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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몽주-1198화 (1,197/1,214)
  • 1198화. 삼계의 희망

    이때, 혈광이 빠르게 날아와 공선의 몸을 휘감았다. 구명이 방금 사용했던 치우기(蚩尤旗)였다. 현재 이 깃발을 발동한 자는 구명이 아니어서 대량의 혈광이 뿜어져 나와 주천성두대진의 전송의 힘을 외부로부터 완벽하게 차단했다.

    공선의 눈앞이 번쩍였고, 다음 순간 그는 마족 대군에 나타났다.

    “감사합니다, 치우 님.”

    공선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치우에게 포권했다.

    “주천성두대진은 상고 요족인 왕정(王庭)이 제련한 것으로, 줄곧 천정에 온양된 터라 위력이 범상치 않다. 365개 성진대번(星辰大幡)은 마음대로 위치를 바꿀 수 있고, 걸핏하면 수억 리나 멀어지지. 너의 오색 신광으로도 이 진을 파훼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럼 어찌 하면 되겠습니까?”

    구명이 불안한 목소리로 물었다. 마족 중 치우 다음가는 존재인 공선이 주천성두대진을 막아내지 못했으니 우려가 되었다.

    “무엇을 걱정하는 것이냐! 반고성체가 대성을 이루면서 내 본명법보인 치우기의 위력도 강해졌다. 이 깃발로 별들의 운행을 안정시킨다면 성진대번도 다시는 어쩔 수 없을 터. 그때, 깃발을 몇 개만 부수면 주천성두대진은 부서질 것이다.”

    치우는 담담하게 설명하고는 손가락으로 치우기를 가리켰다.

    핏빛 깃발이 펼쳐지면서 핏빛 바다가 사방으로 끝없이 펼쳐져 눈 깜짝할 사이에 은하수 전체를 뒤덮었다.

    하늘에 가득했던 별들은 색이 변한 채 곳곳이 혈광으로 반짝였고, 빼곡한 별빛도 점점 굳어져 움직이지 않았다.

    별바다 깊은 곳에서 금빛이 반짝였는데, 바로 현황무극진도였다. 호천 상제와 여래 불조, 원천강, 진원자가 그곳에 있었다.

    “치우기의 위력이 이 정도일 줄이야! 원 국사, 치우가 정말로 대천존 경지에 도달한 것입니까?”

    호천 상제가 원천강을 돌아보며 물었다.

    원천강은 말없이 홍황천기반을 꺼내 치우가 있는 곳을 향해 빙글빙글 돌렸다. 그러자 홍황천기반의 은하수와 산들이 일제히 빛나더니 현묘한 궤도를 따라 움직였다.

    검은 빛이 천기반 위에 나타나더니 빠르게 커졌고, 결국 펑 하며 터졌다.

    “아무래도 그런 모양입니다.”

    원천강이 수염을 쓰다듬으며 답했는데,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대천존. 이 세 글자가 거대한 산처럼 모두를 압박해왔다.

    삼계는 영웅호걸이 많다 보니 억겁과도 같은 세월에 소수의 기재가 천존 경지에 도달했다. 그러나 그 앞에 한 글자가 더붙은 대천존의 경지는 의미가 전혀 달랐다.

    예부터 전해 내려오는 바에 의하면, 혼돈세계에 탄생한 옥청(玉淸), 상청(上淸) 그리고 태청(太淸) 등 삼청성인(三淸聖人), 서방의 접인(接引), 준제(準提) 두 교주, 여와 그리고 청제복희(靑帝伏羲). 이 일곱 명의 상고 대능만이 천지개벽의 연고로 대천존에 도달했다고 알려져 있으며, 봉신 대전 이후로 사라진 이 대능들이 어디로 갔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한데 지금, 삼계에 또 한 명의 대천존 존재가 나타난 것이다!

    호천 상제는 속이 쓰렸다. 치우만 없었더라면 주천성두대진만으로 저 마족 전부를 이곳에 가둘 수 있었으리라.

    어쨌든 그도 현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기에, 손을 뒤집어 성진 깃발을 꺼냈다. 주천성두의 주요 깃발 같았다.

    “모두 아직 절망할 것 없습니다. 얼마 전, 세 분께서 자리를 비우셨을 때, 장안성에 이상(異象)이 나타났습니다. 제가 점술로 살펴보니 심 도우의 경지가 또 돌파하면서 일어난 현상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심 도우 역시 대천존으로 돌파하기 시작한 모양입니다.”

    “정말입니까?”

    호천 상제가 크게 기뻐하며 물었다. 다른 두 사람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물론입니다. 이상을 직접 목격한 자가 많으니 아무나 잡고 물어보시죠.”

    원천강이 허허 웃으며 말했다.

    호천 상제가 크게 기뻐하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입에서 원기를 뿜어내 성진대번에 주입했다. 그러자 수많은 별빛이 뿜어져 나와 주위의 주천성두대진으로 녹아들었다.

    공선과 미소, 원조 등 마존들은 치우기의 힘에 은하수가 멈추자 기뻐했고, 이번에는 잔뜩 경계하며 날아가 주천성두대진 주깃발을 찾아다녔다.

    변화 능력으로 온 하늘에 별빛을 퍼트리고 무궁무진한 변화를 일으켜 천존 존재라 해도 간파할 수 없다는 것이 주천성두대진의 무서운 점이었다. 그러나 치우기가 그 점을 봉인했으니 공선 등은 주깃발의 흔적을 금세 찾아내서는 바로 부수려 했다.

    한데 그때, 또다시 이변이 일어났다!

    은하수에서 갑자기 우르릉거리는 굉음이 울리더니 수없이 많은 거대한 별이 허공에 나타났다. 수천 장에 이르는 별들이 엄청난 굉음과 함께 무시무시한 기세로 마족들을 덮쳐왔다.

    공선 등은 깜짝 놀라 서둘러 신통과 법보로 그 거대한 별들에 맞섰다.

    치우도 표정이 살짝 변하더니 손을 들어 허공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하늘을 검은 마조가 허공을 가로질러 허공을 움켜쥐었다. 바로 치우지박이었다.

    쾅! 쾅! 쾅!

    거대한 별 대부분은 산산조각이 났지만, 여전히 적지 않은 거대한 별이 마족 대군 위로 떨어졌다. 피비린내와 함께 피바람이 일어났고, 눈 깜짝할 사이에 3할에 이르는 마병이 깔려 죽었다.

    치우는 날카로운 눈으로 아래를 내려다봤다.

    본래 은하수를 뒤덮고 있던 혈광이 위로 올라와 거대한 핏빛 깃발로 변하여 거대한 별들을 막아냈다.

    두 줄기 보라색 정광이 번득이는 치우의 눈이 은하수 어딘가에 고정되었다. 그리고 그는 그대로 팔을 휘둘렀다.

    또다시 하늘을 뒤덮는 검은색 마조가 나타나 그곳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콰지직!

    굉음과 함께 은하수가 찢겨 나가면서 백 장에 이르는 성진대번이 나타났고, 그 깃발을 휘감은 거대한 별빛의 용이 포효했다.

    “캬오오오!”

    검은색 마조가 내려가 거대한 별빛의 용을 잡았다.

    용은 단숨에 부서져 빛이 되어 사라졌고, 성진대번도 폭발했다.

    퍼펑!

    부근의 성역(星域)이 폭발음과 함께 빠르게 희박해졌고, 그 너머로 바깥의 빛이 어렴풋이 보였다.

    공선과 원조, 미소 등이 일제히 나서자 불과 몇 호흡 만에 몇 개의 성진대번이 부서지거나 마족의 손에 넘어갔다.

    주천성두대진이 부서지자 수많은 별빛이 흩어졌다. 그러자 마족들의 눈앞이 밝아지더니 다시 장안성 상공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마족 또한 거의 4할에 이르는 병력을 잃은 후였다.

    치우가 살짝 인상을 찌푸리더니 거대한 도끼에서 검은 빛을 뿜어냈다. 그러자 아홉 개의 도끼 허상이 나타나 원천강과 호천 상제 등을 향해 날아갔다. 일종의 부법(斧法) 신통이었다.

    파멸의 기운이 현황무극진을 뒤덮자 주위의 허공에 균열이 생겨났고, 수많은 마기와 혈광이 그곳에서 뿜어져 나왔다. 이 도끼의 위력을 견디지 못해 울부짖는 소리가 하늘 가득 울려 퍼졌다.

    이 건곤참(乾坤斬)은 신을 만나면 신을 죽이고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일 수 있는 부법이었다!

    “결진(結陣)!”

    깜짝 놀란 원천강이 서둘러 현황무극진을 발동했다.

    그러나 건곤참은 너무도 빨라서 현황무극진을 발동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아홉 개의 도끼 허상이 그들 머리 위에 나타난 절체절명의 순간!

    콰쾅!

    현황무극진 상공에서 은빛이 반짝이더니 그 안에서 몇 장 길이의 도끼가 날아가 굉음과 함께 건곤참의 아홉 개 도끼 허상을 산산조각 냈다.

    반 이상 부서진 치우의 검은색 도끼가 모습을 드러내더니 튕겨 나갔다.

    치우가 놀란 표정으로 서둘러 결인하여 이 도끼를 거두려는데 그때, 모든 것을 부술 것 같은 날카로운 힘이 도끼 안에서 폭발했다.

    펑!

    이 거대한 도끼는 폭발하여 가루로 흩어졌다.

    그때, 전방의 허공에서 파동이 일어나면서 누군가가 은빛에서 빠져나왔다. 바로 심협이었다.

    그의 뒤로 섭채주와 육화명, 오홍, 손오공 등이 쏟아져 나왔다.

    그들은 심협으로부터 마족이 공격해왔음을 들었기에 눈앞의 상황에도 놀라지 않았다.

    진원자와 여래 불조, 호천 상제 모두 심협을 올려다봤다. 뚜렷하지 않지만 또 무궁무진한 기운이 느껴지자 모두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방금 원천강에게서 심협이 이미 대천존 경지로 돌파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내심 믿지 못했는데, 심협의 경지를 직접 실감하니 안심이 됐다.

    “대천존! 역시 내가 잘못 본 게 아니었구나. 삼계에 마침내 희망이 생겼어!”

    원천강도 중얼거렸다.

    “심협, 네놈도 이 경지에 도달할 줄이야. 네가 내 삼계 통일에 가장 큰 방해가 될 거라 생각했지. 내 예감은 틀리지 않았구나.”

    치우가 천천히 일어나더니 심협이 들고 있는 개천부를 보며 말했다.

    그의 뒤에 서 있던 아홉 마존은 그 말에 깜짝 놀랐다.

    심협이 대천존 경지에 도달하여 치우와 같은 위치에 서다니, 이 전쟁의 결과는 아무도 알 수 없게 된 것이다.

    마수수와 미소 등 심협을 오래전부터 알았던 자들의 표정은 더욱 복잡했다.

    “인, 선, 마, 삼족이 공존하는 데 어찌하여 마족이 삼계를 지배해야 한다는 것이냐! 우리가 맞붙는다면 둘 모두 무사하지 못할 터. 차라리 공존할 방법을 찾아보는 것이 어떻겠는가.”

    그는 대천존 경지로 돌파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이 새로운 경지에 대한 깨달음이 아직 부족했기에 시간이 필요했다.

    “얕은 수작이로군. 내가 그런 수에 넘어갈 것 같은가?”

    치우가 차갑게 웃었다.

    “허! 끝을 보자는 건가? 그렇다면 나도 어쩔 수 없지.”

    심협이 한숨을 내쉬더니 몸에서 갑자기 눈부신 은빛을 뿜어냈다. 치우마저 눈살이 저절로 찌푸려질 정도로 강렬한 빛이었다.

    한데 그때, 개천신부가 치우 앞에 나타나더니 검은 빛이 되어 치우의 몸을 스쳐 지나갔다. 그러자 치우의 몸이 절반으로 쪼개지면서 좌우로 날아갔다.

    “엇!”

    그곳에 있는 모두가 깜짝 놀랐다. 치우가 이렇게 쉽게 죽는단 말인가!

    하지만 갈라진 치우의 몸에서는 피 한 방울 나지 않았고, 두 개의 몸은 은빛이 되어 점점 사라졌다. 잔상이었던 것이다.

    “공간 법칙이 얻기 어렵다 하나, 너만 익혔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마라.”

    수십 장 밖에서 나타난 치우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심협은 대꾸하지 않고 은빛으로 변하여 다시 치우에게로 돌진하면서 개천부를 가로로 베었다.

    핏!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반경 수백 장의 허공이 반으로 갈라졌다.

    개천신부는 마치 반고 대신의 손에 돌아온 것처럼 진정한 위력을 발휘했다.

    치우도 이 개천신부를 우습게 보지 못하고 손을 뒤집어 휘둘렀다. 그러자 가장자리에 톱니가 가득한 송곳니 형태의 혈홍색 전도가 미친 듯한 혈광을 뿜어내며 나타나더니 개천신부보다 더 강력하게 허공을 베었다.

    퍽!

    짧은 굉음과 함께 하늘을 가르는 핏빛 도광이 개천부를 맞았다.

    세상을 무너뜨릴 듯한 흑과 적의 광망이 충돌하자 경천동지할 굉음이 뿜어져 나왔고, 주위의 허공이 완전히 무너지면서 거대한 공간 균열이 몇 리 밖까지 퍼졌다.

    심협과 치우의 싸움이 시작되자 옆으로 물러나 있던 아홉 마존은 눈앞의 상황을 보고는 급히 더 거리를 벌려 가까이 다가올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핏빛 전도가 범상치 않다고는 해도 개천부와 비교할 바는 되지 못했다. 쌍방이 충돌하자 치우는 도와 함께 밀려났다.

    지켜보던 마족들은 눈이 휘둥그레져 도저히 눈앞의 광경을 믿을 수가 없었다. 마족의 시조인 치우의 실력은 천지를 아우를 정도였고, 세상에 나온 이래로 상대가 누구든 반드시 이겼다. 한데 지금 밀려난 것이다!

    반면 연맹 측은 심협이 치우를 밀어내자 사기가 크게 치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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