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1213화 (1,212/1,214)
  • 1213화. 세상은 넓다

    심협은 혀를 차고는 다시 산하사직도를 소환해봤지만, 역시나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왜 천몽침만 나타난 거지?’

    그런 의문이 들었으나, 잠시 고민하던 그는 이내 천몽침을 베고 누웠다.

    몸이 허황된 천몽침에 닿는 순간, 이 옥침 위의 안개가 흘러 심협의 두 뺨을 타고 얼굴을 전부 뒤덮었다.

    심협은 조금씩 졸음이 밀려왔다.

    두 눈을 감자 눈앞이 어두워졌지만, 귓가에서는 부드러운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삼계의 재앙이 아직 사라지지 않았으니 너에게 마지막 꿈을 보여주겠다. 성공할지 실패할지는 하늘과 너에게 달렸다!”

    심협은 그 목소리에 깜짝 놀라 눈을 번쩍 떴다. 그리고 매우 당황했다.

    눈앞은 여전히 아득한 안개와 혼돈의 허공뿐이었지만, 바로 옆에 한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벌거벗은 남자로, 몸집이 큰 편이 아니었고 이목구비도 평범했다.

    그도 심협처럼 막 꿈에서 깨어나 하품을 하고 기지개를 켜는 중이었다. 다만 심협과 달리 그가 몸을 펴는 순간 주위의 뿌연 안개가 가볍게 밀려났고, 다시는 모여들지 않았다.

    사내는 주위의 안개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손을 이리저리 휘저어 밀어내 주위를 깨끗하게 만들었다.

    주위를 둘러본 그는 여전히 불만족스러운지 벌떡 일어나 내달리며 팔을 이리저리 휘저어 안개를 계속해서 멀리 밀어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반경 10여 장이 깨끗하게 비었음에도 그는 뚱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고 위아래를 한참이나 응시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손을 들어 허공을 움켜쥐었는데, 그러자 칠흑 같은 빛이 그의 손에 모여들었다. 잠시 후에는 검은 도끼가 그의 손에 나타났다.

    ‘개천부! 그렇다면 저자는 반고?’

    심협은 깜짝 놀랐다.

    다음 일은 그도 알고 있었다. 반고는 개천부로 천지를 개벽하여 삼계를 만들었고, 해와 달과 별이 생겨나면서 만물이 자라나면서 삼계가 번영했다.

    반고의 모습이 사라지자 허공에는 검은 도끼만 떠 있었다.

    이를 본 심협이 서둘러 다가가 한 손으로 검은 도끼를 잡으려 했다.

    그러나 검은 도끼는 안개가 되어 허공으로 사라졌다.

    그 순간, 심협이 깨어났다. 그러나 어디에도 개천부는 보이지 않았다.

    ‘이게 무슨 뜻이지? 왜 이런 꿈을 보여준 걸까?’

    심협은 생각한 끝에 답을 찾았다.

    그가 방금 검은 도끼를 잡는 순간 아무것도 얻지 못한 것이 아니었다. 그동안 느껴보지 못했던 법칙의 힘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개천부에 담긴 진정한 법칙의 힘이었다.

    개천부를 얻은 이래로 심협은 그 위에 응집된 것은 파멸 법칙, 즉 파멸의 힘인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혼돈 법칙의 힘이었다. 그리고 그는 이 사실을 지금에야 깨달았다.

    혼돈은 불확실, 즉 무수한 가능성과 파멸과 재생의 융합을 의미한다.

    심협이 이를 깨닫는 순간, 황색 안개로 만들어진 천몽침이 순식간에 황색 기류가 되어 그의 손으로 몰려왔다.

    그가 가볍게 손을 움켜쥐자 황색 기류가 순식간에 허황한 도끼의 허상으로 변했다.

    다음 순간, 주위의 천지가 돌변했다.

    주위의 회색 안개가 세차게 솟아오르고 기류가 사방으로 휘몰아치더니 일제히 도끼의 허상으로 몰려왔다.

    쾅!

    심협의 신혼이 크게 흔들리더니 머릿속에서 저절로 반고진공의 수련 경로가 떠올랐고, 곧바로 더 많은 안개 기류가 몰려 들어와 그를 감쌌다.

    화령자는 계속해서 심협의 이름을 부르며 ‘신혼아, 돌아와라!’ 하고 중얼거렸지만, 아쉽게도 사번혼진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이럴 수가! 정말로 사라졌다고?’

    화령자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신혼이 돌아오지 못한다면 육신을 다시 만들어봐야 껍데기에 불과하니 아무런 쓸모가 없지 않은가.

    화령자가 초조해하고 있는데, 갑자기 바람이 사번혼진을 지나 남서쪽의 사문으로 들어와 대진의 가운데를 지나더니 멈추지 않고 북동쪽의 생문으로 나갔다.

    화령자가 영문을 알기도 전에 신혼 허상이 생문에서 나타나 몸을 일으키더니 곧장 가운데에 있는 인종로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똑똑히 봤다. 신혼 허상은 심협이 분명했다.

    “안 돼!”

    화령자가 놀라 포효하듯 외쳤다.

    인종로 안의 육신은 아직 완성되지 않아서 신혼이 함부로 들어가면 육신과 신혼이 어우러지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심협의 신혼이 불꽃에 타서 혼비백산할 가능성이 매우 컸다.

    “망했어! 망해버렸어!”

    화령자는 발을 동동 구르며 서둘러 방법을 생각했다.

    그런데 그때, 이변이 일어났다.

    불꽃이 치솟던 인종로에서 갑자기 대량의 안개가 자욱하게 피어올라 연단로 주위를 에워쌌고, 그대로 흩어지지 않았다.

    화령자는 그 안개를 보는 순간 표정이 굳어 그 자리에서 멍해졌다.

    ‘허! 혼돈지체(混沌之體)도 연단할 수 있다니! 이 녀석의 그 망할 운은 아직 사라지지 않은 모양이군.’

    그는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리고는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더니 이내 또 피식 웃었다.

    잠시 후, 인종로 안의 불꽃이 꺼지자 안개가 위로 솟구치며 가부좌하고 있는 사람이 떠올라 천천히 화령자 앞으로 내려왔다.

    “심협, 네 명줄이 질기긴 질기구나.”

    화령자가 칭찬인지 뭔지 모를 감탄을 내뱉자 심협이 두 눈을 떴다. 두 눈이 반짝이자 해와 달의 빛이 넘쳐흐르는 것 같았다. 피부는 아무런 이상이 없어서 여느 사람과 같아 보였다.

    하지만 화령자만은 지금의 심협이 이전과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화령자, 네가 날 구해준 거야?”

    “그렇다고 할 수 있지만, 별로 놀라지 않은 모양인데?”

    화령자가 눈살을 찌푸렸다.

    “아니, 놀랐어. 다만, 내게 별다른 악의가 없는 것 같아서 말을 하지 않았을 뿐, 오래전부터 널 의심하고 있었거든.”

    “오래전부터? 날 왜 의심해?”

    화령자가 불만스러운 듯 투덜거렸다.

    “증거 같은 건 없어. 그저 네 학식과 안목이 경지나 배경과는 맞지 않았으니까.”

    “쳇! 참지 못하고 이것저것 다 떠벌린 내 잘못이군.”

    “선배님은 도대체 어떤 고인이신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심협이 포권하더니 진지하고 깍듯하게 물었다.

    “그런 얘기는 재미없어.”

    화경자가 따분하다는 표정으로 손을 휘휘 내저었다.

    “그럼 어째서 제 곁에 그렇게 오래 머물며 도와주셨는지는 말씀해주실 수 있습니까?”

    심협은 이렇게 깊이를 알 수 없는 선배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자신에게 시간 낭비했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인간 세계를 유희하다가 너한테서 뭔가 다른 것이 느껴져서 좀 더 지켜보자 했던 것뿐인데, 이렇게 오래 지켜보게 될 줄은 나도 몰랐다.”

    화령자가 대충 대답했다.

    심협은 진위를 알 수 없었지만, 더는 묻지 않았다.

    “어쨌든 목숨을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화령자는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바로 말했다.

    “자, 우리 인연은 여기서 끝인 것 같으니 이만 작별해야겠구나.”

    “어디로 가시려는 겁니까? 치우를 상대하도록 도와주실 수는 없습니까?”

    심협은 벌떡 일어나 잠시 머뭇거리다가 물었다.

    “싸우는 건 내 특기가 아니고 또 너는 혼자서도 잘 해낼 거다. 인연이 닿는다면 다시 만날 수 있겠지.”

    화령자가 또다시 손을 휘휘 내저으며 말했다.

    심협은 온전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말려도 소용이 없음을 알았기에 깊이 포권했다.

    화령자가 손을 들자 발밑 대진의 성반과 인종로가 빛이 되어 그의 소매로 들어갔다. 뒤이어 그가 소매에서 청색 옥비녀를 꺼내 허공에 긋자 뿌연 안개가 찢어지면서 칠흑 같은 구멍이 생겨났다.

    “혼돈 공간 안이라 역시 더 쉽군.”

    화령자는 그렇게 말하고는 양손을 검은 구멍에 넣고 균열을 벌렸다.

    한 발을 균열에 넣어 어둠으로 들어간 그는 심협을 힐끗 돌아보았다.

    “심협, 명심해라. 삼계가 세상의 전부는 아니다. 이 세계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넓다.”

    그러고는 몸을 내밀었고, 이내 다른 발도 검은 균열로 들어갔다.

    검은 균열이 바로 번쩍이더니 마치 다른 출구가 열린 것처럼 안에서 화려한 빛이 비쳤다.

    황홀한 가운데 심협은 화령자의 옷이 갑자기 빛나며 변하는 것을 본 것 같았다. 그러나 제대로 보기도 전에 검은 균열이 완전히 닫히면서 사라졌다.

    심협은 화령자의 말을 묵묵히 가슴에 새기고는 손을 들어 옆에 떠 있는 산하사직도와 순양비검들을 거뒀다. 다만 천몽침은 보이지 않았다.

    그가 자세히 생각할 겨들도 없이 눈앞의 멀지 않은 허공에 잘 보이지도 않는 작고 검은점이 나타났다.

    * * *

    바깥세계. 치우는 개천부를 든 채 마치 개미를 보는 듯한 눈으로 앞에 있는 사람들을 내려다보았다.

    섭채주와 육화명, 백소천 등 누구 하나 빠짐없이 쓰러져 있었다. 온몸이 피투성이에 얼굴은 창백한 것이 모두 심각한 부상을 입은 듯했다.

    “개천부를 쓸 수 없다 해도 너희 같은 것들을 어찌하지 못할 줄 알았느냐? 이제 운명을 받아들여라. 우리 마족의 통솔 아래 들어오는 것이 삼계의 진정한 미래다.”

    치우가 사악하게 웃고는 거만하게 말했다. 그의 시선은 먼 곳을 향해 있었는데, 마치 정말로 새로운 삼계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칼자루를 쥔 육화명의 피로 물든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는 억지로 일어나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치우를 노려봤다.

    백소천 등도 비틀거리며 일어났는데, 그들의 눈에는 결연함이 가득했다.

    줄곧 그들의 보호를 받은 터라 부상이 가장 가벼웠던 무만아는 백소천 뒤에 서서 양손에서 푸른 빛을 뿜어내 그들의 발아래 거대한 녹색 법진을 만들었다.

    법진에서 빛이 솟아오르자 짙은 생기가 육화명 등의 체내로 스며 들어가 모두의 상처를 회복하기 시작했다.

    백소천이 그녀를 향해 웃어 보이더니 고개를 저어 만류했다.

    그러나 무만아는 눈물을 글썽이면서도 법력을 거두지 않았고, 계속해서 대진을 발동해 모두의 힘을 보충했다.

    그녀도 이길 수 없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모두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덜어주는 것 외에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치우는 눈앞의 걸림돌들에 대한 마지막 인내심이 사라졌다. 마침 소모된 힘도 많이 축적돼 개천부에서 다시 날카로운 빛이 흘렀다.

    그는 더 이상 쓸데없는 말을 할 것 없이 앞길을 막는 것들은 처치해버리기로 했다. 그리고 삼계로 나아가 장안성을 도살하고 천정을 부수고 영산을 짓밟아 곳곳에 머리가 굴러다니게 하고 피바다를 만들어 누구도 다시는 반항할 수 없게 할 것이다.

    그가 도끼를 들어 올리자 차가운 빛이 번득였고, 강력한 압박감이 죽음의 신처럼 섭채주 등을 몰아세웠다.

    드디어 마지막 순간이 다가왔다.

    한데 그때였다.

    허공에 잘 보이지도 않는 검은 점 하나가 나타나더니 갑자기 끝없는 검은빛을 내뿜으며 빠르게 커졌다.

    새하얀 손이 검은 빛에서 먼저 나왔고, 뒤이어 대량의 회색 안개가 뿜어져 나왔다.

    곧이어, 누군가가 흐릿한 안개에서 나타나 섭채주 등의 앞으로 내려왔다. 온몸이 구름과 안개로 뒤덮여 있어서 마치 선인이 인간 세상에 강림한 것 같았다.

    “심협!”

    백소천이 외쳤다.

    그 순간, 모두의 눈빛이 한순간에 바뀌더니 안개로 뒤덮인 흐릿한 모습을 바라보았다.

    심협은 고개를 돌리지 않고 치우를 바라보며 한 손을 들었다.

    팔에는 영기나 법력의 흐름이 전혀 없었고 심지어 동작도 느려서 특별한 점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결과는 모두를 놀라게 했다.

    그의 손이 가볍게 개천부의 부광을 막았고, 손바닥에서 혼돈의 안개가 소용돌이로 변해 부광에 담긴 힘을 순식간에 흡수하여 모든 위세를 깨끗이 없애버린 것이다.

    뒤이어 심협은 손을 가만히 들어 올려 그윽한 빛을 내뿜는 도끼의 날을 그대로 막았다.

    챙!

    날카로운 소리는 심협이 부활했다는 사실보다도 더 놀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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