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1210화 (1,209/1,214)
  • 1210화. 후배들을 위하여

    심상치 않은 상황에 모두는 부상도 개의치 않고 각자 법칙의 힘을 현황무극진에 주입하여 대진을 다시 진정시켜 치우를 제압하려 했다.

    “하앗!”

    심협이 기합을 내지르자 바로 몸에서 은백색 광망이 솟구치더니 한 줄기 바람처럼 사방으로 휘몰아쳤다. 이 광망이 퍼져 나가자 치우가 일으킨 동요가 조금씩 진정되며 주위 공간의 동요가 조금씩 잦아들었다.

    한데 그때, 치우의 몸에서 검은 빛이 솟구치더니 갑자기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곧이어 심협은 눈앞의 공간이 일그러지는 것을 눈치챘고,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그러나 미처 반응할 겨를도 없이 허공에 치우가 나타나서 단숨에 꿰뚫을 기세로 검은 창을 심협에게 뻗었다.

    검은 빛이 폭증한 창은 거대한 칼날이 되어 허공을 찢으며 내려왔다.

    심협은 서둘러 양손으로 개천부를 꽉 잡고는 가슴 앞으로 내밀었다.

    챙!

    금속 부딪히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검은 빛의 칼날이 폭발하며 산과 바다를 뒤집을 듯한 강력한 힘이 몰려왔고, 복잡하기 그지없는 법칙의 힘이 융합해 순식간에 심협에게로 내려왔다.

    양손에 무수히 많은 핏자국이 솟아올랐고, 뼈가 꺾이고 힘줄이 끊어지는 듯한 통증에 손에서 힘이 빠져나가 심협은 도낏자루를 놓치고 말았다.

    그는 통증을 참으며 몸을 가누고는 개천부를 쫓아가려 했다.

    한데 치우가 다시 달려들어 광포한 힘으로 그를 날려버리고는 하늘 높이 솟아올라 손을 들었다. 그러자 개천부는 허공에서 커지더니 치우에게 딱 맞는 크기가 되어 그의 손으로 들어갔다.

    별다른 연화도 없이 그는 한 손으로 도끼를 잡은 뒤 체내의 마기를 주입했다. 그러자 개천부 겉면의 무늬가 일제히 빛나고, 날이 웅웅 떨렸다.

    온 공간에 가득 찬 파멸의 기운이 도끼에서 뿜어져 나오자 주위의 온도가 빙점까지 내려갔다.

    바짝 긴장한 사람들은 전력으로 법칙의 힘을 방출하여 치우를 제압하려 했으나, 효과는 미미했다.

    절정의 실력을 회복한 데다 개천부까지 손에 넣었으니 치우는 이제 무적이라 할 만했다.

    “인간과 신들이 통치하는 낡은 질서는 이제 깨질 때가 되었다!”

    치우가 눈을 번득이며 외치고는 허공으로 날아올라 힘을 모으더니 개천부로 오색 빛을 내리쳤다.

    어디선가 “허공지인(虛空之刃)”이라고 외치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오는 것 같았다.

    다음 순간, 거대하기 그지없는 검은색 부광이 초승달 모양의 호가 되어 오색 광망에 떨어지자 굉음이 폭발했다. 부광은 더욱 격렬하게 폭증하여 천지를 관통하는 거대한 광흔이 되었다.

    찰나의 순간, 이 도끼가 천지를 쪼개버릴 것만 같았다.

    하늘 높이 떠 있는 태양 가운데에 갑자기 검은 균열이 생기더니 곧이어 좌우로 갈라졌다. 허공지인 신통에 둘로 쪼개진 것이다.

    삽시간에 무형의 파동이 구천에서 퍼져 내려와 온 천지를 휩쓸었다.

    모든 사람이 무언가 자신을 스쳐 간 것을 느꼈으나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아는 자는 소수에 불과했다.

    무형의 파동이 스쳐 지나가는 순간, 심협의 팔에서 혼돈흑련이 강하게 떨리더니 모든 꽃봉오리가 하나둘 빛을 잃었고, 그 안에 저장되어 있던 법칙의 힘이 전부 사라졌다.

    동시에 휘청거리고 있던 현황무극진이 마침내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어떻게 된 거지?”

    원천강이 눈살을 찌푸렸다.

    “법칙의 힘이…… 사라졌어!”

    “이건 말도 안 되는…….”

    사람들은 허탈함에 넋을 놓았다. 현황무극진만이 아니라 자신들 역시 오랫동안 수련한 끝에 깨달은 법칙의 힘을 잃은 것이다.

    뒤이어 강렬한 공포감이 몰려오면서 이들은 싸울 의지마저 잃었다.

    한편, 심협은 팔의 흑련을 바라봤다. 시간 법칙, 공간 법칙, 염폭 법칙, 힘의 법칙…… 그 어떤 법칙의 힘도 더는 느껴지지 않았다.

    다시 고개를 들어 갈라진 하늘과 태양을 본 그는 그제야 뭔가를 알 것 같았다. 꿈속 세계에서 자신이 어떤 법칙의 힘도 보지 못했던 것은 치우가 허공지인 신통을 시전했기 때문이리라.

    치우는 저 천지를 개벽했던 도끼로 천도와 만물이 운행하는 법칙을 찢어서 모든 것을 혼란에 빠트린 것이다. 그렇게 천도가 무너졌으니 법칙의 힘이라고 계속 존재하겠는가?

    ‘……졌어.’

    무거운 탄식이 모두의 머릿속에 울려 퍼졌다. 누군가 외친 것이 아니라 각자의 마음속에 동시에 든 생각이었다.

    지금의 치우는 너무도 강력하고 그만큼이나 무서웠다. 진원자 같은 천존 강자의 마음에도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만약 자신들이 패하면 삼계의 중생이 패하는 것이니 정말로 천 년 뒤에는 멸세의 마겁이 찾아올 것이다.

    육화명은 고개를 들어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적을 바라봤다. 그럼에도 물러설 마음은 없었다. 오직 죽음을 각오할 뿐이었다. 안 된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해야만 했다.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싸워야만 했다.

    심협은 가만히 서 있었다. 움직이지도, 당황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의 두 눈은 치우가 아니라 높은 하늘의 갈라진 태양을 보고 있었다. 온갖 색깔의 빛이 뿜어져 나와 붕괴하며 확산해갔다.

    태양 주위로 평범한 수사들은 느낄 수 없는 힘의 파동이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것은 지극히 순수한 선천지기였다!

    심협이 손을 살짝 벌리자 팔에서 열두 개의 혼돈흑련 꽃잎의 금색 무늬가 천천히 빛나기 시작했다. 그러자 바다처럼 웅장한 선천지기가 부서진 태양에서 흘러나와 흑련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웅장한 힘이 순식간에 팔을 타고 들어오자 심협은 몸이 떨려왔고, 자신도 모르게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그러나 곧이어 엄청난 힘이 순식간에 흡수됐다.

    한 번 맛을 보자 멈출 수 없는 것인지, 혼돈흑련은 하나둘 허공을 향해 고개를 들더니 해바라기처럼 길게 목을 빼고 허공에서 흔들렸다.

    점점 많은 선천지기가 밀려오자 혼독흑련들이 빠르게 자라나 서로 가까워졌다. 뿌리와 줄기가 서로 뒤엉켰고, 꽃들은 한곳으로 모여들었다.

    그때, 심협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혼돈흑련의 잎사귀에 있는 금색 무늬가 서로 이어지기 시작하면서 잎사귀도 하나로 합쳐지려 한 것이다.

    몇 호흡 사이에 모든 혼돈흑련이 하나로 합쳐져 십이품의 검은 연대(蓮臺)가 되었다.

    연대의 모든 잎이 금테를 두른 것처럼 금색 실로 감싸여 신비롭고 우아했으며, 전에 없던 독특한 기운을 뿜어냈다.

    심신이 검은 연대에 빠져들자 심협은 몸과 기운이 혼돈흑련과 하나가 된 것 같았고, 한동안 바깥세상을 감지할 수도 없게 됐다.

    이 무렵, 허공지인을 시전한 치우가 다시 힘을 뿜어내자 개천부의 어두운 무늬가 다시 빛나고, 웅장한 힘이 솟아올랐다. 그는 곧장 이 도끼를 다시 휘두르려 했는데, 이번 목표는 하늘이 아니라 감히 자신에게 덤빈 각 종족의 수사들이었다.

    우르릉!

    현황무극진의 제압이 사라지자 치우가 팔을 조금만 움직여도 천지의 색이 변하고 굉음이 울려 퍼졌다.

    그가 팔을 휘두르자 개천부의 파멸의 기운이 천지를 가렸고, 사방의 허공이 얼어붙었으며, 곳곳이 적멸과 허무의 기운으로 가득 찼다. 거대한 도끼의 광망이 다시 천지의 모든 것을 파괴하며 호를 그렸다.

    모든 사람의 눈에는 마치 하늘에 걸린 초승달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만 같았다. 지나가는 곳마다 허공이 부서졌고, 수많은 공간 균열이 생겨나 거미줄처럼 교차하며 퍼져 나갔다.

    허공이 무너지기 시작하자 공간이 천지에서 잘려 나와 거대한 혼돈의 소용돌이에 빨려 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도망갈 곳마저 사라졌으니 마지막 운명이 강림하는 것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이 순간, 모든 사람들은 종말을 보는 것 같았다. 지난 삶이 주마등처럼 스쳤고, 모든 것이 허무하게 느껴졌다. 그 어떤 반항이나 노력, 모든 투쟁이 천지를 파괴하는 이 도끼에 물거품처럼 사라진 듯 저항할 마음조차 느끼지 못했다.

    허공지인 아래 모두가 평등했다. 죽음에서 도망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죽음을 달갑게 기다리는 자도 아무도 없었다.

    먼저 강신천이 창을 들더니 크게 웃었다.

    “하하하! 한바탕 신나게 싸웠으니 이번 생에는 이제 한이 없군요. 모두들 함께해 영광이었습니다. 저는 먼저 갑니다!”

    이어서 그는 온몸에서 금빛을 뿜어내며 달려들려고 했다.

    한데 그가 움직이기 전에 손 하나가 그의 어깨에 올라왔다.

    “푸르고 무성한 산이 있는 한, 땔나무 걱정이 없는 법이지. 아직 자네들은 죽을 때가 아니네. 기억하게. 이번 싸움에서 패했다고 삼계가 끝나는 것은 아니야. 자네들이 미래의 희망이지.”

    진원자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재가 되어 촛불을 밝혀야 한다면, 그건 우리가 먼저지.”

    보리 노조가 불진을 들고 앞으로 나왔다.

    두 사람은 눈빛을 교환하더니 이어서 심협을 바라봤다.

    이들은 시간이 본래대로 흘러가면 마겁이 강림해도 천 년 뒤 삼계 곳곳에서는 각 세력이 조직적으로 저항하고 또 끊어지지 않음을 심협에게 들어서 이미 알고 있었다. 상황이 조금 달라지긴 했지만, 분명 삼계는 끊임없이 저항할 것이다. 눈앞의 이 젊은 수사들이 후세에 남아 저항할 가장 왕성한 불씨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말을 마친 진원자의 몸에 푸른 빛이 흘렀다. 그는 구름 위를 걷는 것처럼 허공을 밟으며 걸어 올라갔다. 도포가 바람에 펄럭였는데, 허리춤에 걸린 검은 옥패는 옆으로 늘어져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귀신을 섬기지 않고 요마를 두려워하지 않으니, 나는 이번 생에서 오직 천지만을 섬긴다!”

    진원자의 입에서 맑은 음성이 흘러나오자 허리춤의 검은 옥패가 바람에 펄럭이더니 그의 앞에서 빠르게 커져 9장 9척 9촌의 커다란 검은 비석으로 변했다.

    비석의 표면은 거칠었고 어떤 화려한 무늬도 없었다. 오로지 한가운데에 천지(天地)라는 두 글자가 세로로 새겨져 있을 뿐이었다.

    천지간에 정기가 흐르자 푸른빛이 감도는 청풍(淸風)이 휘몰아쳐 허공지인을 맞이했다.

    뒤이어 보리 노조의 몸이 하얗게 빛나며 떠올라 진원자의 옆에 섰다. 그가 한 손을 들어 올리자 몸 뒤에서 거대하기 그지없는 보리수가 나타났다.

    “보리수 아래서 얻은 깨달음을 오늘 천지로 돌려보내리라!”

    목소리와 함께 그의 몸이 점점 희미해지면서 천지로 사라지더니 피와 살의 정수와 수련 경지가 모조리 보리수로 녹아들었다.

    보리수에 빛이 감돌자 가지들이 자라나 하늘을 떠받치는 거대한 손처럼 위로 솟구쳤다.

    천지 비석의 청풍이 가장 먼저 초승달과 충돌했다. 청풍은 순식간에 부서져 별빛이 되어 허공으로 사라졌다.

    뒤이어 보리수가 위쪽을 가로막았다.

    허공지인의 칼날이 멈추지 않고 거대한 보리수의 중앙을 쪼개자 마치 살아 있는 사람의 머리를 반으로 쪼갠 것만 같았다.

    그럼에도 이 일격을 견뎌내지 못한 보리수의 가지들이 연달아 참격을 향해 날아가 온 힘을 다해 막아내려 했다.

    콰직! 콰지직!

    부러지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보리수는 끝내 버티지 못하고 거의 둘로 쪼개졌다.

    이와 동시에, 속도가 조금 느려지고 칼날이 살짝 무뎌진 부광이 마침내 천지 비석에 떨어졌다.

    꽈르릉!

    천지를 뒤흔드는 굉음과 함께 비석은 광망이 크게 흔들렸지만, 부서지지는 않았다.

    “내 기꺼이 후배들을 위하여 앞길을 개척하리!”

    진원자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푸른 빛의 허상으로 변하여 비석으로 한 걸음씩 걸어 들어갔고, 이내 몸이 비석과 하나가 되었다.

    다음 순간, 비석의 푸른 빛이 폭증하면서 떨림이 멈췄고, 한가운데에 공간의 균열이 생겨나면서 한 줄기 하늘빛이 드러났다.

    그 공간 너머는 여전히 싸움이 한창인 장안성이었는데, 그곳은 만신창이가 되어 폐허와도 같았다.

    “여기까지 왔는데 정말로 도망치는 수밖에 없단 말인가?”

    육화명은 공간 균열을 보고는 머뭇거렸다.

    “두 선배께서 목숨을 걸고 쟁취하신 기회이지 않은가…….”

    백소천은 눈시울을 붉히며 힘겹게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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