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1195화 (1,194/1,214)
  • 1195화. 마혼(魔魂)이 스며들다

    고화령의 가녀린 몸이 날아가는 동시에 금색 부처 허상이 그녀를 스쳐 갔고, 동시에 불문 금강의 힘을 모아 대비장(大悲掌)으로 육화명의 가슴을 때렸다. 육화명 역시 뒤로 훌훌 날아갔다.

    육화명은 찢어진 마대처럼 바닥에 내동댕이쳐져 데굴데굴 굴렀다.

    그러던 그는 한 손으로 땅을 짚고 몸을 가누었다. 붉게 물든 두 눈에는 사악함이 가득했으며 머리와 어깨에서는 검은색 마기가 피어올랐다.

    “크크큭!”

    육화명은 괴이하게 웃더니 몸을 돌려 밖으로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허공에 보광이 반짝이더니 산하사직도가 앞길을 막아서고는 소용돌이를 뿜어내 그를 끌어당겼다.

    육화명은 당황했고 온몸에서 마기를 뿜어내 버텨내려 했다. 하지만 아무리 발악해도 산하사직도의 제어에서 벗어나지 못해 금방이라도 끌려 들어갈 것만 같았다.

    그 순간, 검은 그림자가 육화명의 어깨에서 솟아오르더니 한 겹의 가죽이 벗겨지는 것처럼 그의 몸뚱이에서 빠져나와 검은 빛이 되어 도망치려 했다. 산하사직도의 금고의 힘도 그 검은 그림자에는 소용이 없었다.

    육화명은 온몸에서 힘이 빠져나간 것처럼 의식을 잃고 그대로 쓰러졌다.

    이를 본 섭채주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무력이 시간의 물결이 되어 검은 빛을 향해 퍼져 나갔다.

    시간의 흐름이 일순 느려지면서 모두의 시간이 멈췄고, 오직 섭채주만이 아무렇지 않게 시간의 물결을 뚫고 검은 빛을 잡으려 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 검은 빛은 시간 법칙의 힘에도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 듯 속도가 전혀 느려지지 않았고, 허공을 뚫고 도망치려 했다.

    섭채주는 서둘러 시간 법칙의 힘을 거두고 법술 신통으로 검은 빛을 쫓았지만, 너무 늦고 말았다.

    놓쳤다는 생각에 모두가 분노를 터뜨리려던 그때였다. 누군가가 갑자기 검은 그림자가 도망치는 쪽에 나타나더니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허공에서 콰직 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공간 전체가 한 덩어리로 압축되면서 검은 그림자는 공간을 뚫고 나가지 못하고 부딪혀 튕겨 나갔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그림자가 다시 도망치기 전에 한 손으로 그 머리를 짓눌렀다. 검은 그림자는 천 근의 무거운 짐이 갑자기 몸을 짓누르는 것 같아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다.

    그제야 그는 자신을 막은 자가 누군지 볼 수 있었는데, 바로 복부가 텅 비어 있는 심협이었다.

    심협의 팔에서 혼돈흑련이 나타나 공간 법칙의 힘과 서혼 법칙의 검은 연꽃이 가볍게 흔들리며 법칙의 힘을 뿜어내 검은 그림자를 제압했다.

    이를 본 모두는 그제야 안도했다.

    고화령은 의식을 잃은 육화명을 품에 안은 채 심협을 돌아봤다.

    그때, 심협의 비어 있던 복부 가장자리에서 거미줄 같은 검은색 실이 살아 있는 것처럼 불쑥 솟아나더니 가운데로 모여들었다. 이 실들은 서로 엉키며 휘감았고, 순식간에 구멍을 메웠다. 그 위로 하얀 빛이 흐르더니 살과 뼈가 순식간에 다시 생겨나 눈 깜짝할 사이에 심협은 원래 상태를 회복했다.

    이 광경에 모두는 어안이 벙벙했다. 특히 그 검은 그림자는 더더욱 이 상황을 믿을 수가 없었다.

    “말도 안 돼! 단전은 원기가 모이는 곳이니 인간족이든 마족이든 모두 단전이 부서지면 죽거나 폐인이 되어야 하는데 어떻게……?”

    검은 그림자는 어떻게 목숨을 부지할까보다 이게 더 궁금한 듯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단전? 하하하! 대천존의 원기가 단전에만 머무른다고 누가 그러던가? 이제 내게는 단전을 부수는 것도 손발을 자르는 정도에 불과하지.”

    심협이 껄껄 웃으며 답했다.

    선마의 힘을 융합한 이후로 그는 천지와 어우러진 터라 설령 육신이 무너진다 해도 약간의 정기와 피, 살만 있다면 언제든 완전히 살아날 수 있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에요?”

    섭채주가 검은 그림자와 육화명을 번갈아 보며 물었다.

    “네놈, 치우의 환생 마혼이지? 너와 같은 기운은 일전에 첨과와 위청에게서 느껴본 적이 있다.”

    “그렇게 생각하느냐? 하하하! 재미있구나!”

    마혼은 미친 듯이 웃으며 반문했다.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입과 눈에서 은색 광망이 뿜어져 나오더니 마혼의 몸에서 불꽃이 타올랐고, 온몸의 기운이 빠르게 팽창하기 시작했다. 자폭하려는 것이었다.

    “조심해!”

    모두가 깜짝 놀라 방어 법보를 꺼냈다.

    “네 마음대로 하게 둘 것 같으냐!”

    심협이 차갑게 비웃더니 반고진공을 운공하자 선마의 힘이 몸에서 뿜어져 나왔고, 마혼을 붙잡은 손에서 흑백 광망이 나타나 회전하면서 강력한 흡입력을 발했다.

    마혼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던 힘의 파동은 선마의 힘에 흡수되었고, 타오르던 불꽃도 순식간에 꺼졌다.

    “이럴 수가! 마, 말도 안 돼! 이렇게 강력한 선마의 힘을 어떻게 동시에 가질 수가 있단 말이냐! 선마가 충돌하여 몸이 터졌어야 하거늘…….”

    심협은 그를 무시한 채 손가락을 구부렸다. 그러자 공간 법칙의 기운 파동이 뿜어져 나왔고, 그의 손에 눌려 있던 마혼의 몸이 압축되기 시작했다. 이내 마혼은 1척도 안 되는 칠흑 같은 소인이 되었다.

    “심협,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인가?”

    백소천이 여전히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물었다.

    “아마도 일전에 마족이 육형을 붙잡았을 때, 치우의 환생 마혼을 강제로 그의 몸에 봉인한 듯합니다. 그렇게 몸에 심어 대당으로 돌려보낸 뒤 기회를 보고 있었던 거겠지요.”

    심협은 마혼이 압축된 소인을 손에 움켜쥐며 답했다.

    “그러고 보니 그때 생각보다 쉽게 육형을 구해내긴 했지.”

    백소천이 생각에 잠겨 있다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한데 그때, 갑자기 쾅 하는 천둥소리가 울려 퍼졌고, 구룡전 전체가 강하게 흔들렸다.

    모두가 이번에는 또 무슨 일인가 싶어 깜짝 놀라 돌아보았다. 오직 심협만은 손오공이 있는 법진에 시선을 고정했다.

    그곳에서 금빛이 새어 나오고 뇌전의 기운이 밖으로 뿜어져 나왔다.

    곧이어 다른 사람들도 마침내 눈치챈 듯 놀란 눈으로 돌아봤다.

    “저건……?”

    “삼재 강림.”

    심협이 익숙한 느낌을 감지하고는 조용히 답했다.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법진 안에서 날카로운 비명이 울리더니 광포한 기운이 퍼져 나왔다. 법진이 부서질 것만 같았다.

    “내가 가보지요.”

    심협이 말하며 곧장 그쪽으로 다가갔다.

    심협이 법진으로 들어가 보니 온몸이 황금색인 거대한 원숭이가 부문이 박혀 있는 금색 사슬에 온몸이 묶인 채 바닥에 갇혀 있었다. 그의 발에는 불꽃이 피어올라 두 개의 불꽃 금련(金蓮) 같았고, 정수리에서는 바람이 휘몰아쳤으며, 몸 주위에는 금색 뇌전이 내리쳤다. 삼재가 모두 겹치는 최고의 대우를 받고 있는 셈이었다.

    불꽃의 금련이 위로 솟구치고 바람이 아래로 불며 뇌전이 기승을 부리자 제아무리 손오공이라 해도 막아내지 못해 기운이 조금씩 약해져갔다.

    심협은 신혼 파동이 사라지는 것을 느끼고는 그가 더는 못 버티는구나 싶어 화들짝 놀라서는 도와주려 했다. 한데 그때, 금색 불꽃에 몸 절반이 뒤덮인 거대한 금색 원숭이가 힘겹게 말했다.

    “오, 오지…… 마. 움직이지도…… 말고…… 신경…… 쓰지…… 마…….”

    목소리가 다 쉬어서 익히 알던 손오공 음색이 아니었고 힘겹게 이어가는 것이 분명했지만, 그 안에 담긴 의지만큼은 확고했다.

    심협은 잠시 망설이다가 공간 법칙의 힘으로 주위의 공간을 안정시켜 폭발한 힘이 구룡전 전체를 무너트리는 것에만 대비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불꽃은 손오공을 전부 삼켜버렸고, 처음의 광포하고도 날카로웠던 포효마저 갈수록 작아졌다.

    마침내 포효가 완전히 사라졌고, 몸부림도 멈췄다.

    뒤이어 바람이 휩쓸고 지나가자 불꽃이 전부 사라졌고, 숯처럼 검게 그을린 거대한 몸만이 생전의 마지막 모습 그대로 굳은 채 우뚝 서 있었다.

    새까만 몸에서는 모든 기운이 적멸(寂滅)로 돌아가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심협이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려는 순간이었다.

    꾸르릉!

    갑자기 천둥소리가 울려 퍼졌다!

    눈부신 금색 뇌광이 창처럼 허공에서 내려와 손오공의 검게 그을린 몸을 그대로 관통하면서 굉음이 울려 퍼졌다.

    심협은 멈춰 서서 당대 전설의 요왕이 어떤 결말을 내는지 지켜봤다.

    곧이어 웅장한 기운이 그의 앞에 모여들고 강렬한 생명의 기운이 점점 왕성해지면서 또 짙어졌다.

    심협이 놀란 눈으로 바라보니 뇌전이 떨어지자 손오공의 검게 그을린 몸이 조금씩 잿더미가 되어 떨어졌다. 잿더미에서는 가느다란 금색 몸이 나타났다.

    이전의 거대했던 몸과 비교하면 왜소했지만,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만큼은 훨씬 강렬했다.

    천지에서 영기가 폭풍처럼 휘몰아치며 모여들었다.

    이를 본 심협은 손오공이 이미 마지막 관문을 넘어서 정식으로 천존 경지에 들어섰고, 이제 영기를 흡수하여 경지를 안정시키는 일만 남았음을 알아챘다.

    그가 손을 흔들어 공간 법칙의 힘을 거두자 주위의 공간 금제가 사라졌고, 대량의 천지영기가 파도처럼 몰려와 손오공의 체내로 들어갔다.

    법진에서 나온 심협이 모두의 초조한 눈빛을 돌아보며 웃었다.

    “또 한 명의 천존 고수가 탄생했습니다.”

    그의 말에 모두가 환호성을 질렀다.

    심협은 육화명에게 다가가 술법으로 깨웠다.

    육화명은 장안으로 돌아온 뒤의 기억이 희미했고 좀 전에 있었던 일은 전혀 기억하지 못했기에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한 듯 멍해 보였다.

    심협이 그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그래도 경지에는 큰 영향이 없으니 이제 큰 공을 세우는 일만 남았소.”

    “심형, 내 몸에 또 다른 화근이 숨어 있는지 살펴봐 주게.”

    육화명이 심협의 손을 덥석 잡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미 살폈소. 이제 깨끗합니다. 못 믿겠으면 발가벗어보시오.”

    심협이 손을 빼며 농을 건네자 육화명이 미간을 팩 찌푸렸다.

    “저리 꺼져!”

    말을 마친 육화명은 이내 껄껄 웃었다.

    “마혼이 경지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고는 하나 신식이 손상되었을 수도 있으니 조금 더 폐관하며 경지를 안정시키고 신혼을 살펴보는 게 좋겠소.”

    “알겠네.”

    육화명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신의 공격에 크게 다친 고화령에게로 다가갔다. 그는 미안해 어쩔 줄을 몰랐다.

    고화령은 고개를 저어 괜찮다고 말하고는 웃어 보였다. 그리고 두 사람은 각자의 법진으로 들어가 폐관하며 요양했다.

    “이제 네 차례다.”

    그제야 여유가 생긴 심협은 마혼을 돌아보며 싸늘하게 내뱉었다.

    그가 손을 강하게 움켜쥐자 흑백 광망이 격렬하게 떨려왔고, 이내 마혼을 소멸시켰다.

    마혼의 몸이 부서지는 순간, 법칙의 기운이 밖으로 새어 나왔다.

    심협이 손에 공간 법칙의 힘을 모아 그 법칙의 기운이 새어나가지 못하도록 가두었고, 섭채주가 다가와 살펴보았다.

    “어쩐지…….”

    섭채주가 한참을 살펴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왜?”

    “시간 법칙이 이 마혼에게는 통하지 않아서 어찌 된 일인지 궁금했거든요. 지금 보니 이자의 몸에도 시간 법칙의 힘이 있었던 거예요.”

    “잘됐군. 이 법칙의 힘을 흡수하면 더 강해지지 않을까?”

    심협이 기뻐하며 법칙의 힘을 건네려 했으나, 섭채주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이건 시간 쇠노(衰老)의 법칙이에요. 제 시간 법칙의 힘과는 속성이 맞지 않으니 합치면 오히려 해가 될 거예요.”

    “그렇군. 그럼 어쩔 수가 없지.”

    심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팔에서 혼돈흑련이 흔들리며 자라나더니 검은 연꽃이 활짝 피어나 시간 법칙의 힘을 흡수했다.

    이 법칙의 힘이 합쳐지는 순간, 심협의 눈이 번쩍였고, 얼굴에는 감격한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

    “이…… 이게…… 가능한 일이에요?”

    섭채주가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

    다른 사람들도 경악한 기색이었다. 법칙의 힘을 익히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익힌다 해도 그 힘을 다루려면 수련자의 수행 공법 속성과 법칙의 힘이 서로 어울려야만 한다. 더욱이 이 과정은 전승이 불가능해 못해도 10여 년에서 수백 년 이상이 걸리기도 한다. 한데 지금 심협은 불과 몇 호흡 사이에 끝낸 것이다. 그러니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심협은 그들이 놀라건 말건 공간 법칙의 힘과 시간 법칙의 힘을 동시에 갖게 되자 전부터 궁금해하던 것을 당장 검증해보고 싶었다.

    “저는 잠시 해볼 것이 있으니 더 폐관해야 할 것 같습니다. 모두 알아서들 하십시오.‘

    심협은 끓어오르는 감정을 간신히 억누르며 그렇게 말하고는 자신의 법진으로 돌아갔다.

    남은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한동안 멍하니 서 있다가 모두 다시 수련을 이어가기로 했다. 문파에서 신호가 오면 그때 나와서 싸우려고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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