 장현은 다시금 시스템 메시지를 살폈다.
“흠.”
기초연성술은 아마도 연금술 조각에 포함된 기본 스킬인 모양이다.
그 외에도 비활성화된 문자가 몇 개 있었다.
특정한 조건을 만족시키면 활성화되는 스킬이 더 있는 모양이다.
과연 숨겨진 조각답게 스킬도 빵빵하다.
‘제작 노가다 좀 뛰어야겠군. 인벤토리.’
장현은 인벤토리를 열어 내용물을 확인했다.
히든 퀘스트에서 잡은, 거대 흑전갈의 사체가 인벤토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이로써 회귀 후 첫 튜토리얼 던전의 퀘스트를 마쳤다.
브즈즈즈. 브즈즈즈.
우우웅!
벌레 날갯짓 소리가 울리고, 풍경이 바뀌었다.
슈우우욱.
연하늘색 귀화(鬼火).
오크 불이라 부르는 푸른빛 불꽃이 곳곳에서 후륵후륵 타들어 가고 있었다.
[총원 300명 중 251명의 지구인이 2단계 튜토리얼 던전에 진입했습니다.]
[2단계 퀘스트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번 2단계 튜토리얼은 오크 던전입니다. 유효시간은 삼일입니다.
데니우스는 펄럭. 박쥐 같은 거대한 날개를 펼쳤다. 사람들이 히익! 비명을 지르는 가운데, 그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1단계를 성실히 수행하신 분들에게, 이 던전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겁니다. 그렇다고 너무 여유 부리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시간이 길어졌다는 것은 그만큼 쉽지 않다는 의미가 되겠지요?
씨익.
붉은 입술 아래로 하얀 송곳니가 드러난다.
-이번에는 얼마나 살아남을지 궁금하군요. 그럼 여러분들. 끝까지 분투하시길. 그래서 우리를 즐겁게 해주시길 바랍니다.
후욱!
끝까지 조롱하는 웃음을 남기고, 데니우스는 사라졌다. 적막 같은 시간이 잠시 흐르고,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오. 오크?”
“이번엔 오크라고?”
“이게 뭐야. 대체.”
사람들의 분위기가 침중해졌다.
난데없이 마계라는 곳에 끌려 와서, 처음 보는 괴물을 죽이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나마 현실 인식이 빠른 사람이 많았지만, 늦은 사람 또한 많았다.
흑전갈 다섯을 잡지 못한 49명.
그들은 산산조각으로 터져 목숨을 잃었다.
죽지 않은 건 다행이지만, 남은 사람들도 사람이 터져 죽는 모습에 큰 충격을 받았다.
‘이번에는 내가.’
‘자칫하면 내가.’
다음에는 자신이 죽을 수 있다.
죽음의 공포가, 악취처럼 피어올라 모두에게 번져 갔다.
털썩.
“이제 다 싫어. 으흑.”
“죽기 싫어.”
“집에 갈래. 으어엉. 엄마아-”
털썩. 털썩.
하나하나 사람들이 무너져 갔다.
지나친 긴장과 충격으로 패닉에 빠진 것이다.
그러나 장현은 그런 감상 따위 할 시간도 없었다.
대신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준비물은 갖춰졌다.'
이 짧은 순간, 장현은 한 단계 더 성장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