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튜토리얼 첫 번째 퀘스트 (2)
아무리 튜토리얼이라 해도, 방심하면 죽는다.
이곳은 마계.
현대인의 삶의 상식은 모두 버려야 살아남을 수 있다.
콰즉! 와지직!
퍽! 퍽!
장현은 계속해서 흑전갈을 사냥해 나갔다.
정신없이 박살 내는 그 모습에, 주변의 사람들도 반응했다.
“어. 저거. 저 사람?”
“굉장히 쉽게 잡는데…. 이거 약한 거 아냐?”
“우리도 하자! 일단 계속 이렇게 있어서는 안 될 것 같아!”
허둥지둥.
사람들은 급하게 조를 이뤄 장현의 사냥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데니우스의 말대로, 살아남으려고 발버둥 치지 않으면 죽는다.
물론 사람들은 그저 머리로만 알 뿐, 아직 확신은 없었다.
“돌을…. 이렇게 들고. 끄응!”
“야. 야. 앞에 있다. 조심해!”
자각자각. 바삭바삭.
다들 돌 따위를 들고 장현을 따라 했다.
느리고 작은 흑전갈.
지구의 전갈과는 비교도 안 되게 큰 놈이지만, 일단 무거운 돌로 찍으면 박살 나는 건 똑같았다.
하지만 따라 한다고 누구나 같은 결과를 얻는 것은 아니다.
“끄응차!”
“어억!”
쿠웅! 바지직!
욕심이 과했다.
남자들은 장현이 든 바위보다 더 큰 걸 들었고, 정확히 찍어 맞추지 못한 바위는, 전갈의 곁다리만 으스러뜨리며 굴렀다.
샤아아아!
어설프게 상처 입은 전갈이 날뛰었다.
녀석은 고주파 같은 기괴한 소음을 냈다.
그게 신호였던 걸까.
주변에 있던 다른 흑전갈들이 남자들에게 몰려들기 시작했다.
“어어? 어? 어!”
“피. 피해! 제기랄 이것들이….”
꽈악! 푸욱!
젊은 장정 세 명이 차례차례 흑전갈의 독침에 맞았다.
새파랗게 질려있던 그들은 곧.
“우윽. 어어억!”
“아아아아악-!”
눈물 콧물 쥐어짜 내고, 바닥에 쓰러져 온몸을 긁어댔다.
“으아아악! 아아아악!”
“커어어어….”
장현이 흑전갈 사냥을 이어가는 동안, 뒤에서 울리던 끔찍한 비명이 그쳤다.
고통으로 실신한 것이다.
힐끗 돌아본 장현은 그들의 모습에 미간을 찌푸렸다.
“꺄아악! 으아악! 이게 뭐야!”
“다, 다리가 녹았어!”
독침에 맞은 자들의 다리에는, 녹아내린 살점과 하얀 뼈가 보이고 있었다.
장현은 그들의 모습을 보고 우득 이를 갈았다.
‘언제든, 저렇게 될 수 있다.’
잊었던 위기감이 다시 치솟아 올랐다.
그는 한번 고개를 떨쳐 그 잔상을 털어내고, 다시 바위를 손으로 들어 올렸다.
“후읍!”
15년의 전투는 장현에게 힘보다, 기술보다, 더 중요한 것을 남겨두었다.
그건 육신에 새겨지는 힘이 아니라.
“으아아아!”
콰직!
강하고 부러지지 않는 정신 그 자체였다.
콱! 콰지직!
20마리째의 흑전갈을 사냥한 순간 스탯이 생성되었다.
이제부터 마나를 스탯 포인트에 분배할 수 있다.
스탯은 체력, 근력, 민첩, 지혜 4가지였다.
“떴다.”
이제부터 마나를 저 4개의 스탯에 분배할 수 있다.
앞으로 어느 스탯을 키우느냐에 따라 성장의 방향이 달라진다. 지난 생의 경우에는.
‘체력과 근력에 올인 했었지.’
무거운 망치를 휘두르고, 무거운 갑옷을 입고 움직였다. 느려지지 않으려면 힘이 필수였다.
그리고 그 때문에 한동안 최전선에서 적을 막는, 탱커역할을 주로 맡았다.
그런 장현이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마현에게 배운 무공 덕이었다.
대장장이로서 뛰어난 아이템을 얻기 수월했던 그에게, 무공은 호랑이에게 날개를 단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는 최후의 5인이 될 수 있었지만, 이번엔 그 정도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
마왕을 쓰러트리지 못한다면 아무리 강해진다 한들 의미 없다.
테세리움 무기를 제작하는데 필요한 모든 능력을 최대한 키워야 한다.
‘일단은 스탯을 키워야겠지.’
튜토리얼에서 키운 스탯을 바탕으로 본 경기에서 신체 능력이 정해진다.
한 번에 폭발적인 힘을 뿜어낼 수 있는 능력은 민첩이 베이스다.
궁수나 원거리 계열 능력을 갖춘 자들이 괜히 민첩에 올인 하는 게 아니다.
지혜 스탯 또한 무시 못 한다.
후반에 가면 제작공정이 복잡한 무구를 만들기 위해서는 지혜 스탯이 필수다.
“그래도 역시 여기서 ‘그것’을 얻기 위해서는 일단은 근력부터 키워야겠지.”
잠시 고민하던 장현은 어렵사리 결단을 내렸다.
튜토리얼 시기에는, 근력을 기반으로 한 사냥이 효율이 크다.
무엇보다 장현의 제작 기술은, 기본적으로 육체 능력에 좌우되기에 근력이 제일 중요하다.
장현은 모은 마나를 전부 근력 스탯으로 전환했다.
[근력 스탯이 20 증가했습니다.]
“후…”
불끈! 불끈!
온몸에 근육통이 일더니, 단단한 근육이 몸 곳곳에 새겨졌다.
근력이 겨우 20 증가한 것으로 얼마나 달라지겠나 싶지만, 지금의 육체가 워낙 바닥이었기에 도리어 더욱 실감했다.
스탯이 생성되자 움직임이 달라졌다.
전신에서 근육이 커지고 힘이 넘쳐났다.
이전의 육체가 술 담배에 찌든 몸이었다면, 지금은 올림픽을 준비하는 운동선수 같다고 할까.
“엇차.”
펄쩍.
강화된 근력은 점프력에도 영향을 주었다.
가볍게 제자리에서 뛴 것만으로도 중력이 약해진 것처럼 높이 솟았다.
늘어난 육체 스펙을 확인한 장현은 달리기 시작했다.
쉬쉭! 팍팍!
동시에 쉴 새 없이 팔을 뻗어 돌을 던졌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퍼억! 와지직!
한 번에 흑전갈이 으스러졌고, 두 번에 마나스톤을 흡수했다.
흡수한 마나스톤은 전부 근력 포인트로 바꾸었다.
휘익! 퍽!
콰직! 와드득!
장현은 사냥에 몰입하며 모든 것을 잊었다.
마왕도 잊고 친구도 잊고 마나를 쌓아야 한다는 사실조차 잊었다.
그러나 체력은 곧 바닥나고 연속된 사냥에 장현은 조금씩 지쳐갔다.
이제 정신력의 영역이다. 그는 이를 악물고 버티며 사냥을 이어갔다.
‘이제 조금만 더 하면 그것이 열린다.’
94마리, 95마리…. 96마리…….
조금만 더!
99.
콰직!
마침내 100마리째 흑전갈을 사냥했을 때, 장현에게 히든 퀘스트가 떴다.
[튜토리얼 던전의 히든 퀘스트가 개방됩니다.]
[히든 퀘스트의 문이 열립니다.]
히든 퀘스트가 개방되었다는 알림에 그는 뻐근해진 어깨를 풀며 가볍게 웃었다.
히든 퀘스트는 최초로 흑전갈 100마리 사냥을 달성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보상이다.
다만 선택하지 않을 수도 있다.
어떤 놈이 튀어나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보상인데 위험을 무릅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때 익숙한 음성이 들려왔다.
치지직!
<“장현, 테오다. 이 목소리가 들린다면 아마 마나 포인트가 100 정도 되었을 것이다.>
"테오님…?"
장현이 흠칫했다.
-그대를 설득하지 않고 멋대로 보낸 것에 다시 한번 사과한다. 알다시피 우리에겐 시간이 없었으니까….
장현은 씁쓸하게 웃었다.
고작 얼마 전까지 생사를 넘나들며 전투를 치른 동료의 목소리다.
그리움과 안타까움. 원망과 이해가 동시에 같이 피어올랐다.
-<치직! 시간이 없네. 모험가 아르헨의 지식과 정보를 전한다. 솔직히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치직! 아르헨이야. 어- 장현? 초반 튜토리얼에서 얻을 수 있는 히든 퀘스트가 있어. 이거 어디까지나 혹시나 인데. 네가 이걸 들을 때, 시간이 많이 지나지 않았으면 좋겠군….”>
“...!”
홱!
“후우…”
타이머의 남은 시간이 10분에서 멈춰있었다.
아마도 히든 퀘스트를 부여받은 바람에 남은 시간의 영향을 받지 않는 모양이다.
장현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총 스탯 100을 넘기면 발생하는 히든 퀘스트인데, 내가 듣기로는 거대 흑전갈이라는 놈이 나온대. 혹 마주치게 된다면 조심하도록.>
-<일반 흑전갈의 크기가 사람 팔뚝만 하지만, 거대 흑전갈은 크기가 작은 집채만 해. 내가 직접 본건 아니라서 추정이긴 하다. 그래도….>
-<이놈을 잡으려면 아주 강한 한 방이 필요해. 혹시 예전처럼 근력에 올 스탯을 주었다면, 노려 볼 만하다.>
“훗…. 괜한 걱정은.”
흑전갈의 히든 퀘스트는 장현도 알고 있었던 부분이다.
혹시나 놓칠까 싶어 전해준 아르헨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앞으로도 이런 정보 부탁해 친구.”
미래를 아는 자신이라도 깜빡 놓칠 수 있다.
한 가지에 몰입하면 다른 건 잊어버리는 장인들의 성격이 역시 그에게도 있는 것이다.
스릉-
뒤이어 하얗게 빛나는 문이 나타났다. 여기로 들어가는 즉시 히든 퀘스트가 시작된다.
튜토리얼에서만 얻을 수 있는, 스탯이 딱 100을 찍었을 때 나타나는 히든 퀘스트라니.
“하마터면…. 놓칠 뻔했어.”
우두둑. 까닥까닥.
장현은 목과 손목을 뒤틀며 관절을 풀었다.
장현은 100번째 사냥에서 얻은 마나마저 근력으로 보냈다.
“일단 아르헨 말 대로 히든 스킬부터.”
[최초로 근력 스탯의 한계를 돌파하였습니다.]
[신체가 근력에 최적화됩니다.]
[종합 스탯 최초 100 달성 보상으로 스킬 ‘한 방’을 얻었습니다.]
[한방 LV. 1]
- 최초로 근력 스탯의 한계를 돌파한 자에게 주어지는 보상스킬이다.
- 평소의 힘 3배를 낼 수 있다.
- 소요마나 : 20, 1일 2회 사용 가능.
“좋다.”
장현은 끄덕였다.
근력스탯의 히든 스킬 ‘한 방’.
장현의 기억대로라면 이것은 이후 거력신으로 불리게 될 이현준의 전매특허 스킬이다.
“이현준에게는 조금 미안한 일이 되겠지만….”
포기할 수는 없다.
스킬 ‘한 방’은 전투는 물론이고 대장장이 능력에도 큰 도움이 되니까.
여차하면 나중에 그에게 좋은 무기 하나 만들어주면 될 일이다.
‘자아 그럼.’
히든 스킬은 취했으니 다음으로는 퀘스트를 공략하기 위한 무기를 얻을 차례다.
“남자는 역시 한방이지.”
민첩이나 체력 없이, 순수하게 근력만으로 위력을 발휘하는 병기.
바로 망치다.
장현의 지난 생에서도, 무구를 만들 때 쓰던 망치가 전투에서 제법 유용하게 쓰였다.
특히 이번 히든 퀘스트처럼, 강하고 두꺼운 껍질을 가진 몬스터에게는 직방이다.
체중이 실린 망치의 한 방은, 조금 빗나가더라도 상대의 사지 하나를 부러뜨린다. 정통으로 맞으면 내부를 곤죽으로 만든다.
“인벤토리.”
장현은 인벤토리에서 마계 수의 앞을 꺼냈다.
철벅. 지이익.
감싸둔 잎을 벗겨내자, 금속성의 빛을 내는 단단한 독침이 있었다.
“좋아, 충분히 숙성되었군.”
툭툭!
손가락으로 독침 덩어리를 찌르자 딱딱한 감촉이 느껴졌다.
[흑전갈의 독침을 중화시켜 ‘무리늄’ 금속을 만들었습니다.]
[보상으로 독에 대한 저항력이 상승합니다.]
‘독 저항력이라…. 잠깐? 이거 잘하면?’
장현의 머릿속에 빠르게 강해질 방법이 한 가지 떠올랐다.
자신은 사부 마현으로부터 여러 무공을 배운 적이 있다.
그중에서도 강한 무공들은 단순히 지식과 경험뿐 아니라 육체의 자질까지 갖춰야 사용할 수 있다.
‘이 나이까지 무술은커녕 단순한 운동도 별로 안 했으니….’
그 점이 장현은 조금 아쉬웠다.
조금만 몸이 완성된 상태였으면, 지금부터 시도해 볼 수 있는 무공이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독 저항력을 얻은 것으로 한가지 길이 열린 것이다.
그리고 무리늄.
마계의 흑전갈 꼬리를 마계수 잎에 감싸두면 생기는 금속이다.
이건 원래 지난 생에서 마지막 연금술사였던 베누스에게 배운 바다.
그는 술만 마셨다 하면, 본인이 시도해보지 못한 조합법을 떠들곤 했다.
기억만 하고 있었던 것인데 정말 쓰는 날이 올 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