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몽주-1194화 (1,193/1,214)
  • 1194화. 비수(匕首)

    한참 뒤, 심협은 경지가 한계에 도달하여 더 이상 천지영기를 흡수할 수 없게 되자 반고진공의 수련을 멈췄다.

    “열두 개의 혼돈흑련이 피어나 주천의 수가 채워졌다. 심협, 이제 혼돈흑련의 힘으로 선마의 힘을 융합해 봐라.”

    화령자가 흐뭇하게 웃으며 말했다.

    “성패가 여기에 달렸군.”

    심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양손을 단전 앞에 놓고는 단전 안의 선마의 힘을 동시에 뿜어냈다. 그러자 주먹만 한 흑백의 공이 다시 압축되기 시작했다.

    심협의 팔에서 열두 송이의 혼돈흑련이 흔들리며 뿜어낸 독특한 법력 파동이 단전 쪽을 뒤덮어 갔다.

    * * *

    장안성, 대당 관부.

    사람들은 분주하게 움직였는데, 표정이 하나같이 심상치 않았다.

    성안의 비행 금지령은 이미 취소된 터라 정보를 전달하는 수사들이 한 줄기 무지개가 되어 관부의 정원에서 끊임없이 날아올라 관부의 새로운 명령을 전달하고 다녔다.

    사해당 안. 원천강은 의자에 앉아 생각에 잠겨 있었고, 정교금은 주청 안을 왔다 갔다 했다.

    “새로운 정보에 따르면 치우 대군이 이미 소집되어 소굴을 나와 대당 관부를 향해 진격하고 있다 하니 백성들을 피신시킬 겨를이 없습니다.”

    “우리 천기성에서 다시 대형 비주를 가지고 오겠습니다. 속도는 조금 느려도 훨씬 많은 백성을 무사히 데려갈 수 있을 겁니다.”

    정교금의 말에 소부자가 대답했다.

    “대당 관부는 몇 년간 천재와 인재가 끊이지 않았지만, 국경 안에는 여전히 수많은 백성이 있습니다. 비주만으로는 역부족입니다.”

    정교금이 고개를 저었다.

    “우리는 한 달 전부터 백성들을 이주시켰지만, 여전히 많은 백성이 고향을 버리고 유랑민이 되지는 않겠다 하오. 이제 시간이 촉박하니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보는 수밖에 없소.”

    원천강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북쪽에서 남쪽으로 이주해왔으니 다행입니다. 남쪽은 식량에 여유가 있어 백성들을 먹여 살릴 수 있지 않습니까. 만약 그 반대였다면 마족이 공격해오지 않아도 유랑민들이 폭동을 일으켰을 겁니다.”

    “전쟁이 일어나면 모두가 무사히 도망치는 것은 불가능하긴 하나 최대한 많이 이주시켜야 하오. 그러지 못하면 북쪽의 백성들이 마족의 식량으로 전락하여 상황이 더 나빠질 것이오.”

    “너무 비관적으로만 생각하지 마십시오. 보리 노조께서 며칠 전에 사람들을 데리고 북쪽으로 가서 전송 법진을 배치하도록 돕겠다고 하셨으니 곧 효과가 있을 겁니다.”

    소부자가 원천강을 달래듯 말했다.

    “천궁과 영산 쪽은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원천강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정교금에게 물었다.

    “오장관과 보타산 모두 역량을 정비하여 장안성을 지원하러 올 준비를 하고 있으니 며칠 안에 도착한다고 합니다.”

    정교금이 막 대답을 마쳤을 때였다. 사해당이 갑자기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고, 세 사람은 표정이 급변하여 일제히 정원 밖으로 날아갔다.

    정원에 도착해보니 하얀색의 거대한 소용돌이가 저 멀리 성 위의 하늘에 나타나 모든 천지영기를 한곳으로 모으고 있었다.

    장안성 상공은 파도가 몰아치는 것처럼 영기가 솟구치며 충만해졌고, 화려한 빛이 구름을 비추니 아름다운 노을이 하늘에 깔린 것만 같았다.

    장안성 백성들은 영문을 모르고 그저 하늘에서 상서로운 현상이 일어나자 일제히 엎드려서 복을 빌었다. 반면 수사들은 성의 영기가 자욱해지자 이 기연을 이용하여 서둘러 가부좌를 틀고 토납했다.

    원천강 등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지만, 표정에는 놀라움이 그대로 드러났다.

    “심협, 이 녀석은 정말이지…….”

    정교금이 한참을 생각했지만 적합한 단어가 생각나지 않았다.

    “허허허, 정말로 믿을 수가 없군.”

    “심 도우의 존재가 인간족의 복이자 삼계의 복인 듯합니다.”

    소부자가 환하게 웃으며 말을 맺었다.

    * * *

    신마의 기둥 위에 가부좌를 틀고 있던 흑백진군은 사방 천지가 폭주한 것처럼 원기가 충만해지자 하던 일을 멈췄다.

    이 기둥의 기령인 그도 이번 영기의 폭풍 덕에 큰 혜택을 보았다.

    그 무렵, 주광순화대진 안. 심협의 단전 안에서는 흑백의 탄환이 생겨나 하나의 별처럼 떠 있었다. 그 주위로 매우 짙은 법력이 몰려와 성운(星雲)처럼 주위를 맴돌았다.

    반고진공은 대성을 이루어 마침내 단전 안 선마의 힘을 완전히 융합했고,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반고진공 절정의 상태를 초월했다.

    영기의 물결이 그의 주위에 영화(靈火) 무늬가 되었고, 머리 뒤의 불꽃 고리는 더욱 뜨겁게 타올랐다. 그의 기운은 이미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경지에 도달해 있었다.

    함께 대진 안에서 수련하던 사람들도 이 갑작스러운 천지영기의 폭주에 놀라 수련을 멈추고는 하나둘 법진에서 나왔는데, 얼굴에는 화색이 돌았다.

    “백형, 그 찬란한 금빛을 보니 천존 경지까지 얼마 안 남은 모양이오?”

    육화명은 몸에 금빛이 아직 사라지지 않은 백소천을 보며 말했다.

    여전히 머리카락 한 올 없는 상태의 백소천이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육형이야말로 온몸에 푸른 빛이 감돌고 기운이 응축된 것을 보니 나보다 한 수 위인 것 같소. 하하하!”

    “벌써 이 대진 안에서 수련한 세월이 얼마인데 이 정도 성과도 없어서야 어찌 사문 어른들의 얼굴을 보겠소?”

    “하긴, 세월이 정말 물 흐르듯이 흐르긴 했소. 폐관에 들어간 게 바로 어제 같은데……. 바깥은 얼마나 흘렀을지 모르겠군.”

    백소천이 자신의 번들번들한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때, 부동래가 법진에서 걸어 나왔다.

    “이게 어떻게 된 거요? 이렇게 강력한 천지영기가 요동치고 있다니!”

    “아마도 누군가 천존 경지로 돌파한 것일 게요.”

    육화명이 다른 사람들이 있는 법진을 둘러보며 말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법진이 열리더니 섭채주가 깃털 옷을 입고 나풀거리며 나왔다. 눈동자는 빛났지만, 그 기운은 세속을 초월한 듯 경지의 파동이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를 본 백소천의 눈이 반짝거렸다.

    “제수씨, 설마…… 천존 경지에 도달한 것이오?”

    그가 서둘러 다가와 물었다. 백소천은 경지로는 심협을 쫓아가지 못할 듯하자 연배로 심협을 누르겠다며 언제부터인가 섭채주를 제수씨라고 불렀다.

    “천존 경지까지는 아직 멀었지만, 무신결의 수련이 대성을 이루어 몸에 십이조무의 힘이 모여들었습니다. 도천신살대진까지 발동한다면 천존경과도 붙어볼 만할 거예요.”

    그녀는 매우 겸손하게 말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 말에 깜짝 놀랐다.

    그 무렵, 다른 사람들도 차례대로 걸어 나왔다.

    “이제 심협과 대성만 남았군. 이렇게 엄청난 상황을 불러온 게 누구일까?”

    육화명의 물음에 사람들이 대답하기도 전에 법진이 열리더니 누군가 걸어 나왔다.

    기운이 안정되어 몸의 불꽃과 불꽃 고리는 이미 사라졌지만, 움직일 때마다 천지의 영기가 저절로 따라서 흐르는 것 같아 마치 천인(天人)처럼 보이는 그 사람은 바로 심협이었다. 그리고 그를 보는 순간, 모두 숨 쉬는 것조차 잊었다.

    그들은 심협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이 자신들과 격이 다름을 선명하게 느꼈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느낌이었지만, 굳이 따지자면 눈앞에 있는 심협에게 복종과 경외심이 생기는 것을 억제하기가 힘들었다. 이건 어떤 환술 수단도, 기세도 아닌 대도(大道)의 억압이었다.

    현재 심협의 기운은 허무하고 전혀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지만, 사실 여래불조나 호천상제처럼 이미 천도의 힘에 더없이 접근한 존재였다.

    이렇게 되자 천지영기를 폭주시킨 장본인이 누군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섭채주가 환하게 웃으며 가장 먼저 다가갔다.

    심협은 자연스럽게 그녀의 손을 잡고는 모두에게 다가와 웃으며 말했다.

    “모두 오랜만입니다. 모두 성취가 상당했군요.”

    “허, 성취로 말하면 자네만 하겠나?‘

    백소천이 가까이 다가와 심협의 가슴을 툭 치더니 손을 흔들며 아픈 척을 했다.

    “심형, 축하하오.”

    부동래는 다른 말 없이 바로 축하를 건넸고, 이어서 다른 사람들의 축하 인사가 이어졌다.

    육화명이 가장 마지막으로 다가왔다.

    “심형, 아무래도 수련에서는 심형을 따라잡기 어려울 것 같군. 그나저나 따로 할 말이 있는데…….”

    “무엇입니까?”

    “가까이…….”

    육화명이 손을 까닥거리며 말했다.

    “무슨 비밀이기에 이러는 겁니까?”

    심협은 장난스레 투덜거리면서도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그가 코앞까지 다가온 순간, 육화명의 오른손에서 갑자기 옥으로 만든 하얀 비수가 나타나더니 아무런 낌새도 없이 심협의 아랫배를 찔러 갔다. 비수에 새겨져 있던 부문이 번득이며 심협의 몸을 아무런 방해 없이 뚫고 들어갔다.

    곧이어 비수는 얼음처럼 녹아내리며 짙은 하얀 빛으로 변하여 심협의 체내로 들어갔고, 복부에서 사람통 만하게 커졌다.

    너무도 갑작스런 변고에 다른 사람은 물론이고 심협조차 미처 반응하지 못했다.

    “무슨 짓이냐!”

    섭채주가 호통치며 손을 휘둘러 무력을 뿜어냈다.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육화명의 가슴이 움푹 파였고, 그는 피를 토하며 뒤로 날아갔다.

    “육화명, 자네 미쳤나!”

    백소천이 바로 심협의 앞을 막아서며 외쳤다.

    한데 육화명의 대답보다도 부동래의 놀란 목소리가 먼저 들려왔다.

    “심형, 이건……?”

    백소천이 황급히 돌아보니 심협의 복부를 뒤덮은 하얀 빛 안에서 피와 살이 빠르게 부패했고, 불과 몇 호흡 만에 먼지가 되어 완전히 녹아내렸다.

    심협의 복부에는 커다란 구멍이 생겨나 피와 살이 사라졌고, 척추도 녹아내려 몸의 거의 두 동강 날 지경이었다.

    육화명이 이를 보고는 흉흉한 웃음을 띠더니 벌떡 일어나 곧장 심협에게로 돌진했다.

    섭채주가 더는 손에 사정을 두지 않고 곧장 육화명에게 달려들며 한 손을 들고 손끝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러자 손가락에서 금빛 실이 만들어졌고, 사방에서 기운이 몰려들면서 푸른 회오리바람이 생겨났다.

    곧이어 휙 하는 파공음이 울려 퍼지더니 금빛이 손끝에서 뿜어져 나갔고, 이 빛은 금색 화살이 되어 금색 불꽃을 뿜어내며 육화명에게로 날아갔다.

    화살이 지나가는 곳마다 공간까지 끌려가는 것처럼 허공이 흔들렸고, 육화명을 압도해갔다.

    ‘약목신궁을 사용하지 않았는데도 이 정도 위력이라니!’

    백소천의 머릿속에 이런 생각이 전광석화처럼 스쳐 갔다.

    한편, 육화명은 화살이 날아오는 것을 보고도 피하지 않고 가슴을 활짝 펴고 달려들더니 주먹에 법력의 불꽃을 만들며 심협을 향해 계속 돌격했다. 목숨을 바쳐서라도 심협을 죽일 기세였다.

    그 순간, 누군가가 갑자기 둘 사이에 나타나더니 두 자루의 하얀색 골검(骨劍)을 교차하고 힘껏 위로 올렸다. 그러자 강력한 법력이 솟구쳤다.

    골검과 금빛 화살이 충돌하면서 화살의 방향이 갑자기 바뀌었다.

    화살이 스쳐 지나가자 육화명의 어깨에서는 옷이 찢어지며 피가 튀었다.

    그러나 육화명은 기세를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심협에게로 돌진했다.

    “안 돼!”

    금빛 화살을 튕겨낸 고화령이 몸으로 육화명을 막아섰다.

    육화명은 전력으로 그녀의 가슴을 가격했고,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피가 튀었다.

    0