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튜토리얼 첫 번째 퀘스트 (1)
“어어…?”
툭!
투둑투둑!
남자의 얼굴에 실핏줄이 돋아나며 얼굴과 전신에서 혈관들이 팽창되더니.
퍼엉! 후두둑!
풍선처럼 부푼 몸이 폭발해버렸다.
사방으로 튀는 피와 살점.
찢겨나간 내장 조각들이 바닥에 널브러졌다.
“으아악!!”
“아아아악!”
사람들이 보인 행동은 두 가지.
경악하며 물러서거나, 정신을 잃고 자리에 쓰러지거나.
후욱.
“좋은 냄새로군.”
그렇게 공포가 악취처럼 번져 가는 가운데 데니우스는 숨을 들이마셨다.
절망과 공포에서 생성되는 음차원의 마나는 마족들에게 최고의 만찬이다.
“내 소개부터 하지요. 내 이름은 데니우스. 여기는 마계 튜토리얼 던전입니다. 여러분은 플레이어 신분으로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마계. 튜토리얼 던전. 플레이어.
뜬금없는 단어에 사람들은 혼란을 일으켰다.
“마왕님께 영광을. 이곳이 앞으로 여러분의 집이 될지 무덤이 될지는 지금부터 시작될 선별작업에서의 활약에 달려 있습니다.”
“...”
선별작업이라니.
사람들은 동공 지진을 일으키며 공포에 떨었다.
“그럼 지금부터 선별작업을 시작하겠습니다. 여러분은 1시간 동안 5마리 이상의 흑전갈을 사냥해야 합니다. 능력이 된다면 그 이상 많이 잡을수록 여러분에게 유리해질 것입니다. 모쪼록 최선을 다하시기를 바랍니다. 5마리도 잡지 못한 자에게 닥칠 불행이 자기 일이 되지 않으려면 말이지요.”
데니우스는 말과 함께 미소를 씨익하고 지으며 웃었다.
그 말에 사람들은 영문을 몰라 서로를 돌아보았다.
“뭐? 저게 무슨 소리야.”
“그, 글쎄.”
누군가 의문을 제기했지만 묻히고 말았다.
짝! 짝!
데니우스가 말과 함께 손뼉을 가볍게 두 번 쳤다.
후두둑.
그러자 땅을 뚫고 작고 빠른 물체가 기어 올라오기 시작했다.
꿈틀꿈틀.
가재의 집게 손에 꼬리를 머리 위로 세우고 있는 절지동물.
팔뚝만 한 크기의 새까만 전갈이었다.
스스슥. 스슥.
처음에는 한, 두 마리가 올라오더니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족히 수백 마리는 되어 보이는 전갈들이 끊임없이 올라왔다.
스슥. 스슥. 스슥. 스슥. 스슥. 스슥. 스슥. 스슥. 스슥.
“흐아아악!”
“아아아악!”
새까맣게 몰려드는 갑각류의 물결.
비명 지르는 사람들의 눈앞에 알림 메시지가 떠올랐다.
[퀘스트가 시작되었습니다.]
[10시간 동안 5마리의 흑전갈을 사냥해야 합니다.]
[9:59:59]
[퀘스트 보상 - 마나스톤]
“와아악!”
“살려줘!”
사람들에게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문명의 발전 이후, 대부분 인류는 사냥하는 법을 잊어버렸다.
키릭! 키릭!
보기만 해도 흉측한 전갈이 수천 마리가 바글바글한다.
한 명당 다섯 마리.
말이 쉽지 싸우러 나설 마음 먹기도 쉽지 않다.
“무기를 찾아봐! 가진 거 없어?”
“돌이라도 들어! 다섯 마리만 죽이면 돼!”
다행히 상황 파악이 빠른 남자들이 두 팔을 걷었다.
둘러봐도 보이는 거라곤 돌멩이뿐, 무기로 쓸 만한 건 보이지 않다.
터억.
하지만 장현은 바닥의 돌을 거머쥐고 숨을 골랐다.
‘돌. 그리고 마계 수 잎.’
그는 주변을 둘러보고 거무칙칙한 풀을 한 움큼 뜯었다.
‘일단 퀘스트는 그대로야.’
첫 퀘스트는 흑전갈 다섯 마리 사냥.
오래전 겪었던 것과 같다.
이 모든 것은 앞으로 본경기에서 얻게 될 능력을 얻기 위한 과정이다.
튜토리얼에서 얻은 능력을 바탕으로 본경기에 임한다.
생존을 위해서는 마나 포인트를 모으는 것이 핵심.
사냥은 마나 포인트를 얻기 위한 기본 수단이다.
흑전갈은 마계의 몬스터들 중 가장 약한 몬스터.
갓 마계에 들어온 초보 플레이어들에게는 작고 재빨라 사냥하기 어렵겠지만 이조차 사냥할 수 없다면 차라리 죽는 것이 고통을 줄이는 일이다.
‘본경기가 시작되면 괴수들과 언데드들이 득시글거린다.’
흑 전갈도 사냥할 수 없다면 차라리 여기에서 죽는 것이 나을지도.
“후~.”
장현은 깊은 심호흡을 내쉰 후 양손으로 뺨을 가볍게 두들겼다.
찰싹!
튜토리얼에서는 본경기에서 얻을 수 없는 것이 꽤 많다.
대부분은 알지 못하지만, 자신은 다르다.
옆에 있는 돌을 들고 나서자 덕배가 그를 붙잡았다.
“장현, 너 어쩌려고?”
“들었잖아. 흑전갈을 사냥해야 한다고.”
“뭐 그렇긴 한데 짱돌로 가능해?”
덕배는 자신이 집어 든 돌, 어린아이 머리통만 한 작은 바위를 보며 의문을 내비쳤다.
“초반이다. 겁만 먹지 않으면 해볼 만해.”
스윽.
장현은 돌을 들어 무게 중심을 가늠했다.
흑전갈. 조금 단단한 외골격과 꼬리 끝에 달린 독침이 위험한 놈이다.
하지만 시력이 극히 나쁜 데다, 공격 수단은 꼬리를 들어 찍는 것이 고작.
“후웁!”
돌을 들어 무게를 느낀다.
묵직하다.
이 정도면 체중을 실어 내려찍는 것으로 바로 외골격을 깨트릴 수 있다.
‘어차피 다른 무기는 없다. 이 돌을 사용해 최대한 마나스톤을 모아야 해.’
마나스톤, 마족이나 몬스터를 잡으면 나오는 자원이다.
외형은 작고 푸른 돌멩이 같은데, 이걸 얻으면 마나포인트로 바꿀 수 있다.
모은 마나 포인트는 능력치로 전환할 수 있다.
더불어 음식을 섭취할 수 없고 약도 없는 이곳에서 마나 포인트는 생존에 필요한 영양분을 제공해줄뿐더러 부상을 입었을 경우 상처 치료 효능도 있다.
아악! 아아악!
사람들이 비명 지르며 물러섰다.
“후웁!”
장현은 도리어 다시 한번 돌을 든 팔에 힘을 주고, 앞으로 나섰다.
모두가 물러 나오는 가운데, 장현이 홀로 흑전갈을 향해 나아갔다.
사사삭. 자각자각.
그의 발치로 흑전갈 한 마리가 다가오고 있었다.
검게 번들거리는 외골격.
흉악하게 내민 앞 짚게.
무엇보다 흑전갈의 가장 무서운 점은 바로 꼬리.
힐끗.
느리게 바닥을 기는 놈이지만 일격에 잡지 못하면 미친 듯이 사방으로 꼬리를 휘두른다.
자칫 꼬리의 독침에 쏘이기라도 하면 죽지는 않겠지만, 전신이 마비된다.
튜토리얼이 끝날 때까지 움직이지 못하기에 죽는 것과 마찬가지.
스으윽.
장현은 머리까지 돌을 쳐들고는 흑전갈을 응시했다.
자각. 자각.
앞 집게발로 더듬으며 다가오던 흑전갈은 아직 머리 위의 위협을 느끼지 못했다.
장현은 신중하게 숨을 고른 후.
“지금!”
그대로 내려찍었다.
퍼억!
바위에 가까운 큰 돌이 정확히 흑전갈을 내려찍었다.
-키이이이!
귀 거슬리는 소리를 내며 놈이 물러선다.
그렇지만 곧 멈추었다.
놈의 뒤에서 다가오는 흑전갈 무리에 막힌 탓이다.
서둘러 끝장내야 한다.
“어딜!”
휘청! 콰아앙!
장현은 재빨리 돌로 내려찍었다.
으지직!
기분 나쁜 소리와 함께 도망치던 흑전갈의 외골격이 깨졌다. 질척한 녹색 체액이 뿜어져 나왔다.
“후우. 후우.”
두 번의 내려찍기만으로도 체력의 반쯤이 날아간 듯했다.
이깟 놈을 상대로 두 번이나 내리쳐야 한다니.
새삼 스스로가 얼마나 약해졌는지 실감이 났다.
흑전갈이 돌에 박살 나자, 뒤따르던 놈들이 멈칫하더니 이내 몸을 돌린다.
장현을 까다로운 적으로 인식했는지, 다른 플레이어에게로 향했다.
스르륵.
전갈의 체액 사이로 빛나는 푸른 돌 하나가 나타났다.
‘다시 이걸 볼 줄이야.’
장현은 감회에 젖은 채 마나스톤을 손에 쥐었다.
스스스.
마나스톤은 곧 흡수되었다.
“음.”
마나 포인트가 생성되었다.
이어 미미하지만 허기짐이 사라지고, 체력이 회복되었다.
체력이 회복되자 장현은 작업을 시작했다.
추가로 흑전갈을 사냥하기보다 처음 사냥한 놈을 제대로 해체하는 게 더 중요했다.
그는 돌을 들어 죽은 전갈 꼬리의 독침을 끊어냈다.
콱! 콱!
뒤이어 미리 챙겨둔 마계 수의 앞을 꺼냈다.
‘중화. 그리고 숙성.’
흑전갈의 외골격은 대단히 단단하다.
특히 유일한 공격 수단인 꼬리 부분은 어지간한 금속의 강도를 지니고 있다.
마계 수의 잎은 꼬리를 중화시켜 금속으로 만들 수 있는 재료다.
과거 1회차 때 흑전갈의 독침을 챙겨 마계 수 잎에 감싼 녀석이 있었다.
무림인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는 독암기로 활용하기 위해 챙겼었다.
나중에 마계 수 잎을 펴보고서 깜짝 놀란 그가 외치는 소리에 장현 또한 주목했다.
상반되는 독성이 단단한 껍데기를 녹여버렸다.
그 결과 금속이 생겼다.
흑전갈의 독침과 마계 수의 앞이 만나면 금속이 된다는 걸.
그 메커니즘은 알 수 없지만, 장현에게는 금속을 구할 방법을 찾은 게 중요했다.
꾸욱. 꾸욱. 휘릭휘릭.
스르르륵.
꼬리를 마계 수 잎으로 감싸자 껍데기가 흐물흐물 녹아내렸다.
다행히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됐어.’
뚜욱. 뚝.
장현은 전갈 꼬리에서 흘러나오는 독액을 따로 모았다.
이 독 또한 나중에는 유용한 도구가 될 것이다.
“인벤토리.”
약속된 시동어를 외치자 허공에 상자가 열렸다.
그 안에 장현은 마계 수 잎으로 감싼 전갈의 꼬리를 집어넣었다.
몬스터의 부산물은 바로 쓸 수 없다.
중화 작업이나 숙성시간을 거쳐야 한다.
‘일단 하나.’
사람들을 플레이어라는 괴이한 신분으로 만든 마족들은 나름 편의를 제공했다.
인벤토리.
익숙해지기만 하면 무한에 가까운, 무게 부담이 없는 주머니를 들고 다니는 격이다.
그로 인해 나중에는, 인간들 사이에서 마족에게 감사하거나 찬양하는 이까지 나타난다.
놈들의 속내를 잘 아는 장현은 이를 갈았다.
‘더 키운 후에 잡아먹겠다 이거지.’
피와 죽음. 그리고 더 지독한 광기와 살기.
놈들이 원하는 인류의 모습은 그거다.
“장현. 너 뭐 한 거야?”
장현이 인벤토리를 능숙하게 사용하는 모습을 보고 덕배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인벤토리. 게임에서 나오는 무한의 가방 같은 거야.”
“게임?”
“그래 지금 상황이 게임이라고 생각해. 그렇다면 너야말로 생존에 가장 적합할 거야.”
조금이라도 살아남기 위해서는 마음가짐을 바꿔야 한다.
간단한 조언 정도는 해줄 수 있지만, 목숨을 책임져 줄 수는 없다.
장현은 그렇게만 말하고 바로 몸을 돌렸다.
퍼억! 퍽! 으직!
콰드득! 퍽! 퍽!
띠링!
“후우. 후우.”
다섯 마리째다.
단 30분 만에 장현은 데니우스의 요구사항을 채웠다.
그럼에도 그는 멈출 생각은 없었다.
‘더 많이, 이것으로 부족해.’
마나가 쌓이면서 움직임이 조금씩 빠르게, 더 기운차게 바뀌었다.
할당량을 채웠다고 쉬어선 안 된다.
나중을 생각하면, 여기서 마나스톤과 독침을 최대한 많이 챙겨둬야 한다.
“대, 대박! 장현 너 엄청나다!”
사냥과 독침 수거를 반복적으로 하던 장현에게 김덕배가 엄지를 들어 보였다.
“넌 뭐하냐. 사냥해.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
덕배가 무엇을 하든 장현은 그를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다만 근처에서 얼쩡거리는 것은 귀찮았다.
마족 데니우스. 놈에게 배정된 이상, 죽음은 언제든 찾아올 수 있다.
지금 김덕배처럼 시간을 헛되이 보내다간 반드시 죽는다.
장현은 그에게 신경 쓰고 싶지 않아 짧게 말하고 다시 이동했다.
“어, 같이 가!”
김덕배는 장현을 뒤쫓아 따라왔다.
피곤한 녀석이다.
스르륵. 가드득.
그런데 언제 온 건가.
흑전갈 한 마리가 김덕배의 발치에 바싹 붙어 있었다.
사냥해야 할 녀석이 자신의 발에 다가온 사냥감도 못보다니.
한심했지만 장현은 한 마디 경고해주었다.
“너 발 조심해!”
“발? 어? 으아아악!”
김덕배가 장현의 말에 아래를 보고 기겁했다.
즉각 발을 떼서 물러나자.
카르륵! 샤아악!
흑전갈이 사냥이라도 하려는 듯, 두툼한 앞발로 김덕배의 발을 붙잡았다.
꽈악!
다행히 꼬리의 독침에 쏘이지는 않았기에, 석화가 되지는 않았다.
“으, 으악! 이거 뭐야! 뭐냐고!”
“발로 찍어! 찍어!”
장현의 외침에도 덕배는 흑전갈의 독침이 무서운지, 차마 올린 발을 내려찍지도 못했다.
장현은 손에 든 돌을 덕배의 발을 움켜쥔 흑전갈을 향해 내려찍었다.
콰앙! 으직!
돌에 맞은 흑전갈이 그대로 터져나갔다.
바즈락. 바즈락.
“허…. 흑….”
“이건 내 것이다.”
김덕배를 지나쳐 장현은 태연하게 흑전갈의 마나스톤을 챙겨 들었다.
달각. 스륵.
6마리째의 마나 스톤을 흡수하자 더욱 몸이 가벼워지고 기운이 솟는다.
장현은 김덕배를 힐끔 쳐다보고는 혀를 차며 고개 돌렸다.
“후…”
깊은 한숨이 터져 나왔다.
‘본경기의 영지전을 생각한다면 믿을만한 사람을 찾아야 하는데…. 이 녀석은 글렀어.’
도와주려면 도와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건 자신에게 도움이 될 녀석일 경우다.
옛 친분만으로 쓸모없는 녀석을 돌봐주는 것은 장현 쪽에서 사양이다.
자신은 인류의 운명을 건 거대한 싸움을 해야 한다.
‘쓸모를 증명해라.’
스스로 이 지옥을 헤쳐나갈 수 없다면 일찍 죽는 것이 오히려 좋을 것이다.
최소한 한 번, 한 번은 자신을 스스로 구해야만 자신이 도울 가치가 있다.
‘스스로 구할 수 있다면….’
장현은 뒷말을 삼키고는 고개를 돌려 다음 사냥감을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