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3화. 전세(戰勢)의 급변
그림이 순식간에 땅속으로 녹아 들어가자 공간 검진의 지형에 갑자기 천지개벽할 변화가 일어났다. 높은 산들이 솟아나고 수많은 강이 생겨나 콸콸콸 흘렀다.
거대한 산이 거마들 한가운데 솟아나 이들이 만든 원형의 진도를 완전히 찢어버렸다. 거마들은 그 충격에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그들이 몸을 가누기도 전에 심협이 소매를 휘두르자 공간이 다시 은빛으로 빛나며 모든 것을 뒤덮었다.
눈앞이 은빛으로 가득해졌다가 다시 정신을 차린 금빛 얼굴 거마가 주위를 둘러보니 완전히 낯선 곳이었고, 자신뿐이었다. 다른 거마는 보이지 않았고, 신식을 펼쳐도 무엇도 감지할 수 없었다.
이 거마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81명의 거마가 함께 있으면 두세 명의 천존 수사도 상대할 수 있지만, 개개인은 태을 중기 정도의 실력일 뿐이었다.
무슨 신통을 부리려는지, 거마의 전신에서 노란 빛이 번쩍이기 시작했다.
한데 그때, 검명이 울려 퍼지더니 근처에 있던 칼날이 다시 희미한 검기를 뿜어냈다. 검은 바로 내려오지 않고 허공에서 눈 깜짝할 사이에 백 장 크기의 붉은색 검의 허상이 되더니 무시무시하고 날카로운 검의를 뿜어냈다.
금빛 얼굴의 거마는 머리 위에 나타난 붉은 검의 허상을 보고는 기겁하여 술법을 펼칠 겨를도 없이 멀리 날아가면서 양손으로 동시에 허공을 움켜쥐었다.
쾅! 쾅! 쾅!
굉음과 함께 땅에서 거대한 모래 폭풍이 일어나 그를 완전히 뒤덮었다.
거마의 몸이 노란 빛으로 번쩍였고, 모래 폭풍으로 분해되어 땅속으로 들어갔다.
그 순간, 거대한 공간 법칙이 사방에서 몰려와 사막으로 변한 그 거대한 몸을 다시 끌어모아 원래 모습으로 돌이키려 했다.
금빛 얼굴의 거마는 몸부림쳤지만, 소용없었다.
픽!
가벼운 소리와 함께 길이 백 장의 거대한 검 허상이 번개처럼 날아와 단숨에 이 거마의 머리를 관통했다.
거마는 머릿속의 신혼이 완전히 소멸하자 몸을 크게 떨었고, 그 거대한 몸은 이내 석상처럼 쓰러졌다.
붉은 검의 허상은 지체없이 날아 순식간에 천 리 바깥의 어딘가, 다른 구려 거마의 머리 위에 나타났다. 바로 뿔이 둘 달린 거마 위였다.
칼날에서 뿜어져 나온 검기는 붉은 검의 허상으로 녹아들면서 이 검의 허상은 두 배로 커졌고, 속도도 배로 빨라져 붉은 환영이 되어 거마의 몸을 관통했다.
이각(二角) 거마도 신혼이 소멸하며 쓰러졌다.
붉은 검의 허상은 점점 멀리 날아가는 동안 흡수한 검기를 강하게 뿜어내 눈 깜짝할 사이에 세 마리의 거마를 더 죽였다.
그때였다.
쾅!
굉음과 함께 검진 공간이 크게 흔들리더니 은색 공간에 겹겹의 주름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콰직!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검은색 팔이 공간을 뚫고 검진 안으로 들어왔다.
‘가능할까?’
이를 본 심협은 차갑게 웃더니 소매를 휘둘렀다. 그러자 검은색 팔은 주위의 허공이 얼어붙어 그대로 갇히고 말았다.
심협이 다른 손을 결인하자 검진 공간에서 수많은 칼날이 뿜어져 나왔고, 하나하나가 환상 같은 검의 허상이 되어 폭풍우처럼 남은 76마리의 구려 거마에게로 떨어졌다.
구려 거마들은 눈빛이 어두워졌고, 이내 목숨을 잃고 쓰러졌다.
한편, 이 무렵 검진 공간 밖에서는 팔을 검진 공간 안으로 넣은 치우의 몸에서 마기가 크게 치솟았다. 그는 분노했는지 표정이 급변했다.
그가 포효하자 몸의 검은 빛이 오른팔로 모여들어 검진 공간에 쏟아졌다.
거대하기 그지없는 검은색 태양이 검진 안에 나타나 공간을 뒤덮더니 검은 빛을 강하게 내뿜어 얼어붙은 허공을 가볍게 무너트렸다.
이를 본 심협은 얼른 발아래를 발로 박찼다. 그러자 검진 공간에서 분리되어 나온 산하사직도가 검진 공간 밖으로 날아가더니 반경 수십 리 크기의 거대한 그림으로 변해 서북쪽의 커다란 산을 공격하는 마족 대군 발밑으로 뻗어 나갔다.
이를 본 마족 대군은 어리둥절했다.
검진 공간 안에서 쾅 하는 굉음과 함께 검은 태양이 폭발하려 했다. 그런데 태양이 완전히 폭발하기 전에 근처 공간에서 은빛이 크게 번쩍이며 성난 파도와 같은 공간 법칙이 몰려왔다.
순간, 거대한 검은 태양이 번쩍이더니 순식간에 사라졌다가 서북쪽 마족 대군 앞에 나타났다.
검은 태양이 완전히 폭발하자 거대한 연기가 하늘 높이 치솟았고, 하늘을 찌르는 검은 폭풍이 일어났으며, 수많은 검은 마염이 휘몰아쳐 마족 대군을 휩쓸었다.
폭풍에 몸이 휩쓸린 마군은 몸이 찢겨 나갔고, 다시 검은 마염에 휘감겨 잔해조차 남지않고 사라졌다.
황색 산의 금제도 검은 폭풍에 휩쓸려 위에 어지러운 물결무늬가 떠올랐고, 본래 두꺼웠던 금제 광막이 절반이나 얇아졌다.
마수수와 임심모는 섭채주와 백소천이 이 틈에 마족을 공격하지 못하도록 멀리 끌어내 검은색 폭풍에 휩쓸리지 않았다. 네 사람은 놀라운 광경에 약속이라도 한 듯이 잠시 싸움을 멈췄다. 다만 섭채주와 백소천이 의아한 표정이었다면 마수수와 임심모는 얼굴이 어두워졌다.
이 마족 병사들은 그녀들의 수하라 할 수 있는데 한꺼번에 이렇게 몰살당했으니 나중에 어떤 벌을 받을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치우는 그녀들의 실력을 끌어올리는 데 인색하지 않았지만, 잘못을 저지른 수하에게는 조금의 용서도 없었다.
그때, 누군가가 휘몰아치는 검은 폭풍에서 빠져나왔다. 얼굴이 먼지투성이가 된 심협이었다.
81자루 순양검이 그의 주위를 맴돌았는데, 비검들은 적지 않은 손상을 입은 듯 붉은 빛이 어두워진 상태였다. 먼 곳의 검진 공간은 이미 사라져 보이지 않았다.
삼계 최강의 공간 법보인 산하사직도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신통들이 있었는데, 방금 그는 그중 공간전이(空間轉移)를 사용하여 제때 검은 태양을 밖으로 옮겼다. 그럼에도 순양검들은 검은 태양의 폭발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심협은 순양검들을 거뒀고, 산하사직도도 재빨리 줄여 소매에 넣었다.
그는 섭채주에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하늘 높이 올라갔고, 치우가 뒤를 쫓았다. 치우와 그는 땅과 가까운 곳에서 싸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잔상이 되어 다시 허공으로 사라졌다.
심협이 나타났다가 사라진 것은 아주 잠깐이었기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알지 못하는 사람이 많았다.
“심협 선배께서 거마들을 죽이셨다! 연맹은 승리한다!”
사타령의 한 코끼리 요괴가 흥분한 목소리로 외쳤다. 그의 외침은 파도처럼 장안성과 근처에 있는 여덟 개의 산에까지 퍼졌다.
“반드시 이긴다!”
“반드시 이긴다!”
“연맹은 승리한다!”
연맹 대군의 사기가 크게 올라갔고, 후토만상진의 운공은 더욱 빨라져 마족 대군을 전부 막아냈을 뿐만 아니라 또 많은 공격을 튕겨내기 시작했다.
이 광경을 본 진원자는 허공의 공격을 막아내며 아래쪽을 향해 결인했다. 그러자 서북쪽 산의 금제 광막이 쩍 갈라지면서 몇 개의 출구가 생겨났다.
서북쪽 밖의 마족 대군은 전멸했기에 산 안의 연맹 수사들은 숨통이 트였다.
전세가 급변할 때는 아주 작은 변수도 결과에 큰 영향을 주게 마련이다.
광막 뒤의 연맹 대군은 곧바로 장안성을 공격하는 마족 대군을 향해 돌진했다. 수많은 법보와 법술이 폭풍우처럼 쏟아졌다.
지상의 마족 대군은 미처 대비하지 못하고 있다가 뒤에서 적을 맞이하였기에 큰 혼란에 빠졌고, 순식간에 수많은 마병이 죽어 나갔다.
“당황하지 마라! 진형을 갖추고 진각을 보호하라!”
괴마왕이 당황한 목소리로 명을 내쳤다.
동시에 그의 열천부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검은 무지개가 되어 연맹 대군에게로 떨어졌다.
“귀 도우, 제가 돕겠습니다!”
지용 부인이 옆에서 날아오더니 소매에서 하얀 빛을 쏘았다. 이 빛은 거미줄이 되어 연맹 대군에게로 날아갔다.
“고맙소.”
귀마왕이 기쁜 목소리로 감사를 전했다.
무저동의 동주인 지용 부인은 경지가 절정에 달해 괴마왕보다 약하지 않았고, 무저동의 신통은 괴이하여 귀마왕도 놀랄 정도였다.
공격해 오는 연맹 대군은 수가 적지 않지만, 절정의 고수는 없다. 그러니 지용 부인의 도움을 받는다면 반드시 막아낼 수 있을 터였다.
한데 그때, 하얀 거미줄이 갑자기 방향을 바꾸더니 귀마왕의 머리 위를 뒤덮었다.
“무, 무슨 짓이냐!”
안색이 급변한 귀마왕의 몸에서 검은색 번개가 번쩍이더니 검은색 뇌전이 되어 옆으로 빠져나갔다. 이것은 치우가 그에게 하사한 살뇌(煞雷) 법칙으로, 정통 뇌전 법칙이 아니나 그의 경지로는 뇌둔술을 펼치는 데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지용 부인의 발밑에서 노란 빛이 번쩍였고, 그녀는 토둔술로 그곳에서 사라졌다.
뒤이어 귀마왕의 뇌전 앞 땅에서 갑자기 황운(黃雲)이 뿜어져 나오더니 지용 부인이 나타나 주먹을 휘둘렀다.
그녀의 주먹 주위에 나타난 산의 허상이 뇌전을 강하게 두들기자 산과 바다를 뒤집을 듯한 힘이 솟아나 괴마왕의 뇌둔술을 순식간에 깨트렸다.
무저동 종문은 지맥 깊은 곳에 있어 토속성 신통에 뛰어났고, 토둔술만 따지고 보면 삼계에서 따를 곳이 없었다.
괴마왕은 몸에서 검은 뇌전을 폭발시키며 술법을 시전하려 했다.
그러나 지용 부인이 앵두 같은 입술을 살짝 벌리자 입에서 갑자기 분홍색 안개가 뿜어져 나와 괴마왕의 몸을 뒤덮었다.
괴마왕은 바로 숨을 참았지만, 이미 달콤한 냄새가 코를 타고 들어온 터였다. 다음 순간, 그는 나른해졌고, 몸의 검은 뇌전도 사라졌다.
하얀 거미줄이 마치 그물에 걸린 대어처럼 괴마왕의 몸을 뒤덮었다.
지용 부인은 가볍게 미소를 짓더니 고운 손으로 아래를 향해 결인했다. 그러자 하얀 거미줄마다 얼음처럼 차가운 하얀빛을 뿜어내며 꽉 조여왔고,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괴마광은 몸이 사분오열되어 수십 개의 살점으로 흩어졌다.
그 틈에서 검은 빛이 빠져나와 밖으로 날아가려 했지만, 하얀 그물에 닿자마자 바로 겹겹이 둘러싸였다.
“이혼화골(移魂化骨)은 육신보다 신혼을 가두는 데 더 뛰어나답니다.”
지용 부인의 손에서 칠흑 같은 유광이 뿜어져 나오더니 검은색 손이 되어 괴마왕의 신혼을 내리쳤다.
펑!
굉음과 함께 괴마왕의 신혼이 소멸했다.
이것은 무저동의 경혼장(驚魂掌), 신혼을 소멸시키는 신통이었다.
한데 그 순간, 괴마왕의 부서진 신혼에서 흑홍색 도깨비불 같은 것이 빠져나오더니 순식간에 허공으로 사라졌다. 지용 부인도 미처 막지 못했다.
그녀는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그 흑홍색의 도깨비불에서 두 개의 법칙의 힘 파동이 느껴졌다. 하나는 괴마왕이 본래 수련했던 염화(炎火) 법칙, 다른 하나는 치우가 하사한 뇌살 법칙이었다.
한데 이 두 법칙의 힘은 어떻게 갑자기 나타났으며 왜 허공으로 사라진 것일까?
지용 부인이 괴마왕을 죽이기까지는 그야말로 순식간이었기에 다른 사람들은 미처 끼어들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한편, 멀리서 이를 본 구명은 깜짝 놀라면서도 입에서 검은 빛줄기를 쏘아 보냈다. 그 빛줄기는 번쩍이더니 수백 개의 작은 빛줄기로 나뉘어 호천 상제를 공격했다.
호천 상제의 금색 옷은 놀라운 이보라, 만 줄기의 하광이 솟아오르더니 구명의 공격을 막아냈다. 그러나 충돌의 충격에 뒤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구명은 이 틈에 검은 잔상이 되어 아래로 내려갔다.
“아직 승부가 나지 않았는데 어딜 가려는 겐가?”
앞의 허공에서 금빛이 반짝이더니 호천 상제가 귀신처럼 나타나 껄껄 웃으며 허공을 결인했다.
금색 서책, 천책이 허공에 나타나 촤라락 펼쳐지자 허공이 순식간에 금빛으로 물들었다.
날아가던 구명은 금빛과 충돌하자 펑 하는 굉음과 함께 뒤로 날아갔다.
“호천 상제, 지용 부인은 당신들 지시로 투항한 것이었나? 비겁하다!”
구명이 화를 냈다.
“구려 거마들을 땅속에 떼로 숨겨놨던 치우는 어떻고? 우리는 그저 악인에는 악인의 방법으로 대항했을 뿐일세.”
호천 상제가 손을 내밀자 수많은 금련과 금운이 허공에 나타나 구명에게 달려들었다.
미소와 육이미후, 마수수 등의 마존도 내려가려 했지만, 연맹의 대능들에게 막히고 말았다.
그사이 장안성 옆의 마족 대군은 싸우는 것조차 잊고 멍하니 서 있었다. 지용 부인과 괴마왕 모두 자신들의 수령인데 어째서 둘이 싸웠단 말인가!
“지용 부인, 치우님을 배신하고 인간족에 붙은 것이냐!”
도산설이 분노한 목소리로 호통쳤다.
한데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칠흑 같은 창이 귀신처럼 그녀 뒤에 나타나 날카로운 기세를 뿜어내며 그녀의 단전을 찔러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