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1205화 (1,204/1,214)
  • 1205화. 기습

    우르릉거리는 굉음이 법칙 공간 안에서 들려오자 주위의 허공이 강하게 흔들려 하얀 꽃의 바다가 빠르게 흩어졌다.

    잠시 후, 움직임이 전부 사라지자 푸른 공간 법칙도 반짝이며 사라졌다.

    원천강이 모습을 드러냈는데, 옷 곳곳이 찢어진 데다가 피로 얼룩져 다소 엉망이었다.

    미소는 허공에 누워 있었고, 미간에는 구멍 하나가 생겨난 채 기운이 없어 보였다. 도산동 등은 보이지 않았다.

    그때, 미소의 시체 위에서 갑자기 검은색 마문이 나타났고, 뒤이어 검은 도깨비불이 되어 허공으로 사라졌다. 도깨비불 안에 있는 두 개의 하얀 빛에서 두 개의 법칙의 힘 파동이 뿜어져 나왔다. 미소의 환력, 백사(白絲) 법칙이었다.

    원천강이 의아한 표정으로 손을 휘둘러 막으려 했지만, 검은 도깨비불의 속도가 워낙 빨라서 결국 놓쳤다.

    “사사존자!”

    원조와 공선, 육이미후 등 마존들은 이 광경에 안색이 급변했다.

    마족은 지금까지 많은 이가 죽었지만, 대부분 평범한 마물이라 죽어도 대세에는 큰 영향이 없었다.

    하지만 미소의 죽음은 달랐다. 십이마존 중 하나이자 천존 경지인 그녀의 죽음은 마존들의 자신감을 흔들기에 충분했다.

    이 국면을 초래한 가장 큰 변수는 바로 심협이었다. 그가 치우를 막고 있지 않았다면 연맹 대군의 고수는 전부 죽거나 중상을 입었을 것이다.

    원천강의 몸에 초록색 빛이 반짝이자 상처가 사라졌고, 그는 이어서 홍황천기반을 결인했다.

    원조 등 여덟 마존이 구궁도의 빛에 뒤덮이자 현묘한 천기 의념이 이들의 머릿속에 침투했는데, 호체 광망으로도 막지 못했다. 홍황천기반은 천기를 예측하는 법보이고, 천기의 힘으로 만들어진 구궁도는 하도낙서(河島洛書)이기에 어떤 원기나 혼력과도 달랐기 때문이다.

    여덟 마존은 심신이 갑자기 혼란에 빠졌고, 움직임이도 멈췄다.

    진원자가 기뻐하며 오른손을 내리치자 지서가 노란 빛이 되어 땅의 후토만상진으로 들어갔다.

    쾅! 쾅! 쾅!

    거대한 용의 형상 같은 수십 개의 노란 빛이 대진에서 뿜어져 나와 여덟 마존을 휘감아 끌어당겼다.

    경지가 높은 마존들은 금세 의념의 방해에서 벗어나긴 했지만, 그때는 여덟 마존 모두 이미 후토만상진 안에 들어선 후였다.

    대진 전체와 여덟 산에 퍼져 있던 곤토(坤土) 영력이 모조리 이들을 휘감은 거대한 용 같은 노란 빛으로 모여들었다.

    이 거대한 노란 빛은 후토만상진 위력의 결정체로 매우 강력하여 여덟 마존의 힘으로도 한동안 벗어날 수 없었다.

    공선은 대진에 갇혀서 꿈쩍할 수 없게 되자 입을 쩍 벌렸다. 그러자 그의 입에서 노란 빛이 뿜어져 나와 꽂히며 순식간에 법진의 영광을 흔들었다.

    그러나 후토만상진은 이미 신마의 우물, 그것도 두 군데와 연결된 터라 영력이 끊임없이 공급되었고, 영광 진문은 순식간에 원래대로 돌아왔다.

    “후토만상진으로는 오래 가둬두지 못하니 어서 포진하시오!”

    원천강이 외치며 소매를 휘두르자 금색 진도가 나타났다. 바로 현황무극진이었다.

    진원자와 여래 불조, 호천 상제가 서둘러 안으로 들어가 현황무극진을 발동했다.

    수많은 금색 사슬이 대진에서 뿜어져 나와 원조 등의 몸을 휘감았다.

    안 그래도 후토만상진에 갇혀 있던 여덟 마존은 현황무극진의 힘까지 추가되니 더더욱 움직일 수 없게 되었고, 체내의 마기도 반 이상 봉쇄되었다.

    호천 상제가 소매를 휘두르자 아홉 개의 보라색 도장이 나타났다. 생김새는 아무 돌멩이나 골라서 조각한 것처럼 조악했고, 크기도 제각기 달랐다. 유일하게 같은 점이 있다면 각 도장 아래에 오래된 뇌전 부문이 새겨져 있다는 것뿐이었다.

    “혼돈뇌인(混沌雷印)!”

    진원자가 놀란 목소리로 외쳤는데, 얼굴에는 화색이 돌았다.

    혼돈뇌인은 선천지보로, 천도 금책과 마찬가지로 천정의 기운을 제압한 최고의 보물이다. 다만 천책과는 달리 혼돈뇌인은 순수한 살인 선기로, 그 위력은 가히 천지를 파멸할 정도였다.

    “이 보물을 발동하기는 쉽지 않으니 도우들의 뇌전 법칙을 빌려주시오!”

    호천 상제가 두 줄기 금색 뇌전을 손에서 뿜어내며 외쳤다.

    이어서 진원자와 원천강, 여래 불조의 몸에서 뇌전이 반짝이자 현황무극진을 타고 호천 상제의 몸에 집중되었다.

    세 사람의 주된 공법은 뇌속성이 아니었지만, 긴 세월을 살면서 몇 가지 뇌전 법칙은 익힌 상태였다.

    호천 상제의 손에서 뇌전의 힘이 폭증하자 두 줄기 화려한 뇌구가 되었고, 그가 팔을 휘두르자 뇌구들은 혼돈뇌인에 녹아들었다.

    아홉 개의 도장은 뇌광을 크게 번쩍이더니 허공에서 하나로 합쳐져 수십 장 크기의 보라색 대인(大印)으로 변했다. 겉에서는 수많은 보라색 뇌전 부문이 반짝였고, 그때마다 천지를 뒤흔드는 천둥과 번개가 몰아쳤다.

    “여기서 이렇게 죽는 건가? 아니! 난 원조의 환생이다! 이런 곳에서 죽을 것 같으냐!”

    원조는 혼돈뇌인의 무시무시한 위력을 느끼고는 두려웠으나, 이내 분노가 두려움을 제압했다. 그는 본명원기를 태워서라도 대항할 심산이었다.

    한데 그때였다.

    퍽!

    수박 깨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마문으로 가득한 손이 그의 등을 뚫고 배 쪽으로 튀어나왔다.

    원조의 단전이 음한한 기운에 점령되더니 빠르게 온몸으로 퍼졌다. 이를 막아선 법력 또한 순식간에 얼어버렸다.

    눈 깜짝할 사이에 원조 체내의 원기가 기이한 음한의 힘에 통제되면서 홍수처럼 그 손에 흡수되었다.

    “누, 누구냐!”

    신식의 힘을 운공하여 뒤를 돌아본 원조는 이내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를 기습한 자는 바로 마수수였다.

    현재 마수수의 외모는 크게 달라진 상태였다. 본래 하얗던 얼굴에 검은색 마문이 교차했고, 온몸에는 몇 개의 핏빛 띠가 휘감겨 있었다. 두 눈도 붉게 빛나는 것이 마치 마족의 여황(女皇) 같았다.

    마수수의 다른 손은 육이미후의 몸을 관통한 상태였고, 등에서 튀어나온 다섯 개의 검은 마수는 만성 공주와 백정정, 임심모, 공선, 구명 등을 꿰뚫었다.

    일곱 마존의 몸은 빠르게 메말라갔고, 원기는 마수수에게 흡수됐다.

    주위의 허공에 일어난 파동에서 뿜어져 나온 검은 빛도 마수수의 몸에 녹아들었다.

    빛줄기마다 법칙의 힘이 담겨 있었다. 그것은 미소와 괴마왕 등이 죽을 때 몸에서 빠져나와 사라졌던 법칙의 힘이었다.

    마수수의 기운이 빠르게 치솟아 눈 깜짝할 사이에 천존 단계로 돌파했고, 멈출 기세 없이 곧장 대천존으로 향했다.

    “어서 공격하시오! 심 도우가 말하길 마수수는 치우 마혼의 환생이라 했으니 저대로 돌파하게 둬서는 안 되오!”

    원천강이 서둘러 외쳤다.

    “마혼의 환생!”

    호천 상제는 경악하며 혼돈뇌인이 완전히 발동되기도 전에 손을 휘둘렀다. 그러자 보라색 대인이 마수수의 머리 위로 강하게 내려왔다.

    마수수가 초조한 기색으로 두 주먹을 불끈 쥐자 두 개의 검은 불꽃이 타올랐다. 그 안에는 수십 종류의 법칙의 힘이 담겨 있었다.

    그녀가 팔을 휘두르자 타오르던 주먹이 두 개의 희미하고 어두운 허상이 되어 혼돈뇌인을 두들겼다.

    쾅!

    굉음과 함께 뇌광과 불꽃이 폭발해 주위의 모든 것을 휩쓸었다.

    이 충돌로 마수수 등을 묶고 있던 현황무극진의 금색 사슬과 후토만상진의 용 같은 노란 빛, 뇌광과 불꽃은 바로 부서졌고, 허공도 완전히 무너져 가루가 되었다.

    혼돈뇌인은 크게 흔들리며 튕겨 날아갔고, 그 위로 뇌광이 번쩍였다.

    현황무극진 진도 안의 호천 상제를 비롯한 네 사람도 역시 강하게 흔들리며 뒤로 날아갔다.

    네 사람이 몸을 가누기도 전에 검은 그림자가 폭발하는 뇌광과 불꽃에서 빠져나왔고, 순식간에 호천 상제 앞에 나타났다.

    이어 두 개의 희미한 손이 교차하며 허공을 베었다. 그러자 그 손에서 뿜어져 나간 검은색 초승달에서 수십 종의 법칙의 힘 파동이 허공을 무너뜨리며 호천 상제에게로 날아갔는데, 그 속도는 놀라울 정도였다.

    호천 상제는 기겁하여 소매를 휘둘렀다. 그러자 천책이 몸 앞에 나타나 반짝이며 거대한 금색 서책으로 변해 촤르륵 펼쳐졌다.

    천책에서 뿜어져 나온 금빛이 검은 초승달을 휘감아 거두려 했다.

    그러나 금빛은 검은 초승달과 충돌하자마자 반으로 쪼개졌고, 천색의 흡수 신통은 가볍게 사라졌다.

    검은 초승달은 멈추지 않고 날아가 천책에 꽂혔다.

    찍!

    종이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천책이 둘로 갈라졌고, 뿜어져 나오던 금빛은 대번에 어두워졌다.

    “이, 이럴 수가!”

    호천 상제는 경악을 감출 수 없었다. 천책은 천정의 기운을 제압하는 보물로, 비록 방어 선기는 아닐지라도 견고하기 이를 데 없었다. 한데 지금껏 어떤 공격에도 흔적조차 남지 않았던 천책이 반으로 잘린 것이다.

    검은색 초승달은 천책을 가른 뒤에도 속도가 전혀 줄어들지 않은 채로 호천 상제의 몸을 지나갔다.

    호천 상제의 몸이 둘로 갈라지면서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그러나 천정의 주춧돌이라 할 만한 그가 이토록 허무하게 죽을 리가 없었다. 갈라진 몸이 펑 하며 폭발하자 몇 가닥의 금빛이 옆으로 날아갔다.

    “호천 도우!”

    원천강와 여래 불조, 진원자 등은 깜짝 놀라 서둘러 현황무극진으로 이 금빛을 보호했고, 빠르게 물러갔다.

    그때, 검은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일고여덟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였다. 외모는 마수수와 매우 닮았고, 어두운 갑옷을 걸치고 있었다. 미간에는 혈홍색 정석이 박힌 채 요사스러운 빛을 번쩍였다.

    휙! 휙!

    두 번의 날카로운 소리가 뒤에서 들려오더니 두 사람의 그림자가 파괴적인 뇌전 불바다에서 빠져나왔다. 공선과 구명, 두 명의 천존이었다.

    두 사람의 기운은 현저히 쇠약해져 진선기 수준에 불과했다.

    구명은 온몸이 그을려 피부가 거의 벗겨진 채 뼈대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가 뼈를 단련하는 비술을 익힌 것인지 아니면 어떤 보물을 지니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온몸의 뼈대는 질감이 넘쳤고 검은 영문이 가득했다. 아마도 이 수단 덕에 간신히 살아남은 것 같았다.

    공선도 다르지 않았다. 인간 모습으로 변해 있었지만, 몸에는 미약한 오색 빛이 반짝였다.

    공선은 분노한 눈으로 여자아이를 노려봤다. 상대는 자신을 해치려 했다. 뿐만 아니라 치우가 이렇게 나온다는 것은 자신과의 약속을 지킬 마음이 없다는 뜻. 다시 말해 자신의 아내를 구해줄 생각이 없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공선, 날 따라오게. 내게 자네 부인을 구할 방법이 있네.”

    구명의 쉰 목소리가 갑자기 그의 머릿속에서 울려 퍼졌다.

    공선이 당황하여 구명을 돌아봤다.

    구명은 말없이 하늘을 올려다보고는 돌아서서 멀리 달아났다.

    공선은 잠시 망설이다가 그 뒤를 따랐다.

    여자아이는 두 사람을 무시한 채 원천강 등을 향해 내달렸다.

    이때, 그녀의 눈앞이 노란 빛이 반짝이더니 진원자의 지서가 허공으로 솟아올랐고, 수많은 노란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황색 그물이 되어 여자아이를 뒤덮었다. 커다란 그물에서 수많은 황색 부문이 솟구쳐 나와 강력한 법칙의 힘을 뿜어냈다.

    여자아이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소매를 휘둘렀다. 그러자 날개 같은 청, 황, 적, 흑, 백의 오색 빛줄기가 튀어 나왔는데, 공선의 오색 신광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