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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1199화 (1,198/1,214)
  • 1199화. 각개격파

    그 무렵, 비틀거리던 치우가 멀쩡하게 몸을 가누었고, 마족들은 그제야 안도했다.

    “심협은 내가 상대할 테니 너희는 장안성 부근에 있는 여덟 개의 산을 부숴라. 그곳에 법진의 진추가 있을 터이니 그곳만 부수면 이 대진을 파훼할 수 있을 것이다.”

    치우가 빠르게 명령을 내리고는 검은빛이 되어 심협을 향해 달려들었다.

    금, 흑 두 개의 금망이 격렬하게 충돌하며 하늘 높이 올라갔다.

    아홉 마존은 바로 사방으로 흩어져 여덟 개의 황색 산으로 날아갔다.

    공선과 구명, 원조, 미소, 육이미후, 마수수, 만성 공주, 백정정이 각자 하나씩 맡아서 날아갔으나, 임심모는 다른 여덟 명이 날아간 것을 지켜본 뒤에야 하얀 빛이 되어 마수수의 뒤를 쫓아갔다.

    마수수는 임심모가 따라오는 것을 느끼고는 돌아봤다.

    십이마존은 모두 치우의 휘하이지만, 대체로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 오히려 적대심이 더 큰 경우가 많았다.

    마수수가 마족에 가담한 것은 마족의 힘을 빌려 부친의 복수를 하기 위함이었기에 다른 마존들과 교류가 적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임심모가 접근해오니 경계심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진룡존자, 당신과 나 또한 마족이 되긴 했지만 우리는 뒤늦게 합류한 탓에 저 몇만 년을 산 늙은 요괴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만약 오늘 누군가가 죽는다면 그건 당신과 내가 될 가능성이 크죠. 그러니 오늘은 손을 잡는 게 어떻습니까?”

    임심모는 마수수의 경계심에도 신경 쓰지 않고 웃으며 전음을 보냈다.

    “손을 잡자고요? 당신처럼 속을 모르는 사람과는 친하게 지내고 싶지 않군요.”

    마수수는 단칼에 거절했다.

    임심모가 마족에 가담했을 때, 치우는 그녀의 자질에 맞게 야무경성(夜舞傾城)을 부여했다. 이는 매혹술로, 적의 신지를 조종하여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걸어 다니는 시체로 전락시키는 매우 무서운 마공이었다.

    마수수는 임심모의 이 마공을 몇 번 본 적이 있었기에 그녀를 꺼렸다.

    “최악의 적을 눈앞에 두고 제가 어찌 제게 불리한 일을 하겠습니까? 저는 정말로 마 도우와 힘을 합쳐서 이 난관을 극복하고 싶다고요. 그래도 안심이 안 된다면 이걸 드리죠, 그럼 제 성의를 믿을 수 있을 겁니다.”

    임심모가 손가락을 튕기자 하얀 빛이 마수수 앞으로 날아갔다.

    마수수가 손을 올리자 엄지손가락만 한 하얀색 구슬이 나타났다. 이 구슬은 옥처럼 영롱하여 가슴속까지 상쾌해지는 것 같았다.

    그녀는 의외라는 기색이었다. 이 하얀색 구슬은 정심선주(靜心禪珠)로, 상고의 비보(祕寶)라 할 만하다. 심신을 안정시키고 심령의 침투를 막아내는 효과가 있어서 임심모의 야무경성과는 상극이었다. 이런 비보를 준 것을 보면 임심모에게는 정말로 다른 마음이 없는 것 같았다.

    “묘토존자가 진심으로 손을 잡고 싶다고 하니 더는 거절할 수 없겠군요.”

    마수수는 정심선주를 챙기며 말했다.

    임심모는 환하게 웃고는 속도를 높여 마수수와 나란히 날아갔다.

    이 무렵, 마족 대군도 여덟 부대로 나뉘어 구대마존의 뒤를 쫓아 기세등등하게 거대한 산으로 돌진했다.

    이 광경을 본 원천강 등은 빠르게 상의한 뒤 구대마존을 막기 위해 흩어졌다.

    마족 대군 중 치우 다음으로 경지가 높은 자답게 공선이 가장 빨랐다. 그는 순식간에 동쪽에 있는 황색의 거대한 산 앞에 나타났다.

    이곳의 거대한 산은 5만 명에 이르는 연맹 수사가 지키고 있었다. 산에는 후토만상진 외에도 여러 금제가 빼곡하게 배치되어 있었다.

    공선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요족의 대성인 그는 인선마의 전쟁에 관심이 없었다. 그저 자신의 부인을 부활시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치우의 힘을 빌려야 했던 것뿐이다.

    그가 손으로 허공을 긋자 다섯 줄기의 거대한 빛이 하늘에서 내려와 황색 금제를 공격했다.

    찍!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거대한 산의 금제 몇 겹이 종잇장처럼 찢어졌다.

    이때, 하늘을 가린 검푸른 소매가 허공에 나타나 오색 신광을 뒤덮었다.

    펑!

    굉음에 이어 주위의 허공이 격렬하게 흔들리면서 오색 신광이 뒤로 튕겨 나갔고, 검푸른 소매도 빠르게 줄어들었다. 그사이 진원자가 황색 산 앞에 나타났다.

    “공선 도우, 동해 용궁에서는 내 분신으로 상대했으니 실로 부족했을 것이오. 이번엔 제대로 겨뤄봅시다. 하하하!”

    “얼마든지 받아주겠소!”

    공선은 담담하게 진원자의 도전을 받아들이고는 손을 크게 휘둘렀다. 그러자 다섯 줄기의 은하수 같은 거대한 신광이 그의 손에서 뿜어져 나갔다. 신광이 지나는 허공마다 거울처럼 갈라져 마치 신비로운 이공간이 진원자를 뒤덮는 것 같았다.

    진원자는 미소를 거두고는 발아래의 땅을 툭 쳤다. 그러자 지서가 그의 발아래 나타나더니 끝이 보이지 않는 황운이 폭발하며 쏟아져 나와 순식간에 하늘을 뒤덮고 오색 신광과 충돌했다.

    이어 뜨거운 태양의 찬란한 광화가 피어나 사방을 휩쓸었다.

    * * *

    은빛으로 변한 원조는 곧장 동북쪽의 황색 산으로 날아갔다.

    거대한 은색 봉이 수많은 허상이 되어 공격하자 허공이 깨지고 무너지면서 천지영기가 들끓었다.

    이 산 역시 수만 명의 연맹 수사가 지키고 있었는데, 선두에는 흑곰 요괴와 황목 상인, 신목림의 임규호였다. 천존의 존재는 없었다.

    곤법의 위세를 본 세 사람이 수사들에게 수호 금제를 발동하게 하자 성난 파도 같은 노란 빛이 뿜어져 나와 원조의 공격을 막아냈다.

    원조는 차갑게 비웃었다. 그는 천존 경지에 들어선 후로 곤법의 깨달음이나 법력 수준이 크게 정진했고, 치우가 하사한 폭뢰 법칙 덕분에 발천난봉의 위력 또한 이전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 그러니 저 산의 수호 금제가 제아무리 범상치 않다 해도 그의 공격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양쪽이 충돌하자 겹겹의 노란 금제가 폭발했고, 일격에 절반이나 부서졌다.

    원조가 기세를 몰아 공격을 퍼부으려는 순간, 금색 환상이 빠르게 날아와 번개처럼 그의 머리를 휩쓸고 지나갔다. 보고도 믿을 수 없는 속도였다.

    원조는 서둘러 옆으로 피했지만, 질풍에 휩쓸려 땅 하는 금속이 교차하는 소리가 났다.

    날카로운 힘이 머릿속으로 파고들자 호체요력도 무용지물이 되었다.

    신지가 혼미해진 원조는 깜짝 놀라 그 금색 환상이 나타난 곳으로 은색 곤봉을 휘둘렀다.

    그러나 곤봉은 반 정도 날아가다가 무엇인가에 부딪혀 튕겨 나갔다. 심지어 거대한 힘에 원조 자신도 함께 뒤로 날아갈 정도였다.

    원조는 당황스러웠다. 천존 경지로 돌파하면서 육체의 힘과 힘의 법칙 모두 비약적으로 정진했거늘, 힘으로 다른 사람에게 밀리다니!

    게다가 그는 아직 상대가 누구인지도 파악하지 못한 상태였다.

    원조가 몸에서 은빛을 뿜어내자 힘의 법칙 공간이 순식간에 반경 몇 리를 뒤덮었고, 수많은 은색 곤봉 허상이 법칙 공간을 가득 메웠다. 그러자 금빛과 은빛이 충돌하면서 눈이 부신 빛이 사방으로 퍼졌다.

    우웅!

    그의 뒤쪽 허공에서 파동이 일더니 금색 그림자가 비틀거리며 나타났다.

    “역시 네놈이었군!”

    원조는 싸늘한 눈으로 상대를 노려보며 은색 곤봉을 휘둘렀다. 수백 개의 곤봉 허상이 상대를 내리쳤다.

    금색 그림자는 흔들리던 몸을 가누고는 똑같이 금색 곤봉을 휘둘렀다. 수많은 별빛 같은 금빛 허상이 하늘로 치솟았다.

    땅! 따당!

    금속이 충돌하는 소리가 연이어 울렸고, 은색 곤봉 허상이 전부 부서졌다. 이어서 금색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냈는데 바로 손오공이었다.

    그는 쇄자황금갑(鎖子黃金甲)을 걸치고 머리에 봉시자금관(鳳翅紫金冠)을 썼으며 걸을 때마다 구름이 피어올라 기개가 이전과는 확연히 달랐다.

    “손오공, 네놈도 천존 경지에 들어섰을 줄이야!”

    “노손은 불문의 정통 심법으로 경지를 돌파했으니 정당하지 못한 힘을 빌려 돌파한 너와는 다르다!”

    손오공은 담담하게 웃으며 원조를 비꼬았다.

    “정도든 마도든 무슨 상관인가! 강해질 수만 있다면 그만이다! 크하하!”

    원조 또한 껄껄 웃었는데, 그 표정에서는 광기가 느껴졌다.

    “마기의 영향을 완화하지 못하고 있으니 자아를 잃을 날이 머지않았구나. 지금이라도 마도를 버리고 영산에 들어가 정통 불문 신통을 익힌다면 네 안의 마기를 억누를 수 있을 것이다.”

    손오공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원조 또한 마기가 자신의 신지를 침투하기 시작했음을 알고 있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오늘 손오공을 죽이고 본원의 기운을 흡수한다면 언제가 마기를 억누를 자신이 있었다.

    “아무래도 이미 마도에 빠져버린 모양이군. 어쩔 수 없지. 좋다, 우리의 질긴 악연을 오늘 여기서 깨끗이 끝내자.”

    원조의 표정을 본 손오공의 눈빛이 점점 싸늘해졌다.

    “오늘 네놈을 넘어설 것이다! 죽어라!”

    원조가 비릿하게 웃더니 요기와 마력을 발동했다.

    몸에서 금과 흑의 광망이 번쩍이자 원조의 몸은 백 배로 커져 금흑의 거대한 원숭이가 되었다. 선마의 힘이 뒤섞인 거대한 기운이 폭발하는 것이 심협의 현양화마 신통과 비슷했다.

    손오공은 방금 맞붙었을 때 우세를 점했지만, 지금 원조의 기세를 보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역시 치우는 범상치 않은 자였다.

    ‘그 짧은 시간에 이런 강력한 신통을 익히게 하다니.’

    하지만 그는 돌원숭이로서 지금껏 두려움이 뭔지 모르고 살아왔고, 과거 삼장과 함께 81개의 난관을 겪으면서 대도를 얻어 투전승불에 봉해졌으니 상대가 아무리 강해도 물러서지 않았다.

    손오공은 바로 황정경을 운공했다. 그러자 온몸에서 금빛이 강하게 빛나면서 몸이 점점 커져 눈 깜짝할 사이에 거대한 금빛 원숭이가 되었다.

    그의 머리 뒤에서 신비로운 금빛이 떠올랐다. 이는 바로 황정신광으로, 그 기세는 원조에게 조금도 뒤처지지 않았다.

    그의 손에서 금빛이 반짝이더니 금고봉이 거대한 금색 곤봉으로 변했다.

    꽈르릉!

    금과 은의 두 거대한 곤봉이 충돌하자 주위의 허공이 부서졌고, 그 주인들 역시 크게 흔들렸다. 각자 뒤로 물러났다가 간신히 몸을 가누고는 둘 모두 상대의 실력에 내심 놀랐다.

    그러나 원조도 심지가 강인한 자였다. 설령 손오공의 실력이 예상보다 놀라웠지만, 자신의 실력에 강한 자신감이 있었기에 바로 다시 달려들었다.

    두 마리의 거대 원숭이가 충돌하고, 곤봉과 주먹, 발이 사방을 휩쓸었다.

    * * *

    북쪽의 거대한 산. 마족 대군이 거대한 산의 금제를 공격했고, 연맹 대군이 바로 반격했다. 금제가 반짝이고 법보가 날아다녔다.

    허공에서는 두 명의 아리따운 여인이 서로 마주 보고 있었는데, 바로 백정정과 백영롱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볼 뿐, 한동안 아무 말도, 공격도 없었다.

    “설마 진요탑에서 벗어났을 줄은 몰랐네. 우리는 태어나자마자 정도를 외치는 자들에게 억압을 받았고, 언니는 사소한 일로 불문의 탄압을 받아 여아촌은 세상에서 사라질 뻔했는데, 어째서 또 저들을 돕는 거지?”

    한참 뒤에야 백정정이 천천히 말했다.

    “지금의 천하는 인, 선 두 종족이 번성하였으니 너와 나 같은 이족이 푸대접받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 그리고 내가 불문에 탄압을 받은 것은 영산의 패엽심경(貝葉心經)을 빼앗으려 했기 때문이니 누굴 탓하겠니. 그래도 지금은 이족을 바라보는 천정과 중토 문파들의 시선이 달라지고 있으니 조금씩 미래를 기약할 수 있게 됐는데, 넌 어째서 자신을 타락시켜 치우의 휘하로 들어간 거지?”

    “천하는 불공평하고, 정도를 외치는 자들은 가슴속에 사심을 품은 채 살아가고 있어, 입으로만 인의도덕(仁義道德)을 외치지. 그건 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고! 치우는 잔인하고 흉포하지만, 적어도 공정해. 사사로운 편애 따위는 없다고!”

    백정정이 화를 내며 말했다.

    “세상은 언제나 선악이 공존하고 아름다움과 추함이 공존한다. 내가 마음에 선함을 품고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으면 족하거늘, 넌 치우 같은 마두가 세상을 멸망시키고 수많은 생령을 죽이는 게 옳다는 것이냐? 그리고 삼계의 모든 문파가 동맹을 맺었고, 심협 공자 같은 대천존의 존재가 치우와 맞서 싸울 것이니 마족에는 미래가 없어. 정정아, 지금이라도 깨우치고 돌아와. 지금도 늦지 않았어.”

    백영롱이 안타까운 마음에 거듭 충고했다.

    “흥! 심협 따위가 치우 님의 적수가 될 것 같아? 내 생각에는 언니야말로 지금 돌아서야 하지 않나 싶은데?”

    백정정은 차갑게 비웃었다.

    “아무래도 말로 설득하는 건 불가능해 보이는구나. 그렇다면 누가 맞는지 결판을 내야겠군.”

    백영롱이 동생을 바라보더니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진즉 그렇게 나올 것이지. 언니의 만독진경이 어느 정도까지 정진했는지 한번 보고 싶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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