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회귀
“으음.”
서서히 정신이 들면서 의식이 돌아옴을 느꼈다.
‘어떻게 된 거지?’
흐릿하던 초점에 사물이 맺혔다.
“여긴…. 동굴인가?”
기억하던 마지막 장소가 아니다.
오랜 습관으로 정신이 들자마자 신체를 점검했다.
“으윽!”
전신에서 격통이 느껴졌다.
반가운 신호다.
적어도 죽지는 않았다는 것이니까.
후우우욱!
꿈틀. 꿈틀
사지는 이상 없다.
이어서 내장을 점검했다.
역시 손상된 부분은 없다.
슬쩍 머리를 기울여 본다.
평행감각, 시각, 청각과 후각까지 모두 이상 없다.
“후웁!”
천천히 숨을 들이쉬며 몸을 일으킨다.
그제야 느낀 뒤늦은 이질감.
휘청.
“몸이….”
몸에서 아무런 힘이 느껴지지 않았다.
마나와 마력이 사라졌다.
근육도 깡마를 정도로 줄어들었다.
그리고 주변은…. 시끄러웠다.
“으으윽! 우린 죽을 거야. 죽고 말 거라고”
“닥쳐!”
“세상이 멸망한 거야. 우린 지옥에 끌려온 거라고!”
“에잇! 재수 없는 소릴 하다니!”
얼추 3백 명가량의 사람들이다.
거대한 석실 안에서 죽으라고 고함지르는 모습이 생경하다.
‘어디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꾸욱.
뿌득.
‘어…?’
그때였다.
놀라서 쥐어진 주먹에서 소음이 인다.
매끈한, 하얗고 바짝 마른 손이 눈에 들어온다.
“...”
생경하다.
몇 년이고 화로 앞의 불길에 그을렸던 손이, 흉터도 없이 말끔한 모습을 하고 있다.
“어떻게…?”
튀는 불똥에 입은 화상은 물론이고, 수만 번의 망치질 끝에 생긴 굳은살도 사라진 상태이다.
거기서 불현듯, 이 낯선 환경이 낯익다는 것이 떠올랐다.
이건…. ‘그날’이다.
‘설마.’
테오. 제이미. 마현. 아르헨.
자신을 포함한 최후의 5인.
그들이 마지막으로 했던 말이 뒤늦게 기억난다.
“정말로…. 과거 회귀?”
찌리릭!
‘읏.’
떠올린 순간, 머리에 쇠못을 때려 박는 듯한 통증이 일었다.
장현은 이 악물고 귀에 꽂히는 테오의 목소리를 들었다.
-장현. 이 소리를 듣고 있다면 아마 시간 회귀 마법이 자네를 과거로 돌려보냈을 것이다. 우리의 모든 희망. 모든 기대를 자네에게 맡기네.
-자네는 튜토리얼에서 마족 데니우스의 시험을 받았다고 했었지. 자네에게 가장 필요할 것으로 여겨지는 걸 보낸다네. 부디 도움이 되길. 이건 내 마지막 마법인 기억 전이 마법이라네. 우리 모두의 기억을 담아 전했다네.
[시간회귀 마법이 적용되었습니다.]
[기억전이 마법이 적용되었습니다.]
[플레이어 ‘테오’의 기억을 전송합니다.]
[플레이어 ‘제이미’의 기억을 전송합니다.]
[플레이어 ‘아르헨’의 기억을 전송합니다.]
[플레이어 ‘마현’의 기억을 전송합니다.]
알림과 함께 머릿속으로 막대한 양의 정보가 들어왔다.
머리가 터질 것 같은 통증이 일었다.
“으윽!”
처음 보는 장면들이 순식간에 눈앞에서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한순간에 수십 년의, 그것도 네 사람의 인생이 스쳐 지나갔다.
‘이게…. 그들의 인생….’
[압축이 완료되었습니다.]
기묘한 알림음과 함께, 귀에 들리는 목소리가 바뀌었다.
-아. 아. 장현? 아르헨이다. 일단 우리 모두의 경험과 중요한 기억들을 뭉뚱그려서 네 머리에 전송했다. 꽤 아팠을 텐데 잘 참아줬…. 겠지? 어쨌든 고생했다.
-너도 알다시피 나는 모험가. 그중에서도 헌터로서 살아남은 몸이다. 내 특기는 경험. 그리고 요약이지. 뭐…. 몸에 밴 업이자 즐거움이기도 했지만 어쨌든.
-가장 근본적인 몇 가지는 알려주겠다. 우선 네가 살아야 하니까. 하지만…. 중요 분기와 중요 피스들은 지금 당장 넣을 수가 없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압축’이라고. 테오의 말에 의하면 적정량에 마나가 있어야 ‘열람’이 가능하다더군.
-살아남아라. 장현. 언제고 네가 마왕을 때려잡고, 갈려나간 우리를 다시 찾아줄, 그 날을 기다리겠다.
뚜욱.
소리가 그쳤다.
장현은 한참이나 심호흡을 하며 얼굴을 감싸 쥐었다.
‘제기랄. 진짜로….’
장현은 상태 창을 열었다.
[장 현 ]
-직업 : 일반 대장장이
-LV. 1
다행히 대장장이 직업은 회귀 직전 그대로다.
다만 다른 모든 능력은 레벨 1에 맞춰져 있다.
대장장이 직업이야말로 그의 모든 것이나 마찬가지.
이번에는 좀 더 수월하게 갈 수 있다.
“야. 현아. 장현! 괜찮아?”
와중에, 낯선 목소리가 귀에 울렸다.
눈을 들어보니 선량하고 순둥이처럼 긴 얼굴이 들어왔다.
‘이름이….’
한 박자 후에 상대가 떠올랐다.
“김덕배?”
“그래 인마! 와. 살았다. 살았어. 그나마 동네 친구가 같이 와서…. 근데 야. 이게 지금 다 뭐냐?”
주욱.
김덕배가 주변을 가리켰다.
으아아! 꺄아악! 아! 시끄러워! 닥쳐!
아비규환.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사람들이, 제각각의 톤으로 시끄럽게 떠들고 있었다.
그 모습이 낯설다.
-너무 오래된 기억이다.
한동안 그저 ‘그런 일이 있었지.’ 하고 접어둔 기억.
그걸 눈앞에서 다시 본다는 건 정말…. 반가우면서도 험악한 혐오감이 함께 들었다.
“이들이 전부…. 그리고 덕배도….”
“어? 내가 뭐?”
김덕배가 눈을 껌벅껌벅하며 묻는다.
“아니다.”
장현은 절레절레 고개 저었다.
마족 데니우스가 열었던 ‘튜토리얼’.
3백 명이 모였던 그곳에서, 생존한 자는 단 열 명이었다.
그리고 그중에 김덕배는 없었다.
자신이 살아남은 것은 그저 지독히 운이 좋아서였다.
“와. 씨. 쫄리는데. 아. 나 퇴근하고 가는 길이었는데 갑자기 도로에 큰 구멍이 생겼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여기였어.”
묘하게 ‘퇴근’이라는 단어를 강조하는 걸 보면 좋은 직장을 다녔나 하는 생각이 든다.
“…….”
기억났다.
김덕배 이 녀석과는 고등학교 때 친구로 종종 피시방에서 같이 게임을 하던 동창 친구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고 했던가.’
고등학생 때는 프로게이머가 되겠다며 주구장창 피시방에서 게임을 하며 보냈다.
그러다 대학을 가고 군대를 제대하고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며 사라졌다.
퇴근하던 길에 이곳으로 왔다는 걸 보면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지도.
‘내 기억으로는 이 녀석 튜토리얼을 통과 못 했었는데.’
1회차에서 녀석에 대한 기억은 희미했다.
지금 만나지 않았다면 녀석이 튜토리얼을 자신과 같이 수행했다는 사실도 잊었을 것이었다.
장현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덕배가 물었다.
“장현. 넌 어때? 뭐 아는 거 없냐?”
“글쎄.”
아는 건 많다.
하지만 말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이 가진 공통된 의문이겠지만, 때론 모르는 게 약이다.
장현이 말을 흐린 것을 아는 것이 없다고 해석한 것인지, 덕배는 더는 묻지 않았다.
아니 물어볼 여유도 없었다.
곧 이상한 소리가 들렸기에.
우우우웅. 우우우웅.
허공에서 기이한 진동음이 울려 퍼졌다.
“헉!”
“뭐, 뭐야?”
소란이 멎었다. 3백 명의 시선이 몰려드는 가운데 공간에 균열이 일었다.
브즈즈즉. 브즈즈즉. 브즈즈즈즉.
일정한 간격으로 울리다가 멈추길 반복하는 소리·마치 곤충들이 집단으로 날갯짓하는 소리 같았다.
경악으로 조용해진 가운데, 이 이질적인 소음은 사람의 원초적인 공포를 자극했다.
“머, 멈춰!”
“그만해! 이거 뭐야!”
사람들은 귀를 틀어막으며 소리쳤다.
그렇지만 진동음은 그치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씩 커졌다.
우웅. 우웅. 우웅. 우웅. 우웅.
동시에 소리의 간격이 짧아졌다.
그러다가 뚝! 멈추었다.
“....”
“....”
소음에 이어 갑작스러운 정적.
긴장으로 꿀꺽꿀꺽 침 삼키는 소리가 가득하다.
그 가운데 누군가가 소리를 질렀다.
“하, 하늘이 찢어지고 있어!”
쏴아아아!
삼백의 산 제물들이 하늘을 보았다.
허공에 구멍이 생겨나고 있었다.
그건 점차 커지더니 길쭉한 타원형으로 변했다.
쑤욱!
그리고 그 안에서 한 존재가 모습을 드러냈다.
‘놈이다.’
으득.
장현이 이를 갈았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오랜 전투로 습관처럼 밴 살기.
비록 과거로 돌아오고, 몸도 형편없이 약하지만, 영혼에 밴 살기만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대로 놈이 나타난다면 위험하다.
지금 나타날 놈은 여기서 한 사람을 죽이고 시작할 거니까.
마족답게 성격이 더러운 놈이다.
나중에 들은 바로는, 이전에도 이후에도, 꼭 시작과 더불어 사람 한 명을 죽이고 시험을 시작했다.
‘취미. 혹은 수단인가.’
아마도 사람들을 쉽게 통제하기 위함일 터. 공포는 사람을 다루기 위한 좋은 수단이니까.
그때 장현의 눈에 한 남자가 띄었다.
‘저자는 가장 먼저 죽었던 자다.’
그자에 대한 기억이 또렷했다.
모두가 공포에 질려있을 때, 잘난 아버지 배경을 믿고 나대다 죽었었다.
일행 중 최초로 죽었던 자라 똑똑히 기억이 났다.
모두가 하늘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존재에게 집중하는 사이, 그는 슬며시 그 남자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 혼잣말을 하듯, 한마디 건네었다.
“게임 설명회 한번 거창하네. 이게 요즘 유행하는 VR 게임이던가?”
그리고는 흘깃, 상대를 바라보았다.
남자는 자신의 혼잣말을 들은 것인지 잔뜩 불쾌한 표정이 되었다.
그의 표정을 보곤 장현은 내심 고개를 주억거렸다.
자신이 남자에게 모종의 작업을 하는 동안 마족 데니우스가 날개를 펄럭이며 허공에서 지상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펄럭! 촤르륵!
키는 약 3m가량에 머리에는 두 개의 뿔, 그리고 등에는 박쥐의 날개 같은 것이 달려 있다.
‘마계 튜토리얼의 관리자.’
놈은 그렇게도 불렸다.
끌려온 인간들이 마계에서 처음 만나는 수문장.
이놈은 인간들에게 시련을 주고, 살아남는 자를 본 게임, 마계로 들인다.
이를테면 최초의 채점자.
그러나 모든 마족이 그렇듯, 인간을 가축으로나 보는 놈이다.
생존하기 위해선 반드시 놈의 시련을 이겨내야 한다.
몸이라도 푸는 듯 고개를 이리저리 움직이는 데니우스.
우두둑.
까드드득.
뼈 부딪히는 소리가 장내에 퍼져 나왔다.
한참을 그렇게 풀던 데니우스는 씨익 웃으며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너희들이 지구에서 온 인간들이군.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 몸이 좀 찌뿌둥해서 말이야.
데니우스의 등장에, 장현은 흥분되는 심정을 다스리기 위해 망치질을 떠올렸다.
탱캉! 탱캉!
반복적인 울림.
불과 망치를 쥐고 완성을 향한 도면만을 머리에 새긴 채, 자유분방한 금속을 평탄하게 다듬듯.
탱캉! 탱캉!
삐죽하게 튀어나올 듯한 마음에 망치질했다.
불순물을 거둬낸 금속의 울림은 그 부딪침조차도 맑은 소리를 내었다.
그처럼 장현도 불과 망치를 떠올리며 스스로의 마음을 다듬었다.
스륵.
뒤이어 노랗게 세로로 찢어진 데니우스의 눈동자가 모인 사람을 훑어보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이었다.
멈칫!
느긋하던 데니우스의 움직임이 멈췄다.
마족의 시선이 장현을 꿰뚫었다.
...
순간 무거운 침묵이 깔렸다.
-이 녀석은 뭔가….
튜토리얼조차 시작하지 않은 플레이어 따위가 데니우스의 직감을 건드리고 있었다.
사람의 무리에서 혼란과 공포의 향이 은은하게 피어나는 가운데, 장현의 정신은 너무 맑았던 탓이다.
-흠…. 이거….
‘역시. 손위의 무기는 쉽게 감춰도, 마음속의 칼날까지는 쉽게 감춰지지 않는 건가?’
하지만 데니우스가 살기를 느끼지 못한 것으로도 충분했다.
데니우스가 장현에게 다가갈 때였다.
그에게 시선을 주던 장현이 시선을 옮겼다.
-음?
호기심을 느낀 데니우스의 시선이 그를 따라 이동했다.
장현의 앞에 있는 사람에 시선을 멈추었다.
머리를 노랗게 염색한 20대 남자가 데니우스를 향해 호통쳤다.
“이봐! 지금 이게 대체 뭐 하는 짓들이야! 내가 누군지 알아? 우리 아버지가 국회의원이야! 국회의원 이상표! 몰라?”
스윽.
데니우스의 시선이 돌아갔다.
그에 장현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휴…. 살았다…. 고마워 대신 죽어줘서.’
과거에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기에 자신은 이 남자를 믿었다.
저 녀석은, 국회의원의 아들로 온갖 악행으로 인터넷상에서 유명했다.
미성년자 때부터 성범죄를 비롯해 마약까지 복용해 빨간딱지를 달고 국회의원인 아버지의 출셋길까지 막았던 자다.
그런데도 정작 처벌은 미미했다.
수많은 피해자를 위해서라도 죽어주는 게 낫다.
“코스프레 쩌네. 그렇다 쳐도 무슨 게임 설명회를 이딴 식으로 하냐! 관계자 불러와! 이 새끼들아!”
국회의원 이상표의 아들이라고 외친 남자는 데니우스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후후…”
과연. 아니나 다를까 데니우스의 얼굴에 웃음이 지어졌다.
장현이 이를 악문 채 그를 바라보았다.
‘첫 번째 희생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