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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1200화 (1,199/1,214)
  • 1200화. 세상만사 뜻대로 되지 않는다

    백정정의 오른손에서 하얀 한광이 강하게 빛나더니 수많은 얼음 결정이 섞인 끝없는 한파로 변하여 백영롱을 향해 휘몰아쳤다.

    한파가 지나가는 곳마다 천지영기든 공간 파동이든 전부 얼어붙었다.

    “대한빙(大寒氷)!”

    백영롱이 흠칫 놀라더니 재빨리 한 손을 뒤집자 보라색 조롱박, 만독호로가 그녀의 손에 나타났다.

    그녀는 재빨리 이 조롱박을 던지며 결인했다. 그러자 이 호로가 회전하며 수많은 보라색 부문이 떠오르더니 갑자기 백 배로 커져 작은 산만 한 조롱박으로 변했다.

    조롱박 주둥이에서 보라색 빛이 강하게 번쩍이며 안에서 보라색 독기가 뿜어져 나와 순식간에 하늘을 뒤덮는 독운이 되었다.

    “가라!”

    백영롱이 소매를 휘두르며 외치자 보라색 독운은 곧장 몰려오는 한파를 휩쓸었다.

    콰쾅!

    두 개의 강렬한 기운이 충돌하자 천둥 같은 굉음이 울려 퍼졌고, 폭음과 함께 하얀색과 보라색의 눈부신 광망이 폭발했다.

    백정정의 한광에는 극한의 한기가 담겨 있어서 모든 것을 얼리는 반면 보라색 독운은 모든 것을 침투했다.

    두 개의 기운이 격렬하게 충돌하자 한기와 독운은 용과 호랑이처럼 싸웠고, 도와 검이 되어 충돌하며 미친 듯이 서로를 침투하였다. 승부는 오래 이어질 것이 분명했다.

    * * *

    서북쪽 거대한 황색 산 앞. 임심모는 백정정과 백영롱의 전투에서 시선을 거뒀는데, 눈에는 놀라움이 가득했다.

    ‘백정정 조사님이 여아촌 백영롱과 자매였을 줄이야! 그래서 여아촌과 반사동의 신통이 비슷했던 건가?’

    그러나 그녀는 바로 마음을 다잡고 멀지 않은 곳을 돌아봤다.

    백소천과 섭채주가 허공에 서서 자신과 마수수 앞을 막고 있었다.

    서로를 바라보는 섭채주와 마수수의 눈에는 다른 것은 들어오지 않았다.

    임심모는 두 사람 사이의 일을 들어서 알고 있었기에 이 광경을 보자 머리가 아팠다.

    장안성의 전쟁은 인선 두 종족과 마족의 운명이 걸려 있어서 생사를 건 싸움이 될 것이고, 누가 이기고 지든 뼈아픈 대가를 치르게 될 터였다. 그녀가 마수수를 끌어들인 것은 이 전쟁에서 살길을 도모하기 위함이었다.

    한데 지금 상황을 보니 마수수는 초심을 까맣게 잊은 듯했다.

    “백 도우, 오랜만이네요.”

    임심모가 생각을 거두고는 백소천을 돌아보며 방긋 웃었다.

    “임 도우, 정말로 마족의 존자가 된 겁니까?”

    백소천은 진즉부터 임심모를 마음에 두고 있었기에 복잡하고 씁쓸한 목소리로 물었다.

    “어쩌다 보니 마족의 묘토존자의 자리까지 올라왔네요.”

    임심모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째서요?”

    백소천이 한숨을 쉬고는 물었다.

    “인생은 뿌리 없는 평초(萍草) 같고 운명은 들풀 같으니, 역시 세상만사 뜻대로 되는 법이 없네요. 그때 동해에서 헤어질 때는 이런 상황에서 다시 만나게 될 줄 몰랐는데, 하늘도 무심하군요.”

    임심모는 끝없는 낙담이 깃든 듯한 한숨을 내쉬었다.

    백소천은 이 한숨을 듣자 안 그래도 복잡한 심경이 더 복잡해져서 마치 쓰디쓴 약을 한 사발 마신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 순간, 그는 갑자기 머릿속이 흐릿해지더니 술에 취한 것처럼 눈빛 역시 흐려졌다.

    “정신 차려요!”

    이때, 경종과 같은 외침이 귓가에 울려 퍼지며 심신을 뒤흔들었다. 동시에 금빛 벽이 백소천 앞에 나타나 임심모의 시선을 막았다.

    임심모가 눈살을 찌푸리자 눈 깊은 곳에서 반짝이던 유광(幽光)이 깨진 것처럼 흩어졌다.

    섭채주는 여전히 마수수와 마주 보고 있었지만, 그녀의 손이 금빛으로 빛날 때마다 백소천 앞의 금빛 벽이 호응하듯이 반짝거렸다. 방금 백소천을 깨우고 금빛 벽을 설치한 것도 그녀였다.

    백소천이 움찔하더니 그제야 정신 차리고 이마의 식은땀을 닦았다.

    “고맙소, 섭 도우.”

    그는 섭채주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저 여인은 그때의 그 임심모가 아니에요. 제가 잘못 본 게 아니라면 그녀는 마족의 야무경성을 익힌 게 분명해요. 과거 치우의 총비 천매(天魅)가 창안한 마공으로,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다른 사람을 매혹할 수 있어요.”

    섭채주가 심협에게서 전해 들었던 백소천과 임심모 사이의 일을 떠올리며 전음을 보냈다.

    “알겠소.”

    말은 마친 백소천을 눈을 감았고, 다시 떴을 때는 평정심을 되찾은 후였다.

    찬란한 금빛이 그의 몸에서 빛나더니 금색 법상으로 변하여 모든 마(魔)를 소멸할 법한 금강의 기운으로 충만해졌다. 화생사의 신통, 금강복마(金剛伏魔) 법상이었다.

    실오라기 같은 검은 기운이 그의 머리에서 뿜어져 나왔다. 이는 그의 체내에 침입했던 천매의 힘이 빠져나오는 것이었다.

    “보타산과 화생사의 불문 신통은 영산과 다르지만 그래도 역시 대단하군요. 호호호!”

    임심모가 찌푸렸던 눈살을 바로 펴더니 간드러지게 웃으며 말했다.

    섭채주는 그 말을 듣자 눈빛이 흔들렸다. 무족의 혈맥을 각성한 이후로 그녀는 주로 무족의 힘을 수련하느라 보타산의 도법 수련은 줄어들었다. 방금 그 금빛의 벽은 보타산의 정심(定心) 신통이지만, 그 안에는 십이조무의 힘이 담겨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임심모의 야무경성을 이리 쉽게 막아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굳이 설명하지 않고 그저 소매를 휘둘렀다. 그러자 금빛 벽이 조용히 사라졌다.

    “마수수, 당신의 일은 오라버니께 들은 적이 있어요. 어째서 마족 휘하에 들어간 거죠? 부친의 복수를 위해서인가요?”

    그녀가 마수수를 돌아보며 말했다.

    마수수는 ‘오라버니’라는 말에 수 없는 분노가 솟아났다.

    “심협은 내 부친을 죽였다. 한데 내가 복수를 하면 안 되는 건가?”

    “경하 용왕은 마족과 결탁하여 당의 황제를 죽이려 했고 또 장안성 수백만 명의 백성을 혈제의 희생양으로 삼아 대당의 용맥을 빼앗으려 했어요. 그런 미치광이는 오라버니가 아니라도 조금의 양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도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지 않았을 거예요.”

    마수수도 경하 용왕의 그런 행동에 찬성하지는 않았기에 섭채주의 일갈에 마음이 쓰렸다.

    “남의 고통을 겪어 보지도 않고 위선 떨지 마라! 너와 심협은 정도를 걸으니 천성적으로 양지에서 살았겠지만, 나와 아버님은 사도로 몰렸으니 평생 음지에서 살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정(正)과 사(邪)는 공존할 수 없으니 더 할 말이 뭐가 있겠느냐! 결판을 짓자!”

    마수수는 날카롭게 외치더니 오른손으로 허공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손에서 검은 빛이 뿜어져 나왔는데, 이 빛에는 검은색 기검(奇劍)이 들어 있었다. 바로 경하 용왕의 참룡검이었다.

    아직 천존 경지에 도달하지는 못했지만, 마수수 역시 경지가 크게 정진한 데다 신통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높아져 참룡검의 위력을 온전히 발휘할 수 있었다. 이 검이 지나는 곳마다 공간마저 무너졌다. 참룡검은 무시무시한 속도로 순식간에 섭채주의 몇 장 앞까지 다가왔다.

    섭채주는 내심 놀랐으나, 침착하게 소매에서 열두 개의 검은 빛을 쏘아 보냈다. 열두 개의 도천신살진기였다.

    열두 개의 진기에 이어 검은 빛까지 연결되자 두꺼운 검은색 광막이 만들어졌다.

    광막은 참룡검에 베여 크게 잘렸지만, 참룡검 역시 일순 멈춰 섰다.

    그 순간, 섭채주가 오른손을 내밀자 약목신공이 나타났고, 거대한 금빛 화살이 날아가 참룡검과 충돌했다.

    꽈르릉!

    굉음과 함께 금색 태양이 떠올라 참룡검을 날려버렸다.

    백소천은 이 모습을 잠시 지켜보다가 짧게 결인했다. 그러자 금강복마 법상의 오른손이 금빛을 뿜어내며 임심모를 향해 날아갔다. 법상의 손바닥에서 찬란하기 그지없는 만(卍)자가 떠오르자 사방이 찬란한 금빛의 바다로 변했다.

    임심모는 양손을 살짝 폈다. 그러자 그녀의 몸이 버드나무 가지처럼 흔들리면서 간발의 차이로 금강복마 법상의 일격을 피했다.

    휙!

    하얀 빛이 그녀의 손에서 번개처럼 뿜어져 나가 뱀처럼 금강복마 법상을 지나쳐 곧장 백소천에게로 날아갔다. 이 빛은 쫙 펼쳐져 하늘을 뒤덮는 하얀색 그물처럼 백소천을 뒤덮었지만, 그의 금강저에 쉽게 막혀버렸다.

    네 사람은 서로 격렬하게 싸우기 시작했다.

    다른 네 개의 산에서도 네 명의 마존인 구명과 미소, 육이미후, 만성 공주가 연맹의 고수에 막혀 격전을 치르고 있었다.

    구명을 막은 것은 호천 상제였고, 미소는 원천강에 막혔다. 육이미후와 싸우는 자는 여래 불조였고, 만성 공주의 상대는 소백룡과 문수, 보현 세 보살이었다.

    마족 대군에는 구대마존 외에도 많은 태을 경지의 고수가 있었기에 소부자와 오홍, 부동래, 무만아, 강신천, 언무사 등이 흩어져서 이들을 상대했다.

    삼계의 모든 고수가 총집결해 벌이는 전투에 장안성 상공에서는 수많은 법보 광망이 격렬하게 충돌하며 경천동지할 위능을 뿜어냈다.

    허공은 부서져 엉망이 되었고, 수많은 공간의 폭풍이 그곳에서 뿜어져 나와 곳곳을 휩쓸었다.

    장안성은 후토만상진에 뒤덮여 있어서 다행이었지, 그러지 않았으면 수백 번은 부서졌을 것이다.

    이 무렵, 장안성 상공 매우 높은 곳, 심협과 치우는 두 개의 잔상이 되어 격렬하게 싸우면서 점점 높이 올라가 이미 구천(九天)에 도달해 있었다.

    대천존인 두 사람이 움직일 때마다 천지의 힘이 끌려와 천지가 파멸될 것만 같았다. 이에 두 사람은 각자 아군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힘을 아껴야 했다.

    그러나 이제 구천에 도달했으니 두 사람 모두 전력으로 맞붙을 수 있게 됐다. 공격할 때마다 반경 백 리의 허공이 무너졌고, 구천의 강풍(罡風)도 쉽게 부서져 수많은 광풍이 되어 사방으로 휘몰아쳤다.

    콰쾅!

    격렬한 충돌과 함께 두 사람 모두 뒤로 튕겨 나가며 싸움이 잠시 멈췄다.

    심협과 치우 모두 여러 군데 상처를 입은 상태였다. 심협은 가슴에 커다란 두 개의 상처를 입었는데, 여기서 뿜어져 나온 피로 몸 절반이 물들었다.

    치우는 왼쪽 팔이 잘려나가 최소한 겉으로 보기에는 더 처참했다.

    심협이 황제내경을 운공하자 몸이 초록색으로 번쩍이며 가슴과 복부의 상처가 순식간에 치료됐다.

    치우의 왼쪽 팔 역시 검은 빛이 반짝이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새로운 팔이 자라났다. 심협보다도 오히려 더 빠르게 회복을 마쳤다.

    ‘그 어떤 상처도 순식간에 회복한다는 진마불멸지체 인가? 역시 대단하군.’

    심협은 내심 감탄했다.

    “보아하니 헌원의 전승을 얻어 황제내경을 대성한 것 같지만, 애석하게도 아직 공법의 최고 경지인 선령불사신(仙靈不死身)은 익히지 못한 모양이구나. 그렇지 않았다면 회복 능력이 내게 밀리지 않았을 것이다.”

    “선령불사신…….”

    심협은 처음 듣는 이름에 눈빛이 반짝였다.

    그 순간, 그의 등 뒤에서 그림자가 일렁이더니 시커먼 마조가 나타나 단전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이 마조에서는 아무런 기운도 느껴지지 않아 어떤 종류의 신통 효과인지 알 수 없었다.

    심협은 마조가 등에서 반 척 떨어진 곳까지 온 후에야 섬뜩함을 느끼고는 몸에서 은빛을 강하게 뿜어내며 환상으로 변하여 옆으로 재빨리 피했지만, 결국 살짝 스치고 말았다.

    왼쪽 허리춤에 뼈가 보일 정도의 상처가 생기면서 피가 튀었다.

    이 마조에는 맹독이 담겨 있던 탓에 상처는 검게 물들더니 빠르게 퍼져 나갔고, 대천존의 경지임에도 심협은 어지럽고 눈앞이 핑 돌았다.

    심협은 계속해서 거리를 벌리며 동시에 황제내경으로 체내의 맹독을 억제했다.

    “크하하하! 도망쳐보거라!”

    치우가 미친 듯이 웃으며 바짝 쫓아오더니 입에서 뭔가를 뱉었다.

    그러자 길이게 만 장에 이르는 핏빛 폭탄이 쏜살같이 날아와 심협의 퇴로를 전부 차단했다.

    이 핏빛 폭탄은 강력한 풍압을 내뿜었고, 귀청을 찢을 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심협은 당황하지 않고 흡수 법칙을 시전하여 손을 내밀었다. 우선은 맹독의 침투를 억제하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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